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0
60화
“내 장례식장?”
“가시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고영우 씨 말고도 오늘 봐야 할 고객님들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두치가 힘없이 앉아 있는 고영우를 데리고 나가다가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돈 안 되는 손님 모시고 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매상 한 번 올리러 오겠습니다.”
웃으며 강두치가 고영우를 데리고 나가자, 강진이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치웠다.
치울 것이라고 해도 물 컵과 물통, 그리고 강두치가 던진 잔의 물기뿐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리를 정리한 강진은, 이혜선이 있는 자리로 돌아와 편하게 술을 마시고 회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12시 55분에 처녀귀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보세.”
이지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자주 오세요.”
“그리하도록 하지. 그럼 쉬게.”
이지선의 말에 강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쉬고 싶지만 저는 내일 장사 준비를 해야 해서…… 지금부터 시작이네요.”
“그럼 수고하게.”
도와주겠다거나 하는 말없이 수고하라는 말로 말을 마무리 지은 이지선이 가게를 나서자 다른 귀신들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힐끗 가게 밖을 보았다. 멀어져 가는 처녀귀신들 외에 다른 귀신들은 없었다.
‘하긴 처녀귀신 있는 곳에 일반 귀신이 올 일은 없지. 그럼 처녀귀신이 오늘 마지막 손님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식탁을 정리하고는 주방에서 선지해장국을 끓일 재료를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술을 먹지 말 걸 그랬나?”
술을 먹어서 그런지 유난히 몸이 피곤했다. 그에 강진이 한숨을 크게 토하고는 냉장고에서 야관문차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우!”
차가운 차를 잔뜩 마시자 조금 정신이 든 강진이 찬물에 세수까지 하고는 꺼내 놓은 내장에 밀가루를 부었다.
촤아악!
밀가루를 뿌린 강진이 막 그 안에 손을 들이밀려 할 때 오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장.”
오순영의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들었다. 옆에 오순영과 배용수가 서 있었다.
그런데 오순영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응? 무슨 일 있으세요?”
“우리 가게에 좀 가줘.”
“할머니 가게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강진이 놀라 묻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감이 떨어졌더라.”
“감? 무슨 감?”
“사골 끓이는 불 조절 감 말이야.”
“왜 못 만들어?”
“레시피대로 만들려고는 하는데…… 불 조절이 여사님 마음에 안 드시나 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오순영을 보았다.
“제가 간다고 주방에 들어오게 할까요?”
“이 사장이 잘 말해야지. 그리고 나와 친분이 있는 걸 아니까, 아들이 들어가게 해 줄 거야.”
아들은 오순영이 살아 있을 때 강진을 만난 줄로 아니 말이다.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손질을 하던 선지해장국 재료들을 보았다.
“이건 어떻게 해요?”
“그건…… 들고 갈 수 있겠어?”
거기 가서 손질하면 어떠냐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머리를 긁었다.
지금 꺼내 놓은 재료들을 선지해장국집으로 가지고 간다라…….
‘이걸 손으로 들고 가기에는 힘든데…….’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가게부터 가죠.”
마음을 정한 강진이 손을 씻고는 꺼내 놓은 재료들을 힐끗 보고는 배용수를 보았다.
“귀신들 들어와서 여기 재료 옆에 좀 있어줘.”
“왜?”
“꺼내 놓으면 상하잖아.”
그래서 귀신들을 옆에 붙여 놓으려는 것이다. 귀신들이 있으면 온도가 떨어지고 서늘하니 말이다.
“우리가 무슨 귀신 냉풍기도 아니고, 음식 옆에 있으라고 해?”
“그럼? 밀가루로 범벅이 된 걸 냉장고에 넣어 둘 수는 없잖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갔다 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오순영을 보았다.
“가시죠.”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그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오순영과 가게를 나온 강진은 해장국집이 있는 곳으로 걸으며 물었다.
“불 조절을 못 해요?”
“그러게 말이야. 내가 잘 가르쳤는데…….”
