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64
34화
슈아악! 쾅! 콰쾅!
휘어진 검이 하늘을 가르며 휘돌아 육장의 자옹 위를 거칠게 두들긴다.
“크으윽!”
자신의 법구인 자옹에 와 닿는 충격에 육장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신음을 흘렸다.
무슨 이런 무지막지한 법구가 다 있어?
휘어질 때는 채찍처럼 날렵하고, 곧게 쏘아질 때는 끝이 어딘지 모르게 날아든다. 와중에 형상까지 제멋대로 바꾸니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휘이익! 떠어엉!
“크으으…….”
또다시 휘어져 날아오는 자충의 공격에 육장이 진한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하압!”
육장이 자옹에 마력을 불어넣자 호리병 같았던 크기가 거대한 독처럼 부풀었다.
쑤욱!
냉큼 그 안으로 뛰어든 육장이 자옹의 껍질을 겹치고 겹쳐 두텁게 만들었다.
떠어엉! 떠어엉!
쉴 새 없이 두들겨 대는 자충의 공격에 자옹의 내부가 세차게 진동했지만, 육장은 끈질기게 버텼다.
놈! 어디 계속해 봐라.
자옹의 신묘함 중 하나는 흡수. 외부의 충격을 모조리 무로 돌리는 힘이다.
버티고 또 버틸 것이다.
자옹은 놈의 검에 스민 마력을 흡수할 것이고, 어느 순간 놈에게 찾아갈 공허함의 때가 바로 기회다.
그리되면 놈은 자옹의 두 번째 신묘함이 무엇인지 몸소 깨닫게 될 것이다.
떠어엉! 떠엉!
공격은 끊어짐 없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칫! 망할 놈이!”
공격이 이어질수록 청상의 얼굴은 점점 더 흉악하게 일그러져 갔다.
분명 부수고 있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귀모의 권능에서 비롯되어 협비의 검우마저 잘라 냈던 자충이었으나, 고작 귀에 불과한 육장이 숨어 버린 저 거대한 독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시 베는 것을 위해 만들어진 자충의 날이 몽둥이와 진배없이 독의 외표면을 때리고 있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정면에 이어 측면, 위와 아래까지 다양하게 공격점을 바꿔 보았음에도 똑같았다. 검의 궤적이 하늘을 가득 채우도록 휘둘렀고, 나누었다가 곧게 떨어지는 검극을 침우(針雨)처럼 쏟아부어도 봤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와중에 마력마저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 갔다. 마치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힘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무용(無用)하고, 무력(無力)했다.
문득 힐끗 돌린 눈동자에 뱃전에 서서 팔짱을 끼고 서서 무심한 눈길로 자신의 싸움을 지켜보는 진무가 보였다.
빌어먹을.
호기롭게 나섰건만, 멋들어지게 적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건만…….
허둥지둥하는 제 처지가 볼썽사납다 느껴졌다. 실망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열기를 만들고, 그 열기가 고스란히 모든 마력과 함께 밖으로 토해져 나왔다.
“크으……!”
급기야 양손으로 움켜쥔 자충을 높이 쳐든 청상의 안광이 시뻘겋게 변하고, 입가에서 허연 김이 흘러나왔다.
콰득, 콰드드득.
검날에 어린 마력이 빙판의 금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 하늘을 장식했다.
“오냐…… 아예 찢어 주마.”
어느 순간 청상의 목소리가 변했다.
차분했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을 찡그리게 하고, 전신에 소름마저 돋게 하는 스산한 쇳소리.
그리고 자충이 그어진다. 힘차지도 빠르지도 않은 온전한 수직의 움직임으로.
하늘을 장식했던 마기가 검에 더해져 마신의 거검(巨劍)처럼 세상을 양분해 갈랐다.
콰우우우우!
그 잔인한 힘의 여파에 염수호의 물이 들끓고, 대기가 쩍 갈라져 양쪽으로 세차게 밀려 나갔다.
“젠장! 피해!”
“크아아악!”
마력에 휩쓸려 버린 지상의 모든 것이 소멸하고 있었다.
까드득, 쾅!
