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거칠게 몰려드는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물러났던 당가 무인들이 긴장감에 본능적으로 무기의 손잡이를 잡으며 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당세령이 당가의 내공 심법의 기초인 사통팔토(四通捌土)를 통해 호흡을 골랐다.
네 곳으로 기를 통하게 하고 여덟 곳으로 탁기를 배출한다.
“후우…….”
진무에게 얻어맞은 울혈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스윽.
한 발을 진무처럼 내민 당세령은 특이한 자세를 취했다.
양손을 펴서 엇갈리게 내민 당가의 금나수이자 방어법인 삼양수(三陽手).
그리고 기운을 극도로 끌어 올린 당세령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암기를 날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보는 법이었다.
자신이 날린 수천 개의 암기가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어야만 진정한 당가의 비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당가의 또 다른 비전 안법(眼法). 황안(黃眼).
아무리 빨라도 암기보다 빠를 순 없었다.
물론 본다고 해서 모두 막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육체가 판단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다.
반드시 본다. 그리고 막는다.
당세령은 진무를 반드시 식객으로 들어앉힐 생각이었다.
마음에 들었으니까.
“와!”
준비가 끝난 당세령의 외침과 동시에 진무의 뒷발이 힘 있게 땅을 밀어 낸다.
파학!
솟구친 흙더미가 선명하게 보이고 진무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 빨라!’
설마하니 암기보다 빠를 줄은 몰랐다. 선명하게 보여야 할 진무의 신형이 흐릿해졌고,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당세령의 전면으로 다가왔다.
어렴풋이나마 보이기는 했지만 반응할 틈이 없었다.
망할.
아직 손 하나 까딱하지 못했는데.
당세령의 얼굴이 흑빛으로 물들며 최선을 다해 날아오는 진무의 주먹을 향해 삼양수를 펼쳐 내었다.
하지만 양손이 그의 손목을 잡아채려 움직이기도 전에.
퍼억!
진무의 주먹이 그녀의 복부를 관통하듯 틀어박혔다.
“커억!”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당세령은 이를 악물었다. 쩌릿한 고통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도저히 버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정신이 아득해져 눈이 감기려는 순간, 진한 독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익! 질 수 없어!’
당세령은 온 힘을 다해 버텼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겨우 참아 내며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막거나 피하지는 못했지만, 버틸 수만 있으면.
그걸 보는 진무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게 도대체…… 뭔 놈의 여자가 맷집이 이렇게도 좋단 말인가?
혹시나 죽을까 싶어 막판에 힘을 좀 빼긴 했으나 그 투실투실한 청우도 나가떨어질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그런데 버텼다.
당세령이 힘겹게 뜬 눈을 휘어 웃었다.
“내가…… 이겼……지?”
“…….”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너…… 식객…… 약속…… 지…….”
정말 멋대로인 여인이었다.
당세령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아가씨!”
얼굴부터 땅바닥에 처박고 쓰러지는 모습에 당가의 무인들이 짙은 살기를 피워 내며 진무를 에워쌌다.
“이놈! 감히 아가씨를!”
야, 이러면 곤란하지. 니들도 다 들었잖아.
진무가 눈을 찡그리며 자신을 둘러싼 무인들을 노려보는데.
“멈추어라!”
노성과 함께 성벽 위에서 한 떼의 인물들이 떨어지듯 내려왔다.
성벽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진무가 그중 한 인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당위?’
분명 그였다.
사천의 제왕이자 정무칠성 중 하나이며 만 개의 비침으로 세상을 호령해 온 암황(暗皇) 당위.
등장하는 것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존재감이었다.
땅에 내디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 무게는 세상을 짓누른다.
펄럭이던 옷자락이 가라앉고, 뒷짐을 진 당위가 고고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절대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가진 특유의 위엄 앞에 고개를 들 수 있는 자들은 없었다.
“대가주님과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수많은 목소리가 하나로 뭉쳐 울리고 당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진한 위압감을 품은 그의 시선이 주변을 돌아 진무에게로 향했다.
과거엔 인사를 받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먼저 인사를 할 수밖에.
“당가의 주인을 뵙습니다.”
“당위일세.”
고작 한마디였지만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주위의 공기가 무겁게 변하다 못해 답답함마저 느끼게 했다.
‘암황. 여전하네.’
무풍개 양소방이나 검성 철지량이 그랬듯 당위의 막대한 존재감이 진무를 짓누르듯이 다가들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당가에는 어쩐 일인가?”
“잠시 청할 것이 있어 찾아왔으나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돌아가던 참이었습니다.”
“돌아가던 참이었다?”
“예.”
“하면 지금의 상황은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나지막하게 뱉어지는 말에 진무가 얼굴을 찌푸렸다.
딱 봐도 사건의 전말은 대충 아는 눈치였다. 알고도 일부러 물어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먼저 시비를 걸어 오기에 응한 것뿐입니다.”
진무의 대답에 당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저리도 당당하단 말인가?
설령 먼저 시비를 걸었기로서니 자신의 딸은 연약하디 연약한 여인이 아니던가?
아무리 혼이 좀 나기를 바랐기로 사내라는 놈이 장중보옥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딸을 그렇게 사정없이 패다니!
“먼저 시비를 걸었다? 그대가 상대한 것이 나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딸……이었구나.
힘도 좋지, 망할 노인네.
신분이 낮지는 않을 것이라고는 짐작했으나 칠십 먹은 노인네에게 약관의 딸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나저나 딸이 처맞은 것을 보았으니 이 성격 나쁜 놈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암황의 딸이라 해서 타인에게 저지른 무례가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뭐라? 감히 네놈이 이 사천에서, 당가의 정문에서 나를 가르치려 하는 것인가?”
