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Min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뭐라고?”
“이 찢어 죽일 놈이!”
조천상과 초혜려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당장에라도 송자건에게 달려들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송자건은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를 뱉었다.
“누가 먼저 할 거냐? 나는 둘 다 덤벼도 상관없다만.”
“이익!”
조천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이를 꽉 깨물 때, 앞서 있던 주작단주 초혜려가 송자건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당장 그 주둥이를 찢어주마.”
촤라라락!
초혜려의 손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내는 것은 구절편이었다.
아홉 개의 쇠자를 이어 만든 구절편은 채찍보다도 다루기가 훨씬 까다로워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는 기문병기였다.
하지만 초혜려는 이 구절편으로 독사갈이란 별호를 얻었고 여인의 몸으로 주작단주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만큼 능숙하게 다룬다는 의미.
쐐엑!
독을 잔뜩 품은 전갈의 꼬리처럼 일렬로 바짝 선 구절편이 송자건의 목울대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송자건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담담히 검을 세운 채 쇄도하는 구절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흥! 산속에서 도나 닦던 애송이가!’
초혜려는 코웃음을 쳤다.
요근래 아무리 화산팔선이 어쩌고 매화검수가 어쩌며 떠들어대도 그녀의 눈엔 실전조차 제대로 한 번 겪어보지 못한 애송이로만 여겨졌다.
자신의 공격에 멍청하면서도 곧이곧대로 대응하는 그 모습만 봐도 뻔하다는 생각이었다.
촤락!
구절편의 마지막 끝마디가 갈고리처럼 꺾이며 검을 쥔 송자건의 손목을 그대로 잘라낼 것처럼 휘어들어갔다.
사사삭!
경쾌한 바람 소리가 연이어지더니 초혜려의 쭉 찢어진 안구가 튀어나올 것처럼 돌출됐다.
“!”
송자건의 검이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리더니 구절편의 마디마디를 순식간에 잘라내 버린 것이다.
더불어 송자건의 신형이 순식간에 초혜려의 코앞으로 쇄도했다.
턱!
검을 쥐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초혜려의 목울대를 움켜쥔 뒤 번쩍 들어 올린 송자건.
“아악!”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버둥거리는 초혜려의 몸뚱이를 그대로 잡아당기며 송자건의 무릎이 솟아올랐다.
퍽!
무릎이 단전을 격타한 순간 초혜려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눈을 하얗게 까뒤집었다.
의식이 뚝 끊어져 버린 초혜려를 송자건이 짐짝처럼 바닥에 내던졌다.
푸르르륵!
나뒹구는 초혜려의 입에서 새하얀 거품이 줄줄 흘러나오더니 거품 속에 새까맣게 죽은피가 섞이기 시작했다.
한눈에도 단전이 완전히 파괴됐음이 명확한 순간이었다.
모두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주작단의 단주 초혜려, 입이 거칠긴 해도 실력만큼은 어느 단주 못지않은 고수였다.
그런 그녀가 일초반식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채 무공이 폐지되어 버린 것이다.
무인으로서의 삶이 끝나 버린 것.
“이런 악독한 놈…….”
현무검주 조천상의 음성이 부들부들 떨리며 송자건을 향했다.
하지만 그 떨림 안에 담긴 것은 분노가 아니라 벗어나지 못하는 두려움이었다.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단주를 잃게 된 주작단 무인들이나 또 다른 사대무단의 무인들 역시 송자건의 너무나 단호한 손속에 완전히 압도당한 모습이었다.
“이게 악독한가?”
“…….”
“네 놈은 곧 죽일 텐데?”
송자건의 눈에 오연한 빛이 가득했다.
철야고행이라 불리는 검신 태사조의 고련을 견뎌낸 송자건과 일대제자들이었다.
치가 떨리는 검신 태사조의 살기와 실전을 매일 밤 죽기 살기로 버텨낸 송자건 이하 일대제자들의 무공은 이미 평범한 잣대를 훌쩍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거기다 소태사조 염호로부터 임독이맥까지 타통했으니, 공력의 깊이 역시 눈앞의 사대무단주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것이다.
초혜려의 구절편 따위는 단칼에 잘라내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럼에도 반운산의 위중한 상처와 안위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본 실력을 맘껏 드러낸 송자건이 끌어올린 기세를 가감 없이 표출하며 앞으로 나갔다.
