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72)
좋겠다.’ 제갈승계 역시 화산 습격 소식에 주목했다. 그 주서천이 소중하게 여기는 곳이기도 하고, 화산에는 특별하게 신경써서 설치한 기관이 있어서였다. 부디 그 기관이 도움이 돼서 주서천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다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나저나 화산의 기관도를 생각해보면, 참 악랄하단 말이야.’ 화산의 기관에는 제갈승계 외의 손길도 거쳤다. 암기의 경우엔 당혜에게 도움을 빌렸으며, 배치나 발동 시기 등의 전술 부분에는 제갈수란이 거쳤다. 제갈수란은 검산과 검목(劍木)의 배치에 이러한 조언을 건댔다. ‘검산이 발동된 이후라면 경계심 탓에 진군의 속도를 늦춰서라도 함정을 해체하면서 오를 거란다.’ 모사미봉은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마치 미래를 본 것처럼 예견했다. ‘그러면 주변의 나무가 기관 장치라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 눈속임용으로 함정을 지면에 배치해 두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고리고 적이 해체에 익숙해져, 경각심이 사라질 무렵을 노려……’ 열성적인 누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당혜도 왜 그런지는 모르나 자기 일처럼 도왔다. ‘아, 두 분도 드디어 기관이 얼마나 대단하고 매력적인지 알게 된 거구나? 와하하!’ 사고방식이 답이 없는 제갈승계였다.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도련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니 다행이네요. 그 성격괴팍한 외톨이가 설마하니 오룡삼봉이 될 줄이야…… 새삼 감회가 새롭네요.” “……말이 조금 심하지 않니?” “엇, 뒷말은 속으로 생각한 거였는데…… 무심코 흘리고 말았네요. 호호호.” 제갈승계를 어린 시절부터 보필해온 하녀, 왕소소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시선까지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 아주 수준급이다. ‘그래도, 정말로 오룡이 되실 줄이야……’ 왕소소는 말은 그래도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오래전, 왕소소는 노력 끝에 치열하기로 소문난 오대세가의 하녀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하나 앞으로 보필하게 될 주인이 세가에서도 내놓은 문제아라는 소식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출세는 물 건너갔구나.’ 정파 특유의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분위기 탓인지는 모르나 하인들에게도 이러한 위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위계란 보통 누굴 보필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며, 높은 사람일수록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하녀의 권세라고 해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무림의 오대세가의 하녀, 그것도 직계 혈족의 직속이라도 된다면 일반인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야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 운이 좋다면 첩으로 눈에 띄어 인생 역전을 꿈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보필하게 된 사람의 인성이 좋지 않거나, 위치가 좋지 않다면 아무리 경험을 쌓는다해도 우습게 보일 여지가 있다는 의미였다. ‘에휴, 출세는 무슨 출세야?’ 왕소소 역시 한때나마 하녀로서 나름 출세를 꿈꾸던 평범한 소녀였으나, 욕심이 그리 많진 않았다. 앞으로의 삶이 평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오대세가의 하녀로 들어온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제갈승계가 조금 특이하긴 해도 때리거나 혹은 강제로 범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저분은 누구세요?’ ‘아, 왕 언니? 신경 쓰지 마. 그 도련님 직속이니까.’ ‘그 도련님이면 …… 아, 혹시?’ ‘쉿. 그래도 직계시니 함부로 말하면 안 돼.’ ‘불쌍하다.’ ‘그래도 자기 위치는 아는지 꼰대 짓은 안 하더라.’ 미련을 버리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긴 했지만,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며, 때때로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왕소소는 알게 모르게 당하는 따돌림이 불쾌하였으나 그저 숙명이려니 하면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또 제갈승계와 지내는 것도 생각만큼 나쁘진 않았다. 