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227)
그로든에서 애틀리스까지. 우리는 워프 스크롤로 이동했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시야에 들어온 풍경이 바뀌어 버리는 마법. 나는 눈앞에 보이는 애틀리스 황궁을 바라봤다.
“역시 안 보이는군.”
“뭐가요?”
옆에서 나를 따라 해 고개를 들어 황궁을 바라보던 세이건이 물었다.
“아니, 별거 아니다.”
대답하면서 피식 웃었다.
드래곤 관에 우뚝 서 있는 드래곤 상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올보그 황제가 밖에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걸 잊어버린 건 아니다. 다만, 드래곤 방패가 손바닥에 새겨진 이상,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을 뿐.
“공자님, 그럼 저는 저택에 가 보겠습니다.”
“그래, 겨울 준비는 다 마쳤는지 확인해 보고. 헤인켈도 함께 가. 가서 동물들 진료 준비도 해 놓고.”
팅거와 벨라는 도착하자마자 동물들에게 내가 왔다고 알리라는 내 지시를 받고는 날아갔다. 저녁쯤이면 몸이 아픈 동물들이 저택 정원에 모이겠지.
“헤인켈, 내가 대신 대장님을 안전하게 모실 테니까, 세이건과 편하게 가 봐.”
“그럼 부탁드립니다. 발로우 마법사님.”
세이건과 헤인켈은 저택으로, 남은 우리는 황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두 사람, 참으로 충성스러운 친구들입니다. 든든하겠습니다.”
“예, 제가 복이 많죠. 저런 친구들을 옆에 뒀으니.”
“이런, 저 친구들이 방금 대장이 한 말을 들었다면 감동했겠는데요? 이러니 대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지.”
낯뜨거운 소리에 뭐라고 대꾸할까 생각하는데, 품 안에서 통신구가 울렸다. 율리시즈 백작이었다.
“예, 아버지.”
=바쁜데 연락한 거 아니냐?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요?”
드워프 영감님들이 검은병이나 로운관을 완성했다는 말을 전해 줄까 싶어서 통신구에 귀를 기울였다.
=제피크 마법사들이 네게 말을 전해 달라더군.
“돌을 다 만들었나 보군요.”
=그건 이야기를 못 들어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 검을 완성했다고 했다.
“검이요?”
=그래. 그들 말로는 네게 말하면 안다고 하더군.
“조만간 내려가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그래, 말해라.
“폐하께서 그들이 우리 영지에 있는 거 알고 계셨죠?”
=알고 계실 거다.
“예, 아버지.”
통신을 끊자, 발로우가 날 보더니, 씩 웃었다.
“무슨 소식이길래,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입니까?”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저기…….”
나는 앞서 걸어가는 벨저를 가리켰다. 벨저가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걸어가고 있었다. 발로우가 그걸 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럽시다.”
발로우가 벨저에게 다가갔고, 나는 뒤따라가면서 용사님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용사님, 드디어 슈커럴 검을 완성했대요.
[그게 정말이냐? 슈커럴 검을 만들었다고?]-예, 거기에 드래곤 스케일만 입히면 돼요. 사실 그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예.
[허헛, 첨 네 주변엔 인재들이 많구나. 역시 호헨 베이크 후손이라는 게 거짓이 아니었군.]이번에 낙찰받은 물품 중에 낡은 액자가 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건 드래곤의 비늘을 갈아 만든 액자였다.
마물도, 성자들이 득실거리는 경매장에서 그 액자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바로 석판에 있었다.
석판은 마물들이 찾아 헤매는 통신석이었다. 그리고 그 통신석의 기운을 드래곤 비늘이 가로막고 있었고.
생각하는 사이, 일행과 간격이 멀어졌다.
나는 서둘러 일행에게 다가갔다. 발로우가 벨저에게 말을 걸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리처드, 너 황궁 처음 가 봐? 왜 이렇게 떨어.”
“……어, 그, 그래. 처음이지. 처음.”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동시에 내딛는 벨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하하, 얼굴 풀라고. 폐하께서는 너처럼 능력 있는 인재를 좋아하시니까.”