쩌벅! 쩌벅! 쩌벅!
그 작은 발걸음 소리들이 조천상에겐 천둥벼락처럼 느껴졌다.
조천상은 감히 입도 떼지 못하고 꼴사납게 뒷걸음질치기 바빴다.
매화검수라는 게 이 정도 고수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엉키는 기분이었다.
완전히 얼어붙은 얼굴로 물러서기만 하는 조천상, 이 광경을 참지 못하고 왼편에서 누군가 뛰어올랐다.
“놈! 내가 상대해 주마.”
새파란 비단 무복을 입은 장년인이 쌍검을 빼든 채 조천상과 송자건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청룡단주인 감치산이었다.
사대무단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이 청룡단이고, 당연히 단주들 중에서도 최고의 고수가 감치산이었다.
현무단이 장강옥을 보필하는 이들이라면 청룡단은 검성의 직계로 이루어진 무인들.
장강옥에 밀려 후계 구도에서 멀어졌지만 감치산의 실력은 다른 무단주들과는 또 달랐다.
차창!
쌍검을 교차한 감치산이 대노한 음성을 토했다.
“나는 청룡단의……!”
불길을 뿜어낼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던 감치산은 할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송자건 뒤편의 누군가가 섬전처럼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빠각!
감치산의 고개가 뒤로 휘청 꺾인 뒤 썩은 고목처럼 쿵 소리를 내며 쓰러져버렸다.
그 앞에 우람한 덩치의 도사 우대강이 서 있었다.
일대제자 중 다섯째 우대강, 그는 검도 뽑지 않고 맨주먹으로 감치산을 그대로 혼절시켜 버렸다.
“본문의 대사형께서 행차하시는데 감히 어딜 끼어드느냐!”
우대강의 일갈에 좌중의 낯빛이 이제 파리하게 변했다.
천룡단주 감치산이 단박에 나가떨어진 일은 전과는 또 다른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일대제자 사이에서 비교적 젊은 도사 하나가 또다시 걸어 나왔다.
남은 일대제자들은 만일에 대비해 반운산을 에워싼 채 바짝 긴장한 모습.
“이런 놈들 정도는 저희에게 맡기셔야지요.”
일곱째 표운이었다. 그는 우대강 옆에 나란히 섰다.
우대강이 표운과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하더니 방향을 틀었다.
우대강이 향한 곳은 여태 구경꾼처럼 모여 있는 이들로 가득한 단상 쪽이었다.
“북검회의 장강옥!”
“!”
“그대는 대화산의 검을 받을 용기가 없는가?”
장강옥의 눈썹이 보일 듯 말 듯 꿈틀거렸다가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다.
사대무단의 단주 둘이 쓰러진 상황이지만 얼굴색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도발을 감행한 우대강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다수로 소수를 핍박한 것도 모자라 혼자 고고한 척 위선을 떠는 꼴을 보니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 없는 것.
그때 송자건이 장강옥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뗐다.
“나서라.”
그때서야 장강옥이 자리를 털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가 단상 위를 걸어 광장의 중심까지 내려오는 동안 숨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침묵이 가득했다.
“크하하하! 이제야 흥이 좀 나는구나. 뭐하느냐! 술상을 다시 들여라.”
하란성주 야율탁이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크게 웃었고, 그 사이 단상 주변으로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평온해 보이던 장강옥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 장강옥을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다니…….”
장강옥의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오자 우대강과 표운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나직한 음성에 실린 공력이 뼛속까지 쩌릿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강호제일의 후기지수, 천룡검 장강옥.
그가 그저 소문만 와전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낀 것.
송자건 역시 전에 없이 굳은 얼굴로 장강옥을 마주했다.
“죽은 검신의 후광 아래 있으니 모두가 아래로 보이느냐?”
장강옥의 입에서 흘러나온 싸늘한 음성에 일대제자들이 일제히 몸을 떨었다.
마주 선 송자건 만이 담담한 신색을 유지할 뿐.
장강옥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과거 화산에서 검신에게 호되게 당한 것이 있었다.
정력에 금이 간 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강옥의 무공은 한 단계 더 올라섰고, 오히려 검신의 수법까지 펼칠 수 있게 됐다.
