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6
(6)
흉골과 늑골을 정복한 후 갈랐던 근육층을 층별로 봉합하고 마지막으로 피부를 봉합한 후 가슴을 닫고 배액관을 고정하기까지.
화부는 가상의 환자를 통해 오국환이 했던 모든 수술 과정을 그대로 따라 해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는 3시간이 넘게 걸린 수술이지만 가상의 입체모형을 수술한 것이기에 대략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후우! 가상으로 해 보는 것도 이 정돈데 환자에게 직접 하는 것은 몇 배로 힘들겠지. 내가 살던 시대에서 가슴뼈가 함몰되고 심장을 비롯한 주변 장기들이 손상됐다면 절대 살릴 수 없었을 텐데, 이 시대엔 이런 환자도 살려 내다니! 어느 시대를 사느냐에 따라 받는 복도 다르구나.”
* * *
“송 선생.”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던 송지오는 최용수가 나타나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네, 선생님.”
송지오는 레지던트 1년 차고 최용수는 레지던트 2년 차다.
“오국환 선생님 수술 잘 끝났어?”
“네, 수술이 잘 돼서 경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달달한 걸로 뽑아 봐.”
“네.”
송지오가 커피를 뽑아 내밀자 최용수는 후루룩 소리가 나게 한 모금 마신 후 의자에 앉았다.
“에휴, 이제 겨우 한숨 돌렸네. 금요일은 어떻게 된 게 비상 아닌 날이 없냐?”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멸치 이 새끼는 어떻게 해야겠냐?”
최용수가 이민호를 들먹이자 송지오가 잠시 멈칫했다.
예전 같으면 그의 말에 동조했을 텐데 고소가 취하되어 당직도 풀리고 수술실에서 오국환이 이민호를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는 조금 바뀐 듯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만 괴롭혀도 되지 않을까?
“오프에 퇴근한 거라 더 태우기는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국환 선생님도 이제 그만하라고 하셨고요.”
“야! 아무리 오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했다고 해도, 세상 어느 병원 인턴이 오프에 퇴근을 하냐?”
“그렇긴 하지만 낮에 근무하면서 CICU(흉부외과 중환자실) 당직을 십 일이나 섰지 않습니까. 사실 그 정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당직까지 섰으면 그만 태워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 어째 갑자기 멸치를 두둔하는 것 같다?”
최용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송지오는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잖아도 인턴들이 우리 과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인데, 너무 과하게 태우면 올해도 미달 사태가 나올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말한 거예요.”
흉부외과는 거의 매년 1차 모집이 미달이고 2차 모집을 해야 티오가 난 레지던트의 수를 채울 수가 있었다.
“어차피 잘해 줘도 우리 같은 노가다 과는 기피 대상이야. 그러니 차라리 빡세게 굴려 제대로라도 가르쳐 주는 게 나아.”
“하하! 틀린 말은 아닌데, 솔직히 태우기만 했지 가르쳐 준 건 별로 없잖습니까.”
송지오의 말에 최용수는 살짝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너 갑자기 왜 그러냐? 멸치한테 밥이라도 얻어먹은 거야?”
“아이고, 뭘 또 그렇게 말씀하세요. 얻어먹은 것도 없어요. 그냥 멸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면도 있잖아요. 거기다 오늘 보니 정신을 차렸는지, 조금 바뀐 것 같아서요.”
“죽은 환자 수술실로 데려온 놈인데 그 정도 벌은 받아야지. 뭐가 억울해?”
“에이, 사실 인턴이 받을 벌은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에휴, 아닙니다. 저는 바빠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바쁘긴 뭐가 바빠! 보아하니 멸치를 두둔하고 싶은 모양인데 너 그러다가 황 교수님께 찍힌다.”
