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04
제104화
아젠만이 하던 일을 멈췄다. 그리고 손님을 기다렸다. 손님이자 식객.
문이 열리고 밤이슬이 나타났다.
집사의 기척은 없다. 밤이슬은 아젠만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지만, 시종은 누구도 그의 얼굴을 모른다.
그냥 아젠만에게 별난 식객 한 명이 생겼다는 것만을 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해. 내 집사는 그래도 유능한 암살자 출신인데.”
“암살자라도 보이지 않는 걸 볼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저는 보이지 않는 장소를 움직이고요.”
밤이슬은 집무실 구석에 있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무슨 일인가? 지하에서 직접 나오는 건 세 번째던가.”
밤이슬은 평소 아젠만의 비밀 통로, 마르할에게 들키며 무의미해진 그 장소에서 나오지 않는다.
비밀 통로를 통해 바깥을 드나들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의 외부 활동 기록은 없다.
밤이슬이 첫 번째로 아젠만을 찾아왔을 때 아젠만은 가짜 흑단목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밤이슬이 두 번째로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아젠만은 알레스가 몰락하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소식통에 따르면 남쪽에 있는 알레스는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 듯했다.
괴이한 신비를 부렸다가 교황청이 직접 움직이게 했다나.
썩어도 알레스가 직접 관리하는 도시라 면밀한 사안까지는 아젠만도 알아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다.
“네루, 알고 있습니까?”
“흔한 사람을 묻는 건 아니겠고. 셋째 황녀 네루. 그녀 말인가?”
“그녀가 서부로 올 겁니다.”
“왜? 라고 묻기에는 이유가 너무 많군.”
네루의 핵심 기반은 상회와 돈이다.
서부는 대륙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이 움직이는 장소다. 제도의 경제도 서부 개발을 위해 투자되는 자원에 비하면 반도 되지 않는다.
일부 사치품 탓에 제도가 더 부유해 보이지만, 모두 착각이다. 서부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10년만 지나면, 제도는 유행에 뒤떨어진 도시가 된다.
그게 아젠만의 계산이다.
진짜 상인이라면 절대 서부를 보고만 있지 않는다. 연합에서 공국, 성황국, 제국만큼이나 큰 목소리를 가진 게 상인 연합이다.
비단 돈만이 이유가 아니다.
권력. 차기 황제가 될 기회가 서부에 있다.
여태 직접 서부로 온 황족은 없지만, 사실 황족이 직접 움직이는 게 당연한 사안이다.
차기 황권이 걸린 일이다. 부하들에게만 맡겨두고 제도에서 손가락 빨고 있을 황족은 없을 것이다.
‘설령 있더라도, 그런 놈이 다음 황제가 되면… 둘 중 하나지.’
아젠만의 역량으로는 계산이 불가능한 불세출의 천재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허수아비거나.
“동부의 거상이 서부로 온다… 준비가 필요하겠어.”
“그리고 하나 더.”
“또 있나?”
“축제 준비가 한창이더군요.”
밤이슬이 창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조용하던 아젠만의 집무실까지 바깥의 소리가 들린다.
축제였다. 공국 건국일을 기념하는 축제다.
아젠만의 정치 근간을 생각하면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매년 작은 규모로 넘어가고는 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니다.
서쪽 끝에 사는 누군가가 서부 전체에 독을 푸는 바람에 아젠만도 보고만 있기 힘들어졌다.
아젠만의 명령으로 바깥에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마르할이 푼 독은 지독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젠만의 귀에까지 소식이 들어왔다.
놔뒀다가는 아젠만 아래 있는 고급 인력도 유출될 판이라 두 손 놓고 있기가 힘들었다.
멸망한 서부의 문명을 재현한 축제에 대응하려면 이쪽도 규모를 키워야 했다. 아젠만은 지출을 감수하고 공국 건국일 기념 축제를 열었다.
마르할처럼 서부 문화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위기감을 느낀 건 다른 지주들도 마찬가지인지 북쪽에서는 뤼겐이 먼 옛날의 풍습까지 들먹여가며 창고를 열었고, 하일리의 영토에서도 축제가 열린다는 소문이다.
한창 교황청에 시달리고 있을 알레스의 땅에서도 축제가 있다니, 마르할이 푼 독의 지독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뭔가 일어난다는 건가?”
“북쪽이 열릴 겁니다.”
덜컥.
아젠만의 책상이 들썩였다. 놀라 펄쩍 뛰어오르다가 무릎으로 책상을 쳤다.
아젠만은 고통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가 들은 말이 통증 따위보다 수백 배는 중요했다.
아젠만이 책상을 때리며 일어났다. 나른하던 눈에 생기가 돈다. 불처럼 강렬한 생기다.
