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89
389화
젊은 청년 몇이 야음을 틈타 똥지게를 지고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복장은 평범한데 발놀림은 가볍고 눈빛은 날카롭다. 실력이 좋은 무인들임이 분명했다.
하나 그들의 얼굴엔 심한 자조감이 어려 있었다.
“대장. 우리가…… 정말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이게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큼 대단한 일이야?”
“남의 집 똥오줌을 퍼다가 정파의 장원에 퍼붓는 일이?”
대장이라 불린 청년이 잠시 입술을 꾹 물었다가 답했다.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겼으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다른 청년들이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서른 명의 인원이 모두 삼삼오오 흩어져 각기 다른 문파와 무가의 장원에 똥을 뿌리고 있었다.
대장, 이겸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까닭을 상기했다.
때는 바야흐로 보름 전…….
원래 이겸과 그의 부하들은 마공을 배웠다.
그들은 대종사 야율황의 친위대였다.
그러나 야율황이 워낙 마도에서도 무시당하던 자라 그의 사후에 친위대 역시 어디 의지할 데도, 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때문에 홍환에 중독된 채 죽어 가고 있었는데…… 그때 만난 게 다름 아닌 도진이었다.
천마벽에서 나온 도진이 의외의 제안을 해 왔다.
― 나는 대종사가 될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천마신공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신주를 찾아갈 겁니다. 당신들이 백룡장에 힘을 빌려준다면 홍환을 제공하고, 신주를 찾은 뒤엔 당신들의 부작용도 없애 주겠습니다.
당연히 믿지 않았다.
뭘 믿고 정파에 투신한단 말인가.
하지만 도진이 바로 그 흑룡이었단 걸 알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다만, 아무리 사파까지 받아 주는 백룡장이래도 거기에 가입까지 하는 건 서로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여 그들은 도진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대종사의 친위대였으므로 도진을 섬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면서.
한데 그 이후, 그와 함께 백룡장에 도착한 뒤 처음 받은 명령이…….
대장인 이겸이 묵묵히 똥지게를 진 채 걷기만 하자 부하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괜히 입을 열었다.
“설마 흑룡이 백룡선생의 핏줄일 줄이야.”
“그러니까. 어쩐지 점술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 핏줄이 그대로 이어진 거였나 봐.”
“난 그것보다 장원에 돌아가서 변장을 풀고 난 게 더 놀라웠어.”
“그러게. 흑룡이 남장 여자였다니. 목소리까지 감쪽같이 남자였잖아.”
“이러면 최초로 여자 대종사가 나오는 건가?”
부하 중 한 명이 이겸에게 말을 걸었다.
“어땠어, 대장은. 흑룡 본얼굴도 제법 예쁘장하던데.”
이겸이 핀잔을 주었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곧 죽전장의 장원이다.”
그때, 죽전장의 장원 주위를 순찰하던 무사들이 이겸과 부하들을 발견했다.
“네놈들은 뭐야!”
“왜 야밤에 똥지게를 지고 있어! 네놈들이 바로 그놈들이로구나!”
이겸과 부하들이 급히 싸울 준비를 했다.
“제기랄, 다른 장원의 소식을 듣고 대비해 뒀나 보군.”
“입을 막아! 뒤통수를 쳐!”
순찰하던 죽전장 무사들이 순간 당황했다.
이겸과 부하들이 똥지게를 마구 휘두르며 달려들어서다.
그릇된 천마신공을 배웠다지만, 기본적으로 대종사의 친위대를 할 정도로 무위가 뛰어난 이들이다.
게다가 분뇨까지 마구 날아다니자 죽전장의 무사들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으아악, 똥 튄다!”
“이 더러운 놈들!”
결국 몇 합 만에 죽전장 무사들은 호각 한 번 불지 못하고 뒤통수가 터진 채로 쓰러졌다.
이겸과 부하들은 구역질을 하며 장원의 대문과 담장 안으로 똥을 마구 퍼붓고 달아났다.
* * *
저녁 식사 자리.
“그간 고생했다. 많이 먹거라.”
“네, 아버님.”
