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허윤이 응접실에서 호천을 맞이했다.
“일전에 보내 준 마도의 정보는 잘 받았네.”
“아마 무림맹에선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을 거요.”
“그래도 수장들의 무력 수준과 거점 위치 같은 건 큰 도움이 됐다더군.”
“그럼 다행이고. 한데, 점을 보러 왔다고 했소?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지 않아 보이오만.”
호천이 방 안에 기막을 쳤다. 은밀한 얘기를 하려는 듯했다.
“최근에 맹 내에서 마도 쪽으로 정보가 대량으로 흘러갔네. 평소에도 통상적으로 교란을 목적으로 하던 일이었네만, 이번엔 의미가 달라.”
호천이 허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십자성의 참전으로 말미암아 곧 무상이 움직일 걸세.”
무상!
소림사 속가 중 제일의 고수이자 무림맹의 이 인자가 마침내 활동을 예고했다.
싸움의 판도를 바꿀 만한 강력한 고수는 뒤를 받쳐 줄 인원만 있으면 전장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신(戰神)이 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 적들에겐 전략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따라서 그러한 고수는 모순적으로 적에게 있어서 최우선의 제거 목표였다.
“아아, 이해했소. 그러니까, 지금 정보 교란을 하는 목적은 무상의 행보를 감추기 위함이겠구려.”
호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이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나면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지.”
“한데 사파와 마도가 전역에서 활동하고, 하다못해 객잔에서도 수시로 부딪쳐 싸운다는데 그게 가능하겠소? 하물며 호위라도 붙이면 더 쉽게 드러날 텐데.”
“그 정도에 걸린다면 고수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리고 내가 무상의 그림자라 불리는 이유는, 무상이 움직이기 전에 한발 앞서가며 경로를 확보하거나 미끼가 되어 반대 방향에서 적을 교란해서일세.”
“흠. 그렇구려. 그럼 별문제가 없는 것 아니오?”
“예전에는 고려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생겼기 때문이네.”
호천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짧게 이었다.
“흑룡.”
허윤은 왠지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절로 낮은 한숨이 나왔다.
“자네와 특별한 관계라는 이가 그쪽에 있지 않은가. 혹 들은 바가 없나 하여 물어보러 온 걸세.”
“남령 산맥 이후 별다른 얘기가 없소이다.”
“음…… 흑룡이 점술로 무상의 행보를 예측하게 된다면, 큰 위협이 될 걸세.”
“점술로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최소한의 정보는 있어야 하외다. 이를테면 무상이란 칭호는 그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직위명이잖소? 따라서 ‘무상, 소림사 속가’ 이 정도의 특징으로는 명확히 할 수 없단 얘기요. 특정할 수 있는 이름, 소유한 물건, 사주 등으로 다른 이와 구별되는 조건을 알아야 하오. 하다못해 사주가 같은 이도 있기 때문에, 그것만 믿고 찾으려면 실패할 수도 있지.”
“그렇다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무상을 아는 사람이 없소?”
“무림맹에 들기 이전까지 그분은 무명이었네. 강호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지. 지금도 그분을 그저 무상이라고 부른다네. 따라서 그분의 이름, 나이, 고향은 모두 불명이라 절대 특정할 수 없을 걸세. 그럼 흑룡이라고 해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겠지.”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되오.”
호천은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맙네.”
“별말씀을. 오신 김에 진짜 점 좀 봐 드려?”
“좋지.”
“자아, 물어볼 게 뭐요?”
호천은 기막을 걷고,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언제쯤 마누라와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겠는가를 알고 싶네.”
허윤은 갑자기 자신의 옛날 모습과 안소방이 생각나서 화를 냈다.
“아니, 거! 산 사람이 살아야지, 자꾸 죽을 생각만 하시오? 안 그래도 짧은 삶이거늘!”
“하하하! 꼭 친구에게 혼나는 기분이군. 알았네, 알았어. 그럼…… 내가 다음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길할지 알려 주게. 그게 생각보다 임무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
“진작 그래야지.”
