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0
“대체 무슨 망발을 하는 게요! 이런, 무늬만 사회주의자인 제국주의자 같은!”
“당신 뭡니까! 방금 발언 공식적으로 사과하시오!”
“제국주의자를 제국주의자라 부른 게 잘못이라면 마르크스도 죄인이겠소?”
겨우 조용해졌던 재판정은 또 다시 소란스럽게 끓어올랐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이 불러온 파장을 신경 쓰지도 않는지, 정작 밥 에드워즈는 엉뚱한 곳으로,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게 시선을 흘렸다. 그 끝에 서있던 것은,
트로츠키.
‘맙소사 저 인간 애초부터···.’
올리버 로는 그의 속내를 깨닫고 머리를 싸맸다.
영국인들과 아일랜드인들의 패싸움. 사건 기록을 대충 훑기만 하면 그렇게만 보인다.
그러나 피의자들의 이름을 쭉 훑으면···.
아일랜드 측. 마이클 오리오던, 프레드 맥마흔, 벤 머레이···.
전부 아일랜드 공산당원이다.
반대로 영국 측. 루이스 레빈, 제임스 패럴, 스태포드 코트먼···.
전부 영국 독립노동당원이거나 그게 아니라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다.
영국 측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이 도발에 걸려 싸웠다···. 이 과정이 전부 저 인간의 기획이었나?
이건 시위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챙겨 달라는.
앞으로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이 안에서 스탈린주의자들한테 눌려 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미국 쪽 인사 중에서 트로츠키가 지금 가까이하는 올리버 로 자기자신, 그리고 메리먼만 생각해보더라도 스탈린주의자들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위기감을 느꼈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앞으로의 정치적 패권을 위해서라지만 이런 짓을···?
그렇게 꼬리를 물고 줄줄이 이어지던 로의 생각을 끊어낸 것은 트로츠키였다.
그가 오른손을 들고 말했다.
“로 동지.”
“···예, 배심원 트로츠키 동지의 발언권 신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트로츠키가 로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재판정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영국 측에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밥 에드워즈도 기분 좋게 트로츠키를 바라보고 있다.
‘씨발··· 이제 앞으로 저 새끼들이 위풍당당하게 온갖 지랄을 하는 꼴을 봐야만 하는···’
“지금 뭐하는 겁니까? 왜 여러분끼리 합의도 못 봐서 지휘권을 뺏긴 이야기가 여기서 나옵니까?”
“어?” 로의 입에서 멍청한 추임새가 튀어나왔고,
트로츠키는 안경을 벗고 영국 측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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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니···.”
밥 에드워즈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서 있다.
분명히 이건 저놈이 바란 반응이 아니겠지. 여태까지 소련 지원도 못 받는 소규모 조직에서만 찌그러져 살다가 트로츠키가 지도자가 된 새로운 세상에 왔으니 뭔가 다른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람이 잔뜩 든 허파를, 방금 트로츠키가 직접 바늘로 찔러 터뜨려주었다.
그러나 물론 여기서 그칠 생각은 없다.
“분명, 우리가 여기서 사건 경위서를 다시 살펴보면 알 수 있다시피 영국인들이 먼저 아일랜드인들에게 시비를 걸었소.
그 중에 나온 발언 중 몇 개만 읊어 보겠소. ‘어이 감자들. 조선인들에게 감자를 나눠주기에 아깝지는 않던가?’, ‘지휘권을 잃은 게 안타깝지만 자네들은 그런 걸 가져본 적도 드무니 우리보다야 기분이 괜찮겠지.’
이것이 어떻게 혁명 동지들에게 할 수 있는 언동이겠소!”
“트로츠키 동지! 그건 아일랜드인들의 일방적인 증언입니다!”
밥 에드워즈가 항변했지만 트로츠키는 하찮다는 듯 무시했다.
“세부 발언은 그렇다 쳐도. 영국인들이 선제적으로 도발을 걸었다는 사실은 이미 근처의 프랑스인 통역사와 조선인들이 증언해주고 있소! 이것도 일방적인 증언이오?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당신네들의 패악질로 인하여 현지 민간인의 재산에 피해가 갔소.
영국인들을 변호한다는 에드워즈 동지, 당신은 현지인들에 대한 사과 한 마디도 아직 하지 않았소! 이번 일로 현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우리 모두가 입을 손해들은 그 따위 민족적 자존심과는 비교도 안 되게 중대할 것이오!
그런데도 이런 태도라니! 자중하지는 못할 망정!”
