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사람만 한 크기의 거석.
협곡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위에 불과했다.
“진의 중심이 되는 축입니다.”
“이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안내한 비마대 삼 조장 우상찬을 향해 광도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마군은 그를 무시하고 우상찬에게 물었다.
“환영진이냐?”
“예. 현재까지 살펴본 결과 회무진(回舞陣)의 일종입니다. 축의 배치를 봤을 때, 입문과 출문을 교묘하게 비틀어 연결한 것 같습니다.”
“교묘하다?”
“예. 제가 보기에는 환영진을 파훼한다 해도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길로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음…….”
마군이 얼굴을 살짝 굳히며 턱 아래 수염을 쓰다듬는다.
비마조장 중 진법에 조예가 깊은 우상찬이 면밀히 살펴 말한 것이니 틀림없을 터였다.
우상찬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열이 들어가면 열 모두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올 것이고 백이 들어가면 백 모두가 그러할 것입니다. 내부의 진이 더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진을 해체해 봐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마군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난감하군. 해체하는 데 얼마나 더 걸리겠는가?”
“음……길게 보면 하루 정도 소요될 듯합니다.”
“좋다. 괜히 적의 함정으로 걸어 들어갈 필요 없겠지. 얼마가 걸리든 진을 완벽하게 해체하라.”
“예!”
마군의 명령에 우상찬이 답과 동시에 비마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 광도가 비마들이 해체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는 축을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마군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광도 이놈! 무슨 짓이냐?”
“하, 참. 고작 환영진 따위에 막혀서 시간이나 때우자고?”
“뭐라?”
“이러니 너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고.”
“…….”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어야 하고, 결과에는 과정이 있어야만 하는 법이다.
그걸 무시하고 나대다가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더욱이 하심곡에 자리 잡은 것은 다른 집단도 아닌 살막이다.
환영진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었고, 그들이 내부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 안에서 은신해 있던 살수들이 접근하는 자들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살수들에게 유리한 입장이니 피해는 고스란히 비마들이 입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오랫동안 마군과 비마들이 해 왔던 일의 순서를 무시하고 나서고 있었다.
“광도. 이곳은 살막의 거처다. 그저 단순한 환영진이 아니란 말이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흥, 살수 놈들 따위에게 겁이라도 먹으란 말이냐?”
“뭐?”
광도의 코웃음에 마군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비켜라, 이놈들아!”
광도가 자신의 참마도를 뽑아 크게 휘두르자 환영진의 축을 조사하던 비마들이 일제히 몸을 뒤로 피하며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광도가 축이 되는 거석을 바라보며 비웃는다.
“멈춰라, 이놈!”
마군이 광도를 막으려 뛰어들었지만, 이미 그의 손에 들린 참마도가 높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이따위 돌을 뭘 조사씩이나 하겠다고…….”
슈가각!
마군이 막아설 새도 없이 희뿌연 기운이 어렸던 참마도가 커다란 호선을 그린다.
콰드득!
반월형의 강기가 거석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자 환영진이 세차게 일렁거리고, 주위의 전경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마군의 입에서 욕설이 절로 터져 나왔다.
완전히 분석되지 않은 진이다.
부숴서 될 것이 있고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해체해야 될 것이 있다.
축을 부숨과 동시에 전경 자체가 변했다는 것은 눈앞의 환영진이 후자라는 뜻.
광도의 섣부른 행동 때문에 지금까지 조사했던 환영진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또 다른 환영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 하니 파훼까지의 시간은 더 늦어질 터였다.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마군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다가서는데 광도가 고개를 돌려 웃고는 변화하는 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츠츠츠.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광도의 모습에 마군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런 개자식…….”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고 해도 그렇지, 저런 대가리 빈 놈을 일궁의 수뇌부에 올려놓다니.
마군이 거친 욕설을 씹어 삼키는 와중에 비마 우상찬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 온다.
“마군 어른…….”
“…….”
“이제 어찌?”
“뭘 어찌해! 서둘러 진을 파훼할 방법을 찾아라!”
“……예. 하면 광도 님은?”
“흥, 제 놈이 선택한 것이니 뒈지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한다.”
“예.”
* * *
“뭐야, 저것들은?”
