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원하는 게 뭡니까?”
호오?
머리 회전이 꽤 빠른 녀석이다. 의문이 많을 것인데 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 온다.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군?”
“묵룡기만 한 증거가 또 있을까요?”
살막주의 손주 녀석이니 그야 당연히 알아봤을 테고.
“그리고 저 어린 소년.”
소동보가 힐끗거리자 귀 밝은 황신이 ‘안 어려!’라고 말하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은위단이겠지요?”
와중에 눈썰미까지 좋다. 살수니 당연한 것인가?
하긴, 은위단과 살막은 모두가 본능적으로 예기를 감추는 무공을 사용하니 알아보는 것도 당연할 터다. 사패천의 무인 중에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는 살막이 아니면 은위단일 테니까.
“아마도 가부…… 아니, 사도서생께서는 그대를 선택한 모양입니다.”
“맞아.”
“다시 묻지요. 저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막주를 만나야겠다.”
“살막을 필요로 하시는 겁니까?”
“그래.”
“…….”
진무의 대답에 소동보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살막을 포함해 수많은 사패천의 무인이 느끼는 혁련무강에 대한 향수는 생각보다 강했다.
묵룡의 전인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을 터.
하오문을 얻었고, 살막을 필요로 한다면 다음은 전쟁이다.
“내전을 일으키실 생각이군요.”
“이미 시작했고, 그렇게 될 거야. 아마 살막이 함께하면 더 빨라지게 될 테지.”
“승산이 있다 보십니까?”
“승산 같은 거 일일이 계산해 본 적 없어. 내가 마음먹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굉장한 자신감이군요. 비록 유월청 천주가 전대 천주님처럼 덕장은 아니더라도 사패천이 오합지졸은 아닙니다.”
덕장(德將)? 내가?
그거야말로 듣던 중 가장 웃긴 소리지만, 사패천이 약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을 가고, 뱀 대가리가 이끈다고 해도 몸뚱어리는 용이다.
여의주가 없어 조화를 부리지 못하는 용이라 해도 발톱은 여전히 날카롭고 후려치는 꼬리는 산악을 허무는 법.
녹림, 수채, 야금당, 흑사방. 그들이 득세한다고 해도 사패천은 여전히 강하다.
힘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 철검단을 제외하고도 사패천의 본성에는 여전히 경천동지할 힘을 가진 무인대들이 즐비했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 둔 것인데 어찌 모를까?
“그래도 변하는 것은 없어. 지금의 사패천은 반드시 무너진다.”
“…….”
당당하기 짝이 없는 진무의 말에 소동보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저 혈기 넘치는 젊은 무인의 치기라고 판단해야 할 것인데 진무가 너무도 당차게 말하니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무언가가 있지 않은 한 살막이 그대의 손을 들어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요놈……. 자신이 기억하는 살막주와는 다르다.
과거에 그를 따르던 인물 중에는 이런 성향을 가진 녀석이 없었다.
가라고 했을 때는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갔다. 앞에 장애물이 있든, 마교 최강의 고수라는 북리도천이 있든 신경 쓰지 않았다.
힘을 덜 보여 줬나? 아니면 안 패서 그런가?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것저것 재려 하는 소동보의 모습은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좋아, 좋아. 과거의 인연에 기댄 대화는 딱 여기까지.”
“……?”
순간 진무의 얼굴에 장난기 가득하던 웃음이 사라지고 담담함이 떠오른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듯 분위기가 변하자 소동보는 전신이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에 숨 쉬는 것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고작 표정 하나 변했을 뿐인데.
“이봐, 꼬맹아. 내가 너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은 협상하기 위함이 아니야. 살막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그저 과거…… 아니, 혁련무강과의 오랜 인연 때문이지.”
진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소동보를 똑바로 마주 본다.
“난 지금 살막을 원하고, 얻는다. 너의 반대 따위는 필요 없어. 지금 너희가 해야 할 것은 선택이다.”
“선택?”
의아함이 가득한 소동보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내가 내민 손을 잡든가, 살막의 역사를 끝내든가.”
“……!”
미친!
소동보는 당장이라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손을 잡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니 실로 미친 자가 아닌가?
“살막이 그리 우스워 보이는가!”
소동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며 말투마저 변했다.
“우습고 말고 할 게 있나? 그냥, 그런 거야. 무턱대고 세력을 무너뜨리거나 사람을 죽이진 않아. 하지만 일단 적이라 판단되면 반드시 죽인다.”
“…….”
“살막이 사파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이상 적이 아니면 동지. 둘 중 하나야. 만에 하나 너희가 유월청에게 붙어 버리면 귀찮은 짐 덩어리 하나를 얻게 되는 거니까.”