사골을 끓일 때엔 불 조절이 중요하다. 강한 불로 끓여야 할 때는 화끈하게, 약한 불로 할 때는 은은하게 끓여야 한다.
쉬운 것 같지만, 사골의 색과 향에 따라 불을 조절해야 했다. 강진도 오순영한테 욕을 먹으면서 불을 줄이고 키워가며 배웠으니 말이다.
“내장 손질은 잘해요?”
“그거야 매일 하던 거니까.”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육수를 가져다 썼지, 내장은 직접 손질해서 썼을 테니…… 그럼 사골이 문제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강진의 눈에 굳게 닫혀 있는 가게가 보였다.
“문이 닫혀 있네요.”
불까지 꺼 놓은 가게를 보며 강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오순영이 말했다.
“뒤로 가면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어.”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가게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게가 진짜 크네요.”
“손님이 많이 오니까.”
“여기 땅값도 비싼데, 이층으로 올리지 그러셨어요?”
오순영의 가게는 크기는 하지만 일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 사층 이상인 것을 보면 땅이 아까운 수준이었다.
강남 건물이 비싼 건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지, 건축비가 비싼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고개를 저었다.
“음식은 주방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맛이 떨어져. 그런데 이층을 만들면 주방에서 이층까지 음식을 올려야 하니 서빙해야 할 거리가 길어지잖아.”
“이층에도 주방 만들면 되잖아요. 제가 예전에 일하던 칼국수 집은 주방을 일층, 이층 두 곳에 만들어서 손님 받았는데.”
“내 몸이 두 개일 수는 없잖아.”
주방 두 곳에 모두 자신이 있을 수 없다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지해장국이야 어차피 만들어 놓은 걸 끓여서 내면 되는데…… 굳이 그것까지 관리하실 필요가 있어요?”
“있지. 주인의 눈길이 닿는 음식과 안 닿는 음식…… 같은 음식이라도 차이는 있어. 그래서 이층을 올리지 않고 일층에서만 손님을 받는 거야.”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걸음을 멈췄다.
“왜? 여기만 돌아가면 문이야.”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
“할머니 살아 계실 때 국밥 한 그릇 못 얻어먹은 것이 아쉽네요.”
작은 차이로 인한 맛의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 그야말로 장인 정신을 가진 오순영이다.
그런 오순영이 살아 있을 때 그녀가 만든 선지해장국을 못 먹은 것이 아쉬웠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이 잘 만들어 줄 거야. 나중에 그것 맛있게 먹어.”
오순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양손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깍지를 끼고는 몸을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자! 그럼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로 가 봅시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강진은 곧 가게 옆에 난, 뒷문이라고 해야 할 입구를 볼 수 있었다.
뒷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강진은 문을 통해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엄청 뜨겁네요.”
“오백인분 사골을 끓이는 거니까. 사골 끓이는 솥만 해도 네 개가 넘지.”
말을 하며 오순영이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주방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커다란 솥 네 개가 걸려 있고 그 앞에 임미향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현수는 국자로 기름을 걷어내고 있었다.
“사장님.”
강진의 부름에 조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땀과 기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 이 사장님?”
“잘 되세요?”
“들어오세요.”
조현수의 말에 강진이 안으로 들어가며 임미향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임미향이 눈을 찡그리고는 강진을 보다가 휙 하고 일어나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강진이 어색하게 조현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조현수가 미안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누라가 오늘 일 때문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음식들 다 버리셨다면서요?”
“응? 그건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그야…… 손님들한테 들었죠.”
귀신한테 들었다고 할 수가 없어 적당히 둘러대자 조현수가 한숨을 쉬었다.
“조용히 버린다고 버렸는데…… 소문이 났나 보군요.”
“이야기 듣고, 음식을 할머니 레시피대로 만드실 것 같아 한 번 와 봤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강진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솥 앞에 선 오순영이 보였다.
