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59
260화
조카가 살았다는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았다.
“조카요?”
“조카라고 해도 나이는 환갑 가까이 되시는 분이더라. 말 들어 보니까 이 집 지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살았는데 그때부터 할머니 자주 찾아뵙고 챙겨 드린 좋은 분이었어.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도 서운해서 이 집은 못 팔겠다고 직접 들어와서 살았으니 말 다 했지.”
‘좋은 분이라…….’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집을 보았다. 확실히 좋은 집이다. 마당도 보기 좋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산세도 보기 좋다.
창문 앞에다 테이블 가져다 놓고 커피를 마시면 어지간한 커피숍보다 더 분위기 있을 것 같았다.
조카라는 분도 나이가 있다고 했으니 이런 곳에서 말년을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안 팔고 자기가 직접 살려고 한 모양이네.’
팔아서 자기가 챙기려고 했던 것보다는 덜 나쁘기는 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론 나쁘다. 결국 집을 팔고 유언을 지키지 않았으니 말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순례가 손으로 잡채를 집어 먹자 장 여사님이 그것을 닦아주었다.
“어머니, 이것도 좀 드세요.”
김이슬이 김치전을 주자 조순례가 고개를 숙였다.
“아줌마 감사합니다.”
조순례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며 식탁에 떨어진 잡채를 조금씩 치웠다.
“너도 먹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갈비를 하나 집어 먹으며 말했다.
“갈비 너무 맛있네요.”
“이슬 씨가 한 거다.”
“형수님 요리 잘하시네요.”
“맛있게 많이 드세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 자리를 마무리 한 강진과 황민성은 창문 앞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아까 생각을 했지만 창문 앞에서 커피를 마시니 커피숍에 온 듯했다.
후룩!
북한산을 보며 커피를 마시던 강진이 그네에 앉아 있는 귀신들을 보다가 말했다.
“느낌 어때요?”
“느낌?”
“집에 왔으니 집에 대한 느낌이 있지 않겠어요?”
“난 좋은데…….”
순간 뒷말을 흐리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이슬 씨하고 장 여사님이 가끔 느낌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힐끗 김이슬과 장 여사님을 보았다.
김이슬과 장 여사님은 아직도 식사를 하는 조순례를 보살피고 있었다.
‘귀신과 같이 살고 있으니…….’
귀신을 보지 못해도 귀신이 옆에 있으니 그 기운을 느끼는 것이다.
‘확실히 안 좋기는 하겠네.’
그리고 강진은 알 수 있었다. 조카라는 사람이 이 집을 팔은 이유를 말이다.
원한이 없는 황민성 가족도 귀신들의 기운에 안 좋은 느낌을 받는다.
그럼 집을 안 팔고 가로챈 조카라는 사람은? 할머니 귀신은 몰라도 할아버지 귀신은 독한 눈으로 계속 노려보고 욕을 해 댔을 것이다.
원한령이 붙어 있던 도영민만 봐도 귀신이 붙어서 계속 노려보고 욕을 해 영향을 받았었다.
그러니 조카라는 사람도 이 집에서 살면서 고생 좀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집을 팔았을 것이고…….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황민성이 말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생소해서 그런가 봐.”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황민성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민성 형은 못 느끼겠네.’
황민성이야 귀신이 바글거리는 저승식당에서도 태연하게 술 먹고 밥 먹는 사람이다.
그러니 지박령 둘이 노려보는 것 정도야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 황민성만 사는 것이 아니다. 특히 몸이 허약한 조순례에게 귀신의 기운은 좋지 않을 것이다.
‘내보내기는 해야겠는데…….’
답은 간단해 보였다. 할머니는 이 집이 보육원에 기부가 되지 않은 것 때문에 지박령이 됐을 것이다.
그럼 이 집을 판 돈을 보육원에 기부를 하면 되는데…….
‘그게 쉽나? 이미 돈 가지고 갔을 텐데…….’
가서 ‘이 집 판 돈 보육원에 기부하세요.’라고 말을 한다고 돈을 줄 리도 없다.
‘서울에서 이 정도 뷰 가진 단독 주택이면 얼마나 하는 거야?’
강진이 창밖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얼마일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런 큰돈을 쉽게 내놓을 사람은 없었다. 비록 자기 돈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어렵네.”
강진의 중얼거림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무슨 고민 있어?”
“고민요?”
“방금 어렵다며. 요즘 장사 안 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러고는 강진이 조순례를 보았다.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른 듯 조순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장 여사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로 오고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그래, 강진아.”
웃으며 강진의 손을 토닥인 조순례가 소파에 앉자 강진이 그 옆에 앉아 말을 걸어 주었다.
치매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으니 말이다.
“그래도 민성이가 요즘 안 와.”
“형 곧 올 거예요.”
“학교에서 또 애들 패고 그러는 것 아니지?”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황민성을 보자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형 이제 안 그래요.”
강진의 말에 조순례가 그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친구한테 형이라고 해?”
“아!”
조순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황민성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맞네. 친구인데 형이라고 하면 안 되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눈을 찡그리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죽는다.”
작은 속삭임에 강진이 웃으며 조순례와 이야기를 마저 나누었다.
강진은 마당에 있는 나무 식탁에 자신이 싸온 음식들을 놓고 있었다.
“여름에 여기서 바비큐 해 먹으면 좋겠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생각 했었다. 경치도 좋고 여기에 바비큐 해 먹으면 맛있겠다고. 그리고 집 뒤에 작은 창고 있는데 거기에 바비큐 해 먹는 장비들도 다 있더라.”
