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35)
시작한다. 힘의 반작용이 사라졌다. 공기의 저항도 깔끔하게 없어졌다. 마치 원래부터 아래로 휘두른 듯, 혹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처럼 돌아가 아래로 이동했다. 팟! 검의 변동은 끝나지 않았다. 사선을 그은 팔이 수평으로 떨어지고 멈췄다. 검도 평형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 섬광이 번쩍이면서 검극이 대기에 구멍을 내고 최초로 나타난 균열에 부딪쳤다. 채앵! 금속음이 길게 늘어졌다. 손끝에 잡혀 오는 감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투구 안 속, 요광의 표정도 변했다. 처음으로 위기감이 묻어났다. 무공의 극의를 이룬 고수답게 신체의 변화나 충격의 전달을 알아채는 속도는 그야말로 귀신과 같았다. ‘흑철갑주가!’ 맹신이 무너진 순간, 요광이 재빨리 반응했다. “쿠오오오오오옷!” 하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내력을 끌어 올렸다. 투구의 안광이 검붉게 빛났다. 붉은 광채에 공명하듯, 화첨창의 끝자락에서 불꽃이 뱀처럼 넘실거렸다. 카가가강! 상체에 힘을 주자 쇠사슬이 강하게 압박해 왔다. 마치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뱀처럼, 갈비를 부술 기세로 조여 왔으나 요광에겐 어림도 없었다. 열의 유령이 온 힘을 다해 막으려했으나, 요광은 그야말로 괴력을 뿜어내면서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채채챙! 서로 이어진 고리가 끊어졌다. 몇군데는 열기에 익어 반쯤 녹아버리기까지 했다. ‘육합신창, 삼합(三合)!’ 왼손으로 창대의 하단을 잡았다. 오른손은 넓은 거리를 두고 상단에 고정시켰다. 빠드드득. 아랫배에 힘을 주자 잘 단련된 복근이 명확하게 갈라졌다. 승모근을 시작으로 팔 근육 전체가 부풀었다. ‘횡소천군(橫掃千軍)!’ 단, 한 번단 한 번 창을 횡으로 휘두른다. 필사의 의지를 담아내며, 기맥과 근육이 찢어질 정도로 무리한 근력을 냈다. 아니, 폭발시켰다. 창의 움직임에 의해 바람이 불었다. 돌풍이 아닌 폭풍이었다. 공기가 짓눌리고, 쓸려 나갔다. 창신에 맺힌 불꽃이 불이라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압축됐고, 대신 붉은 빛깔의 강기로 변했다. 그리고 굉음이 고막을 후려친다. 콰아아아앙! “……!” 요광의 신체를 묶어 두었던 유령 무리가 버티지 못했다.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놓친 건 물론이고, 제 몸도 가누지 못했다. 그저 창대에 후려 맞고 나가떨어졌다. 우드득! 그야말로 경악. 심살의 훈련을 겪지 않았더라면 경악하고도 남았을것이다. 창대에 맞은 순간, 조금도 버티지 못했다. 유령 무리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재해에 휩쓸린 잡초처럼 날아가 지면이나 벽에 처박혔다. “커허억!” 복면 위가 붉게 물들었다. 눈의 초점이 꺼졌다. 즉사였다. ‘무섭구나, 육합신창!’ 주서천도 이번만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연 창신의 신공이었다. ‘피하지 않고 막았더라면, 호신강기를 펼쳤을지라도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몸을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피해 냈다. 그 외의 유령 무리는 애초에 거리를 둔 채라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추어 같으니라고……!” 요광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삼합, 횡소천군은 대군을 대상으로한 초식이다. 범위가 넓고 위력이 큰 만큼 동작이 크고 단조로운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포박됐을 때, 주서천이 방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펼쳤는데 실패해 버렸다. “너야말로 지긋지긋하다!” 흑철갑주, 화첨창, 육합신창.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것들밖에 없었다. 최상승의 화경의 고수가 천하에 둘도 없는 법보에 신공까지 주어지면 얼마나 강해지는지 알 수 있었다. 화경과 현경 사이의 벽이 낮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위협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하아압!” 두 남자의 목소리가 정확히 겹쳤다. 동시에, 공중에서 검과 창이 부딪쳤다. 