하심곡의 절벽 상단 면에 몸을 숨기고 아래를 바라보던 진무가 눈살을 찌푸린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대답할 의무는 없었지만 왠지 진무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유엽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도 잘…….”
“그렇겠지. 그러니까 저놈이 오해를 지 멋대로 했겠지. 새끼가 인질이라니…… 나 참, 내가 어딜 봐서 그런 비겁한 짓을 하게 생겼냔 말이야.”
“…….”
진무가 툴툴거리자 유엽이 정신을 잃고 황신에게 업혀 있는 소동보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소동보와 함께 있던 수하들에게 진무가 묵룡기를 사용하는 혁련무강의 전인이라는 것을 듣고 난 뒤였으나, 막상 직접 보니 전인이라기보다는…… 꼭 그분 같지 않은가.
살수인 그는 사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진무가 가볍게 툭툭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는 반항할 수 없는 무거움이 담겨 있었다. 꼭 전대 천주처럼.
“황신!”
“……?”
“저 새끼들이 뭐라는 거야?”
진무의 말에 귀 밝은 황신이 귀를 쫑긋거린다.
“마군, 광도……. 이런 미친…… 개자식.”
황신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생생하게 전하자 주위에 있던 유엽과 살막의 무인들이 깜짝 놀란다.
저게 들린다고? 이 거리에서?
사람이야, 개야?
하지만 황신의 능력을 아는 진무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흐음, 단합이 잘 안 되는 녀석들이네. 뭐, 어쨌든 저 새끼들 하는 꼬라지를 보니 하심곡에 살막이 있다는 걸 아는 놈들이란 말인데.”
진무가 눈을 가늘게 뜬다.
본격적으로 하심곡에 설치된 진법의 해체 작업에 돌입한 놈들이다.
더욱이 한 놈은 강제로 축을 파괴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연히 적이라는 뜻.
진 안으로 들어간 놈. 보통 놈이 아니다.
그가 거석을 파괴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뿜어내었던 강기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후 진무의 눈동자는 노인에게 집중되었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수염에 뒷짐을 지고 있는 오 척 단구의 인물.
멀리서 보고 있음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굳이 비교하자면 정무칠성? 사패오왕?
더 강할 수도 있고 더 약할 수도 있다. 직접 부딪쳐 보지 못했으니 아직은 그저 감상일 뿐이지만 결론은 하나.
저런 고수 둘이면 살막에게 충분한 위협이 된다.
지금 진무의 경지라면 두 놈을 한꺼번에 상대하긴 힘들어도 한 놈씩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하심곡 주위를 빠르게 뛰어다니며 살피는 이백여 명의 무인들이다.
망할 새끼들이 많이도 몰려왔다.
이렇게 되면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진무 혼자서는 모두 상대하기는 무리다.
“이봐, 유엽.”
“……예?”
언제 봤다고 반말을 하는가 싶었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터라 유엽이 엉겁결에 대답을 했다.
“하심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따로 있겠지?”
“……!”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대답해. 있어, 없어?”
“……있습니다만.”
그걸 또 어떻게 알고?
“안내해.”
“……그건.”
“시간 없어. 축을 파괴하고 들어간 놈 봤지? 니들이 환영진에 무슨 짓을 해 놨더라도 뚫릴 거야. 물론 놈 하나라면 살막이 피해를 입더라도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그사이 밖의 놈들이 내부로 진입하겠지. 그때는 소약벽의 늙은 뼈다귀로는 못 막아.”
“…….”
늙은 뼈다귀가 무척이나 거슬리기는 했지만, 유엽은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살막주나 대살주급을 제외한 살수들은 정면 대결에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기의 고수만 되어도 기세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살수들의 공격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하물며 강기의 고수들이 힘을 끌어내었을 때 생기는 기의 회오리 앞에서는 애초에 은신 자체가 불가능했다.
다가서는 순간에 죽을 것이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직은 외인에 불과한 진무를 안으로 들여보낸 죄에 대한 추궁을 받게 되더라도.
“어서!”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결심을 굳힌 유엽은 재빨리 절벽의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하심곡의 반대편에 위치한 강 너머, 오직 살막의 무인들만 아는 비밀 통로를 향해서.
* * *
“막주님! 적이 외부의 환영진을 뚫고 있습니다.”
“…….”
또 한 명의 대살주 오익태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자 소약벽의 주름진 미간이 찌푸려진다.