“근데 산이 바로 옆이라 모기가 많을 것 같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고기 먹고, 모기는 우리 먹고…….”
“진심이에요?”
“농담이지. 고기 먹으면서 모기가 달려들면 얼마나 귀찮은데…… 게다가 산 모기가 얼마나 독하냐.”
황민성이 식탁 주위를 보며 말했다.
“겨울 지나면 여기에 지붕을 올리고 그 주위로 모기장을 설치할 거야.”
황민성의 설명에 강진이 웃으며 식탁에 놓인 음식 앞에 젓가락을 놓고는 그네에 앉아 있는 노부부 귀신을 보았다.
‘와서 드세요.’
강진이 작게 입모양을 하는 것에 노부부 귀신이 다가왔다.
“먹어도 되는 거야?”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민성을 보았다.
“형은 들어가세요.”
“너도 같이 들어가자.”
“저는 좀만 있다 들어갈게요.”
“그럼 나도 같이 있자.”
말을 하며 황민성이 나무 의자 한 쪽에 앉으려 하자, 이미 그쪽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 귀신이 급히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아가씨가 진짜 이사를 하면 그 집 귀신들에게 밥을 차려 줘야 한다고 했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사실 지어낸 말이었다.
귀신도 배고프다는 것을 아는 강진이라 노부부 귀신에게도 밥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만들어 온 음식도 있고……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귀신들이 먹도록 깔아 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민성에게 김소희 핑계를 댄 것이다.
황민성은 그 핑계를 믿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소희가 신기가 있는 무당이라 생각을 하는 황민성으로선 귀신에게도 밥을 줘야 한다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만 집들이 하는 것이 아니래요. 이사를 하면 그 집에 살던 귀신에게도 인사를 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저도 가게 시작할 때 귀신들 먹으라고 이렇게 상을 좀 차렸어요.”
“하긴 신기 있는 분이시니…… 그렇다고 귀신 먹으라고 밥을 차리는 건 생각도 못 했다.”
말을 한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무당이 아니야?”
“무당은 아니고 그냥 그런 쪽으로 좀 박식한 것 같아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차려진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귀신들 밥 먹으라고 차릴 거면 집 안에다 차리는 것이 낫지 않아? 그게 더 성의 있게 보일 것 같은데?”
황민성의 말에 할아버지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네. 이왕 밥을 줄 거면 집 안에서 잘 차려서 줘야지. 날씨도 추운데 왜 밖에다 이렇게 차리나?”
할아버지 귀신의 말을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귀신한테 밥을 주기는 하지만, 집 안에 귀신이 들어오면 사람한테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것도 소희 아가씨가 이야기해 준 거야?”
“네. 귀신하고 사람은 멀리 사는 것이 좋다 하셨어요.”
이건 황민성에게 하는 말이지만,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사람에게 좋지 않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의미였다.
강진의 말에 입맛을 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슬며시 젓가락을 들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오! 이거 맛있네.”
“그러게요. 잡채 너무 맛있어요.”
잡채를 맛있다는 듯 먹는 할머니를 보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자네가 제삿밥을 챙겨줘서 죽고 나서도 몇 번 밥을 먹기는 했는데…… 미안하네.”
“뭐가요?”
“자네가 먼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죽어버려서 자네한테 제삿밥도 못 차려줬어.”
“이 사람이 못 하는 말이 없어. 그럼 내가 먼저 죽었어야 한다는 거예요?”
할머니가 황당하다는 듯 하는 말에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자네 장례식도 챙겨주고 뒷바라지도 좀 했을 것 아닌가. 내가 먼저 죽어서 자네가 고생만 했어. 미안해.”
처음에는 농이라 생각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말은 진심이었다. 진짜로 할머니가 먼저 죽어서 자신이 그 뒤를 챙겨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 말에 진심을 느낀 할머니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드세요.”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을 집어 먹으며 강진을 보았다.
“고마워.”
그러고는 음식을 먹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돌려 황민성을 보았다.
“형, 들어가세요.”
“너는?”
“경치가 좋아서 구경 좀 하다가 들어가려고요. 매일 주방에만 있다가 이렇게 나와 있으니 좋네요.”
“그럼 같이 들어가자.”
“형이야 매일 보는 경치인데 뭘 같이 보세요. 추우니 들어가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황민성이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몸을 돌려 할아버지를 보았다.
황민성을 먼저 들어가게 한 이유는 두 귀신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아시겠지만 귀신이 사람의 곁에 머물면 사람 몸에 해롭습니다.”
“그건…… 나도 알지만 갈 데가 없잖아.”
할아버지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말 그대로 갈 데가 없고 갈 수도 없으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었다.
“집안에 들어가지 마시고 집 밖에 거주하시는 것은 어떠세요?”
“사람이 집안에서 살아야지.”
“사람이 아니시잖아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한숨을 쉬고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밖에서 지내요.”
“에잉!”
신경질이 난다는 듯 거친 젓가락질로 잡채를 집어 먹는 할아버지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대신 아침마다 음식 여기에 차려 드릴게요.”
“아침마다?”
“마음 같아서는 승천을 도와드리고 싶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의 힘든 시간을 강진은 알고 있다. 그래서 승천을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의 머리로는 이 두 귀신을 승천시킬 방법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살아 있는 가족끼리도 돈 때문에 싸움이 나고 의절을 하는 세상인데…… 조카가 죽은 고모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돈을 기부할 것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