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03
502화
딘의 공격은 암울했던 진흙 속에서 희망이라는 진주를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강대한 적이 피를 흘리는 모습에 상황을 숨죽여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딘을 바라봤다.
피를 토하던 베가조차 강하게 주먹을 쥘 정도로 유의미한 성과였다.
반면, 트롤에게 상처를 낸 딘은 오히려 어벙벙한 기분이었다.
그간 수십 년간 정체되어 있던 자신의 실력이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 이후에 찾아오는 절망이 더 지독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비명과 같은 괴성을 지르던 트롤이 돌연 괴성을 멈췄다.
그리고는 마치 인간들이 아주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입꼬리를 슥하고 말아 올렸다.
그 미소를 본 딘은 뭔가 불길함을 직감했다.
그는 후속타를 날리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뒤로 뺐다.
그런 딘의 선택은 정말로 적절한 행동이었다.
쾅!
방금까지 딘이 있던 장소에 트롤의 육중한 손이 내려꽂혔으니까.
트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전장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해졌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일은 이후에 일어났다.
부글, 부글.
회색 피부가 떨어졌던 피부에서 녹색 거품이 일더니, 떨어졌던 회색 피부가 다시 생성되기 시작했다.
딘에게 뚫린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지만, 회색 피부가 복구되며 상처를 틀어막아 상처를 내도 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런 트롤의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X발, 저건 반칙이지.”
트롤이 이제까지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었다.
딘은 단단한 회색 피부를 깎아내고 두꺼운 가죽을 뚫어냈던 자신의 애검을 무심코 바라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챌 수 없었겠지만, 몇십 년을 함께해온 딘은 자신의 검의 무게 중심이 살짝 뒤틀려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중요한 건 검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균열이 작든 크든 상관없었다.
균열은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그 크기를 키우고, 종국엔 검을 파손시킬 게 분명했으니까.
‘좀 더 좋은 무기가 있었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까.’
트롤과 거리를 벌리던 딘은 내심 강신이 만든 무기가 부러웠다.
이전에 사용하던 무기와 지금 사용하는 무기 둘 다 매우 강력한 무기였으니, 몸을 쓰는 사람이라면 탐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트롤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딘에게 달려들었다.
딘의 상태가 멀쩡했다면 트롤이 갑자기 달려들어도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딘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했을 뿐이지만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뭔가 뾰족한 게 찌르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니 평소처럼 대응할 수가 없었다.
고통으로 잠시 멈칫한 그 짧은 사이 트롤의 손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그 공격을 본 딘은 직감했다.
‘아, 저걸 그대로 맞으면 죽겠구나.’
다른 이라면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겠지만, 환생자인 딘은 달랐다.
‘아쉽지만, 이번 생은 여기까지인가.’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죽어도 환생을 할 테니까.
죽음이 익숙했기에 삶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트롤의 공격을 본 딘은 죽음을 받아들였다.
다만, 죽음은 익숙해도 고통은 언제나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었으니, 딘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죽는 걸 소망하며 트롤의 공격이 자신에게 닿기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트롤의 공격이 코앞까지 도달한 순간,
쾅!
퍽!
생각보다 작은 충격이 딘을 덮쳤다.
딘과 부딪힌 것은 트롤의 주먹이 아니었다.
그가 부딪힌 것은 트롤에게 맞고 튕겨 나온 베가였다.
“쿨럭, 젠장 더럽게 아프군.”
베가는 딘과 부딪히며 상당한 거리를 날아왔음에도 절망하지 않고 두 눈에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크…. 이봐, 딘. 설마 방금 포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겠지?”
그는 희망을 잃은 딘의 눈을 보고 실망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자 딘은 들고 있던 검을 축 늘어놓고는 말했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고 대항할 수 있는 검은 부서지기 직전인데, 그에 반해 저 괴물은 너무나 건재합니다. 여기서 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하! 그래서? 팔다리가 멀쩡하게 붙어 있고 당장 움직일 수 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겠다고?”
“저희에게는 승산이 없습니다.”
“쯧, 나는 자네를 전사라고 생각했는데, 자네도 저기 있는 겁쟁이들과 다를 게 없었군. 기대했던 내가 병신이지. 그런 정신머리로는 방해만 될 테니, 냉큼 꺼지게.”
독설에 가까운 말을 내뱉은 베가는 다시금 피를 토하고는 트롤에게 몸을 날렸다.
퍽! 쾅! 쿵!
트롤의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베가는 그런 공격 속에서도 계속, 계속 일어났다.
누가 봐도 베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딘은 트롤에게 계속 달려드는 베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베가가 상대하는 이레귤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화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인원을 물려야 했으며 이레귤러가 인질로 잡은 고위 간부로 보이는 지휘관의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아니면 죽이거나.’
냉정하게 판단하면 죽이는 쪽이 간단할 것이다.
어쨌든 그게 가능하더라도 이레귤러가 가만히 날아오는 미사일을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죽은 척까지 할 정도로 똑똑한 트롤은 분명 다른 꾀를 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롤이 이제 와서 도망가는 인간을 그냥 놓아줄 리 없었다.
모든 퇴로가 막혀 있었다.
결국, 트롤과 맞서고 있는 베가는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쾅!
“쿨럭!”
트롤의 공격을 맞고 바닥을 구르는 베가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피를 토하면서도 기어이 일어나는 베가의 모습은 볼품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하는 행동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포기를 모르는 그의 행동은 진정한 전사들만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끓어 오르게 만들었다.
그 사람 중에는 죽음을 앞두고 삶을 포기했던 딘도 포함되어 있었다.
딘은 자신도 모르게 뒤틀린 검을 들고 베가를 향해 뛰어갔다.