콰앙! 금속끼리의 마찰음이 아니었다. 공성 무기를 서로 부딪친 것처럼 굉음이 터져 나왔다. 주서천도 요광도 멈추지 않았다. 공격이 막히면, 그다음 행동으로 나선다. 그 속도는 번개와 같았다. 채채채채채챙! 자색과 적색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충격파가 뿜어져 나온다. 발밑의 흙먼지도 안개처럼 흩어졌다. 오십밖에 남지 않은 유령 무리가 거리를 둔 채, 팔을 교차해 버텨 냈다. “왜냐!” 요광이 물었다. “도대체 왜……!” 평생을 전쟁이라는 지옥 속에서 살았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태껏 인내해 왔다. 암천회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유를 염원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다른 지옥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가 간의, 이 나라의 지옥보단 무림이라는 꿈과 같은 세상이 나아 보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방해하냐는 말이냐!” 요광은 울분을 토해 내며 소리쳤다. “나는, 나는 그저 이 지옥에서……!” 작렬하는 검격. 그 안에서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징집을 받아 전쟁에 처음 나갔을 때, 시체 사이에 숨어 물이란 물은 다 흘리며 어찌 살아남았다. 그 뒤, 십인대에 편성됐다. 십인대장은 아들 생각이 난다며 창을 휘두르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튿날 자신을 제외하고 십인대가 전멸했다. 그 뒤로도 비슷했다.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전쟁은 모든 걸 앗아 갔다. 술잔을 기울인 벗도, 등을 맞댄 전우도, 하룻밤에 빠져 버린 연인도 전쟁이라는 불에 휘말려 사라졌다. 전우의 시신을 모포 삼아 덮고, 물 대신 피로 몸을 닦았다. 비명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눈을 뜨면, 손을 잡고 의지하던 전우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어제도 사람이 죽었다. 오늘도 사람이 죽는다. 내일도 사람이 죽을 것이다. ‘사합(四合)!’ 요광이 창을 살짝 느슨하게 잡았다. 힘이 풀려서가 아니다. 육합신창의 연결을 위해서였다. 손가락 사이로 창이 흘러내리는 듯 싶었으나, 신기하게도 공중에서 회전하는 묘기를 보였다. 어떠한 받침대도 없어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창으로 이어지던 내력이 외부에 잔류해 기류를 형성했다. 허공섭물처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니라, 손바닥 사이에 바람을 만들어 돌렸다. ‘공회창(空回槍)!’ 콰과과과! 요광의 신병이기가 창신의 무공과 합을 맞췄다. 신속으로 회전하는 창은 마공 못지 않은 파괴적인 위력을 내뿜었다. 혹시라도 창에 닿아 마찰력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적을 향해 앞으로 쭉 밀어냈다. 주서천은 대기를 넘어서 공간을 찢어발기며 날아오는 창을 똑바로 맞이했다. ‘동귀어진?’ 찰나의 순간, 다시 시간이 느려졌다. 요광의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주서천의 발의 방향을 보고, 검이 어디로 날아온 것인지 추측하고, 미래를 그려 봤다. 올곧은 직선. 그러나 이미 늦었다. 창이 먼저다. ‘허초로 날 겁먹게 만들어서 피하게 할 생각인 것 같지만, 소용없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민 역시 전무했다. ‘왼쪽 어깨를 날릴지언정, 네놈을 죽이겠다!’ 팔 하나로 주서천을 죽인다면 그건 이득이다. 요광은 주서천과 맞붙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사람이 아니다.’ 무슨 말을 붙여도 부족했다. ‘괴물, 사람이란 개념을 뛰어넘었다.’ 암천회주가 절로 떠올랐다. ‘끝이……’ 쐐액! 창이, 지나갔다. ‘무슨……?’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파공성이었다. 문제는 저항감이 없었다. 미간에 꽂히지 못했다. 퓨붓. 피가 튀었다. 주서천의 뺨에 가느다란 혈선을 그려 놓고, 머리카락을 슬쩍 매만지는 걸로 끝났다. ‘빗나…… 갔다고?’ 주서천은 피하지 않았다. 움직인 건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전장에서 목숨이 걸린 순간에 실수할 리 없었다. 설령 세상의 악운이 모인다 할지라도 불가능했다. 붉은 안광 속, 꺼져 가는 빛 속에 초점이 축소됐다. “네가 지금 혼자인 것을 잊지 마라.” 