당위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진무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당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꼴이 시어서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제집 정문에서 무인들은 물론 딸년까지 두들겨 팬 주제에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벌써 그가 뿜어내기 시작한 기세에 대기가 진하게 떨려 오고 있지 않은가?
대충 봐도 자신을 압박해 기를 꺾어 보려는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하물며 무림에서의 배분까지 낮으니 응당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지만, 진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못된 성격이 또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당가고 나발이고 확 그냥 한판 떠 버려?
짜증이 치밀어 오른 진무가 당위를 노려보며 육양신공을 끌어 올렸다.
쿠우우우.
둘의 내기가 맞부딪기 시작하자 대기가 괴성을 질러 내었다.
‘호오, 이놈 보게?’
순간 당위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밀어 낸다고?
고작 약관이 조금 넘은 앳된 무인이 당금 무림에서 절대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기세를 밀어 내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딸을 그리 만든 놈이기에 기세나 조금 꺾어 보려 했더니?
이제는 자신마저 이기려 들어? 틈을 노린다 이거지?
‘어디.’
당위가 슬쩍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쿠구구구.
진무가 겨우 밀어 내었던 당위의 기운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무게를 더해 온다.
사방으로 퍼져 있었던 그 힘이 집중되어 오자 거대한 산악이 짓눌러 오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젠장.’
진무가 이를 악물고 단전의 내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하지만 아직 진무의 경지로는 당위의 힘을 넘을 수가 없었다.
버티고는 있으나 발이 점점 땅속으로 박혀 든다. 몸이 짜부러질 것만 같았다.
‘이런 망할 놈이! 뭘 얼마나 좋은 걸 처먹고 살길래 내력이.’
진무는 턱 언저리에 진한 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했다.
같은 강의 경지라도 그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어차피 내력 싸움으로는 당위를 이길 수가 없었다.
성격에는 맞지 않지만 이대로 막을 수는 없으니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무당의 태청산수.
그것은 공격을 막기도 하지만 때로는 적의 기세를 흩트리기도 한다.
진무의 손이 묘한 원을 그리며 회전을 이루자 한곳으로 집중되던 당위의 기세가 흐트러졌다.
한결 편해진 진무가 호흡을 고르며 가슴을 펴는 모습에 당위의 눈이 살짝 찡그려진다.
“도가?”
분명 그러했다.
자신의 기세를 흩트리고 그 사이를 흘러들어 오는 청량감은 분명 도가에서 익히는 선기였다.
“하하핫!”
갑자기 터진 당위가 호탕한 웃음과 함께 그의 기운이 일거에 사라져 버렸다.
“정말 대단하네!”
당위는 빙긋이 웃으며 진무를 바라보았다.
“어느 문하의 제자인가?”
“……?”
“이만한 선기, 더욱이 나의 내기를 떨칠 정도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이름일 터인데?”
조금 전 그가 진무를 압박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자신의 육 할에 달하는 내공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버틴 것도 모자라 흘려 버리기까지 했다.
꽤 쓸 만한 놈이다.
이 정도라면 배짱을 부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을 곤죽으로 만든 것에 대한 앙금은 풀리지 않았으나 진무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앞서 버렸다.
“무당의 진무입니다.”
“무당의…… 진무?”
그 이름을 들은 당위가 잠시 고민하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가의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사람은 딱 하나뿐이었다.
아무리 먼 지역의 이야기라 해도 당가의 수뇌부가 당대에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은 자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또한, 그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약관의 나이에 순도 높은 선기로 암황 당위의 기세에 대적할 수 있는 무당의 제자는 무당지검뿐일 테니까.
“이런, 이런! 이거 당대의 무당지검에게 실례가 많았구먼. 어찌 미리 말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 버리는 그의 모습에 진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를 째려보았다.
이 망할 노인네가 사람을 무려 세 시진이나 기다리게 해 놓고는 어째서 모른 척이지?
“어서 세령이를 거처로 데려가라! 쯧쯧, 어쩌자고 신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시비를 걸어서는…….”
그의 명에 의해 업혀 들어가는 당세령의 뒷모습에 혀를 차며 다가온 당위가 진무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내력으로 짜부라뜨리려고 했으면서 얻다 대고 친한 척이야, 친한 척이.
“하핫, 이 사람. 미리 말했으면 분란도 없었을 것 아닌가. 하하하!”
세 시진 기다렸다니까!
“미안하게 되었네. 근래 무도한 녀석들이 사천에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그랬을 게야.”
“…….”
“그나저나 자네가 사천에 있는 것을 보면 임무일 리는 없고, 표주라도 나온 겐가?”
“예.”
“그래. 명현 장문인께서는 잘 계시고?”
“……예, 뭐.”
“자, 들어가세. 내 무당에서 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야 있겠는가? 밤이 늦었으니 내 접객당을 내어 주겠네. 일단은 가서 좀 쉬도록 하게.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세.”
어쨌든 당위가 저자세로 나왔으니 진무도 사과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따님의 일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심하게 패서…….”
“좀 많이! 심하긴 했네.”
“…….”
“하지만 걱정 말게. 원체 강골인 녀석이라 내일 아침이면 멀쩡하게 일어날 게야.”
뭐? 그렇게 맞았는데?
진무가 의아한 눈길로 당위를 쳐다보았다.
“하하, 그 아이 성격이라면 분명 새벽같이 찾아와 자네를 괴롭힐걸세.”
“예? 그 무슨?”
“하핫. 겪어 보면 알 게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