우울한 게 좀 흠이고, 친구도 없고, 툭하면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있어 좀 기분 나쁘긴했지만 소심한 남동생을 돌보는 것 같아 보람도 있었다. 나중에는 농담을 건넬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직계 혈족의 하녀가 지니는 특혜는커녕 무시를 받던 나날에서 갑자기 상황이 돌변했다. ‘막내 도련님 말이야, 최근 잘생겨지지 않았어?’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전히 말도 못 하시고, 우울해보이긴 하지만……’ ‘잘생겼어!’ 제갈승계는 훌륭할 정도로 잘 자라주었다. 피는 못 속이는지 외모가 몹시 뛰어났다. 여전히 세가에서 내로라하는 자식이고, 성격도 이상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단 평가가 좋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화산파의 제자이며 주서천이라는 이름의 도사가 찾아온 기점으로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기관괴협?’ ‘제갈승계 도련님이 글쎄……’ ‘귀주대전에 대해서 들었어?’ ‘승 공자님을 만나러 온 사람이 줄을 잇는다는데?’ ‘전국 무림 세력에서 들어온 혼담만 해도 수백이 넘는다고 하더라!’ ‘앗, 왕 언니. 안녕하세요!’ ‘왕 언니 정말로 대단하지 않아? 제갈승계 공자님이 어떤 분인지 원래부터 안 거잖아. 대박이야.’ ‘그야말로 용을 키운 안목!’ 천하제일기관사, 또는 기룡 등의 별호가 붙은 이후로 주변의 시선이나 대접이 완전히 바뀌었다. 언제나 귀찮거나 불쌍하게 여기던 시선은 없었다. 하녀건 무사건 간에 하나같이 예를 지켰다. 무거운 것이라도 들고 가면 곧바로 와선 대신 들어 주겠다고 답했다. 심지어 무림인조차 제갈승계의 직속, 그것도 거의 하나뿐인 하녀라고 듣자 공손한 태도로 대해 주었다. 솔직히,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달라진 대접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이 있었다. ‘소소야, 나 기룡이야! 내가 천재라고 했지?’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면서, 기쁘듯이 소식을 알린 제갈승계. 그 표정을 떠올린 하녀는 미소 지었다. “그런데 아직도 친구가 없다니…… 여전히 속 썩이시네요.” “누, 누가 친구가 없어? 친구 있거든!” “친구 누구요? 다섯 명, 아니 세 명만 대 보세요. 참고로 저 포함한 세가 친구들은 예외요.” “세 명이 아니라 다섯 명도 댈 수 있거든? 어디 보자, 일단 서천 형님이랑……” 제갈승계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면서 중얼거렸다. 왕소소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 * * 악몽이었다. 삼악검파의 머리에 제갈승계의 이름이 틀어박혀 떨어지질 않았다. 꿈에 나올 정도였다. ‘히이……’ 원비겁 섭등도 기관의 위력에 몸서리쳤다. 삼문주가 선물을 주겠다고 비호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이 죽음의 산에 희생물이 됐을 것이다. ‘이것이 기룡의 힘인가!’ 기룡의 정녕 무서운 점은 설사 중원 반대편에 있다 할지라도 수천에 이르는 무인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제갈승계의 능력에 대해선 천군사나 모사미봉의 후광에 의해 과장된 것이 아닐까 의아해했었는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당했지?” “중상자 포함해 삼백여 명입니다.” 화산을 오를 때만 해도 이천이었다. 어이없게도 그중 오백이 화산파와 격돌하기 전에 죽거나 다쳤다. “삼악검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문의 제자들이 헛되이 죽는 걸 원치 않는다면 항복해라.” 섭등이 진심을 담아서 권유했다. “헛소리!” 일팔구로가 어림없다는 듯 눈썹을 사납게 치켜떴다. 눈에선 분노로 타오르는 빛이 뿜어져 냐왔다. “무인, 그것도 검파의 수장인 주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겁쟁이들에겐 굴복하지 않는다.” “그 말대로다.” 태산파검의 낯빛은 어두우나 그 신념은 이름 고대로, 태산처럼 굳건했다. “정면에서 나서지 않고, 숨어 있는 것 자체가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다. 애초에 여기에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원하는 것. 네놈의 잘난 혀에 속아 넘어갈 줄 아느냐.” “동의하네.” 초예사태가 다시 오를 준비를 하라는 듯, 턱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 어차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지.” 