경악과 불신이 사라지고, 그 대신 또 다른 의문이 솟아났다. 팔에 무게가 느껴졌다.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니 벌레처럼 귀찮게 굴던 여아가 팔을 꽈악 잡고 있었다. ‘유령? 아니, 불가능하다.’ 아무리 육합신창을 펼치는 와중이라곤 하지만, 외부에서 잡아 온다고 해도 멈추는 게 아니었다. 괜히 천하제일창의 무공이 아니었다. 초식이 여섯 개밖에 되지 않아 단조롭지만, 막강한 게 특징이다. 설사 화경의 고수가 잡는다고 해도 방향을 틀 수는 없다. 상천육좌처럼 절대고수라면 모르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의아해하며 머리를 굴렸다. 찰나의 순간, 의문과 의문이 꼬리를 물고 금세 답을 내놓았다. ‘호흡이……?’ 숨이 이상했다. 호흡이란 무공의 시작이자 끝이다. 중간에 호흡이 잘못되면 운기도, 신체의 움직임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 숨이 잘못됐다. 혹시 폐나 기도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불 탓에 숨이 차지 않나, 요광?” 주서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대공동은 지하에 위치해 있다. 당연히 공기도 희박할 수밖에 없다. “네…… 이놈……” 비록 주변이 넓다곤 하지만, 창을 휘두를 때마다 불을 쉴 새 없이 쏘아 내면 당연히 변화가 생긴다. “네…… 이노오옴……!” 하루에 한 번만 쉬어도 되는 귀식대법이 아닌 이상,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주서처어어어어언!” 아무리 전장에 익숙한 요광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특수한 곳에서 싸운 적은 없었다. 흑철갑주가 설사 신체 능력을 높여주고, 독도 막아 준다고 해도 없는 공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네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지옥을 만들겠다면.” 시야가 빙글 돌았다. 뇌에 공기가 부족해 머리가 돌았다. 감각이 이상했다. 힘을 내 왼손을 뻗었다. “내가 그 지옥이 될 것이다.” 서걱! “져, 졌다!” 종리도전이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수십 명의 피 맛을 본 연검도 떨어졌다. “항복할 테니 목숨만 살려 주시오!” 삼천오백 중 이천을 함정으로 허무하게 잃었다. 중요한 건, 총지휘관이자 최대 고수인 요광도 휘말렸다는 것이었다. 종리도전을 비롯한 몇몇 전력이 남기는 했으나, 포달랍궁이 합류한 귀주군을 이겨 내기는 힘들었다. 처음에는 주서천도 모습을 감춰서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어떻게든 버텨 내려다가 결국 피해만 늘렸다. 천오백 명이 저항하다가 팔백 명까지 줄어들었고, 답이 없다는 판단에 투항하기로 했다. 물론 전원은 아니었다. 충성심이나 신념이 투철한 이들은 아직까지 저항하며 생명의 불꽃을 태웠다. “종리도전!” 조명이 종리도전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혀, 형님! 한 번만 봐주…… 케헥!” 조명의 발이 종리도전의 턱에 꽂혔다. “이 배신자 새끼가!” 사파에 배신이 흔하게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몇 년 동안 정을 쌓은 의형제에게 당한 건 얼얼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형님!” 종리도전이 부어오른 턱을 문지르며 애원했다. “내 네놈을 당장 쳐 죽여 주마!” “어허, 좀 진정하게.” 맹초혁이 조명을 말렸다. 칠성사의 중심 기관, 천추성 출신에 암천회 간부인 요광의 수하로 전선에 참전했다. 그만큼 알고 있는 것이 많을 테니, 되도록 양호한 상태로 잡아들여 정보를 캐내는 것이 이득이었다. 조명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그 대신 욕설을 퍼부었다. “휴우, 이겼군요.” 신도균은 가슴을 쓸어 넘기며 안도했다. “요광이 함정을 눈치했을 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진담이었다. 염라대왕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또한, 요광이라는 괴물에 대한 공포심이 솟구쳤다. 무공도 무공인데 지략까지 뛰어나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걸 느꼈다. 한시름 놓으니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원이 망한 이후에 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