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07
1008화
빌라 앞에 도착한 오태산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앞까지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빌라 앞까지는 안 오셨어요?”
“여기까지 오면 송화가 없는 것이 실감이 나서요. 저 슈퍼에서만 봤습니다.”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오태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전화하면 송화가 웃으며 창문을 열 것 같아서요.”
말을 하며 오태산이 빌라의 한 창문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강진이 빌라 창문을 보았다.
그가 가리킨 빌라 창문에서 채송화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좋으시겠네.’
오태산을 보고 좋아하는 채송화를 보며 강진이 걸음을 옮겼다.
“들어오시죠.”
오태산은 강진의 뒤를 따라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은 최광현의 집 앞에 도착해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삐삑!
비밀번호를 누른 강진이 오태산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없는 남의 집에 오태산을 데리고 들어온 거지만 최광현은 웃으며 이해해 줄 것이다.
데리고 온 사람이 채송화 남자친구이니 말이다.
안으로 들어온 강진은 웃으며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채송화를 볼 수 있었다.
“태산아.”
정말 반갑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오태산을 부르며 채송화가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배용수가 급히 다가와 몸으로 가로막았다.
귀신이 반갑다고 안기라도 하면 기가 약한 사람은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강진은 채송화를 막아선 배용수를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에 의아한 듯 강진을 보던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향수를 뿌렸지.”
최광현과 같이 살아야 하기에 강진은 이 집에 향수를 한 병 가져다두었다. 그래서 채송화는 아침마다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에게 다가가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물론 살짝 서늘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배용수가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귀신이 사람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거라. 미안해.”
“괜찮아. 우리 태산이 생각해서 막은 거잖아.”
평소라면 길을 왜 막느냐며 날을 세웠을 터였다. 그러나 채송화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젓고는 오태산을 보았다.
오태산은 집안을 보고 있었다. 집엔 작은 거실과 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여기 집 주인은 안 계세요?”
“지금 출장 갔습니다.”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니 죄송하네요.”
“태산 씨가 온 거 알면 형이 좋아할 거예요.”
“그 형도 저를 아세요?”
“집 소문이 그렇게 나서 형하고 제가 같이 마을 분들한테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다녔거든요. 그래서 태산 씨에 대해 알아요.”
“아…….”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거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그…….”
오태산이 자신을 보며 머뭇거리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이름도 말을 안 했네요. 저는 이강진입니다. 작은 식당을 하고 있어요.”
“저는 오태산입니다. 아시겠지만요.”
웃으며 말을 한 오태산이 집을 보다가 말했다.
“남자 혼자 사시는 것 같은데 집이 깔끔하네요. 좋은 향도 나고.”
향이라는 말에 채송화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잔소리를 해서 그래. 전에는 집에서 냄새가 얼마나 많이 났는데.”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형하고 이 집 전 주인 채송화 씨에 대해 알아보다가 태산 씨 이야기를 들었어요. 해마다 한두 번씩은 슈퍼에서 여기 빌라 보다 가신다고요. 그래서 한 번 뵙고 싶었어요.”
“저를요?”
“어떻게 보면 이 집과 엮인 인연이잖아요.”
“그건…… 그러네요.”
오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소파를 가리켰다.
“일단 좀 앉으세요. 제가 시원한 것 좀 드릴게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슬며시 소파에 앉으려다가 문득 화장실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그러세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슬며시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좁은 화장실 안에는 변기와 세면대, 그리고 한쪽에 작은 샤워 부스가 있었다.
화장실을 보던 오태산이 미소를 지었다. 채송화가 살았을 때와 전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돌연 변기 뒤에 있는 수조 뚜껑을 들어서 올렸다.
드륵!
수조 뚜껑을 열자 그 안이 보였다.
“후!”
수조 내부를 보던 오태산이 웃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다가와 변기 물이 담기는 수조 안을 보았다.
“아…….”
수조 안에는 붉은 벽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거 모르셨죠?”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몰랐네요.”
변기 수조를 열어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변기 세척액이나 세척제를 쓰는 사람들이나 가끔 열어서 안에 파란색 고체약이나 액체를 넣기 위해 열 뿐이다.
그리고 최광현은 변기 세척제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가져다 넣은 거야. 이렇게 벽돌 하나를 넣으면 그만큼 물이 절약이 되지.”
채송화가 자신은 이렇게 절약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한두 번은 별거 아니지만 하루에 변기 쓰는 횟수하고 일 년을 생각하면 이 벽돌 하나의 물이 엄청난 거지.”
채송화의 말에 배용수가 “오!”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하루에 사람이 화장실을 열 번만 사용해도 최소한 저 벽돌로 십 리터는 아끼겠네. 그게 일 년이면…… 와, 거의 사 톤 가까이 아끼는 거네.”
‘일 년에 사 톤이라. 우리 가게는 손님들도 사용을 하니 저런 벽돌 하나 넣어 두면 훨씬 물을 많이 아끼겠네.’
일반 가정집에서 4톤이면 영업을 하는 식당은 더 많은 물을 아낄 수 있을 것이었다.