“두둔하는 게 아니라 그 정도면 됐다 싶어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오국환 선생님께서 괜히 멸치 괴롭히는 것을 그만하라고 했겠습니까? 황 교수님의 언질이 있었기에 우리에게도 넌지시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송지오가 휑하니 가 버리자 최용수는 잠시 머릴 긁적이다 커피를 단숨에 마셔 버렸다.
“아오! 저 새끼 인턴 때는 찍소리도 못했는데 레지던트 1년 차라고 이제는 슬슬 기어오르네. 한번 밟아 줄 때가 된 건가?”
* * *
흉부외과 인턴들은 주로 중환자실이나 병실을 돌며 채혈, 드레싱, 바이탈 체크, 튜브 교체, 단순 봉합, 차트 작성 등을 하고 레지던트 1년 차나 2년 차가 그런 인턴들을 관리하며 기본 술기들을 가르친다.
“이민호 선생.”
“네, 송지오 선생님.”
“우리 과 도는 거 이제 며칠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다음 과는 어디야?”
“EM(응급의학과)입니다.”
“EM? 하필 거기야?”
송지오가 말끝을 흐리자 화부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나간 일은 별로 개의치 않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그래. 하긴 생각해 보면 EM 쪽이 오히려 너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어쩌면 여기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
“…….”
“그나저나 곧 있으면 10월인데 전공은 뭘로 할지 정했어?”
송지오가 예전과 다르게 관심을 보이자 화부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민호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흉부외과 인턴이 끝나고 다른 과로 가면 잊힐 대상.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이 몸 주인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는 건가?’
이민호였다면 약간이나마 위안을 받았겠지만, 화부는 시큰둥했다.
“CS(흉부외과)나 NS(신경외과) 쪽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GS(일반외과)도 매력적이라 아직 고민 중입니다.”
화부는 이민호가 원래 원했던 과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과를 이야기했다.
순간 송지오의 눈이 동그래졌다.
외과 계열이나 소아과 산부인과 같은 과들은 사망 사고도 많고 보호자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어 대부분의 인턴들이 기피하는 과다.
그런데 외과 계열 셋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니.
이런 경우는 대부분 돈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진짜 의사가 되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본인이 그러하기에 절로 이민호가 달리 보였다.
“크흠, NS와 GS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진짜로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heart를 다뤄야지. 심장이 멈추면 죽잖아.”
“그렇지요.”
“그럼 우리 과로 와.”
“네? 아, 아직은 고민 중이라…….”
“네 입장에서는 꽤 억울한 일을 당해 황 교수님이 싫겠지만 우리 과에 황 교수님만 있는 건 아니잖아. 김 교수님이나 소 교수님 실력도 대단해서 배울 게 많아.”
“그렇긴 한데, 아직은 몇 달 남았으니 좀 더 고민을 해 보겠습니다.”
“크흠, 그래. 알았어. 부디 우리 과를 선택하길 바랄게.”
“네.”
병실이 가까워지자 송지오가 차트를 살핀 후 이민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농양절개 배농시 가장 주의해야 할 게 뭐지?”
화부는 이미 차트와 이민호의 기억을 통해 환자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숙지할 뿐만 아니라 머릿속으로 한 번씩 시뮬레이션도 했기에 묻자마자 마치 준비한 듯 대답했다.
“lidocain syringe(국소마취제 주사) 할 때 abscess(농양)에 injection(주사)할 수 있으니 깊이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잘 알고 있군. 최 선생님에게 들으니 subclavian(쇄골하정맥)도 깔끔하게 잘 잡았다던데, 농양절개 배농도 잘할 거라 믿는다. 저번처럼 대충하면 아주 작살 날 줄 알아!”
“네.”
화부는 잠시 후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환자에게 어떤 처치를 할지 설명한 후, 소독 장갑을 끼고 환부만 드러나게 소공포를 두른 후 피부를 소독했다.
마취제를 주입한 후 잠시 마취가 되길 기다렸다가 메스를 들어 소독된 피부를 절개하자 붉은 피가 섞인 노란 농양 덩어리가 보였다.