그렇게 과장되게 씩씩대며 트로츠키는 발언을 마쳤고. 그때 밥 에드워즈의 표정이란 구경할 만한 것이었다.
“열기가 과열된 것 같으니··· 모두들 진정하길 바라오. 트로츠키 동지, 동지도 너무 감정적이었소.”
“미안하오, 올리버. 내가 너무 흥분했구려. 나중에 술이라도 따라줄 테니 방으로 와 주시면 고맙겠소, 하하하.”
올리버 로를 이름으로 불렀다. 미국의 스탈린주의자를 보란듯이 친밀하게 대했다.
그 자리의 모두는 알았다. 특히 밥 에드워즈는 뼈저리게.
레프 트로츠키가 밥 에드워즈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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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이건···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나! 영국 독립노동당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저는 아무 얘기도 한 적 없습니다, 밥. 어떤 약속도 한 적 없고요.”
매정한 말과 함께 블레어는 밥 에드워즈의 눈길을 뿌리쳤다.
그러면서도 약간 양심이 찔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이틀쯤 전이었나, 트로츠키가 그에게 질문을 했었다.
“블레어 동지, 시류도 못 읽는 멍청이와 얍삽한 기회주의자 중에 어떤 것이 낫소?”
“예? 어··· 보통 둘 다 나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말이 정확하오. 이건, 좋은 대답에 대한 상이오.”
트로츠키는 힙 플라스크에서 나온 보드카를 블레어에게 한잔 따라주었다.
“이렇게 대뜸 이야기하면··· 많이 당황스럽겠지만. 나는 동지를 믿소. 어디서도 이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나는 트로츠키주의자란 족속들이 전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오.”
블레어는 마시던 보드카를 뿜었다. 코와 입에서 느껴지는 활활 타오르는 40도짜리 보드카의 아찔함만으로도 정신차리기 힘들었는데, 트로츠키는 한 술 더 뜬다.
“만약에··· 당신의 트로츠키주의자··· 특히 독립노동당 친구들이 슬며시 떠보는 것 같다면. 확답은 해주지 말고, 그냥 긍정적인 암시만 해주시오.
뭐, 그런 것 있잖소. ‘자네, 트로츠키 선생과 친하게 지낸다지? 그분이 우리 생각은 안 하시나?’, 아니면 ‘우리가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는데 선생께서 동조하시려나?’ 같은 거 말이오.
왜냐하면 그래야 뒤통수를 후려칠 때 더 화려하잖소.”
겨우 입가에 튄 보드카를 닦아내던 블레어는 이제 헛구역질을 했다.
“쯧쯧, 역시 영국남자들은 알코올에 약하구만. 아무튼 잘 부탁하겠소?”
우리는 한 배를 탄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트로츠키는 씩 웃어 보였다.
사람이 그렇게 교활하게 웃을 수 있는지, 에릭 블레어는 처음 알았다.
‘그 말. 지금 보니 나보고는 시류도 못 읽는 멍청이라고 한 셈인가?’
뒤늦게 든 생각에 블레어는 씁쓸하게 웃었지만, 이미 절망한 채 돌아선 에드워즈는 그의 웃음을 보지 못했다.
///
그렇다! 트로츠키주의자는 정세판단 하나 제대로 못하는 등신 머저리이거나, 아니면 능력은 없으면서 대장 짓은 하고 싶은 기회주의자 머저리다!
이것이 트로츠키의 머릿속에 확고히 자리잡은 판단이었다.
아니, 애초에 왜 멀쩡히 남아있는 소련과 스탈린을 두고 자신을 지지하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가?
평생을 천재로 살아온 트로츠키로서는 감히 그 머저리들의 사고과정을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어렵사리 두 가지 경우를 추측해냈다.
첫째, 진짜로 트로츠키가 정의의 사도이고 소련은 사악한 스탈린 치하의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고 믿기 때문에. 야, 이거 이솝우화 들려주면 진짜로 동물들이 말도 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줄 아는 멍청이들이겠구만! 산타 클로스도 믿는 거 아냐?
일단 이들은 트로츠키나 다른 반-스탈린 좌익 반대파들이 소련 내에서 뭐라고 욕 먹었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트로츠키의 주장은 정치국 내부에서 결정한 사항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 트로츠키의 주장은 스탈린과 크게 구별되지 않았다!
왜냐!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소련식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서! 몇 날 몇 일을 날밤 새가면서 회의해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게 결정해 놓은 게 정치국의 정책이니까! 트로츠키 그 자신도 이미 동의한 바 있는 정책들이다!