허윤이 음식을 권하자 도연이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옆에 앉은 공세연이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백룡장에 아직 녹림 쪽의 두화나 문상 제갈예도 있어서 도진의 정체를 완전히 밝힐 수 없었다. 하여 오자마자 도연으로 분장하고 공세연에게만 사실대로 말한 참이었다.
공세연은 신기한 듯 허윤과 도연을 번갈아 보다가, 허윤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자 시선을 돌렸다.
장용이 돌연 말을 꺼냈다.
“캬! 그나저나 얘기 들으셨습니까? 우리 조카가 데려온 애들이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데요.”
대종사의 친위대 얘기다.
쾌도가 맞장구를 쳤다.
“슬슬 우리 업무를 넘겨줘도 되겠습니다.”
장용이 그건 반대했다.
“안 돼. 처음부터 그러면 지들이 잘난 줄 알고 개겨. 당분간 지금처럼 하청만 줘.”
“아, 그럴까?”
밥을 먹고 있던 두화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게 하청까지 나올 일이었냐!”
누가 보면 일견 대단한 일에 관한 것처럼 들리나, 알고 보면 분뇨 뿌리는 얘기였다.
“아이 씨, 밥 먹는데.”
두화가 젓가락을 탁 놓았다.
장용과 쾌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똥 안 싸고 살아?”
“안 싼다. 어쩔래?”
“변비야?”
“아닌데? 난 원래 안 싸.”
“아, 그렇구나.”
그러더니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둘이었다.
“야! 거기서 대화를 끝내면 어떡해!”
두화는 둘을 말로 이겨 보려다 졸지에 변을 안 보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그걸 왜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가는데!”
“본인이 그렇다는데 믿어 줘야지.”
“이 새끼들…….”
그렇다고 굳이 마무리된 얘기를 다시 꺼내서 자기 입으로 해명을 하기도 그래서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두화가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으나, 백룡회원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 진짜. 사람들이 백룡장을 이상하게 보는 이유가 있구나.”
두화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이상하다고 해도 이들의 실력은 진짜였다.
백 대 십 정도의 싸움을 했는데도 백룡회에는 부상을 입은 이가 거의 없었다.
두화만 여러 군데 자상을 입고 한쪽 팔까지 부러졌을 뿐이다.
사실 원래는 그게 정상적인 싸움의 결과일 터이나, 뭔가 희한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에이.”
쩝.
입맛이 썼다.
식사를 마치고 허윤은 안소방, 제갈예와 함께 회의를 했다.
원래 허윤은 백룡장에서 무림맹의 공격을 막으며 계속 버틸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림맹 무력조와의 전투 이후 도진이 바로 돌아오고, 생각이 바뀌었다.
도진이 상상도 못 할 정보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신주가 무림맹에 있다!
문상이었던 제갈예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허윤도 점괘로 확인한바, 도진의 말이 사실이었다.
결국 도진이 신주로 가기 위해서는 무림맹을 공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림맹을 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맹주의 명령만 떨어지면 수백의 고수와 수천의 무인들이 촌각을 다투며 달려와 모일 터였다.
허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백룡장의 인원은 열 명 남짓.
백도맹의 고수를 합하고, 거기에 도진이 데려온 서른의 친위대를 합쳐도 상대 쪽의 완전한 함락은 불가능하다.
일단 머릿수가 너무 많다.
최악의 경우,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들이 인연을 총동원하면 그 수가 수만에 이를 거라는 예상도 나왔다.
하여 제갈예가 책략을 짜냈다.
선제공격의 묘(妙).
먼저 적극적으로 무림맹을 흔들어서 세력을 약화시키기로 했다.
그러자면 감히 백룡장을 건드릴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선.
그 일환으로 백룡장을 직접적으로 건드린 자는 몰살시킨다고 소문을 냈고, 간접적으로는 태청장이나 소청장처럼 백룡장을 공격하는 데 참여하려고 했던 문파에도 보복을 하기로 했다.
물론 그 보복의 실현 방법은 제갈예가 생각했던 것에서 많이 변질되었다…….
“일단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싶소.”