북쪽.
북쪽 곡창지대. 누구의 손길도 허락하지 않았던 고고한 땅. 공국 일부 학자들이 부르기를 주인 없는 평야. 아프란체 사람들이 농담과 공경을 담아 말하기를, 천하를 담은 땅이라 한다.
북쪽 곡창지대를 손에 넣으면 무한한 식량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손에 쥘 수 있다.
“북쪽이 열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준비가 덜 됐어. 북쪽이 열리는 건 모두가 만전의 준비가 된 다음이야. 아직은 때가 아닌… 때. 그래, 그런 거였어. 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제가 보는 건 결과뿐입니다.”
“하지만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밤이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북쪽 곡창지대가 토지 경주의 무대가 되는 미래를 봤다.
수천? 그 정도가 아니다. 만 마리가 넘는 말이 드넓은 땅을 내달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이후 밤이슬이 보는 미래는 약간 바뀌었다. 이전에 그는 단순히 미래를 보는 게 전부였다. 그게 언제 일어나는 일인지는 직접 경험하며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밤이슬은 그게 언제 일어날 미래인지 짐작할 수 있다.
북쪽이 열리는 건 가까운 미래고, 열리지 않아야 할 북쪽이 열릴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다.
낭비로 인한 서부의 식량 부족.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서부에서 소모하는 식량은 대부분을 동부에서 수입한다.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는 식량의 양은 늘 일정하다.
한 번에 많은 소비가 일어나면, 식량 공백이 생긴다.
잠시는 버틸 수 있겠지만, 서부의 모든 식량 비축분을 털어도 반년도 버틸 수 없다.
연합은 서부를 유지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서부가 완전히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서부는 사육되고 있는 돼지와 같다.
연합은 사육장 주인이다. 적당히 살찌워 연합의 주인들이 원할 때 잡아먹기 좋게 가공하는 역할.
서부에 치명적인 타격이 생길 것 같으면, 극약을 처방해서라도 살려야 한다.
그게 북쪽 곡창지대다.
“전할 건 전부 전했으니, 저는 가 보겠습니다.”
밤이슬이 집무실을 나갔다. 그는 아젠만에게 허락을 구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젠만도 밤이슬을 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네루 황녀와 북쪽… 많이 바쁘겠어.”
이럴 땐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으면 편해지는데, 그놈은 서부에 신나게 독을 풀어대고 있다.
아젠만이 다시 펜을 잡았다. 갑자기 일이 두 배로 늘어났다.
* * *
축제가 시작되었다.
특색 없던 마을 전체가 이국적인 문화로 뒤덮였다.
마린은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거리를 걸었다.
노인들은 여관에서 쉬고 있다. 공국 출신인 그들에게 바체아 제국 건국일은 신기하긴 해도, 늙은 몸을 끌고 돌아다니면서까지 즐길 무언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녀 앞에는 아이들이 축제가 일어나고 있는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다.
“거기, 골목으로 들어가지 마!”
마린이 소리쳤다. 골목으로 들어가려던 아이 하나가 화들짝 놀라 골목에서 발을 뺐다. 그러곤 벽을 보고 자기는 아닌 척 시치미를 뗐다.
마린이 한숨을 쉬었다.
순수한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스트레킬이 만든 음식을 먹고 말지. 열 명이 넘는 아이를 혼자 돌보는 건 고역도 이런 고역이 따로 없다.
“젠장, 왜 이럴 때는 없는 거야.”
베이올라는 서부 문화를 탐방하겠다며 며칠 전부터 아침에 나가 밤에 들어오고 있다.
다른 사람은 전부 바빠 말을 붙일 수가 없다.
마린은 스트레킬의 기습 공격만큼이나 재빠르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굴리며 거리를 걸었다.
확실히 이국적이다. 동부 문화와는 다른 서부의 문화가 그녀 앞에 있다. 한편으로 그리운 느낌도 있다.
베스타롤라. 사라진 그녀의 고향.
마린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이 아니었다. 그녀 기억에 있는 베스타롤라 문화는 축제 마지막에 하늘로 올라가는 풍등과 풍선이 전부다.
하지만 사소한 부분, 음식이나 장식 등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앞쪽이 소란스럽다.
고성과 욕설, 그리고 환호. 마린이 소리쳤다.
“꼬맹이들, 집합!”
아이를 대하는 게 서툰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다들 비슷하다.
일단 화를 낸다.
아이들에게 어른은 그게 누구든 커 보인다. 늘 희미하게 인상을 쓰고 있으며, 식사 시간마다 냄새 고약한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 어른이라면 두려움의 대상이다.
마린의 호통은 아이들에게 특효약이었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왔다.
“번호.”
