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06
1007화
오태산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보며 강진은 일전에 채송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 남자친구는 잘생긴 얼굴은 아니야. 그냥 눈썹이 좀 진하고 남자처럼 생겼어. 그리고…… 웃음이 참 착해.
-웃음이 착해요?
-웃는 거 보면 ‘아, 이런 사람은 정말 법 없어도 살겠다.’ 싶거든.
그때는 ‘착한 웃음’이 뭔가 싶었는데 직접 보게 되니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강진은 오태산의 얼굴에 대해서는 몰랐다.
원래는 채송화가 특징을 살려서 그려 주면 대충 그 윤곽이라도 알 생각이었다.
그런데…… 채송화가 그림을 너무 못 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림은 포기하고 설명으로만 들었다.
예전 일을 떠올리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아…… 차라리 송화 씨가 한 설명으로 몽타주를 만들걸.’
자신은 못 하지만, 최광현이 아는 경찰 인맥을 통해 몽타주를 만들면 될 일이었다. 전에 만복과 달래 부모님 몽타주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걸 생각을 못 했네.’
쉬운 길을 돌아갔다는 생각에 작게 고개를 저은 강진이 청년을 보았다.
조금은 평범한 외모를 가진 청년은 한 스물여섯에서 일곱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참 눈이 깨끗해 보였다.
‘미소만큼 심성이 참 좋아 보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혹시 채송화 씨 남자친구분이세요?”
강진이 바로 채송화 이름을 꺼낼 줄 몰랐는지 놀란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이렇게 바로 들어가?”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년을 보았다.
청년은 수박을 먹다가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송화를 아세요?”
청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맞으시군요.”
“저희 송화를 어떻게 아세요?”
“저하고 친한 형님이 지금 송화 씨 집에서 자취하시거든요.”
“아…….”
강진의 말에 청년은 조금은 실망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채송화를 아는 지인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시군요.”
청년이 다시 수박을 먹는 것을 보며 강진이 수박 한 조각을 더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하나 더 드세요.”
냉면을 먹던 아버지가 청년을 한 번 보고는 강진을 보았다.
“광현이가 살던 집 말하는 거야?”
“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가 의아한 듯 말했다.
“귀신 들린 집이라고 사람들 얼마 안 살고 나가는데 전 주인을 광현이가 어떻게 알…….”
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툭 쳤다. 그에 아버지가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응? 왜 그래?”
아버지의 물음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슬며시 오태산을 보았다.
오태산은 수박을 먹다 말고 의아한 눈으로 아버님과 강진을 보고 있었다.
“귀신 들린 집요?”
오태산의 말에 그나마 눈치가 있는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소문이지.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어.”
“무슨 소문인데요?”
“그게…….”
할머니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자네하고 같이 다니던 여자친구가 귀신이 돼서 그 집에 산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대로 나가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최광현 집으로 데려가려 했는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손발이 맞지 않았다.
‘이래서 거짓말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하는 건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이야기를 살짝 각색하기로 하고는 오태산에게 말했다.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버님이 말했다.
“이야기 여기서 하지그래?”
“식사들 하시잖아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손발이 안 맞으면 안 되니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프로 거짓말쟁이는 장소를 가리는 법이지.”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저승식당을 하고 난 이후로 정말 프로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강진은 오태산을 데리고 푸드 트럭 뒤로 갔다. 트럭 뒤에 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나마 그늘이 있었다.
오태산을 데리고 그늘 밑에 선 강진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채송화 씨가 살았던 집에 지금 저하고 친한 형이 사세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귀신 이야기는 뭔가요?”
“그게…….”
강진은 그 집에 들어온 세입자들이 몇 달 살지 않고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휴우! 그게 우리 송화 다음부터라 귀신 소문이 돈 모양이군요.”
“그게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최광현 빌라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송화, 귀신이 돼서 사람을 괴롭힐 애가 아닌데…….”
작게 고개를 저은 오태산이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세요?”
“사실 저나 형은 그런 귀신 이야기를 안 믿습니다.”
“그러실 테죠.”
“근데 사람들 이야기도 있고 해서 마을 분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전에 살던 분께서 사고로…… 안 좋게 되셨다고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군대에 있어서 장례식에도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셨어요?”
“가고는 싶었지만 군대에서 갑자기 휴가를 가는 게 되지 않으니까요.”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인척도 아니고 여자친구 장례식에 가겠다고 바로 휴가를 내어주는 군대는 없었다.
여자친구와는 법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 말이다.
“마을분 중에 송화 씨와 태산 씨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그래서 송화 씨와 태산 씨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아…….”
거짓말이었지만, 오태산은 순순히 수긍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채송화가 여기에 사는 동안 자주 오고 갔으니 정육점이나 슈퍼 주인들은 자신을 알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정육점과 슈퍼는 자주 가던 곳이니 말이다.