그녀는 강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다 불이 너무 세. 불 좀 줄이고 차가운 물 좀 부어.”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솥에 다가가며 말했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 불이 너무 강하네요. 물론 사장님이 알아서 조치를 하시겠지만…… 불 좀 줄이고 냉수를 넣어서 온도를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강진은 눈치와 심리학적인 대화 기법을 사용했다.
뭐…… 사실 기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사람은 누가 자신을 무시하면 대화를 하기 싫어지고 짜증이 난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을 알아주고 존중해 주면, 자신도 남을 존중하게 되고 대화가 편해진다.
그러니 네가 몰라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런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면 나 역시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물론…… 요즘 세상에는 반대로, 상대를 존중하면 상대는 나를 호구로 본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솥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은 불을 줄이는 것이 좋겠죠.”
말과 함께 조현수가 불을 줄이고는 솥 안의 물을 보다가 냉수를 가져다가 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버리고 다시 만들고 싶어.”
오순영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힐끗 그녀를 보고는 작게 말했다.
“지금 버리면 조 사장님 사기가 꺾여요. 지금은 으쌰으쌰 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 좋아요.”
“그런가?”
“그럼요. 막 자전거를 타는 애한테 너 이렇게 타면 안 돼, 하는 것보다는 넘어졌을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죠.”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맞는 비유인가?”
“음…… 제 생각에는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조현수를 보다가 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세 시간 끓이신 건가요?”
강진의 말에 조현수가 한쪽에 있는 시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세 시간 정도인데 잘 아시네요.”
“저도 끓여 봤으니까요.”
“원래는 저녁 되기 전에 끓이려고 했는데…… 끊었던 거래처와 다시 거래를 하려니 힘들더군요.”
“물건 안 주겠대요?”
“거기 사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더군요. 우리 어머니와 수십 년 거래를 하셨던 분인데…… 우리가 바로 거래를 끊어서 그쪽도 타격이 컸었나 봅니다.”
“하긴 이 정도 가게에서 거래를 끊었으니 그쪽도 난감했겠네요.”
이런 가게에서 쓰는 사골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 사골 거래를 한 번에 끊었으니 그쪽에서도 화가 나기도 할 것이었다.
아니, 아주 많이 화가 났을 것이다.
“다 제 잘못이죠.”
한숨을 쉬는 조현수를 보며 강진이 사골을 보다가 살며시 말했다.
“저기…… 아무래도 사장님이 정말 오랜만에 사골을 끓이셔서 감이 아직 잘 안 잡히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조금 그렇습니다. 색감이 조금 탁해 보이기도 하고…… 이쪽은 조금 더 진해 보이기도 하고.”
조현수의 말에 오순영이 말했다.
“같은 시간을 끓여도 들어가는 사골의 양과 질이 조금씩은 다 차이가 나. 그래서 끓이면서 물과 불을 조절해서 끓여야 하는 거야.”
오순영의 말을 그대로 강진이 옮겨 주었다. 그에 조현수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해 주셨던 말이군요.”
“그래서 제가 오늘은 같이 사골 끓이는 것을 도와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이 사장님이 도와주신다면 저야말로 감사하죠.”
조현수가 환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말했다.
“그래서 그런데, 저희 가게에 내일 쓰려고 준비한 선지와 내장, 그리고 사골이 있습니다.”
“아…… 이 사장님도 장사를 하셔야 하는데…….”
“제안을 하나 할게요. 저희 가게에서 쓸 재료들을 이곳으로 모두 가져오고…… 같이 선지해장국을 만들어요.”
“같이요?”
“그리고 내일 팔리는 선지해장국의 육십인분만큼은 제가 가지겠습니다.”
강진의 제안은 간단했다. 한끼식당에 있는 재료도 가져와서 여기서 같이 만들고, 내일 장사도 여기서 한다.
그리고 판매금의 육십인분은 자신이 가지겠다는 것이었다.
‘고생하는 만큼 나도 뭔가는 챙겨야지.’
일을 하면 그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강진의 지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