먼저 흡입기로 눈에 보이는 농양을 흡입한 후 식염수로 세척을 하고 다시 흡입한 뒤 솜뭉치를 깊은 곳까지 쑤셔 넣어 농양이 솜에 흡수되게 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솜뭉치를 뺀 후 식염수로 다시 한 번 세척을 하고 석션 흡입구를 최대한 깊이 찔러 넣어 잔류 농양까지 흡입했다.
‘내 시대에는 농양이 생기면 피부에 구멍을 뚫어 짜내고 고약을 붙였는데, 시대가 바뀌니 농양을 강제로 빨아들이고 구석구석 씻어 내는구나. 이렇게 하면 확실히 회복이 빠를 수밖에 없겠어.’
화부는 자신이 만든 고약을 환자들의 몸에 붙였던 것을 떠올리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당시 고약은 신의가 만든 명약이라며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든 귀한 약으로 취급받았다.
‘어라!’
이민호의 농양 절개 배농술을 보고 있던 송지오는 약간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던 처음과는 달리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자의 환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민호는 며칠 전에도 농양절개 배농술을 했었다.
그땐 어찌나 농양을 흡입도 대충하고 마무리를 하던지, 의국으로 끌고 가 된통 혼을 냈었다. 그런데 오늘은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세밀하고 정성스럽게 처치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나보다 더 깔끔하게 하네! 이놈이 이렇게 환자를 성실하게 보던 놈이었나? 아까 수술실에서도 그렇고 확실히 태도가 좋아졌는데.’
어떤 계기로 이렇게 바뀐 걸까?
송지오는 이후 다른 병상을 도는 동안에도 이민호의 처지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환자의 환부를 드레싱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콧줄이나 소변줄을 교체하는 것까지, 평상시라면 눈살을 찌푸리며 기피하거나 대충하던 처치들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양 세밀하고 정성스럽게 하고 있었다.
‘허, 참! 오늘은 뭔가 꼬투리 잡을 만한 게 하나도 없네.’
지켜보고 있자니 슬쩍 욕심이 생겼다.
사실 아까 이민호에게 흉부외과를 선택하라고 한 것은 인턴 대부분이 흉부외과를 기피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미리 확보해 두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민호라는 인턴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이놈 이거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놈일 수 있겠는데, 처치들을 보니 외과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도 확실하고…….’
조금이지만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의국에서 가장 많이 괴롭힌 최용수에게 가장 미운 감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거기에 동조한 자신 같은 사람에게 어찌 감정이 좋을 수 있겠는가?
송지오는 병동을 다 돌고 난 후 이민호에게 넌지시 물었다.
“휴우! 다 돌았다. 오늘 응급수술이 많아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민호 선생도 저녁 제대로 못 먹었지?”
“네.”
“내가 매점에서 한 턱 쏠 테니까 가자.”
순간 화부의 눈이 반짝였다.
안 그래도 지갑이 없어 병원 내 매점을 보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군침만 삼켰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감사합니다, 송지오 선생님.”
이민호가 꾸뻑 고개를 숙이자 송지오는 피식 웃었다.
‘짜식, 이제 보니 상당히 쉽게 마음이 풀리는 스타일이네?’
잠시 후 매점에 도착한 송지오는 이민호를 향해 선심 쓰듯 말을 했다.
“억울하게 당직을 선 데다 오늘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었으니, 기분이다. 먹고 싶은 것 다 골라라.”
“네! 저, 정말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도 됩니까?”
“비싼 거 골라도 되니까 다 골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민호가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자 송지오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최소한 자신에게는 악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뭐 삐쩍 말라 멸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식탐이 없는 놈이니…….’
하지만 송지오의 생각은 이민호가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여러 종류의 도시락과 과자 음료수 등을 담아 가지고 오자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이민호 선생!”
“네. 선생님.”
“그거 다 먹을 수 있겠어? 설마 의국에 쟁여 놓고 먹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