허윤이 탁자 위에 천으로 누덕누덕 기운 인형을 놓고, 거기에 붙은 부적을 떼었다.
그러자 순간 방 안에 귀기가 돌면서 호천은 어깨가 오싹해졌다.
“이게 뭔가?”
“요즘 내공이 많이 늘어서, 귀물을 쓰지 않으면 귀기를 끌어내기 어려워 가지고…… 아무튼 좀 기다려 보시오.”
허윤은 그 뒤로도 섬뜩해 보이는 패물이며 피 묻은 칼, 갈라진 동경 등 희한한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이내 허윤이 심호흡을 하며 귀문을 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후우욱.
잠시 후, 허윤의 입가에서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한데 갑자기 허윤이 점을 쳐 보지도 않고 호천을 노려보았다.
희번덕!
“왜 왔어?”
“응?”
호천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온 용건은 조금 전에 다 얘기하지 않았나.”
허윤이 흐릿한 눈을 한 채 다른 사람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무상을 두고 왜 왔느냐고!”
순간 호천은 소름이 끼쳤다.
“그게 무슨 뜻인가? 무상에게 일이 생긴다는 건가? 하지만 자네가 좀 전에 특정할 수 없으면 행보를 찾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허윤이 사나운 태도로 입김을 훅 뿜으며 말했다.
“이미, 노출됐다.”
잠깐 멍해져 있던 호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불가능해. 외부인은 절대로 알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분은…….”
* * *
야율황이 흑룡 도진을 불러 한 장의 쪽지를 내밀었다.
“이자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찾아봐라.”
도진이 받아 보니, 누군가의 신상이었다.
담송(湛松). 모월 모일생.
그것만 보고는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담송이란 이름이 너무 많아서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야율황이 웃었다.
“이름이 아니라 법명(法名)이다. 당대에 당(湛) 자 항렬의 법명을 가진 자는 천하에 단 한 사람뿐이지.”
크크크크크…….
도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이게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도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야율황이 직접 거둔 친위대와 남십자성이 출동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 * *
“스님이네!”
허윤이 날카롭게 외쳤다. 호천은 급하게 다시 기막을 쳐야 했다.
호천의 눈에 당혹함이 어렸다.
“그걸 어떻게!”
“드러났다니까…….”
허윤의 눈동자가 더 흐릿해졌다. 귀기가 극에 달해, 때마침 도진이 보내 오는 강한 염(念)을 놓치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허윤은 작은 글자가 한 자씩 새겨진 글자판을 탁자 위에 뒤엎었다.
와르르.
그리고 그중에서 두 개를 골랐다.
담(談). 송(松).
한 글자가 달랐지만, 글자판에 모든 글자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그건 분명 ‘담송’이란 이름을 가리키는 게 맞았다.
호천은 거의 경악한 얼굴로 허윤을 쳐다봤다.
“아니……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그가 손을 떨며 말했다.
“자네의 말이 모두 맞아. 무상은…… 속계에 있지만, 속가제자가 아니라 재가승(在家僧)이시네.”
재가승!
속가제자는 승려가 아니다. 세속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법명을 받지도 않는다. 무공을 사사하고 일정 기간이 되면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가승은 다르다. 종문(宗門)에서 정식 항렬의 법명을 받았으면서 본산 사찰이 아니라 속계에서 불법을 닦는 승려다.
무상은 속가제자라고 알려져 있고 수십 년을 무림맹에서 살아왔으니, 그가 아직 승려이며 법명이 있다고는 보통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무상이 당하면 소림사가 나선다고 하였군.”
소림사의 정식 제자니까.
제자가 당했는데도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는 무림 문파는 없다.
호천이 굳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냥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다급히 뛰쳐나갔다.
* * *
담송은 덥수룩한 머리의 장년인이었다. 누가 봐도 스님으로 보이진 않았다.
더욱이 체격이나 생김도 평범하여 수수한 옷을 입고 길을 걸으면 그저 지나는 이들 중 한 사람일 뿐, 그가 무림맹의 이 인자인 무상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했다.
