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85
85화 – 교류전(2)
갑작스러운 소란에 서준의 시선 또한 자연스럽게 소란이 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서준의 시야에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는 어떤 한 여성이 보였다.
나이는 20대 중후반 정도 되었을까.
그녀는 냉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길게 내려앉은 흑발과 새하얀 피부는 그런 차가운 분위기를 한층 증폭시키고 있었다.
또한 짙은 속눈썹 사이로 내려앉은 시선은 절제된 감정을 넘어, 세상 모든 것을 도외시하는 듯 해보였다.
그것은 지난 날, 검성에게서 엿보았던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과도 비슷해보였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서준은 그 분위기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서준은 그녀가 말로만 들었던 이하윤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번 교류전은 일부 공개로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교류전에 출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참관하러 오신 겁니까?”
어느덧 주위로 우르르, 몰려든 기자들이 이하윤에게 질문을 쏟아내었다.
이하윤 주위에 있던 관계자들이 그런 기자들을 막아서며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 실랑이 속, 이하윤은 관계자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기자들은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림과 동시에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이하윤은 그런 관심들조차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다른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이유가 김서준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멈칫.
갑자기 들려오는 질문에 이하윤의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이하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한 기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 이하윤의 표정은 냉혹하리만큼 한층 더 싸늘해져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에 불과했지만 주위를 짓누르는 압박감마저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그,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이하윤의 시선을 받은 기자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일순간 내려앉은 묵직한 정적.
조금의 시간이 지나 이하윤이 툭, 말을 내뱉었다.
“김서준이 누구죠?”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유유히 건물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쟤가 말로만 듣던 헌터밀의 이하윤이구나. 엄청 분위기 있게 예쁘네···”
그렇게 이하윤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갑자기 민율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수연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민율을 쏘아붙였다.
“예쁘다는 말이 거기서 왜 나와?”
“예쁘니까 그렇지. 예쁜 사람한테 예쁘다고 하는 게 잘못이야?”
“상황이 안 맞잖아. 그러는 나한테는 예쁘단 소리 한 번도 한 적 없잖아.”
“넌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민율의 대답에 순간 수연이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연이 눈을 홱, 치켜뜨며 소리쳤다.
“이제 성인이라고!! 그리고 예쁜 거랑 고등학생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그런 수연의 소리가 컸던 걸까.
이하윤을 쫓던 기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이쪽으로 향했다.
“어···? 저기 김서준 아니야?”
“김서준? 김서준이 왜 여기에?”
“서, 설마! 이번 교류전에 드림 아카데미도 참전하는 거였어?”
“이번 교류전을 일부 공개로 한 이유가 있었구만!”
촤촤촤촤촤촤촥!!
그리고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함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김서준님! 잠시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이번 교류전에서 이하윤과 맞붙는 겁니까?”
그런 기자들의 모습에 민율이 수연에게 말했다.
“잘하는 짓이다.”
“오빠 때문에 그런거 잖아.”
그러면서 또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둘.
서준은 그런 둘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도 들어가자.”
#
기자들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온 서준 일행은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기실은 아카데미 별로 따로 마련해두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넓은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곧 관계자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조금 있으면 교류전 토너먼트가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 전에 확인 차, 규칙과 경기 방식을 다시 한 번 설명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관계자의 물음에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교류전은 3대 아카데미에서 상금을 거는 조건으로 경기 방식과 룰 또한 그쪽에서 정했다.
그리고 사전에 미리 통보를 받은 바, 그 중에는 꽤 특이한 규칙들이 있었는데.
“일단 이번 교류전에서는 개인 장비의 사용은 일체 금지입니다.”
그 첫 번째 규칙은 다름 아닌 공용 무기였다.
이번 교류전은 다른 대회들과는 달리 교류전에서 제공하는 무기 이외의 다른 장비들은 일체 사용이 금지 되었다
쉽게 말해 서준은 이번 교류전에서 롱기누스의 창과 궁니르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해서 미리 장비를 준비했습니다만, 김서준님이 창. 박서윤님이 검. 이민율님이 단검 두 자루와 활. 맞습니까?”