태산파건 숭산파건, 그리고 항산파건 간에 다들 말은 하지 않았으나 시간을 끄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종남파를 비롯해 무림맹이 보낼 지원병력이 신경 쓰였다. 무엇보다 상천육좌, 검신이 문제였다.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사문의 습격 소식에 달려올 터. 사람이 아닌 괴물이 오기 전까지 해결해야 했다. “가자.” 삼악검파는 제자들을 발판 삼아 진군을 속행했다. 검산에 이어 검목을 조우한 이후로는 지면뿐만 아니라 좌우, 심지어 하늘까지 주의하면서 올라갔다. 속도가 한층 더 느려지긴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전처럼 밀집해 있다가 한꺼번에 당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산개해서 올랐다. 정면 돌파를 선택하되 흩어졌다. 휴식이나 수면을 취할 때도 주변을 경계했다. 그 탓에 피곤함이 몇 배나 쌓였으나, 그래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갖은 노력 끝에, 날이 다시 밝을 무렵 운기조식을 끝내고 화산파에 도달을 수 있었다. “왔군.” 매화검장, 위지결이 팔짱을 풀고 감은 눈을 떴다. 쿵! 쿵! 문 위에 석 자가 새겨진 사문의 간판이 흔들렸다. 쿵! 쿠웅! 콰앙! 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더니, 기어코 박살 나면서 삼악검파의 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숫자는 무려 천오백여 명. 산이 떠나갈 정도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며 가득 메웠다. “화산파!”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건 삼문주만이 아니었다. 밑에서부터 중턱, 그리고 그 정상까지 고생함을 생각하니 뇌가 절로 떨리고 입술에선 피가 흘렀다. 삼문주가 세뇌하듯이 화산파를 폄하한 결과인지 상당수 대부분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죽여라!” 서로 대치해서 이름을 교환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살의가 쌓일 때로 쌓인 삼악검파다. 흘러나온 걸 넘어 터져 버린 증오와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삼악검파는 평지 위로 올라오자마자 화산파와 일언반구도 없이 검부터 날렸다. “크아아악!” “아악!” 정파인의 질서나 예절 따위는 없었다. 지칠 때로 지친 삼악검파에게 인내심은 없었다. 삼악검파, 아니 오악검파가 서로 뒤섞였다. 형산파에선 한 사람만이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오냐, 기다렸다!” “와아아아!” 누군가의 격앙된 목소리가 삼악검파의 후위에서 터져 나왔다. 삼악검파가 흠칫 놀라며 뒤를 살폈다. 검목으로 후위를 잃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반응이 번개 같았다. “타앗!” 화산파의 무공 중 흔치 않은 장법이 펼쳐졌다. 명수악의 사손, 방철삼의 손바닥이 적의 등을 후려쳤다. “크아악!” “뒤다!” “비겁한 놈!” “십사검협도 있다!” 구풍, 방철삼, 장홍, 장서은 등 백여 명의 화산파는 문밖에 매복해 있다가 튀어나와선 퇴로를 막았다. “아군인 척하다가 적군으로 변해서 뒤를 친 게 누군데 지금 누구보고 비겁하다고 하는 것이냐!” 장홍이 코웃음을 치며 장서은과 검을 휘둘렀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질 때마다 적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혈 향에서 매향이 맡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군과 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난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난전 속 은밀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유정목을 찾아라. 최우선 사항이다.” “명!” 숭산파의 문주, 일팔구로는 중악제일검(中嶽第一劍)이라 불릴 만큼의 실력자이자 검수이다. 오악검파를 각각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인성은 둘째 치고 실력만큼은 출중하며 전원 천하백대고수에 든다. 단, 연령이 어리며 강호에 출두하지 않아 실력을 증명하지 못한 화산의 장문인만이 예외였다. “쯧!” 조무양이 혀를 차면서 보법을 밟았다. “ 어딜!” 일팔구로가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숭산의 일지검법이 곧은 선을 그려 내면서 조무양의 목을 노렸다. “흥!” 조무양은 전형적인 정파의 안하무인이다.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