하여 단신으로 낙양의 무림맹을 떠나 하북성의 상장촌(上庄村)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어떤 이의 눈길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대규모의 인원을 마주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선 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장발에 눈이 좌우로 벌어진 사시.
그가 담송을 보고 살기등등한 미소를 지었기 때문에 담송은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거 참. 할 일들도 없지. 백주에 길 막고 뭣들 하고 있어.”
“무상을 기다렸지. 기분 나쁠 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군.”
담송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놈의 흑룡. 황주부에서 암살했어야 했는데.”
남십자성의 성주 남응성이 이죽거렸다.
“중놈 입에서 암살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세상 참 잘 돌아가는구나?”
“내가 중인 것도 알고 있어? 어허…… 이거 영 기분이 좋지 않은데. 넌 남색(藍色) 깃털을 꽂고 있는 걸 보니, 남응성이라도 되느냐?”
“잘 아는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중과 도사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고만 알아 두어라.”
담송이 두리번거렸다.
“잡졸 밑에서 일 안 한다고 끝까지 버틴다더니, 결국 개가 됐나 보이. 한데 개만 보이고 개 주인은 왜 안 보이는고?”
분노한 남응성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때,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일단의 무사 중 한 명이 뛰쳐나와 긴 검을 휘둘렀다.
콰으으으!
검기가 공기를 가르며 담송의 머리로 떨어졌다. 담송은 가볍게 팔뚝을 들어 막았다.
떠어어엉!
무거운 종소리가 울리며 검은 담송의 옷깃조차 베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강렬한 기세를 뿜어서 담송의 발아래에 긴 검흔이 생겨날 지경인데도 정작 담송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담송이 실실 웃었다.
“웃긴 놈들. 이거 천마검법 아니냐? 마기도 없이, 무슨 시장통에서 주운 것처럼 개나 소나 다 쓰게 만들어 놨어. 일전에 남령에서 벌인 짓은 뭐야.”
검이 막힌 무사가 발로 담송을 걷어찼다.
떠엉!
무사의 발끝이 복부에 꽂혔는데도 담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르치려면 제대로나 가르치지. 죄다 짝퉁이네그려.”
무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검을 회수해 다시금 공격하려는 순간, 담송이 팔을 치켜들었다가 권배로 무사를 내려쳤다.
콰득!
무사가 급히 막았지만, 항거하기 어려운 힘에 어깨가 함몰되고 팔이 부러지며 그대로 몸이 주저앉았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담송을 올려다보며 피를 뿜었다.
담송이 말했다.
“축생아, 축생아.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려무나. 이만 성불…….”
그런 그의 머리 위에 소리도 없이 야율황이 나타났다. 그가 담송의 등 뒤로 서서히 내려왔다.
자박.
땅 밟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야율황은 곧 담송의 어깨 너머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뺨과 뺨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끈적한 마기를 풀풀 풍기며 속삭였다.
“네가 찾던 개 주인이다. 그놈의 금종조(金鐘罩), 단단하기도 하구나. 이 몸이 한번 두드려 볼까.”
담송은 부동신보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돌리며 벼락처럼 권배로 후려쳤다.
파앙!
담송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야율황이 검을 든 채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터진 옷의 실밥이 휘날렸다.
하나 실밥은 야율황이 아니라 담송의 것이었다.
담송의 소매가 솔기를 따라 쭉 뜯어졌다.
그 짧은 사이에 정확하게 솔기를 따라 금종조를 가른 야율황이나, 옷은 베였으나 살갗에는 하나도 상처를 입지 않은 담송이나 둘 다 대단했다.
담송이 웃음기를 거두고 소매를 어깨에서 뜯어냈다.
그러곤 목을 좌우로 누이며 뚜둑 소리를 냈다.
“그놈, 손재주가 좋구나.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어.”
하나 야율황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검을 어깨에 걸친 채 명령을 내렸다.
“일각 후에 팽가와 황보가의 호위들이 도착한다. 그 전에 끝내.”
남응성과 야율황의 친위대가 담송을 가운데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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