아니, 막말로 트로츠키가 망명 중에 날마다 욕하던 스탈린의 농업정책. 그걸 결정하는 데 쓴 보고서 중에는 트로츠키의 보고서도 있다. 그때 회의장에서 찬성표도 던졌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과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의 대립?
트로츠키 자신도 이미 20년대부터 자본주의 국가들이랑 무역하자고 주장했다. 소련에서 쫓겨나고 스탈린과 대립각을 세우다 보니 만들어진 프레임일 뿐,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보면 둘의 정책적 차이도 그리 선명하지 못하다.
스탈린의 정책 기조가 크게 바뀐 것도 아니고···.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소련 내 헤게모니 장악에 실패했을 뿐, 스탈린과 정책 기조나 철학이 달라서 뛰쳐나온 게 아니다. 그 허울 좋은 명분에 그대로 낚였다? 그런 멍청이는 쓸모 없다.
블레어 동지는··· 비록 민병대의 민주주의 같은 헛소리를 했더라도 글재주도 있고, 꽤나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 안고 가겠지만.
뭐, 그 외에도 이런 유형의 인간은 어느 정도 품을 여지가 있다. 그래도 순수한 마음으로 트로츠키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해 준 고마운 이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두 번째.
능력은 없는데 욕심은 많은 경우.
이 경우는, 정말 인간 폐기물이다. 반드시 버려야 한다.
만약 트로츠키의 주장을 간파했고,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왜 대체 소련과 연결된 공산당으로 안 갔을까?
왜 더 크고, 더 잘 조직되어 있고, 자금도 명분도 훨씬 충만한 조직으로 안 가고?
사실 답은 이미 나왔다.
스탈린주의 조직은 더 크고, 더 잘 조직되어 있고, 자금도 명분도 훨씬 충만하니까.
이해가 안 된다면, 당신은 트로츠키만 한 천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머저리거나. 어느 쪽이든 한번 저들의 사고방식을 살펴보자.
자신의 인망이든, 정치력이든, 실무 능력이든. 자신에게 특출 나게 뛰어난 면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똘똘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문제는 모든 게 부족한 이 사람에게 권력욕만은 넘쳐흐른다는 것.
그리고 이 사람이 공산주의자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선택지는 대강 두 가지.
첫째, 다들 가는 대로 주류인 소련 측 조직에 가입하기.
이 선택지는 편하다. 자기가 크게 고생할 필요 없이 이미 체계화된 조직에 참가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실적을 올리면 된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불행히도 그렇게 실적을 올릴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 적당히 만만하게 작고 영세한 조직에 가입하거나 아예 새로 차린다.
대강 앞서 이야기한 멍청이들 데리고서 왕초 노릇도 하고! 뭐 완장질도 해보고! 이야 이것이 권력의 맛인가? 그러다가 소련이 삐끗하는 등 운이 좋으면 자기가 주류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거 정말 인생 날로 먹기 아닌가!
이런 인간들은 이 단체도, 사상도 날로 먹으려는 족속들이다. 생선도 스시밖에는 먹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이런 인간들을 트로츠키가 등용한다면? 능력도 없는 것들이 권력에 취해서 아편이라도 한 것마냥 온갖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고··· 또 어느 정도 눈치는 있으니까 또 자리보전은 잘해서 제 밥통만은 철저히 지키고···.
끝장이다. 그런 사태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어차피 여기가 중세의 동아시아라면 스탈린은 갓난아기는커녕 정자로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스탈린주의자든 트로츠키주의자든 일만 잘하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영국 독립노동당,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 그리고···.”
블레어 앞에서 살생부를 작성하는 트로츠키의 눈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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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사악한 분탕질이 분쇄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당연히 아니다.
우선 지도부 회의의 골치를 썩힌 것은 밥 에드워즈가 이용한 수단이 바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민족갈등이라는 지점이었다.
재판이 대강 마무리되고, 잉글랜드인들에게 미세스···박? 라는 피해자 노인의 망가진 밭과 무너진 울타리, 집 등을 수리하도록 처벌을 내렸다.
그 외에도 마을의 거름을 옮기는 등의 일들을 떠맡았으니 더 사고 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아일랜드인들도 상대적으로는 가볍지만 비슷한 강도의 노역형을 선고했으니 상황은 똑같은 것이고.
