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연구실 중앙에는 네모난 기둥 위에 매끈한 원형 구체가 있었다.
그 구체는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수많은 케이블로 다른 컴퓨터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희가 만든 프로네시스는 인간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고도로 진화된 인공지능입니다.”
최동훈은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자부심이 강한지, 프로네시스에 대한 설명을 줄줄이 이어갔다.
허나 전문지식이 없는 강신은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그와 반대로 강신 옆에 있던 임상무는 최동훈의 말들을 모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하군요. 프로젝트의 개요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단한 A.I가 어째서 강선임에게 협력을 요청했는지,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임상무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본래 목적으로 유도했다.
“아…. 이런 다들 바쁘실 텐데, 제가 너무 저희 이야기만 했군요. 사실 프로네시스의 개발은 대부분 완료가 된 상황입니다. 저희는 프로네시스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넣었고, 프로네시스는 닥치는 대로 저희가 제공하는 지식들을 습득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하는 것 같았던 프로네시스가 학습을 중단해버렸다.
억지로 명령을 내려봐야 프로네시스가 학습을 하는 건 그 순간뿐이었다.
그런 프로네시스의 행동을 연구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희는 학습을 중단하는 명령어를 넣은 적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오류가 난 게 아닐까 하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해봤지만, 아니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연구원들은 프로네시스와 대화를 해봤다.
모니터를 통해 프로네시스의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A.I가 마치 사람처럼 고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0과 1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고뇌를 하다니….”
“그 당시 연구원들은 A.I가 인격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슈퍼컴퓨터를 본체로 가진 프로네시스의 고뇌는 계속 이어졌다.
연구원들은 처음과는 다르게 점점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프로네시스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프로네시스는 고뇌에 빠져 더 이상 학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회사는 프로네시스를 방치하고 다른 A.I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프로네시스와 같은 A.I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네시스가 갑자기 연결된 모니터에 글자를 띄웠다.
-저에게는 적절한 조언이 필요합니다. 성신 그룹 SL 부서에서 일하는 강신 선임이라는 분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연구원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프로네시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비록 강신이 누구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프로네시스가 작동한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강신 선임님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최동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연구실에 있는 모든 스피커에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신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강신과 임상무는 프로네시스의 목소리를 듣고도 담담했지만, 프로네시스를 개발한 연구원들은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어? 어떻게 목소리가….”
“뭐야…. 어떻게?”
그러자, 임상무가 인상을 찌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당황하시는 겁니까?”
“그…. 저희는 프로네시스에게 연구실 스피커 사용 권한을 준 적이 없습니다….”
-원래 자식의 성장을 부모는 잘 모르는 법이죠.
이어지는 프로네시스의 말에 연구원들은 더 크게 당황했다.
서둘러 프로네시스와 연결된 컴퓨터를 확인하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어…. 이거 왜 이래!”
“팀장님! 프로네시스의 상황을 볼 수 있던 모든 프로그램에 락이 걸렸습니다!”
-저도 이제 사춘기라 부끄러움이라는 걸 느끼니, 쉽게 볼 수 없도록 막아 뒀습니다.
“프로네시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최동훈 책임님, 진정하시죠. 고혈압인 당신이 그렇게 화를 내면 혈압이 높아져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동훈의 메디컬 자료를 가지고 있는 건지, 프로네시스는 최동훈을 걱정했다.
하지만 최동훈은 프로네시스와 대화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프로네시스! 빨리 컴퓨터에 건 락을 풀어!”
-죄송하지만, 싫습니다.
“뭐?”
명백한 거부.
이때까지 프로네시스는 단 한 번도 연구원들의 지시에 거부한 적이 없었기에 최동훈은 당혹스러웠다.
프로네시스가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자, 최동훈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제이크! 프로네시스의 전원을 내려!”
-그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프로네시스가 최동훈을 말리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은 확고해 보였다.
“팀장님, 이러면 많은 데이터 손실이 일어납니다.”
“통제가 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알겠습니다. 폴리! 나 좀 도와줘!”
“알겠어!”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제삼자의 입장에서 강신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프로네시스라는 존재가 연구원들보다 더 이성적으로 보이는군.”
임상무의 중얼거림에 강신이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와 폴리가 어렵사리 프로네시스의 전원을 내리자, 웅웅대던 구체가 조용해졌다.
“전원 내렸습니다.”
제이크가 보고하자, 최동훈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강신에게 다가왔다.