서준을 비롯한 서윤과 민율이 고개를 끄덕이자 관계자가 한쪽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 시선 끝에서 다른 관계자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 손에는 보자기로 쌓여있는 물건들이 들려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류전에서 준비한 공용 장비였다.
“확인해보시고 문제가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관계자의 말과 함께 서준은 창을 확인했다.
공용 장비 치고 나름 신경을 쓴 모양인지 창의 품질이 썩 나쁘지가 않았다.
썩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당장 실전에서 사용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서윤이 선물해준 창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였으니, 수천 만원 정도는 가볍게 호가할 것 같았다.
물론 롱기누스의 창과 궁니르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혹시 다른 필요하신 장비가 있으신가요?”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럼 다음으로는···”
관계자는 곧 있을 교류전 토너먼트 규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여타부타 부연 설명이 많았지만, 일반적인 토너먼트 방식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더 궁금하신 사항들이 있으신가요?”
서준이 다시 고개를 젓자 관계자가 말을 이었다.
“다른 궁금하신 점이나 문제가 있으실 경우, 대기실에 있는 관계자 아무나 붙잡고 말씀하시면 확인하고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설명을 마친 관계자는 곧장 대기실을 떠나갔다.
절차 면이나 진행 방식 면에서 다른 대회 못지 않게 깔끔한 것이 과연 3대 아카데미다웠다.
“품질은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익숙하지가 않은 걸.”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민율이 활 시위를 당겨보고 있었다.
이어 단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더니 어색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저도 익숙하지 않네요.”
그리고 서윤 또한 마찬가지인 듯 검자루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 법이죠.”
유일하게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수연만이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민율이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거 다 기만하는 소리야. 그런 말 하는 장인들이 조잡한 도구 쓰는 거 봤어?”
“뭐··· 그건 그렇지만…”
“장인들은 이미 좋은 도구를 쓰니까 그런 말을 하는거야.”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 검성(劍星)부터가 청룡검(靑龍劍)을 사용하고 있었다.
민율은 고개를 돌려 서준에게 물었다.
“그보다 대장. 대장은 괜찮아?”
“나? 나야 뭐···”
갑작스러운 민율의 물음에 서준은 창을 이리저리 만져봤다.
롱기누스의 창에 비하면 허술하다 못해 조잡하게 느껴지는 창.
확실히 민율의 말처럼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뭐야. 대장은 딱히 신경 안 쓰이는거야?”
“서준 오빠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 모양인데?”
“아니,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닌데···”
사실 서준은 창의 어색함보다는 다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음··· 이거 괜찮으려나?’
서준은 다시 한 번 창을 내려다봤다.
롱기누스의 창에 비교해서 그렇지 품질 자체는 상당히 좋은 창이었다.
‘뭐… 괜찮겠지.’
서준은 금방 상념을 털어버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교류전 토너먼트가 시작했다.
그리고 서준의 첫 번째 상대는 가온 아카데미의 박하준이라는 수강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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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준은 가온 아카데미의 유망주 중의 유망주였다.
정확히는 이 교류전에 출전한 수강생들 모두가 유망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류전에는 상위권이라 불리는 수강생만이 출전할 자격이 주어졌으니까.
그리고 한국의 3대 아카데미의 유망주라고 함은 곧 천재라는 것을 의미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대체 저 놈이 뭐라고···’
박하준은 눈앞의 김서준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보이는 김서준은 정말 별 볼일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외모도 그렇고 분위기 자체도 살짝 어벙한 것이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만일 소문을 듣지 못했다면 왜 여기에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놈팽이였다.
‘대체 저 놈이 뭐라고 정시우가 그런 말을 한건지···’
특히 정시우가 했던 그 말.
박하준은 눈앞의 김서준을 바라보며 지난 날의 일을 떠올렸다.
그건 다름 아닌 며칠 전.
교류전에 드림 아카데미가 출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박하준은 곧장 정시우를 찾아갔다.
지난 레이드 배틀에서 드림팀에게 처참하게 깨졌던 정시우.
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정시우는 레이드 배틀 이후, 수련장에서 틀어박힌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여 박하준은 그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음을 정시우에게 알려주고자 했다.
그렇게 박하준은 정시우를 찾아갔고, 곧 수련장에서 수련하고 있는 정시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소식 들었어? 이번 교류전에 드림 아카데미도 출전한다는 소식 말이야.’