물 몇 톤이라고 해 봐야 얼마 안 하겠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것이 좋다. 그게 환경에도 좋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오태산이 웃으며 변기 수조를 보다가 말했다.
“송화가 이런 작은 것을 아끼는 걸 좋아했어요. 이런 벽돌 하나 넣으면 일 년에 몇 톤의 물을 아낄 수 있다고…….”
오태산은 수조 뚜껑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다 환경을 위한 거라고 말을 하는데,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어요.”
“좋은 분이셨네요.”
“좋은 사람이었어요.”
미소를 지으며 오태산이 세면대에 달려 있는 거울을 보았다.
“이거 열어 봐도 될까요?”
“그럼요. 마음껏 보시라고 모신 건데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그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세요.”
“왜요, 도둑질하시게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세상 험하잖아요.”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집에 데려오고, 집을 구경시켜 주고, 마음껏 보게 해 주니 말이다. 지금 시대에서는 참으로 도둑맞기에 딱 좋았다.
오태산의 말에 채송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태산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모르는 분이고 오늘 처음 본 분이라면 당연히 제 집…… 아, 물론 여기는 친한 형 집이지만요. 어쨌든 함부로 집안에 들이지 않아요.”
“그럼 왜 저를?”
오태산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죽은 여자친구 생각나서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녀가 살던 동네에 오는 정 많은 분이 강도나 도둑으로 변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사기당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시네요.”
“제가요?”
“사람을 너무 잘 믿으시잖아요.”
오태산의 말에 강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 잘 안 믿어요.”
“잘 믿으시는 것 같은데요?”
오태산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강진은 사람을 잘 안 믿었다. 친척의 손에 떠밀려 보육원으로 보내지면서 세상 믿을 사람이 적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이후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선하게 웃으면서 월급 떼어먹는 사장들도 몇 번 겪었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믿지 않았다.
대신…… 귀신은 믿었다. 그래서 오태산을 집으로 들인 것이다.
죽어서도 남자친구를 기억하는 채송화와 죽은 여자친구를 기억하는 오태산. 두 사람의 사연을 믿고 오태산을 집에 들인 것이다
강진이 싱긋 웃자 오태산이 피식 웃었다.
생각을 해 보면 실수는 강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따라 들어왔으니 말이다.
이것도 참 범죄 당하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물론 그 집이 자신이 잘 알던 집이라고 해도 말이다.
작게 웃은 오태산이 세면대의 거울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 수납장이 보였다.
거울 뒤에 있는 수납장에 수건들과 새 면도기와 치약과 같은 물품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보던 오태산이 물품들을 슬며시 하나씩 꺼냈다. 그에 강진이 물품들을 대신 받아 내려놓자 오태산이 수납장을 보다가 손을 내밀어 그 바닥을 만졌다.
바닥엔 스티커를 붙였다가 떼어낸 흔적이 있었다. 스티커를 잘못 떼어내면 흔적이 더럽게 남는 것처럼 수납장 바닥도 무척 지저분해 보였다.
“그건 뭐예요?”
“우리 송화가 제일 싫어하던 거예요.”
“송화 씨가요?”
“이사 오고 여기에 물건 넣는데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 있더라고요. 아마 전에 살던 아이 키우던 집에서 붙인 것 같은데 송화가 이런 거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이걸 바로 떼어내는데 얼마나 진득하게 붙어 있던지. 후! 송화가 이거 떼어내느라 땀을 뻘뻘 흘렸어요. 저도 옆에서 떼는 거 거들고……. 그런데 결국은 깨끗하게 떼어내지를 못하고 이렇게 남아 버렸네요.”
오태산이 쓰게 웃으며 그 흔적을 보다가 손톱으로 긁어냈다. 말라붙은 본드가 조금씩 긁혔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잔재가 벗겨질 것 같진 않았다.
손톱으로 몇 번 더 긁어내던 오태산이 씁쓸하게 말했다.
“붙였다가 떼면 흔적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네요.”
마치 자기가 채송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더럽게 들러붙은 흔적 같은 건 전혀 아니지만…….
웃으며 자국을 보던 오태산이 강진을 보았다.
“지금 여기 사는 형님은 이 흔적 아시나 모르겠네요.”
“알아도 딱히 신경 쓸 스타일은 아니에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꺼낸 물건들을 다시 잘 정리해서 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오태산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강진이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오태산이 음료를 받아들자 강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전에 송화 씨 살던 때와 비교하면 많이 변했죠?”
“그렇죠. 남자 사는 집과 여자 사는 집은 다르니까요.”
거실을 보며 웃던 오태산이 문득 소파 옆에 있는 작은 서랍장을 보았다.
그 서랍장은 잡다한 물건을 넣어 두는 용도기도 했지만, 자주 쓰는 물건들을 올려놓는 용도로 더 쓰는 서랍장이었다.
이를테면 자동차 키나 지갑, 리모컨, 그리고 메모지 같은 것 말이다.
서랍장 위에는 메모지로 쓰는 노트가 하나 펼쳐져 있었다.
채송화가 최광현에게 할 말이 있을 때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글을 적는 노트였다.
노트를 본 오태산은 자기도 모르게 내용을 읽었다. 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눈이 가서 글을 읽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