“몇 놈이냐?”
“한 놈입니다.”
“한…… 미친놈이로구나.”
“문제는 그 미친놈이 강의 고수입니다. 진의 축을 부수고 들어와 계속해서 안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
미간에 생긴 골이 더욱 깊어진다.
하심곡 외부에 깔린 살막의 삼천변회(三天變回). 말 그대로 하늘이 세 번 움직이듯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절진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진법일 뿐이다. 강의 고수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다. 필시 얼마 가지 않아 강제로 파훼될 터.
“내진을…… 음.”
명을 내리려던 소약벽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막주님. 시간이 없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
소약벽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외진은 환영진이나 내진은 살수들을 투입해 이루는 살진(殺陣)이다. 하지만 살진이 강의 고수를 상대로 효과가 있을까?
자신이 나선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는 있을 것이나 문제는 진의 밖을 지키고 있다는 또 다른 강의 고수다.
그가 합류하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더욱이 보고에 의하면 적의 수가 이백이나 된다지 않는가. 잘못하다가는 살막이 전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살막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죽더라도 싸워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막주님, 결정을…….”
장고의 시간을 기다리던 오익태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눈을 감고 있던 소약벽은 결국 결론을 내렸다.
세간의 인식이 어떻건 간에 살막의 살수는 불쌍한 자들이다.
아무리 전대 천주의 의지에 따라 무림과 관계없는 이는 죽이지 않았고, 이유 없이 죽이지 않았다 한들 살수는 살수.
남의 목숨을 빼앗는 자들이기에 언제나 긴장 속에 숨어 살아야 했고, 언제나 복수의 칼날을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으며, 사람을 죽이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죄책감에 죽을 때까지 시달려야만 했다.
타인의 목숨을 취하는 대가로 평생에 걸쳐 제 삶을 갉아먹는 자들.
살막의 대의나 명분으로도 그들을 온전히 보듬을 수는 없었다.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그들의 수좌가 되어, 어찌 죽을 자리까지 정해 줄 수 있겠는가.
“익태.”
“예, 막주님.”
“……후퇴한다.”
“……예?”
“하심곡을 버린다.”
“……막주님!”
오익태는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알고 있다.
혁련무강과 함께 사패천을 세웠던 철혈의 무인.
비록 사패천과 등을 돌렸으나 살막을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그녀였다.
죽음을 각오한 적은 있어도 물러나 본 적은 없었던 그녀가 살수들을 살리기 위해 후퇴를 결정한 것이다.
“익태, 살아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명이 떨어졌으니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살막의 모든 살수가 하심곡의 비밀 통로를 빠져나가자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삐이익! 삐이이익!
오익태가 곧장 품에서 꺼낸 손가락만 한 피리를 물고 불었다.
날카로운 호각성과 함께 살막의 살수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말 한마디 없이 곧장 몸을 날렸다.
“우리도 가자.”
“예!”
소약벽과 오익태가 도착한 곳은 하심곡 깊은 곳에 있는 웅덩이였다.
잔잔하게 차오른 물.
그곳은 하심곡의 반대편과 연결되는 수로였다.
“최하급 살수부터 비밀 통로를 빠져나가라. 나와 대살주들은 모두가 나갈 때까지 후방을 지킨다.”
“예!”
소약벽의 말에 오익태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막주님, 소막주는?”
“유엽이 갔으니 아마도 진마평에서 기다릴 것이다. 일단 하심곡을 빠져나간 다음 합류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소약벽의 말이 끝나고 살막의 살수들이 몸을 던지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부글부글부글.
“……!”
물거품이 갑자기 솟구쳐 오르더니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막주님!”
누군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소약벽의 눈이 크게 뜨인다.
설마? 놈들이 비밀 통로까지 발견했단 말인가?
환영진을 뚫고 들어와 자신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틈에?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소약벽이 자신의 비수를 힘주어 움켜쥐고 웅덩이를 노려본다.
푸학!
물보라가 튀어 오르고 누군가 물속에서 고개를 쳐든다.
“……어?”
우선은 익숙한 얼굴 하나.
대살주 유엽이다.
“헥, 헥, 이런 씨발! 뭐가 이리 길어? 숨 막혀 뒈질 뻔했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젊은 사내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욕설을 내뱉었다.
“……?”
이자는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