허윤의 말에 제갈예가 답했다.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 무림맹에 우릴 공격하라는 탄원이 연일 빗발치고 있다 합니다. 조만간 무림맹주가 직접 움직일 확률이 높습니다.”
안소방이 물었다.
“그에 대한 방안이 있으십니까?”
“시간을 벌어야 하네. 무림맹의 수족을 더 잘라 낼 시간.”
“어떻게요?”
“적반하장. 물귀신 작전.”
제갈예가 허윤과 안소방에게 설명했다.
“무림맹에 대놓고 정식으로 항의할 겁니다. 우리에겐 총표파자를 내놓으라고 사람을 보내 싸움까지 걸더니, 왜 정작 소림사에 있는 총표파자는 내버려 두느냐고.”
허윤과 안소방이 흠칫했다.
제갈예가 말했다.
“소림사는 대종사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호면패왕도 당연히 내주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무림맹주는 패도를 선언하였음에도 이미 이번 원정에 한 차례 실패했기 때문에, 본보기라도 소림사를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어, 화살이 소림사로 가겠구려.”
“당금 강호에서 무림맹의 총공세를 버틸 만한 데는 소림사 정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시간을 버는 거지요. 게다가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싶으면?”
“상황을 봐서 은밀하게 호면패왕을 빼 옵니다. 그때 우리가 무림맹의 핵심 세력을 치면 무림맹은 발을 빼고 싶을 것이나, 무림맹 쪽에서 총표파자를 빼돌렸으리라고 생각한 소림사가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와…….”
허윤과 안소방은 감탄했다.
듣기만 해도 질척했다.
“남 이간질하는 건 진짜…….”
제갈예는 그런 말을 듣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칭찬 아니오.”
“나는 내 할 일을 할 따름입니다. 모사는 계책을 짜낼 뿐, 선택은 회주의 몫이지요.”
그는 읍을 한 뒤에 밖으로 나왔다.
이미 시간이 늦어 밖이 어두웠다.
한데 마당 한편의 정자에 호천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제갈예가 무시하고 가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멈춰 섰다.
“마음이 복잡하겠군요.”
호천은 자작자음을 하고 있다가 되물었다.
“뭘 말이오?”
“매일 나와 대면하는 것도 모자라 무상을 친 마도의 친위대까지 합류했지 않습니까.”
“그들은 백룡회가 아니라 회주의 딸이 거느린 개인 무사들이잖소. 장기짝처럼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나와 같은 처지의.”
이제 허윤은 백도맹주라 본래 맹주로 불러야 하나 무림맹주와 비슷하여 불편함이 있어 백룡회 내부에서는 그냥 회주라고 불렀다.
잠시 호천을 바라보던 제갈예가 다시 물었다.
“날 원망합니까?”
“본인은 스스로 남에게 원망들을 일을 했다고 생각하시오?”
“그러니까 우리 사이가 어색한 거 아니겠습니까?”
호천이 술을 들이켠 후 말했다.
“임사불굴. 죽어서도 물러나지 마라. 철심당주에게 전해진 마지막 명령이었다지.”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알고 있소. 회주가 여러 방면으로 경고해 주었다고 들었소. 하나 군사당은 그의 점괘를 믿지 않았고.”
“임 당주도 믿지 않았습니다.”
호천이 다시 술을 따라 마셨다.
“그것도 맞소. 그런데 왜 내가 문상을 원망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제갈예가 읍을 하며 물러나려 하자, 호천이 다시 말을 던졌다.
“다만 무상이 그렇게 가셔야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소이다. 내부에서 누가…….”
“납니다.”
호천이 말없이 제갈예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조금씩 이글거렸다.
“그래 놓고 누가 정보를 흘렸느냐고 추궁하고, 호천을 떨궈 낸 것도 납니다.”
호천에게서 슬슬 살기가 피어올랐다.
“대체 문상은 뭘 위해 사는 거요?”
“당시엔 무림맹주를 위해. 지금은 가문을 위해. 그리고…….”
제갈예가 호천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이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 나를 위해 살 기회가 온다면, 그대의 앞에서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호천은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제갈예는 길게 읍을 하며 한동안 허리를 숙였다가 곧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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