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변화의 흐름은 비단 주인이 바뀐 이동천의 내부에서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외부에서도 변화를 만들어 낼 이들이 다가서고 있었다.
진무 일행과는 별개로, 마교의 역사상 단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던 외부인들의 은밀한 침입.
북둔에 집결한 뒤, 흉수의 흔적을 쫓아 이동천의 본성으로 온 정사 연맹의 추격대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그 내부를 살폈다.
“경계가 삼엄합니다. 내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음…….”
은위단을 이끌고 이동천 외곽을 살피고 돌아온 대궁의 말에 검혜가 낮은 침음성과 함께 전방을 응시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멀리서도 선명하다.
내부는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성 외부 곳곳에 무인들이 배치되어 경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물러날 수 없었다.
흉수에 대한 어렴풋한 윤곽이 잡혔다. 궁은 마교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있음이 분명했고, 그 확실한 꼬리가 이동천에게 닿아 있었다.
정사 연맹이 마교의 행사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으나 알릴 수는 있다.
위험을 무릅쓴 덕분에 이제 확실한 정황을 잡았다.
폐쇄적이긴 하지만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마교가 외인이 아닌 외세의 침범을 용인할 리 없다.
교주와 천산이 움직일 것이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궁이 발본색원될 것은 자명한 일.
이제 추격대에게 있어 최우선 과제는 납치된 아이들이었다.
어쩌면 모두가 흉수의 손에 생기를 빼앗기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살아 있다면 늦기 전에 구해야만 했다.
살아남은 아이만이라도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정파로서는 지켜야 할 도리였고, 사패천으로서도 진무의 명을 받았으니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대궁.”
“예.”
“은위단을 이끌고 내부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 주게. 아이들을 반드시 찾아야 하네.”
“…….”
검혜의 말에 대궁의 얼굴이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
“알겠습니다.”
“청상. 자네는 운암과 함께 혹여 은위단의 무인들이 적들에게 발각되어 쫓기면 최대한 추격자를 섬멸해 그들을 보호하게.”
“예.”
“나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상황을 대비해 퇴로를 만들겠네.”
검혜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퇴로를 만든다는 것은 그저 길을 여는 문제가 아니다.
쫓아오는 적과 가장 근접해서 싸우는 만큼 유사시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치에서 도주하는 이들의 뒤를 지키겠다는 뜻이다.
이끎이 아니라 나서서 지키려 한다. 정무칠성의 일인이자 정파의 큰 어른인 그녀가 위험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자처하고 있었다.
“제가 퇴로에 함께 남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을 한 청상의 말에 검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되네.”
“……어르신.”
“자네는 이곳에서 애써 위험에 뛰어들어서는 안 되네. 무당을 위해서, 정무맹을 위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
“하지만…….”
“나는 늙었네. 세상을 떠날 날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일세. 길을 터 주는 것. 그것이 무림의 선배로서, 가장 윗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고, 나는 이제 그 도리를 지켜야 하네.”
“…….”
“하지만, 모두를 지킨다 약속할 수는 없네. 잊지 말게.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적의 손에 누군가 잡힌다면 고민 없이 버리게.”
“…….”
“그게 내가 될지라도.”
단호함을 머금은 검혜의 태도에 모두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일어났다.
“자, 그럼 가세. 살아남은 아이들을 찾아서.”
“예!”
모두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추격대의 무인들이 이동천을 향해 은밀하게 숨어들었다.
그 한마디의 대답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나 다름없음에도.
* * *
이동천의 본성과 인접해 높다랗게 자란 나무 위.
나뭇잎이 안쪽에서 번진 빛을 가려 어둠을 드리운 곳에서, 한 쌍의 눈이 이동천 내부를 살핀다.
은위단 조장 대궁(大弓).
큰 활이라는, 어찌 보면 정말 아무렇게나 지어진 이름이지만 애당초 그의 본명은 아니었다.
이름난 장군가의 자손이었던 그.
하지만 본명은 오래전 역적의 명부에 올랐기에 하오문에 의해 지워졌고, 그 대신 활을 잘 쏜다 해서 대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사람에게 숨겨진 사연들이야 늘상 구구절절하지만 말해서 무엇하랴?
중요한 것은 혁련무강이 그를 구해 명세찬에게 보냈고, 그로 인해 그들의 가족은 지켜졌다는 사실 하나다.
장군가의 소공자?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과거의 영광? 그딴 게 무슨 소용인가?