딘 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구경만 하고 있던 몇몇 사냥팀들도 베가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트롤을 향해 움직였다.
“에이씨! 죽기밖에 더하겠냐!”
“야, 다 같이 덤벼!”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비틀거리며 일어난 베가를 향해 주먹질하는 트롤.
사냥꾼 중 한 명이 사람만 한 카이트실드를 들고는 막아섰다.
쾅!
콰직!
“크헉!”
비록 단 한 번의 공격에 카이트실드는 보기 좋게 부서졌고, 공격을 제대로 버티지도 못했다.
하지만 트롤의 공격이 베가에게 닿지 못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이, 아저씨 혼자서 멋있는 척 그만하고 저기에 가서 조금 쉬다 오세요.”
베가의 옆으로 수십 명의 인원이 지나가자 베가가 엉망이 된 몰골로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그 꼴이 되고도 웃음이 나옵니까?”
어느새 베가에게 다가온 딘이 그에게 핀잔을 줬지만 그래도 베가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하하, 그럼 웃음이 나오지, 겁쟁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사들이 저리 많으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지!”
“쯧, 그놈의 전사 타령은…. 그보다 이제 쉬셔도 됩니다.”
베가는 이미 과분할 정도로 트롤을 상대했다.
그것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가슴에 불도 지폈으니, 여기서 베가가 뒤로 빠진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베가는 한결 같았다.
“중간에 한 번 포기했던 주제에 건방지긴, 여기서 저놈이 쓰러지든 내가 쓰러지든 나는 끝장을 볼걸세!”
“뭐,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저들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잠시 숨이라도 돌리고 계시죠. 처음부터 다시 해보죠.”
쉬지 않고 두들겨 맞았으니, 베가에게는 조금이라도 휴식이 필요했다.
베가도 그 부분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지.”
“최소한 경화를 사용할 정도는 되어야 할 겁니다.”
보호 장비가 파괴된 지금 베가가 트롤의 공격을 버티기 위해서는 재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딘의 당부를 듣고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경화? 무슨 경화?”
“당신이 가진 재능을 말하는 겁니다.”
“난 경화의 재능 같은 것은 없는데?”
그의 대답에 오히려 딘이 당황했다.
“아니, 잠깐만요. 재능이 없다고요?”
평범한 사람이 보호 장비를 입지 않고 맨몸으로 트롤의 공격을 받는다면 열에 아홉은 몸이 터져나갈 것이다.
이는 근성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베가가 경화라는 재능 없이 트롤의 공격을 맞고 있었다고 하니, 딘이 얼빠진 표정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가진 재능은 경화가 아닌 탄성일세.”
“허….”
경화가 아닌 탄성이라는 말에 딘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탄성은 확실히 경화보다 충격을 분산해 방어에 더 뛰어난 재능이었지만, 고통을 막아내는 경화 다르게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즉, 베가는 트롤의 공격을 받아 팔다리가 떨어지고 내장이 터질듯한 고통을 이겨내면서 계속 일어났다는 소리였다.
‘무슨 인간의 정신력이….’
딘이 감탄하기도 잠시 트롤의 시선을 끌었던 사냥팀들은 트롤의 공격을 더는 버티지 못했다.
“흠, 잡담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군.”
“그래야겠네요.”
베가와 딘이 어깨를 돌리며 트롤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자신만만하게 뛰어가긴 했지만, 조금 쉬었다고 해서 딘과 베가의 몸 상태가 처음과 같아진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인간과 다르게 자신의 공격을 버티는 베가를 지겹다고 생각한 것인지, 트롤은 들고 있던 지휘관을 멀리 던져버리고는 베가를 손으로 잡아챘다.
“큭! 이거 놔라!”
꼼짝없이 트롤에게 붙잡힌 베가가 트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팔꿈치에 있는 송곳을 사출해 공격을 가했지만, 회색 피부에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베가가 잡히자, 딘이 다급하게 베가를 구하기 위해 들고 있던 검을 내질렀다.
까가강!
빠른 찌르기에 트롤의 회색 피부가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는 못했다.
쨍강!
그가 사용했던 검이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다.
딘의 무기가 파괴된 것을 본 트롤은 그대로 딘을 발로 차버렸다.
퍽!
“커헉!”
딘이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구른 딘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 트롤은 그제야 잡고 있던 베가의 팔을 쭉 잡아당겼다.
마치 벌레의 날개를 뜯어내는 것처럼.
콰드드득….
“으아아아!”
탄성의 재능으로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할 정도로 팔이 늘어났지만, 탄성의 재능에도 한계는 있었다.
뜨드득!
“으아악!”
결국, 한계까지 늘어난 팔이 뜯겨나갔다.
마취도 없이 팔이 뽑혀나가는 고통은 정신을 놓기에 충분했지만, 베가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딘은 몇 번이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돼…. 여기서 죽게 만들 수는 없어.”
딘이 생각했을 때, 베가는 이런 곳에서 죽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이었다.
“제발, 누군가가….”
딘은 땅을 기며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숨어 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대로 베가가 죽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할까.
딘은 지금 상황이 절망스럽고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던 그때.
슈우우우~
하늘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투쾅!
콰드득!
하늘에서 날아온 건 정확히 트롤의 팔에 떨어졌고, 그것과 부딪힌 트롤의 팔은 기괴하게 꺾여버렸다.
그리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트롤이 비명을 질렀다.
-크어어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장난감처럼 잡고 있던 베가를 놓칠 정도였다.
그림자에서 검은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베가를 안전하게 받아주는 것을 확인한 딘은 뒤늦게 하늘에서 떨어진 게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스으….”
하얀 김을 내뱉으며 피부가 붉게 변했지만, 그는 분명 사람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강책임님.”
딘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내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화답하듯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많이 늦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