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9
99화
두 어른의 술자리는 저녁 열 시가 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두 사람은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칭해져 있었다.
사실 남자들이 친해지는 데에는 술만 한 것도 없다. 처음 만난 사이더라도 술잔 몇 번 오가면 바로 형 동생이 되는 것이 남자들 세상이니 말이다.
물론 술이 깨고 난 다음 날에는 ‘누구?’ 할지도 모르는 것이 남자들의 술자리 우정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김봉남과 왕강신은 한 부모를 둔 형제였다.
“하하하! 좋군요.”
“다음에 우리 식당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오게. 내 한국의 맛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 줄 테니까.”
“형님이 부르신다면 소제(小第)가 당연히 가야지요.”
형님 동생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강진은 기분이 좋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 더 빨리 친해진 건가?’
서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에, 어쩌면 둘 다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졌을 수도 있다.
둘 다 가진 것이 많기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우연한 만남이기에 마음 편하게 술에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술을 마시던 김봉남이 문득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게가 좀 춥지 않나?”
“네?”
“좀 서늘한 것 같은데?”
“저는 괜찮은데요.”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왕강신을 보았다. 그 시선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제도 좀 그렇습니다. 자꾸 등줄기가 오싹한 것이 감기라도 올 것 같습니다.”
두 어른의 말에 강진이 시계를 보았다.
‘벌써 시간이…….’
시간을 본 강진이 힐끗 가게 입구를 보았다. 아마도 지금 밖에는 귀신들이 11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귀신들이 몰려 있으니 두 어른이 한기를 느끼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말했다.
“아무래도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이 정도로 무슨 술을 많이 먹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이 김봉남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숙수님 간도 생각하셔야죠.”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적당히 마셨고, 술도 약주로 하지 않았나.”
말대로 김봉남은 술에 취하기는 했지만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여섯 잔 정도?
물론 도수가 높은 술이라 여섯 잔도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약주도 술입니다.”
“감홍로는 혈액순환을 도우며 몸을 따뜻하게 하지. 게다가 일반적인 술은 체온은 높아져도 장은 차갑게 하는데 감홍로는 장도 따뜻하게 해 주니 온몸에 따뜻한 기운을 돋게 한다. 또한 심신 안정과 진정 작용을 하고 피로를 풀어주니 많이 마시지 않는다면 나처럼 간이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약주라 할 수 있지.”
“그거 술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아닙니까?”
“걸렸구나.”
싱긋 웃은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왕강신을 보았다.
“그만 일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아쉽습니다.”
“오늘만 날은 아니지. 중국 들어가기 전에 우리 가게 한 번 들러. 아니면 내일이라도 오든가.”
“그러겠습니다.”
왕강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봉남이 물었다.
“아! 차 가지고 왔나?”
“택시 타고 왔습니다.”
“잘 됐군. 그럼 내 차 타고 가세.”
그러고는 김봉남이 전화기를 꺼내 대리 기사를 불렀다. 좀 돌아가더라도 왕강신을 내려주고 갈 생각이었다.
요금이야 더 내더라도 말이다. 그런 김봉남을 보던 강진이 왕강신을 보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기분 좋게 취해 있는 왕강신에게 임호진을 한 번 만나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임호진은 명백하게 목적을 가지고 소개를 부탁했다. 콴시를 맺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도 사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냥 사람을 소개해주는 것이 아니었기에 강진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결론은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에 강진이 그들을 배웅해 주기 위해 일어나려 하자 왕강신이 말했다.
“그럼 이제…… 말해 보게.”
“네?”
“아까부터 나한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더군. 할 말이 있으면 해 보게.”
“아닙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웃으며 말했다.
“내 일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 만나는 일이네. 그렇다 보면 사람들의 눈빛만 봐도 무슨 마음인지 대충 짐작이 가.”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임호진에 대한 일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왕강신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무역 회사에 다닌다면 나와 콴시를 맺고 싶은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나는 사람 소개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적으로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을 소개받는 것은 좋아하지 않네.”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편하게 오셨는데 불편하게 보내드리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그를 지그시 보던 왕강신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고 싶군.”
강진이 바라보자 왕강신이 말했다.
“임호진이라는 사람이 자네 상사라서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건가?”
“과장님이 제 직장 상사기만 했다면 저는 거절했을 겁니다.”
인턴으로 회사에 계속 있을 것도 아니었기에, 거절하려고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럼?”
왕강신의 물음에 강진이 답했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사람이라…….”
강진의 답에 잠시 있던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람을 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럼 만나 주시는 겁니까?”
“좋은 사람이 소개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웃으며 왕강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나한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편하게 말을 하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까 말했지 않나. 나는 사람 소개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이네. 그리고 나는 자네를 믿네. 자네가 설마 나한테 해가 될 사람을 소개해 주겠나?”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다른 말보다 자신을 믿는다는 말이 더 무거웠다.
‘앞으로는 사람을 소개해 주지 말아야겠네.’
왕강신에게 사람을 소개해 준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담보로 하는 것이니 부담스러운 것이다.
“대리운전 왔다는군.”
김봉남의 말에 왕강신이 지갑을 꺼냈다.
“잘 먹었네.”
그리고 돈을 꺼내려 하자 김봉남이 급히 막았다.