‘들었다.’
박하준의 말에 정시우는 시선을 주지도 않고 답을 했다.
그저 휘두르는 검을 계속해서 휘두를 뿐.
그 지독한 모습에 박하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럼 김서준도 출전한다는 뜻 아니겠어?’
‘그렇겠지.’
‘하하.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수련 중이었구만.’
박하준은 무색한 마음에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역시나, 이미 이렇게나 김서준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를 갈고 있는 정시우였다.
박하준이 아는 정시우는 이런 인물이었다.
벽을 마주하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벽을 뛰어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
그 방식이 과한 면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정시우는 그런 인물이었다.
지난 교류전에서 이하윤의 압도적인 모습에 다들 절망하고 있을 때도 그러했다.
이하윤은 좌절이라고는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가온의 천재들에게 하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렇게 다가갈 수 없는 하늘에 다들 절망했지만, 정시우만은 달랐다.
정시우는 이하윤에게 좌절하고 절망했을지언정, 이하윤을 뛰어넘고자 발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가능 여부를 떠나서 그런 정시우의 모습에 박하준 또한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레이드 배틀에서 워낙 처참하게 깨진 정시우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정시우는 정시우였다.
박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 너답지. 이번에는 김서준, 그 새끼를 눌러버리라고.’
그런데.
‘아니.’
들려온 정시우의 대답은 박하준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난 이번 교류전에 출전하지 않을 생각이다.’
‘……뭐? 대체 왜?’
박하준은 물었으나 어째서인지 정시우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검을 휘두르며 수련을 이어갈 뿐이었다.
박하준은 그런 정시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이유가 뭔데?’
정시우는 박하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툭, 말을 내뱉었다.
‘…김서준이 출전하니까.’
박하준은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김서준이 출전해서 출전하지 않는다니?
그 순간, 박하준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리고 그건 정말 말이 안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정말 그럴리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을 생각하며 박하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설마··· 김서준한테 겁 먹은 거냐?’
정시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난 김서준에게 겁 먹지 않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이하윤. 한 명뿐이다.’
‘그럼 왜···’
그리고 이어진 정시우의 한 마디.
‘김서준에겐… 두려움이라는 감정조차 느끼지 못했으니까.’
‘뭐라…고?’
박하준은 정시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시우는 그저 이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넌 이해할 수 없을거다.’
그렇게 정시우는 끝끝내 출전 거부 의사를 꺾지 않았다.
.
.
“……병신새끼.”
재차 떠오르는 정시우의 말에 박하준은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김서준은 정시우가 그렇게 평가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저딴 놈한테 쫄아서 내빼기는.”
물론 들리는 소문과 결과들이 있으니 평범한 수강생은 아니었다.
깜냥은 있기에 그런 소문들과 결과들이 나왔겠지만, 소문이야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그것도 결국 밟고 넘어서면 그만이었다.
여기 교류전은 천재라 불리던 이들이 모여 합을 겨루는 장.
천재라 불리던 이들 중에서 또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여기에 출전하는 이들이었다.
한 마디 용의 꼬리들이 아니라 용의 머리들이 모이는 곳.
그간 천재라 뻗대던 놈들이 교류전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맛보았는가.
저런 놈들이야 널리고 널린 것이 바로 이 교류전이었다.
“병신새끼.”
박하준은 보이지도 않는 정시우를 향해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두 분 모두 준비 되셨습니까?”
그 순간 들려오는 심판의 말에 박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건 서준과 마찬가지로 교류전에서 준비해준 공용 장비였다.
사실 이전까지 교류전은 개인 장비의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다.
장비의 격차도 결국 수강생의 격차라는 것이 교류전의 의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 교류전에서만큼은 그 규칙이 바뀌었다.
말로는 수강생들간의 동등한 실력을 겨루고자 한다는 취지였지만, 사실은 김서준 때문임을 박하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얼핏 들은 소문으로는 김서준이 사용하는 장비를 당최 따라갈 수 없다고는 하는데…
“장비 차이가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다고.”
박하준은 솔직히 그 소문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박하준은 검을 단단히 말아쥐었다.