혁련무강과 명세찬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진즉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들은 그저 전대 천주의 구타가 무서워서 충성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대외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혁련무강의 곁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그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었다.
은위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패오왕마저도 그러했다.
다만 혁련무강이 혹여 그들이 미안함을 느낄까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인가 싶어 마찬가지로 언급을 삼갈 뿐.
하여간 쓸데없이 세심하셨었지.
잠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대궁이 히죽 웃고는 등에 메었던 쇠막대를 휘어 시위를 걸었다.
납치된 어린아이를 찾으라는 진무의 명령.
비록 전대 천주 본인은 아니지만, 명세찬이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한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길임을 알기에.
야행복에 복면까지 갖추어 입은 이동천의 내부를 매섭게 바라보던 대궁이 시위에 살 하나를 걸었다.
일반적인 것보다 얇고 가벼운 화살, 무음시(無音矢).
지익, 핑!
활이 시위를 떠나는 소리는 있었으되 파공성은 감추어졌다.
“컥!”
화살에 닿은 이동천의 경계 무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풀썩 주저앉는다.
핑, 피피핑!
빠른 속도로 시위가 당겨졌다 놓이기를 반복할 때마다 경계 무인들이 풀썩이며 쓰러졌고, 비어 버린 경계의 틈을 향해 은위단의 무인들이 숨어들었다.
반나절,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내부를 살피는 데 익숙한 무인들이었고, 무언가를 찾는 것에 특출났으니까.
“황신, 그 녀석이 있었으면 더 빨리 찾았을 텐데.”
아마도 귀가 개처럼 밝은 그라면 굳이 안쪽에 들어가지 않아도 아이들의 위치를 알아내고도 남았으리라.
대궁이 씁쓸하게 웃으며 야조(夜鳥)처럼 몸을 날렸다.
착지하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우니 기왓장에 닿는다 하여 소리가 날 리 없었고, 몸에 딱 붙는 야행복이니 미세한 펄럭임조차 없었다.
안으로 잠입한 대궁은 몸을 숨긴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은위단의 무인들을 향해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신자들의 대화인 암수화(暗手話).
한 사람에게 내리는 명령이라면 전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여러 명에게 한꺼번에 명령을 내리기에는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내부 확인, 어린아이, 발견 즉시 퇴각.]간결한 단어만을 표현할 수 있었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운암 도장이 흥분하면 입으로 수화를 날리던데.
어쨌거나 대궁의 손이 멈췄을 때 그곳에 남아 있는 기척은 하나도 없었다.
수하들이 내부를 살피러 간 사이 대궁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적의 수뇌가 모인 본각을 살핀다.
그 어떤 때보다 은밀해야 했고 조심스러워야만 했다.
대궁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많은 어둠 중 더 어두운 곳을 선택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대전각을 향해 접근했다.
이윽고 담을 넘어 대전각 앞뜰의 그 거대한 내부 정원의 풍경을 눈에 담는 순간, 대궁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몇 개의 청동화로.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시체?
이런 잔인한 놈들을 보았나. 시체로 불을 피웠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눈매가 이내 날카로워진다.
화로 안에서 타고 있는 저 말라비틀어진 목내이.
놈이다.
북방의 폭포에서 발견했던 흡정마공을 익힌 괴물. 아이들이 필요했던 흉수.
역시 놈은 이곳에 있었다.
지금은 비어 버린 저 화려한 태사의가 필시 놈의 것이리라.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생사였다.
놈이 있다면, 어쩌면 전각 안에 그의 허기를 채워 주기 위해 잡혀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대궁은 찬찬히 내부를 살폈다.
곳곳에 놓인 청동화로들 탓에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너무나 적었다.
기껏해야 담벼락 근처뿐이었고, 그마저도 흑립으로 얼굴을 가린 무인들이 곳곳을 경계하듯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대전각의 앞을 빼곡하게 메운 포로들.
포승에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은 필시 전쟁에서 패한 이동천의 무인들일 터였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문제는 대전각 안으로 숨어드는 방법이었다.
대전각 안에서 느껴지는 음험한 느낌.
숨어 있는 자들이 있다.
수뇌들이 모여 있을 것이니만큼 그곳을 지키고 있는 무인들의 수준 또한 상당할 터였다.
무턱대고 숨어들었다가는 발각되기 십상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여전히 많은 무인이 지키고 있고 포로로 잡힌 이들이…… 포로?
대궁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포로다.
마교의 무인들이 그저 포승에 묶인 정도로 제압당해 있을 리는 없다.