소동보는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왜? 못 믿겠어?”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사방을 잠식하기 시작하는 그의 강렬한 기세만 봐도 알 일이다.
거부의 말을 떼는 순간 죽이겠다는 듯 농도 짙은 살기가 어느새 그의 숨소리마저 잦아들게 했다.
“……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뭐, 살막을 그저 그런 동네 무관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자, 그럼 대충 이해가 된 것 같은데. 얌전히 살막으로 안내를 해 줄래?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을래?”
“…….”
소동보가 찌푸린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본다.
아무리 묵룡의 전인이라지만 지나치게 광오하지 않은가.
자신과 자만은 구분해야 하는 법이다. 어찌하여 저자가 묵룡을 이은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과분한 힘을 얻어 제 앞에서 날뛰는 꼴을 더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설사 이 자리에서 죽게 된다 한들 아닌 것은 아닌 것. 살막주, 아니 사사롭게는 자신의 할머니인 야화 소약벽의 말을 들어 볼 것도 없다.
“살막은 그대와…….”
소동보가 딱 잘라 거절하려는 그때 황신이 귀를 쫑긋거리며 끼어든다.
“천주님!”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허공의 한 곳을 바라보는 황신, 그리고 같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진무.
소동보와 살수들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고개를 돌렸고, 점처럼 작았던 인영이 점점 커지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거리에서 저걸 느꼈다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황신을 쳐다보던 그때, 인영이 멈췄다.
“삼 살주?”
나타난 인물은 살막의 대살주 중 한 사람인 유엽이었다.
순간 소동보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진마평에 있는 자신에게 전령이 온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밖에서 외유 중인 자신에게 소식을 알려 올 일이라면 그 내용이 평범치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 전령이 살막에서도 열 명밖에 없는 대살주 중 하나라면?
[무슨 일입니까?] [하심곡 주변에서 수상한 인물들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적입니까?]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막주님께서 주의를 요한다 전하셨습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라?
소동보가 진무를 매섭게 노려보며 살기를 뿌렸다.
공교로울 정도로 시기적절하지 않은가? 묵룡의 후인이라는 자의 등장과 수상한 인물들.
어쩐지 살막을 상대로 너무 자신감이 넘친다 생각했다.
“네놈 짓인가?”
“…….”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던 소동보의 말투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이 새끼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길래 갑자기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거지?
더욱이 그의 변화에 주변에 있던 살수들이 검을 뽑고 포위하듯이 자리를 잡는다.
“어이, 뭔진 모르겠는데, 일단 내 말을 좀 들어 보는 게…….”
“닥쳐라, 이놈! 네놈의 검은 속을 이미 보았거늘!”
“…….”
“비열한 놈. 선택 어쩌고를 운운하더니 미리 무인들을 하심곡으로 보내 놓았을 줄은.”
“……응? 뭐?”
뭘 어쨌다고? 하심곡에 뭘 보내?
“시치미를 떼는 것인가?”
“…….”
이 새끼야. 일단 알아듣게 말부터 하고 판단해라.
이건 뭐 착각을 넘어서 지 혼자 오해를 신나게 쌓고 있는지.
돌아가는 상황을 채 이해하지 못한 진무가 혼란스러움에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소동보가 뭘 생각했는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다.
“이런! 그렇구나!”
또 뭔 개소리를 하려고?
“네놈, 나를 인질로 잡으려는 것인가?”
“…….”
“젠장. 어쩐지 나를 따라왔다 했더니……. 나를 사로잡아 막주님을 위협해 볼 생각이었구나!”
이 새끼는…… 또 이런 성격이었구나. 생각 정리가 빨라서 마음에 든다 했더니만 이렇게까지 이상한 방향으로 튈 줄이야.
진무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소동보가 무흔삭을 들고 매서운 기세를 뿜는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내가 쉽게 잡혀 줄 것 같으냐?”
“…….”
정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까지 갖췄다. 당장에 매화자로 활동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아, 만나는 놈마다 왜 이런지. 하도 이상한 놈들을 많이 만나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
이놈의 팔자…… 어휴.
시간 내서 굿이라도 한판 하든가 해야지.
“네놈의 음모를 알게 된 이상 절대로 네놈의 계략에 빠져서 살막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슈-웃! 빠가각!
“……!”
공기를 스치는 소리에 이어 주먹이 뼈를 거칠게 부숴 버리는 듯한 소음.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대자로 뻗어 버린 소동보.
그리고 주먹으로 후려친 듯한 동작을 하고 있는 진무.
“어, 언제?”
아무도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움찔조차 하지 못했다.
“아, 미안. 하도 개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진무가 살수들에게 손을 들고 웃으며 사과를 했다.