직격이 아니었음에도 위태로움을 느낀 황신이 재빨리 마력을 걷어 내곤, 근처에서 싸우던 이생의 뒷덜미를 잡아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
“이런 쌍! 빌어먹을 말코 새꺄! 우리까지 죽일 셈이냐! 어!? 어어!?”
이를 악물고 발악하듯 외치면서도, 황신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협비의 검우를 잘라 내기에 대단한 줄은 알았으나, 이건 숫제 괴물 같은 힘이 아닌가? 와중에 적광을 쏟아 내는 저 스산한 눈은 대체 뭐야?
지금의 청상이 자신이 알고 지냈던 그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으, 은공. 청상도인의 저 힘은 대체?”
놀란 것은 황신만이 아니었다.
“…….”
뱃전으로 몸을 피한 백표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지만, 진무는 답하지 않았다.
들끓는 염수호의 물길에 휘청이는 배 위에서 흐트러짐 없이 중심을 잡고, 굳은 표정으로 청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모의 검.
청상의 변화는 아마도 그것이 가진 힘에 의한 것이리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청상이 자충과 동화된 이후 녀석의 성격에 변화가 있었다. 특히나 지계에 온 뒤로는 원래의 성격과는 다르게 말이며 행동이 조금은 폭력적이지 않았던가?
하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력이 가진 특성 때문에 생긴 것이라 여겼다. 성격이 조금 변한다 해도 청상은 청상이지 않은가?
선이나 마는 중요치 않았다. 다소 폭력적이고 잔인한 성정을 가진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소중한 사질일 뿐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혼란스럽다.
지금 청상의 변화는 주화입마의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하계에서 이미 버텨 냈을 과정일 텐데…….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청상이 손에 쥔 것은 다름 아닌 지계의 수장이자 옥황과 대척점에 서 있는 귀모가 직접 만든 검이니까.
백육십 년. 그 긴 시간 선도를 익혀 등선까지 한 청상이지만, 어찌 귀모의 힘을 이겨 내겠는가? 만 년을 수련해 온 진무 자신조차도 자신이 생기지 않는데.
문제는…… 이제부터 자신이 어찌해야 하는가였다.
지금 청상을 막는다면 주화입마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이겨 낸다면 단번에 지금보다 높은 경지에 오를 것이다. 자신이 원한 대로 최단 시간 안에 강해지는 것이다.
귀모의 검을 온전히 통제할 수만 있다면, 일전에 만났던 협비와 능히 자웅을 겨뤄 볼지도 모른다.
막는다, 지켜본다. 그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혼재되어 무엇이 옳은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은공! 저, 저걸!”
“……?”
고민에 빠져 있던 진무가 백표의 말에 시선을 집중했다.
콰드득, 콰아아아!
갈라지고 있었다.
이제껏 청상의 공격에 꿈쩍도 하지 않았던 육장의 자옹이 반으로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그리고 다행히도 모든 마력을 단번에 쏟아 내 버렸던 것인지 청상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몸 안이 비어 버린 듯한 공허함에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눈동자에 스몄던 적광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진무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으로는 가지 않았으니…….
하긴, 생각해 보면 기우였을지도 모른다. 청상의 천재성은 자신마저도 인정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마디의 조언에 단번에 검기를 깨닫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약관을 조금 넘어 탄기를 지나 의기를 깨달은 그다.
따로 물어보지도, 확인해 보지도 않았으나 자신이 죽은 뒤 백 년을 넘게 살았으니 필시 검의(劍意)를 헤아려 이기어검을 이루었을 것이다.
“후우, 새끼가 사숙 놀라게 하고 있어.”
진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싱긋 웃던 그 순간, 반으로 갈라진 자옹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육장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리고…….
화아악!
“……!”
반으로 갈라진 자옹이 이내 합쳐지며 지쳐 있던 청상을 집어삼켰다.
“저, 저거!”
“천주님!”
“은공!”
황신과 백표, 이생까지 소스라치게 놀라 진무를 쳐다봤다.
“이런 빌어먹을……. 대체 저 법구는 뭐야? 뭐 저딴 게 다 있어!”
“제가 뭐라 했습니까! 육장의 법구는!”
백표의 타박 어린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진무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발을 힘차게 굴렀다.
퉁!
백표의 설명을 다 들을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눈에도 청상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빌어먹을 옹기 따위가 감히 내 새낄 삼켜?