“하나!”
“둘!”
“열셋! 번호 끝!”
“흩어지지 말고, 얌전히 앞으로 가.”
척척척. 아이들이 앞으로 걸었다. 중간중간 마린의 눈치를 보면서.
여관으로 돌려보내고 싶지만, 그랬다간 가기 싫다며 난리를 칠 게 뻔하다. 아이들은 그녀를 무서워하지만, 지루함을 더 무서워한다.
이 앞에 펼쳐진 광경이 애들 보기에 좋은 그림은 아니다. 그러나 서부에 살 거면 이 정도는 적응해야 한다.
마린의 엄포에 겁먹었던 아이들도 앞에서 환호하는 어른들을 보고는 호기심에 찬 얼굴이다.
마린은 구경꾼 사이에서 아는 얼굴 하나를 찾았다. 여관의 하바르산이다.
“하바르산.”
“뭐야, 아가씨, 오늘은 보모야?”
“잠시 봐줘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꼬맹이들아. 얌전히 있어라. 아니면….”
하바르산이 늘 가지고 다니는 식칼을 품에서 꺼냈고, 그걸 본 아이들 사이에서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마린도 놀랐다. 서부에서 호신용 무기 하나쯤 들고 다니는 건 드문 일도 아니지만, 요리용 식칼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다.
저걸로 사람을 썰어버리나? 마르할의 지인이라면 진짜 그럴 것 같다.
아무튼,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마린이 인파 사이를 파고들었다.
소리만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 파악이 되긴 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실하지는 않다.
인파를 뚫고 나간 마린이 본 건 두 무리로 갈라져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얼굴이 벌겋다. 낮부터 거하게 한잔 걸친 것 같다.
“어, 이 새끼들아! 우리 대왕님이 살아 계실 적엔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것들이!”
“그래서, 느그 잘나신 대왕님이 마족도 막아주셨나?”
“이 새끼가!”
혀 꼬부라지는 발음으로 두 취객이 말다툼을 벌였다. 그들 옆으로는 몇 명의 무리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그녀에게 마르할처럼 말만 듣고 사람의 출신을 알아내는 재주는 없다. 동부 세 개 국가라면 모르겠지만, 멸망한 서부 국가는 무리다.
그래서 서부 출신이다 보니 마린은 평범한 사람에 비해서는 서부에 관심이 많다.
대왕… 멸망하기 직전의 베스타롤라 왕이 대왕이라 불렸던 것 같다. 그녀는 그 대왕님 덕을 전혀 못 봤지만….
그리고 베스타롤라는 케티아와 앙숙 관계에 있다.
마린이 아는 건 그 정도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거면 충분하다.
베스타롤라 출신이나 케티아 출신은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마르할이 바체아 제국 건국제를 열며 서부 사람들이 모였고, 원래 모이기 힘든 서부 생존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멸망 전의 서부를 기억하고 있다. 멸망 전 자국의 국제 관계도 알고 있다.
‘문화 갈등.’
동부에도 없는 건 아니다.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는 경계부터가 세 개의 커다란 도시로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경계는 분리되어 있기에 오히려 그런 종류의 갈등이 적다. 경계를 넘어 서부로 나오면 타인과의 분쟁은 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그 자리에 기사나 용병이 있으면 어쩌려고.
마린이 눈을 움직였다.
누가 있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축제 준비로 바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서기 싫다. 그녀는 남들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단 한 번도 남들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지주가 되려던 것도 그녀와는 안 맞는 꿈이었다.
마린이 돈을 모아 토지 경주에 참가한 건 일종의 울분이다. 고향에서 쫓겨나 타향에서, 타향민으로 살아야 했던 설움을 지주가 되는 것으로 풀려고 했다.
그걸 빼면, 마린은 지주와 어울리지 않는다.
잡부로 일하며 돈을 벌어 어디 도시 구석에 작은, 사람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가게를 차리거나, 괜찮은 남자를 만나 적당히 결혼하는 게 그녀에게 맞는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일 그리 녹록하지 않다.
마린은 지주로 이 자리에 있다.
말다툼하는 사람들의 기세는, 누가 하나 죽어야 멈출 것 같다. 싸움을 중재할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여긴 마르할의 마을이다. 사람이 죽게 둘 순 없다.
마린이 호흡을 길게 뽑아냈다. 그리고 눈에 힘을 줬다.
베이올라가 인상 좀 펴고 다니라는 미간이 평소보다 더 찌푸려진다.
마린이 항상 휴대하는 단검 하나를 뽑아 던졌다. 단검이 두 무리 사이에 정확히 꽂혔다.
“싸울 거면 그거 들고 하지? 사내새끼들이 맨손으로 찌질하게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