분명 점혈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풀면 본각 내부는 필시 혼란에 휩싸일 터.
함께 숨어든 은위단의 무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숨죽여 상황을 지켜보던 대궁이 은밀한 곳에 자신의 활을 숨기고는, 작은 틈 하나가 올 때까지 기다려 무릎 꿇은 포로들의 끝자락으로 숨어들었다.
* * *
“……!”
이동천의 무인, 평산.
한승의 흡정마공이 주는 두려움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그는 어느 순간 허리춤에서 뜨끔함을 느끼고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차오르는 막대한 양의 마기.
점혈이 풀렸다. 어떻게?
의문이 채 풀리기도 전에 귓가에 속삭여 오는 전음.
[혼자서는 어려워. 난전이 일어나면 몇몇은 살아서 도망칠 수 있을 게다. 동료들을 해혈해 함께 움직여.]“……?”
평산이 고개를 휙 돌린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자신을 해혈해 준 이가 누구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이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산은 곧장 주위의 동료 무인들을 은밀하게 해혈하기 시작했다.
해혈이 제대로 되든 말든 상관없다.
여럿. 자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면 된다.
“모두 주변 동료들을 도와! 서둘러라!”
그저 작은 외침이면 충분했다.
해혈된 자들 중 동료애 따위는 씹어 처먹은 놈들은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으나 그나마 의리 있는 놈들은 도주할 숫자를 하나둘 불리고 있었다.
“와아아아!”
갑작스러운 함성.
대전각의 포로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튀어 나가자 안을 지키고 있던 묵검대의 무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분명 점혈되어 있어야 했는데……?
“젠장! 비상종을 울려라! 도주하는 놈들을 잡아!”
누군가의 외침.
대궁이 의도했던 혼란이 시작되었다.
도망치려는 자와 싸우려는 자, 그리고 그들을 저지하려는 자들에 의해 벌어진 난전.
묵검대의 무인들은 강했으나 포로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한곳에 뭉친 메뚜기떼는 그물 하나를 던져 잡을 수 있으나 사방으로 튀어 도망치면 한 마리 한 마리를 별도로 잡아야 하니 쉬울 리 없다.
“크악!”
급기야 탈출이라는 것 하나에 미쳐 버린 무인들의 집단 공격을 견디지 못한 묵검대의 무인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길이 열렸다.
둑이 터져 버린 것처럼 포로로 잡혔던 이동천의 무인들이 담을 넘어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개자식들이! 모조리 죽여 버려라!”
결국, 검을 빼든 묵검대는 살육을 자행했다.
곳곳에 피가 튀어 오르고, 잘려 나간 팔다리가 사방에 나뒹굴었다.
“이게 무슨?”
소란을 듣고 대전각 내부에서 정벌 계획을 논의하고 있던 묵검 사마도와 상관평, 노국태는 황당함을 금치 못한 얼굴로 뛰어나왔다.
“어찌 된 일이냐!”
묵검 사마도의 외침에 수하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점혈이 풀린 놈들이 담벼락을 넘어 도주하고 있습니다!”
“뭣이? 해혈이 되었다고?”
“예.”
“…….”
사마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점혈이 저절로 해혈될 리가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포로들의 내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소궁주의 먹잇감으로 바치려고 일부러 단전을 파괴하지 않았거늘.
“다른 곳은?”
“사달이 난 것은 본각입니다. 다른 곳에서의 소란은 없었습니다.”
“젠장, 내일이면 삼동천으로 출진해야 할 것인데. 묵검대를 모조리 투입해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라!”
“예!”
사마도의 명령에 수하가 긴급히 호각을 불었다.
삐이익!
호각성이 울려 퍼지자 이제껏 본각 호위를 위해 은신하고 있던 묵검대의 예비 전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혼란의 주범 대궁이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떠올린다.
대전각 문 앞의 단에 선 세 명의 무인.
꽤 떨어져 있음에도 그 힘에 살갗이 떨려 올 정도로 강하다.
분명 그들 중 하나, 아니면 셋 다 흉수일지도 모를 일.
어쨌든 수좌들을 불러내는 것에 성공했고 대전각을 지키던 이들이 떠났으니 내부는 비워졌을 터. 즉, 안전하게 안을 살필 수 있다.
대궁은 숨겨 두었던 활을 찾아 적의 수뇌부들이 느낄 수 없을 만큼 먼 거리를 유지한 채 대전각의 뒤편으로 소리 없이 숨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