다만 몇 년이나 지났는데 자신을 기억을 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혹시 송화를 보신 것은?”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송화 씨를 봤으면 저희 형 그 집에서 못 살죠.”
“그건 그러네요.”
죽은 송화를 봤다는 건 귀신을 봤다는 것이니 말이다.
“한 번 가 보시겠어요?”
“그 집에요?”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일 년에 한두 번씩 오셔서 빌라 있는 곳 보고 가신다면서요.”
“저도 일이 있어서 자주는 못 오지만…… 송화가 보고 싶을 때는 오고 있습니다.”
채송화를 떠올린 오태산이 미소를 지었다.
“너무 예뻤는데…….”
“그동안 집에 들어가지는 못하셨죠?”
“지금은 남의 집이니까요. 그냥…… 송화 살던 동네 와서 집 한 번 보고, 송화와 걷던 길 한 번 돌아보고 돌아가는 겁니다.”
“그럼 같이 가서 집 한 번 보세요.”
“그 집을요?”
“집 안 가구들이야 전에 송화 씨 살던 것과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집은 그대로잖아요.”
“왜…… 저에게 이렇게 해 주시는지?”
오태산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일 년에 한두 번 오신다면서요.”
“그게 왜요?”
“말이 일 년에 한두 번이지, 여기 오는 거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살아 있는 여자친구라면 모를까 죽은 여자친구, 그것도 몇 년 전에 죽은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서 연고 없는 동네에 찾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한 번 들어가서 보세요. 그동안 집에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보셨을 테니까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오태산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태산의 감사 인사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점심은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냉면 한 그릇 드실래요?”
“아닙니다. 저 오는 길에 점심 먹었습니다.”
오태산의 말에 강진은 더 권하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의를 너무 많이 받으면 당사자가 불편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강진은 오태산을 데리고 푸드 트럭 앞쪽 그늘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늘 아래에서는 장대방의 부모님과 할머니가 냉면을 먹고 있었다.
아버님은 어느새 비빔냉면에 육수를 부어서 물냉면으로 만들어 먹고 있었다.
물냉면을 후루룩 먹던 그가 오태산에게 살며시 물었다.
“그럼…… 그 아가씨 남자친구입니까?”
아버님의 물음에 오태산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네.”
오태산의 말에 아버님이 미안한 듯 머리를 긁었다.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보네요. 정말 미안해요.”
“아닙니다.”
오태산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덧붙였다.
“동네에 그런 소문이 났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소문이지요.”
여자친구가 귀신이 됐다는 소문은 더 들어서 좋을 것이 없어 말끝을 흐리는 아버님이었다.
“광현 형 집 구경시켜 드리려고요.”
“광현이 집을?”
“여자친구 생각나서 일 년에 몇 번 오신대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총각을 봐서 기억을 하는 거야. 오면 여기 평상에 앉아서 빌라 쪽을 보다가 가고는 했지.”
“어쩜……. 이것 좀 먹어요.”
어머니가 수박을 밀어 주자, 오태산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성의라 생각을 했는지 거절하지 않고 수박을 받은 오태산이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오태산을 보며 아버님이 말했다.
“그…… 아까 소문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냥 젊은 아가씨가 안 좋은 일 당해서 그런 소문이 났나 봐요. 마음 안 썼으면 좋겠어요.”
미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말을 하는 아버님에게 어머님이 눈짓을 주었다.
그 눈짓에 아버님이 입맛을 다시고는 남은 면을 건져 먹은 뒤 육수를 그릇째 마셨다.
양념과 섞여서 붉게 변한 육수를 단번에 들이켠 그에게 강진이 말했다.
“맛있게 드셨어요?”
“아주 맛이 좋았어.”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 그릇들을 챙겨 푸드 트럭으로 가져가려 하자 할머니가 말했다.
“설거지 여기서 하고 가지 그래요?”
“아닙니다. 집에 가서 하면 됩니다.”
웃으며 그릇들을 차에 실은 강진이 장대방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다음에 또 올게요.”
“다음에는 음식 가져오지 말고 그냥 와.”
“그럴게요.”
“전에도 그러겠다고 했으면서 오늘 냉면 가져왔잖아.”
“음식 하다 보면 두 분 생각이 나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요. 오늘 냉면 잘 먹었어요.”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어 주고는 푸드 트럭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하늘을 보았다.
‘어르신 말씀대로 할머니에게 맛있는 음식 해 드렸어요. 앞으로도 종종 해 드릴게요.’
강진은 승천을 하면서 혼자 남은 아내가 좋아하는 짜장면도 못 먹을까 걱정을 하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마저 걸음을 옮긴 강진은 트럭 캡을 닫고는 오태산을 보았다.
“멀지 않으니 걸어가시죠.”
“네.”
강진은 오태산을 데리고 걸음을 옮기며 배용수를 보았다.
그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최광현 빌라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먼저 가서 채송화에게 오태산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