문제는 그 뒤로도 꾸준히 이어진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간의 갈등이다. 아니, 일단 한번 무력으로 터져 나왔으니 오히려 본격화된 감도 없지 않았다.
길 가다가 괜히 서로 어깨를 치고 가는 유치한 수준에서, 서로의 속을 살살 긁는 도발성 발언을던지거나, 상호간의 업무를 조금씩 방해하는 등. 처벌하기에는 애매하고, 방치하기에는 불안한 수준으로 두 집단 사이의 다툼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지금 트로츠키가 두려워했던 문제 중 하나가, 민족주의 문제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을 최소화하려고 조직을 언어권 단위로 재편했는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회의에서도 별 중요하지 않은 제안들과 논쟁들이 오직 교착상태를 깰 목적으로 오가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다. 애초에 대표자들 그 자신들도 맡고 있는 조직과 가지고 있는 세력이 있을 텐데 이 문제를 깊게 파고들고 싶을 리가···.
그렇게 답답함만 쌓이는 가운데,
트로츠키의 마음속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새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냥, 다 조져버리게.’
소련 최고의 민족 문제 전문가, 스탈린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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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을 깨우는 폭탄 굉음 (1)
이오시프 스탈린.
사실 이것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오시프 쥬가슈빌리?
비슷하지만, 역시 틀렸다.
‘찢어 죽일 개잡놈의 호로새끼!’
그렇다. 이것이 그 새끼의 본명이다.
아마 ‘찢어 죽일’이 퍼스트 네임이고, ‘호로새끼’가 성, ‘개잡놈’이 그 아비의 성함이 아닐까?
그렇다면 흠, 이제 그 놈의 이름은 ‘찢어 죽일 개잡노미비치 호로새끼’. 이제야 만족스럽다.
아무튼 이 기기묘묘한 작명법의 창안자 트로츠키 선생은 갑자기 떠오른 호로새끼의 음성에 회의 도중 험악한 표정을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무,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오.”
젠장, 블레어랑 몇몇이 눈치챘다. 블레어의 속삭임에 급하게 대답한 트로츠키는 재빨리 얼굴색을 고쳤다. 그러나 그 짧은 새에도 근처의 메리먼이나 다른 사람들은 벌써 지레 겁먹은 것 같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지금 주변 사람을 신경 쓸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도대체 그 새끼가 왜 생각난 거지?’
‘왜냐고 물었나, 동지? 왜냐하면 내가 민족 전문가니까, 일세.’
뇌내망상인 것을 알지만 의기양양한 표정과 함께 제 수염을 쓰다듬는 스탈린의 모습은 심각하게 불쾌하다.
트로츠키는 또 다시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참아낸다.
어쩌면. 어쩌면 머릿속 저 인간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트로츠키는 자신이 아는 가장 뛰어난 민족 문제 해결사의 자문을 구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저 새끼를 떠올린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정적에게도 의견을 구하다니! 역시 레프 트로츠키라는 인간은 얼마나 담대하고 위대한지···.
‘허, 그래서 동지에게 내가 필요하다고 했나?’
정신승리를 하던 트로츠키의 머릿속이 다시 헤집어졌다.
사흘 밤낮을 새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조져버릴 고민만 하던 트로츠키의 몸과 마음은 이미 상당히 피폐해진 상태. 아무리 상상이라도 저···’호로새끼’ 동지의 헛소리를 감당하기에 그는 너무 취약하다.
‘···그래, 그렇다고 치면. 자네의 해결책은 뭔가?’
그냥 빨리 대답이나 듣고 끝내자.
‘다 죽이게.’
“뭐? 개새끼가···읍”
트로츠키가 조그맣게 읊조렸음에도 회의장은 얼어붙었다. 지난 조직 개편 때의 패악질이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진 회의 참석자들은 즉시 조용해져서 트로츠키의 눈치를 살폈다.
“아···아무 일도 아니오. 넋두리일 뿐이었소. 그···벤츠 동지?”
“푸츠입니다만.”
“미안하오, 푸츠 동지. 하던 얘기 계속하시오. 말을 끊어 죄송하오.”
속으로 연신 욕지거리를 던지던 트로츠키는 다시 내면의 스탈린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자네 미쳤나?’
‘왜 그렇게 반응하지? 자네, 우리가 함께 레닌과 러시아 민족주의에 관한 문제로 밤새 회의하던 지난 날들을 잊었나?
우리는 소련 내 소수민족들을 우대했지. 소련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지 러시아제국이 아니니까.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억누르기 위해 온갖 수를 쓰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