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위월이 마치 몽둥이처럼 창을 쥐는 모습에 답돈은 어이가 없었다. 마치 최후의 발악인 것 같아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가의 것을 흉내 내더니, 이젠 창을 잡는 법도 잊어버렸느냐?”
그러나 위월의 귀에 답돈의 비아냥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과거에 여포가 들려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탓이었다.
[그렇게 찌르기가 안 된다면, 네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창을 잡아라. 그나마 몽둥이 쓰는 것만큼은 네놈에게도 나름 재주가 있으니 말이다. 뭐? 멋이 안 난다고? 넌 목이 댕겅 잘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하지만 위월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멋의 극치인 화극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전장을 지배하는 여포가 그런 말을 하니 동의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그러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지금 이 순간에 여포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무기란 결국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한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남의 눈 따위를 신경 쓰지 말아야겠지.”
답돈은 정신이 나간 듯 혼자 중얼거리는 위월의 모습에 비웃음을 날렸다.
“이제는 헛소리마저 중얼거리는구나. 그런다고 봐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 괜한 수작을 부릴 생각은 하지도 마라.”
그제야 위월은 고개를 돌려 답돈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낫긴 하지만, 답돈의 상태 또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위월은 몽둥이처럼 잡은 창을 휘둘렀다. 갑작스레 왼팔을 노리며 날아오는 공격에 답돈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위월은 재빨리 창을 회수하고는 다시 옆으로 휘둘렀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그 공격에 답돈은 당황했다.
어느새 위월의 창이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며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돈은 이번 공격은 막을 수 없다는 판단과 동시에 재빨리 몸을 뒤로 눕혀 바닥을 굴렀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답돈은 얼른 몸을 일으키며 위월을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이 낭패를 보았다는 사실에 분한 듯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이!!”
답돈이 뭐라 말을 하려 했으나, 위월은 마치 무엇인가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연신 공격을 쏟아 냈다.
다시금 뒤로 물러나게 된 답돈은 땅에 쓰러진 채 등으로 기며 위월의 창을 피해 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어 대던 답돈으로서는 더없이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위월이 잠시 멈칫거렸고, 그 틈을 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운 답돈은 다시 자세를 잡고 위월에게 창을 겨누었다.
이미 많은 피를 흘린 위월은 시야가 흐려진 듯 잠시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상대할 이는 오직 답돈뿐. 정신을 집중하니 답돈의 숨소리가 마치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그 모습에 답돈도 감히 달려들 수가 없었다. 그가 보기에 위월은 지금 죽음에 거의 다다라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는 과거, 공손찬이 상산병을 이끌며 오환의 병사들을 학살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포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답돈은 부정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 정도로 지금 눈앞에 있는 위월은 알 수 없는 기세를 풍기고 있었으니.
대번에 달려들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도는 답돈의 움직임에 위월이 피식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느냐? 설마 내가 이대로 죽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냐? 우습구나. 나를 죽이겠다고 그렇게 달려들 땐 언제고, 이제 와 겁에 질린 개새끼마냥 꼬리를 말고 있으니.”
위월의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답돈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오환의 나라를 세워 천하를 발아래 꿇릴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인물에게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부끄러움은 곧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되었고, 답돈은 자신의 무예의 정수를 뽑아내듯 위월을 공격해 나갔다.
답돈의 움직임은 정석적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그 기세만큼은 무척이나 매서웠다.
하지만 위월 또한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찔러 들어오는 답돈의 창을 정확히 노려 창대로 흘려내자, 답돈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위월의 움직임에 답돈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흠뻑 피를 흘린 허벅지를 노려 창을 내질렀으나, 이번에도 역시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에 더해 위월의 창이 머리를 후려치듯 날아들자, 답돈은 허겁지겁 뒤로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답돈은 연신 추태를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위월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동안 말없이 위월을 노려보던 답돈이 품에서 비도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전사의 수치라 여겨 쓰지 않는 물건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전사라 자부하는 답돈이지만, 상대를 이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전장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기는 것이 정의이니까. 마음을 다진 답돈은 다시 한번 위월을 노려보며 눈을 빛냈다.
* * *
한편, 누반은 답돈이 전장에서 사라지자,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그러다 이내 주변에서 누군가가 조언을 건넸다. 전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상대측의 대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반 역시 그에 동의하였다. 그러지 못한다면 자신들에게 남는 것은 파멸밖에 없을 테니. 이미 좌우에서 몰아치는 사나운 적의 공세에 몇몇 부족들은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오환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답돈이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그들을 말릴 명분이 없었다.