“이, 이런!”
살수들은 뒤늦게서야 진무를 향해 위협하는 자세로 검을 세웠다.
뒷북치기는. 황신보다 실력이 없는 것들이.
진무가 피식 웃는다.
죽이고자 했다면 벌써 다 죽었다.
“어이, 전부 뒈지고 싶지 않으면 칼 내려.”
“…….”
“이미 한번 봐줬다. 두 번은 없어.”
“…….”
대살주 유엽과 호위 살수 다섯의 충성도가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동보가 그의 손아귀에 놓여 있기도 했지만, 진무의 살벌한 안광이 그들을 향한 순간 거미줄에 칭칭 감긴 것처럼 몸이 멈춰 버린 것이다.
“야, 하심곡이 어찌 됐다고?”
“그, 그게…….”
유엽은 하마터면 아직 정체조차 모르는 진무에게 대답을 할 뻔했다.
“쯧, 됐다. 뭔 일이 있긴 하단 이야기네.”
진무가 자세를 바로 하고 기운을 풀어 버렸다.
“어쨌거나 이놈이 적으로 오해할 만한 놈들이 와 있다는 이야기겠지? 뭐, 좋아. 살막주도 만나야 하고. 어떤 새끼들이 내 거에 손대려 하는지도 좀 봐야겠네.”
“…….”
“황신.”
진무의 부름에 황신이 다가온다.
“업어.”
“……?”
아니 그걸 왜 자신이……. 기절시킨 건 본인이고, 나 말고도 업을 놈이 여기 여섯이나 되는데…….
“업고 뛰는 것도 수련이야.”
말끝마다 그놈의 수련은 염병.
황신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주섬주섬 소동보를 업었다.
“니들은 뭐 해?”
“……예?”
“하심곡으로 가야지.”
진무의 말에 살수들이 멀뚱한 표정으로 진무를 쳐다본다.
거, 손 한번 더럽게 가는 새끼들이네.
결국 진무는 그들 모두가 꾸에엑 소리를 합창처럼 내지를 때까지 짓밟고 나서야 하심곡으로 안내되었다.
* * *
하곡에서 동북으로 백 리에 위치한 진마평, 그곳에서 다시 백여 리의 거리.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황하의 물결이 산서를 떠나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 곳에 위치한 거대한 계곡.
사시사철 물안개가 사라지지 않는 그곳을 사람들은 하심곡(河深谷)이라고 불렀다.
늘 그랬듯이 하심곡은 해가 뜨고 나서야 그나마 그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내었다.
물길이 크게 호선을 그리며 휘도는 곳인 탓에 오가는 배들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그곳에 의문스러운 인물들이 한동안 머물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하심곡을 바라보는 오 척 단구의 노인과 수십 명의 흑의인들.
“마군 어른의 수하들이 그리 쓸 만하진 않은 모양이외다.”
“…….”
노인, 마군의 옆에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선 거한이 비웃듯이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애들을 데려올 것을 그랬소.”
빈정거림이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마군의 얼굴에는 조금의 동요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쯧쯧, 하는 꼬라지들하고는. 백날 저렇게 돌아다니면 뭘 해? 저래서야 입구를 찾을 수는 있을지.”
들으라는 듯 혀까지 찼지만, 하심곡을 뒤지는 흑의인들의 몸놀림은 거한이 말하는 것처럼 폄하될 정도가 아니었다.
가볍게 걷는 듯했지만 한 걸음에 일 장에 가까운 거리를 미끄러지듯이 이동하고 있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절벽 면을 마치 평지처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광도.”
“……뭐요?”
“미친 개새끼들과 비마(飛馬)들을 비교하는 것인가?”
“미친 개새끼?”
마군의 담담한 말에 거한, 광도가 자신의 등 어림에 달고 있던 참마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호오? 한번 해볼 참인가?”
마군이 자신의 수염을 슬쩍 어루만지며 광도를 노려본다.
“흥, 못할 것도 없지. 나이만 먹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감쯤이야.”
“재미있겠군.”
마군의 스산한 미소에 참마도를 잡은 광도의 팔뚝에 힘줄이 진하게 솟구친다.
마군과 광도.
일궁의 주력 무인이자 송여방의 칼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말 몇 마디에도 칼부림을 벌일 듯한 그들은 평소에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아마 송여방의 중재가 없었다면 오래전에 생사투를 벌였을 인물들이었다.
견원지간이나 다를 바가 없는 둘이 한 임무에 편성되었으니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임무건 뭐건 서로의 목을 따 버리려던 그때.
“찾았습니다!”
비마대의 무인이 둘 사이에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을 끊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