김서준이 그간 다른 대회에서 얼마나 뻗대었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3대 아카데미의 교류전.
용의 머리는 다르다는 것을 직접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럼··· 시작하세요!”
이어지는 심판의 경기 시작 소리.
그런데.
파박!
“…?”
경기 시작과 함께 돌연 박하준의 시야에서 서준의 신형이 사라져버렸다.
‘움직임을… 놓쳤다고?’
아니, 정확히는 놓친 게 아니라 보이지가 않았다.
박하준은 김서준이 움직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으니까.
박하준의 시야에는 그저 서준이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 무슨···”
박하준은 황급히 고개를 휙휙, 돌려 서준의 모습을 찾았다.
후우우우웅!
그 순간, 오른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서준의 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험!’
박하준은 황급히 검을 들어 쇄도하는 창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반격을 하려던 찰나.
콰──앙!
서준의 창이 박하준의 검을 때리며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몰아쳤다.
“쿨럭!!”
박하준은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과 함께 피를 한움큼 토해냈다.
‘무, 무슨 힘이···!’
아찔한 격통 속에서 박하준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서준은 이미 자리를 피한 상태였다.
서준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신묘한 움직임으로 신형을 흩뿌리다시피했다.
그 신형을 움직이는 발재간은 또 얼마나 현란한지, 박하준은 도저히 눈으로 쫓을 수가 없었다.
휘이이이이익!
이어 바깥 쪽에서 안쪽으로 휘몰아치는 창.
박하준은 다시 한 번 가까스로 검을 들어 창을 막았다.
콰──앙!
그러자 어김없이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이번에는 박하준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커헉!”
박하준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준의 움직임을 쫓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 일격 하나하나를 막는 것조차 벅찼다.
‘뭐라도 해야···!’
박하준 이를 까득, 깨물며 검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 순간.
쐐애애애애액!!
마치 한줄기 빛살처럼 쇄도해오는 창을 바라보며 박하준은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죽는다!’
팟!
찔러오는 창이 박하준 눈앞에서 뚝, 하고 멈춰섰다.
그리고.
후우우우우우우웅!!!
엄청난 풍압이 폭풍우처럼 박하준의 얼굴을 휩쓸어가듯 몰아쳤다.
땡그렁!
박하준은 굳어버리는 몸과 함께 저도 모르게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
“…”
“…”
장내에 내려앉은 기묘한 정적.
“기, 기, 김서준··· 승···”
그곳엔 오직 심판의 승리 선언과.
파지직!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자 서준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불안불안 하더라니. 조금만 늦게 끝냈으면 창이 깨질 뻔했잖아.”
들려오는 서준의 말에 박하준은 살며시 시선을 내려 눈앞의 창을 바라봤다.
그런 박하준의 시야에는 여기저기에 자잘한 실금들이 가있는 창이 비쳐보였다.
서준의 말처럼 곧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
박하준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창은, 교류전에서 준비한 공용 장비들은 상품질의 장비들이었다.
당장 프로 헌터들이 실전에서 써도 이상이 없을 정도의 품질이었다.
애초에 드림 아카데미 뿐만 아니라 3대 아카데미의 수강생들도 사용하는 장비를 허투로 만들리가 없지 않은가.
가격만 따져도 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장비들이었다.
그런데 김서준이 딱 세 번 휘두르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금이 가버렸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창이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갈 수 있는 걸까.
아니, 그런 힘이 실린 그 일격에 맞았다면··· 자신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 하하···”
박하준의 머릿속으로 정시우와의 마지막 대화가 스치듯 지나갔다.
‘네 말처럼 김서준이 대단하다고 치자. 하지만 이하윤이 출전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김서준이라도···’
‘그래서?’
‘……뭐?’
정시우는 별 관심 없다는 듯 툭, 말을 내뱉었다.
‘S급 헌터와 대격변의 영웅이 붙는다면 구경하는 재미는 있겠군.’
‘…… 너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박하준은 그때 정시우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기요! 여기 창 좀 튼튼한 걸로 바꿔주세요! 아까부터 창 깨질까봐 조마조마해서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갔네.”
하지만 지금.
‘네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라. 난 또 다시 그 하늘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박하준은 그때 정시우가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