지금 화산파 제자들에게 바로 검신의 그 수법을 되돌려 준 것이다.
자신보다 공력이 처지는 이들은 일제히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떠는데, 눈앞의 송자건 만은 멀쩡했다.
다시 말해 결코 상대의 공력이 자신에 못지않다는 것.
스릉!
장강옥이 검을 빼들었다.
눈부신 은빛 검신이 내리쬐는 볕을 받아 찬연한 빛을 뿌렸다.
후우웅!
순간 은빛 검신 위로 새하얀 빛줄기가 한 자나 위로 솟아올랐다.
“검강!”
당황한 우대강의 목소리였다.
이전까지 화산제일검이라던 신응담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다.
지금이야 장로들이 너도나도 펼치니 별것 아니라 여길 수도 있지만, 화산파 제자들은 그 경지가 얼마나 지고한 경지인지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검신 태사조 이후 백 년간 누구도 도달해 보지 못한 검경의 끝이 바로 검강이었다.
그때였다.
후우웅!
“!”
송자건의 검 위로 자주 빛 기운들이 요동치며 눈부신 빛살이 뻗어 올랐다.
“대사형!”
“오오!”
우대강을 비롯한 일대제자들의 입에서 걷잡을 수 없는 탄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사형! 왜 여태 실력을 감추신 겁니까.”
억눌렸던 불안감과 원망이 터져 나온 표운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송자건이 어깨를 으쓱했다.
“본문에서 검강이 자랑할 거리나 된다더냐!”
꿈틀!
와락 일그러진 장강옥의 얼굴.
“놈!”
장강옥이 그대로 송자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린놈이 말이 짧네!”
송자건 또한 촌각의 망설임도 없이 뛰쳐나갔다.
쇄에엑!
콰쾅!
빛나는 두 개의 검이 부딪힌 접점에서 하란성 전체가 진동할 만큼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하란산을 타고 황화의 협곡까지 줄기줄기 퍼져 나갔다.
콰-아-앙!
협곡을 타고 강줄기까지 길게 메아리쳐 오는 폭음 소리에 늙은 도사 하나가 고개를 바짝 세웠다.
“대장로님!”
“무슨 소릴 까요?”
“어디 큰 싸움이라도 난 거 아닐까요?”
커다란 상선 갑판에 모여든 어린 도사들이 너나없이 한 소리씩을 내뱉었다.
솜털 보송보송한 청년과 소년 도사들 사이에 선 대장로 손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여기가 어디쯤인고?”
“몰라욧! 그냥 기다리면 되지 뭘 급해서 거길 찾아간다고!”
뾰족 날이 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화전장의 화소옥이었다.
“이 배 한 척 빌리는데 돈이 얼마인줄이나 아세요. 노꾼들 일당은 또 얼마야! 아휴~!”
그녀가 눈을 흘기자 총림당의 왕심봉이 재빠르게 눈을 피했다.
대장로 손괴도 은근슬쩍 먼 산만 바라보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본문이 이렇듯 큰일을 했는데, 어찌 산에만 있을까.”
“그렇다고 본산을 통째로 비워두고 나온다는 게 말이나 돼요!”
화소옥의 입장에선 봉변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대장로 손괴는 오히려 당당했다.
“천하에 화산의 이름이 가득한데, 이를 직접 보는 것만큼 어린 제자들에게 좋은 공부가 어디 있겠느냐.”
손괴가 이렇듯 이대와 삼대 제자들을 모조리 끌고 길을 떠난 것은 천하에 퍼진 소문 때문이었다.
화산파의 도사들이 마교를 무찌르고 세상을 구했다는 소문.
그 소식을 듣고 어린 제자들이 들썩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솔직히 손괴 자신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니, 총림당주 왕심봉의 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보화전장 소유의 선박이 황하의 물길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니 망설일 게 뭐가 있을까.
“흠흠! 화산이 따로 있겠느냐? 우리들이 있는 곳이 화산이 아니겠느냐.”
손괴의 목소리에 갑판에 잔뜩 모인 이대와 삼대 제자들이 더없이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만큼은 손괴가 최고였다.
콰-앙-!
그 순간 다시 한 번 들려온 엄청난 폭음.
“소옥아! 대체 여기가 어디쯤이냐?”
“하란산이에요, 하란산. 아직 사나흘은 더 가야 난주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