오냐, 아예 박살을 내 주마!
“여의!”
진무가 쏘아진 그대로 힘차게 손을 뻗었다.
-크아아아!
포효하듯 아가리를 벌리며 현신한 여의가 단숨에 자웅을 물어뜯었다.
묵룡혼원공, 천교열!
콰드드드득!
* * *
똑, 똑…….
“……?”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청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 천천히 뜨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어찌 된 일일까? 분명 자신은 육장과 싸우고 있었는데……. 어째서 자신이 이런 곳에 누워 있는 거지?
찰박.
“……?”
몸을 일으키던 청상이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짚은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물이었다.
“이게 대체?”
의아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천천히 몸을 세운 청상이 안력을 집중해 봤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자신의 행위가 만들어 낸 찰박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환상?
갈렸던 자옹이 자신의 몸을 덮치며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인 것인가? 그럼 이것은 진법과 같은 공간?
아니, 진법은 아닐 것이다.
진무의 말에 따르면 천계와 지계의 인물들은 전투 능력 이외에도 각기 다른 술법들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니 이건 필시 육장이라는 놈이 자옹의 힘을 빌려 만들어 낸 술법일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청상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청력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공격에 대비해서…….
“크흐흐흐.”
“……?”
그때, 음산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육장?
“겁을 먹었구나. 좀 전까진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더니…….”
비웃음 가득한 육장의 목소리가 방향을 알아챌 수 없는 육합전성처럼 날아들었다.
“……비겁한! 어디냐! 모습을 드러내라!”
육장의 위치를 가늠키 위해 청상이 귀를 쫑긋 세우며 자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비겁? 큭! 이건 나의 술법이다. 내가 나의 능력을 쓰는데 어찌 비겁한 거지?”
“…….”
“하지만 좋다. 술법에 걸린 이상 네놈은 더 이상 내 상대가 되지 않을 터.”
찰박.
“……!”
물을 밟는 소리에 그제야 정확한 위치가 가늠되었다.
“거기냐!”
슈아아악!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내뻗은 손길에 자충이 맹렬하게 쏘아져 나갔다.
까아아앙!
“……?!”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자충이 힘없이 튕겨 나왔다.
그리고.
“어?”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하게 생겨난 빛과 함께 주변 경관이 드러났다.
끝이 어딘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공간, 그리고 그 안을 가득 메우듯이 모습을 드러낸 육장.
“왜? 놀랐느냐?”
“…….”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인,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해진 육장이 청상을 내려다보며 비웃고 있었다.
“놈, 볼만한 얼굴이구나. 이곳은 내 술법에 의해 만들어진 의식의 세계다.”
“의, 의식의 세계?”
“그래. 자옹 안에 존재하는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최강의 존재인 것이다.”
“그, 그런?”
거대해진 육장의 모습에 압도당해 버린 청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한 가지 더 말해 줄까?”
“……?”
“자옹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마력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 갇힌 자의 마력을 흡수하기도 한다.”
“뭐?”
스윽.
청상이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는데, 육장이 손을 휘젓자 찰박일 정도로 얕았던 물속에서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이, 이건?”
“그간 내 마력을 위해 먹잇감이 되어 준 놈들이지.”
“…….”
“그리고 이제 네놈이 이 자옹에 갇혀 내 마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육장이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길어진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물론, 그 전에 일단…… 네놈을 나긋나긋하게 만들어야겠지.”
“……!?”
후아아악!
청상은 다급히 공을 차듯 뻗어 오는 커다란 발을 피하려 발을 뗐다.
쑤우욱.
“……!”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바닥이 갑자기 늪처럼 변하며 청상의 발을 쑥 빨아들인 것이다.
퍼어어억!
“크아아악!”
육장의 발길질에 그대로 강타당한 청상의 비명이 어둠 속에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말했지? 이곳은 나의 영역이고, 내가 최강이라고.”
쾅! 콰쾅! 쩍!
청상은 힘없이 짓밟혔다.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었고, 막아 본들 소용이 없었다. 마치 개미처럼 육장의 발에 으깨지듯 짓밟혔다.
골수까지 스미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지던 그 순간.
「도와줄까?」
어디선가 요사스러운 목소리 하나가 귓속을 어루만지듯 간지럽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