발로우는 경직된 벨저를 풀어주려는 듯 어깨를 톡톡 두들겨 줬다. 그러나 벨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때, 내 품에 안겨 있던 카이가 휙 날아서 벨저 품으로 파고들었다.
니야옹.
“어이쿠야!”
벨저는 얼떨결에 품으로 날아든 카이가 다치지나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때, 냐오오! 카이가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벨저 팔에 비벼댔다.
“그래, 그래.”
벨저는 그런 카이가 귀여운지 한쪽 팔로는 카이를 안고, 다른 팔을 뻗어 카이 이마를 쓰다듬어 줬다. 입매가 스르륵 풀린 벨저는 어느새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허헛, 그것 참. 카이가 나보다 낫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발로우가 싱긋 웃었다. 반면, 가테지에서는 긴장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승님은 떨리지 않으십니까?”
발로우도 그걸 느꼈는지, 이제는 스스럼없이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가테지에게 물었다.
“내가 떨어야 할 이유가 있던가?”
“아…… 맞습니다. 스승님이 그럴 이유는 전혀 없으시죠.”
전혀 꿀리지 않은 표정. 그 표정이 가테지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가테지는 올보그 황제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
“엘라로투스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미사여구 하나 없는 담백한 인사말. 오히려 올보그 황제가 더 반기는 것 같았다.
“어서 오시게. 그래, 오는 길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아니, 황제 폐하. 우리 워프 스크롤로 왔거든요? 아시잖아요!
“잠시 어지러운 것 말고는 괜찮았습니다.”
가테지는 가감 없이 소감을 토해 냈고, 그걸 또 황제가 받아 줬다.
“여봐라. 멀미에 좋은 포션 하나 가지고 와라.”
“이제는 괜찮습니다.”
“하하하, 그럼 속을 다스리는 차라도 한잔합시다.”
황제가 시종에게 지시를 내렸고, 어느새 우리는 커다란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관계가 되었다.
제일 상석에 앉은 황제는 벨저에게 안겨 있는 카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 황녀가 이 녀석, 카이를 몇 번이나 보고 싶다고 했는지, 지금쯤 소식을 들은 황녀가 이리로 오고 있을 겁니다.”
“황공합니다.”
지난밤, 통화할 때, 황제는 카이와 팅거, 벨라를 꼭 데리고 오라고 했다. 황녀가 틈만 나면 쟤들이 보고 싶다며 오라고 하라고.
황제가 테이블 위에 놓인 쿠키를 하나 들고 카이에게 말을 걸었다.
“카이, 네 이름이 카이라고 했지?”
니야오호!
카이가 신이 난 표정으로 길게 울음을 내뱉고는 훌쩍, 날아서 황제에게 갔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멀리뛰기를 잘하는 호캣으로 보일 터.
황제는 더없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에게 과자를 내밀었다. 과자를 입에 문 카이가 보라색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어? 이거 엄청 맛있는데?]카이가 과자를 콱콱 먹어댔다. 며칠은 굶은 것처럼.
-카이, 너 아침 많이 먹지 않았어?
탁, 카이는 꼬리를 한번 테이블을 쳤을 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슈리말라 카이. 이름이 참으로 좋군요.”
황제가 카이를 보며 작게 읊조렸다.
동시에 내 눈은 더 커질 수 없이 커졌다. 황제가 카이 풀네임을 알다니.
내가 아는 한, 카이 풀네임은 나, 용사님, 그리고 카이 본인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황제가?
그때, 시종이 황제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황녀가 왔음을 알렸다.
카이는 곧 황녀에게 안겨 방을 빠져나갔고 이어 지로드 교수가 들어왔다.
“이제 다 모인 것 같군요. 율리시즈 대장, 마물과의 전투 상황을 상세히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예, 폐하.”
나는 알트 시에서 마물과 대치했던 것부터 식당에서 케링을 상대했던 것까지, 자세히 풀어서 이야기했다. 지로드 교수가 자리했다는 건 마물과 전쟁을 대비하겠다는 뜻일 거니까. 그리고 짐작대로.