이는 오환의 선우가 된 누반의 입지를 잘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좌우현왕의 도움이 없으면 누반을 따르는 병사는 겨우 수십에 불과했다.
그런데 답돈보다 나은 점을 보여 주시 못하면, 결국 자신은 허울뿐인 선우가 될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전장에서 살아남더라도 난 허수아비보다 못 한 존재가 되어 버리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누반은 활과 철검을 챙겨 들었다. 그러고는 주변에 있는 기병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섰다.
마침 적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좌우에서 사납게 달려들고 있었다. 원담을 상징하는 깃발을 든 병사들이 분전하고 있으나, 겨우 막아 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곧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오환의 선우인 나 누반이 적장을 잡을 것이다! 오환의 전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누반의 힘찬 외침에 기병들 몇이 창을 들어 올리며 호응했다. 답돈 같았으면 그저 깃발만 들고 나아가도 주변 병사들이 환호하며 따랐을 텐데, 누반의 상황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비참한 현실에 누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에도 이미 내친걸음이라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겁쟁이라 불리는 수춘후 정도라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누반은 구력거 시절부터 따라온 호류섭에게 말했다.
“중군을 뚫고 가려면 방진을 뚫어야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중기가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피해가 막심할 것입니다. 선우, 차라리 우회하시지요.”
“소용없을 것입니다. 이미 승기를 잡은 저들이 쉽게 움직이겠습니까?”
그때, 구루돈이 나섰다.
“제가 저들과 먼저 부딪쳐 길을 열겠습니다.”
구루돈의 자청하고 나서자, 누반은 조금 감동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네.”
“저들의 수장을 붙잡아 진정한 선우가 되소서!”
구루돈과 그를 따르는 기병들이 목숨을 도외시하며 달려나가자, 한순간 적의 방진에 틈이 생겼다.
누반은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기병들을 이끌고 적을 들이쳤다. 그에 오환의 병사들이 약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진이 완전히 무너진 것도 아닌데, 고작 수십 기의 기마만을 데리고 너무 성급하게 보일 정도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장수라면 결코 내리지 않을 판단이었다. 자칫 앞이 막히기라도 하면, 그 순간 독 안에 갇힌 쥐새끼 꼴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천만다행하게도 너무도 적은 숫자가 행운으로 작용했다. 병사들이 과연 그들을 쫓아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누반은 기병들을 이끌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대장기를 향해 달려라! 대장인 수춘후는 비루한 자이니 분명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누반의 말에 병사들은 활을 들어 올리고 소리를 치며 호응하였다.
“수춘후, 기다리거라! 나, 누반이 간다!”
* * *
승태가 머무는 중군에서는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승태는 말 위에 오른 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누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적이 달아날 방향을 잘못 잡고 달려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조금은 웃기게 들리는 승태의 말에 노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이대로는 결말이 빤하니, 뭐라도 해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일 테지요.”
그 말을 들은 승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꽤 무거워 보이는 대도를 들어 올렸다.
“흠, 무겁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가볍습니다. 돈을 엄청 써서 만든 무기라서 말입니다.”
“하면 운철이라도 쓰셨습니까?”
승태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노숙은 놀란 눈으로 다시금 대도를 바라보았다. 정말 운철이 저 정도 크기의 대도를 만드는 데 쓰였다면, 정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석에서 제련한 운철 자체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 역시 드물었다.
“매일 돈이 없다며 죽는소리를 늘어놓으시더니, 그런 것들은 잘도 모으십니다.”
승태는 차마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돌리며 투구의 안면 가리개를 덮어썼다.
“큼, 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니, 적이 곧장 이리로 달려오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노숙은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있는 이곳 중군은 이중, 삼중으로 진을 짜 두었는데, 이를 뚫고 온다는 것 자체가 병사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방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거, 한 번 날을 잡아 군의 기강을 다잡아야겠습니다.”
승태는 괜히 일이 커질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적이 소수로 미친 듯 들이닥치니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겠지요. 한 줌도 안 되는 적 때문에 진을 망가트릴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거의 궤변에 가까운 승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앞에서 뿌연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승태가 직접 말을 몰아 나가려 하자 함진영의 병사들이 제지하고 나섰다.
“주군, 위험하옵니다.”
그러나 승태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그리 걱정인가, 내 곁에 자네들이 있는데. 설마 저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겠지?”
진한 믿음이 담긴 승태의 말에 함진영의 부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흡족한 듯 지켜본 승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알았으면 가 보세. 저 정도로 목숨을 걸고 나를 만나러 왔으니, 마중은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