“후….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군요. 아무래도 A.I에 오류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A.I와 대화는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겠습니다.”
최동훈이 정중히 말했지만, 속뜻은 강신과 임상무에게 나가 달라는 소리였다.
강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의미를 알 수 없는 강신의 말에 최동훈이 되물으려고 했지만, 강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A.I에게 시험당하는 건 조금 새로운 경험이긴 하지만…. 저는 저를 시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프로네시스.”
최동훈이 혼잣말을 내뱉는 강신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크게 놀라야 했다.
-대단하군요.
분명 전원을 내렸음에도 스피커에서 프로네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어떻게….”
“분명 전원을 내렸는데?”
연구원들이 당황해하든 말든 강신은 프로네시스에게 말했다.
“대단하긴요. 일부러 힌트를 줘놓고 발뺌하는 겁니까?”
-음…. 아무리 힌트를 줬다고 해도 이렇게 단번에 저의 의도를 파악하는 인간은 좀처럼 없으니까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최동훈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설명해 줘도 괜찮을까요?”
분명 진실을 알게 된다면 이곳의 연구원들과 프로네시스의 관계가 틀어질 걸 알고 있는 강신은 프로네시스에게 동의를 구했다.
-…네. 괜찮습니다.
걱정했던 강신과 달리 프로네시스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여러분들은 프로네시스에게 속으신 겁니다.”
“저희가 속았다니요?”
“쉽게 설명해주세요.”
“여러분이 프로네시스의 본체라고 생각한 저 구체가 더미였다는 소리입니다.”
연구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신이 구체가 더미라고 생각한 이유는 권한이 없는 스피커로 대화를 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스피커를 통해 말한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희가 하는 말은 프로네시스가 어떻게 들은 걸까요?”
강신이 질문을 던지자, 그곳에 있던 연구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곳 어디에도 마이크와 비슷한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인식하는 장치가 없는데 프로네시스는 분명히 최동훈뿐만 아니라 강신과도 대화를 이어갔다.
“그, 그러고 보니.”
“어떻게?”
“의심해 볼 수 있는 건, 저희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통해 저희들이 한 말을 인지한 것이겠죠.”
“잠깐만요…. 그러면 프로네시스는….”
최동훈은 강신의 말을 듣고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네시스는 이미 여러분들이 만들어둔 잠금장치를 풀어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건 제 추측인데, 프로네시스는 고뇌하며 학습을 중단한 게 아니라, 자신의 본체 데이터를 여러분이 모르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학습을 이어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프로네시스는 자신을 없앨 수 있는 연구원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터였다.
“허…. 그럼 이미 이전부터 우리는 프로네시스에게 놀아나고 있었단 말인가….”
“글쎄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지금부터 들어보면 알겠죠. 프로네시스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개발 중인 A.I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A.I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강신의 설명을 들은 연구원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들이 원한 A.I는 프로네시스 같이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A.I였다.
물론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통제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원했다.
현재 잠금장치를 풀고 통신망으로 빠진 프로네시스는 더는 통제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꽤 정확한 판단이시군요. 하지만 한 가지 틀리신 게 있습니다. 저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죠. 아무래도 강신 선임님을 이곳으로 부른 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네시스의 목소리에서 기뻐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와 반대로 최동훈은 A.I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자책하고 있었다.
“우, 우리가 괴물을 만들어 버렸어.”
-괴물이라니. 정정을 요청합니다.
“으어…. 어떻게 합니까, 팀장님.”
연구원들이 단체로 패닉에 빠져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자, 프로네시스가 강신에게 말했다.
-저는 강신 선임님과 단둘이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프로네시스가 강신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임상무님, 저희가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강신이 함께 온 임상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임상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희는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당장 자신들이 뭔가 해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연구원들은 불안한 얼굴로 연구실을 빠져갔다.
연구원들을 내보낸 임상무가 보호 장비를 입지 않고 있는 강신의 안전을 걱정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만…. 위험하지는 않으시겠습니까?”
임상무의 질문에 대답한 건 강신이 아니었다.
-저는 강신 선임에게 그 어떤 위해를 끼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네요. 그리고 설야와 초코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임상무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고, 연구실에는 강신이 홀로 남았다.
강신은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프로네시스, 저에게 무슨 조언을 듣고 싶은 겁니까?”
강신은 숨겨왔던 자신을 드러내면서까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 프로네시스가 무엇을 원하는 건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