“왜 이러나.”
“좋은 형님 만난 기념으로 제가…….”
“한국에서는 동생에게 밥을 얻어먹는 형은 없네.”
“그래도…….”
“넣어둬. 넣어둬.”
그러고는 김봉남이 지갑을 꺼내서는 오만 원짜리를 몇 개 꺼내서는 카운터에 있는 아크릴 통을 가리켰다.
“여기다 넣으면 되는 건가?”
“아, 가격은 들으셔야…….”
“맛있게 먹었으니 그 값을 넣으면 되는 것이지.”
웃으며 김봉남이 아크릴 통에 오만 원짜리를 넣었다. 대충 봐도 네 장은 되는 것에 강진이 말했다.
“이렇게 많이 안 넣으셔도 되는데요.”
“음식의 가격은 주인이 정하기도 하지만 손님이 정하기도 하는 법이지.”
그러고는 김봉남이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주거라.”
“핸드폰요?”
김봉남의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는데, 왜 자신의 핸드폰을 달라고 하나 강진이 의아해할 때 그가 손을 흔들었다.
그에 강진이 일단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받은 김봉남이 자신이 먹던 식탁으로 가서는 셀카를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먹던 음식들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은 김봉남이 이번에는 강진의 옆에 서서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왕강신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한 장 찍어주게.”
김봉남의 말에 왕강신이 웃으며 말했다.
“같이 찍으시죠.”
그러고는 왕강신이 강진의 옆에 서자 김봉남이 말했다.
“그럼 사진은 누가 찍나?”
“제가 찍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핸드폰을 받아서는 손을 길게 내밀어 세 사람이 다 나오게 하고는 말했다.
“치즈!”
찰칵!
강진의 말에 사진이 저절로 찍히자 김봉남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런 것도 되나?”
“요즘 세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왕강신을 보았다.
“번호 알려 주시면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번호를 알려주었다. 중국 핸드폰 번호라서 숫자가 한국과는 달랐지만 사진 전송은 어렵지 않았다.
“그럼 또 오겠네.”
“다음에 오면 또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시기 전에 전화 한 통 주시면 제가 드시고 싶은 요리를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그럼 형님 가시지요.”
왕강신의 말에 김봉남이 강진을 보며 말했다.
“액자는 하지 말거라.”
“네?”
무슨 말인가 싶어 보는 강진을 보며 김봉남이 핸드폰을 가리켰다.
“그냥 테이프로 벽 한쪽에 붙이거라. 그게 더 효과가 좋더구나.”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핸드폰을 보다가 탄성을 토했다.
“아! 사진.”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웃었다.
“너는 정말 내 사진이 필요 없었나 보구나.”
“그건 아닌데……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김봉남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식당을 하는 사람치고 자신과 찍은 사진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강진은 그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고개를 저은 김봉남이 왕강신과 함께 가게를 나섰다.
그런 둘을 배웅하기 위해 나선 강진은 가게 앞에 서 있는 귀신들을 볼 수 있었다.
‘많이 왔네.’
처음 보는 귀신들도 몇 보이는 것을 보며 강진이 어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그래, 오늘 잘 먹었다.”
“다음에 또 보세.”
어른들이 손을 흔들며 가자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
귀신들로 북적이는 가게 안에서 강진은 한쪽에서 쉬고 있었다.
“이 사장, 같이 한잔하지 그래?”
한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여러분들이야 몸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저는 요즘 매일 술입니다.”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그래?”
“많이 안 먹어도 매일이라는 것이 중요하죠.”
강진의 말에 귀신이 웃으며 더 권하지는 않았다.
사실 강진은 한끼식당을 열고 난 후 매일 술을 먹다시피 했다.
귀신들이야 자신들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니니 소주를 권했고, 강진도 그걸 거부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귀신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소주를 같이 하는 것도 좋았으니 말이다.
귀신에 대해 안쓰러운 생각을 가진 강진이다 보니 같이 어울려 준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면 몸이 좋을 수가 없었다. 매일 술이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술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오늘이라고 해도 어르신들과 한두 잔 먹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따뜻하고 달달한 믹스 커피를 마시던 강진이 문득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가게 안에서는 귀신들이 술을 먹으며 말을 하고 있었다.
A라고 묻고 B라고 답하는 대화가 아니라 늘 그렇듯이 A를 혼자 말하는, 즉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식이었다.
아마도 다 산 사람인 강진이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호철이 형 요즘 봤어?”
“최호철?”
“응.”
“그러고 보니 며칠 안 보이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일요일 날 보고 못 봤지?”
체육 행사 끝나는 날 저녁에 보고 그 다음으로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가?”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패밀리를 이뤄 같이 다니는 처녀귀신들을 제외하고 귀신들은 보통 혼자 다닌다.
아직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보니, 흉한 모습을 한 귀신들과 서로 같이 다닐 바에야 혼자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아는 척하는 것도 인간 모습으로 현신을 한 한끼식당에서뿐이었다. 그러니 배용수에게 최호철은 그냥 강진이 아는 귀신일 뿐이었다.
그에 강진이 걱정이 돼서 입을 열었다.
“최호철, 최호철, 최호철.”
최호철의 이름을 부른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최호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