“어떻습니까? 승산이 있겠습니까?”
황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로드 교수에게 물었다.
“알트 시에서 먼발치에서 잠시나마 마물의 전투력을 봤습니다.”
딸깍. 황제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지로드 교수를 바라봤다. 뒷말을 기다리는 거였다.
“우리 대원들이 마물을 상대하려면 우선 비행마법부터 써야 합니다. 비행마법이 마나를 얼마나 잡아먹는지 여기 마법사들께서는 아실 겁니다.”
발로우, 벨저, 가테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마법을 유지하면서 마물의 공격을 피하고, 그러면서 마물 정수리에 마나 검을 박아야 한다는 건데, 그건 우리 대원들의 능력으론 역부족입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이렇게 귀한 자료를 손에 넣었으니,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로드 교수가 들고 있는 종이뭉치를 가리켰다.
종이엔 내가 지금까지 마물과 어떻게 싸워 이겼는지, 그리고 마물의 장단점을 에른이 보기 편하게 정리해 놓은 거였다.
“그들이 쏟아 내는 마기를 막을 수만 있다면, 1, 2급 마물 정도는 없앨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카롯이나 케링처럼 강한 마물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 대원들 전력을 봐도 알트 시에 출몰한 마물 정도가 최선입니다.”
“마나가 높고 전투력이 뛰어난 기사라고 할지라도 마나 검과 신성석 검이 없다면 마물과의 전투는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그런데, 우리가 가진 마나 검과 신성석 검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혹시 마물을 대적할 만한 방법, 없겠습니까?”
황제는 가테지를 콕 집어서 바라봤다.
“1급 정도 마물에겐 정신계 마법으로 교란 작전이 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든 마법사가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내 생각엔 가테지 마법사 당신밖에 없을 것 같은데?”
가테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대신할 수 있는 검이 있긴 합니다만.”
“호오, 검이라, 혹시 그 검이라는 게 슈커럴 검입니까?”
올보그 황제도 슈커럴 검을 아는구나. 확실히 모르는 게 없다니까. 그런데 가테지는 나와 생각이 달랐나 보다.
“……아십니까?”
“융합마법을 통달한 흑마법사만이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지요.”
그럼 다 아는 거네.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분위기를 살폈다. 다짜고짜 그거 우리 영지에서 만들고 있거든요? 라고 말을 할 순 없으니까.
“혹시, 그대들이 그 융합에 도통한 마법사들입니까?”
“저는 아닙니다.”
“저, 저도 아닙니다.”
발로우와 벨저가 고개를 내저었다. 황제의 시선은 이번에도 당연히 가테지에게 꽂혔다.
“그럼 가테지 마법사께서?”
“물론 저도 아닙니다. 그러나 융합마법에 뛰어난 마법사들이 누군지는 압니다.”
“그게 누굽니까?”
황제가 희망 어린 표정으로 가테지를 응시했다.
“두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만, 한 사람은 최근에 사망했습니다.”
“아, 이런! 안타깝군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로 인해 마물이 강해졌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또 무슨 말입니까?”
“폐하께선 아시리라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마기를 끌어모으는 마기 흡기 장치, 로운관이 바로 융합마법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아, 그랬군.”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황제가 이내 입을 열어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굽니까?”
“칼레이 베이크. 제피크 마탑 출신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대답.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맞습니다.”
이번에는 가테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테지는 나를 보며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확실히 율리시즈 가문의 정보력은 대단하군요.”
“대단하지. 어떨 땐 우리 황실보다 정보가 더 빠르다니까요.”
“과찬이십니다.”
“칼레이가 베이크 가문의 핏줄입니까?”
“그, 혹시 아크리스 남쪽 프라이본의 호헨……?”
“살아 있었군요.”
발로우와 벨저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고, 가테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칼레이가 살아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반면, 올보그 황제는 간단하게 물었다.
“그래, 슈커럴 검은 만들었습니까?”
이번에는 가테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