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are you obsessed with fake wives? RAW novel - Chapter 103
제103화
신음을 흘리는 파비안에게로 그녀의 시선이 향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발에 쥐가 난 모양이지. 그럼 임시로 에메랄드 반지를 끼는 건 어때? 상인들에게 비취를 구하라고 명해 놓지.”
그러나 그에 대답한 것은 파비안이 아닌 글렌이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주의를 가로채는 데에 성공한 그가 눈 앞에 에메랄드 반지 하나를 내밀었다.
나디아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글렌이 그녀의 손을 붙잡아 반지를 끼워주었다.
“딱 맞네요.”
“딱 맞는군.”
약지에는 결혼반지가, 검지에는 방금 받은 에메랄드 반지가, 그리고 손목에는 프레이에게서 선물 받은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한 손에 장신구만 세 개라니.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나디아가 왼손을 꼼지락거리자 글렌이 물어왔다.
“거추장스러워서 그러나?”
“왼손이라서 쓸 일은 많이 없겠지만…… 그래도 좀 무거운 느낌이긴 해요.”
“그럼 이건 빼놓지.”
글렌이 자연스럽게 팔찌를 풀어 보석함 안에 내려놓았다.
“이제 어때?”
“네, 훨씬 낫네요. 생각해 보니 왕비님의 유품은 차고 다니는 것보단 잘 보관해 두는 게 낫겠어요.”
“잘 생각했다.”
그가 보관함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매우 만족스러워 보인다.
나디아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파비안 경은 이제 다리 괜찮아요?”
“아으…… 네, 괘, 괜찮습니다. 제가 괜찮아야지 뭐 어쩌겠어요…….”
괜찮다고 말하는 것치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나디아가 정말 괜찮은 것 맞느냐고 재차 물으려던 찰나, 무언가 묵직한 것이 품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왜 그러니?”
“키이.”
노아였다. 이쪽 역시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듯 불퉁한 표정이다.
그때, 글렌이 얼른 다시 그녀의 관심을 채갔다. 그녀가 귀 기울이지 않고는 못 배길 주제를 이용하여.
“참, 그대에게도 그 보고가 들어갔는지 모르겠군. 북부 지역 일부에 흉년이 들었다고 해.”
“아, 들었어요. 에드워드가 말해 주더라고요. 우리가 그들을 지원해 주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나는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영향력을 늘릴 기회야.”
한 집단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단 제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평소 다른 이들을 위해 베푼 것이 있어야 위기 상황에서 리더를 자처할 수 있는 법이다.
“한동안 북부 가문들끼리 교류가 없었으니까. 이참에 회합을 여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본다만.”
“그거 괜찮겠네요. 마침 추수 시기도 지났으니 사냥대회라도 여는 건 어떨까요?”
“그거 괜찮겠군. 에드워드, 다른 영주들에게 서신을 보내 의향을 물어보도록.”
“넵.”
명령을 받은 에드워드가 서류철 위로 무언가 메모를 했다. 그러고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한데 마님.”
“응?”
“수도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마님 앞으로 왕비 전하의 서신이 도착했는데요.”
“생각보다 이르네. 비전하의 서신은?”
“여기 있습니다.”
나디아는 그가 내민 서신을 뜯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약의 추가적인 구매를 원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국왕이 북부를 견제한다고 한들 약의 효과 앞에서는 별수 없는가 보다.
“그리고 이것들도 한 번씩 봐주시지요.”
“이건……?”
약의 상품성에 흡족해하는 나디아에게 한 무더기의 편지 봉투가 들이밀어졌다.
하나같이 가문의 문양이 찍힌 서신이었다. 그러니까, 귀족 가문에서 온 편지라는 소리다.
“이게 다 내 앞으로 온 거라고? 왜지?”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도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여쭌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와는 교류가 전혀 없던 남부 지역의 가문에서도 서신을 보내왔는데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나디아는 곧 그 답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귀족 사회에서 입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빨랐던 모양이다.
후후후, 하고 그녀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글렌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웃는 거지?”
“당신 눈에는 이게 다 뭘로 보이나요?”
“뭐? 그야 편지…….”
“아뇨. 틀렸어요.”
“그럼?”
“이건 다 돈이에요, 돈. 돈이라고요! 금화 찰랑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지 않으세요?”
“…….”
자신을 바라보는 글렌의 눈빛이 조금 묘해지는 게 느껴졌지만 나디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돈 들어오는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는 와중에 그따위 것이 대수인가?
“보세요. 저희가 만든 약을 구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잖아요.”
“……아직 편지를 읽어 보지도 않았잖아?”
“이 시점에 제게 왜 서신을 보내겠어요? 못 믿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세요.”
글렌이 한 무더기의 서신 속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빼들었다. 봉투를 찢어 내용을 확인하니 정말 그녀가 말한 그대로다.
그가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나디아는 신나게 돈 벌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얀 뺨이 조금씩 상기되기 시작한다.
“귀족의 사치품이니 가격을 높게 책정해도 되겠죠. 그런데 재료는 윈터펠에 넘쳐나는 몬스터 부산물이라고요! 이렇게 남는 장사가 또 어딨겠어요?”
“아, 알겠으니 이만 진정해.”
“게다가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이번 미용약이 성공을 거둔 이후에, 새로운 약을 하나씩 선보일 생각이거든요. 이건 정말 큰 사업이 될 수 있어요. 돈이 된다고요!”
그 말인즉 가문의 금고가 더욱 두둑해진다는 뜻이었다. 듣고 있던 행정관들이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님이시다…….’
‘돈 버는 일에는 누구보다 진심이셔.’
귀족들 사이에서 상업을 천시하는 기류가 있다는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돈은 아랫사람들이 벌어서 가져다바치는 것이지, 제 손으로 직접 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지의 살림을 꾸려 나가는 행정관들에게 나디아 같은 사람이 안주인이라는 건 정말이지 축복인 일이었다.
그녀가 북부로 시집오기 전의 일을 생각해 보라. 다른 영지를 돕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마님은 이 가난뱅이 영지를 구원하러 온 구원자가 틀림없다.’
그들은 다시 한번 마님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중개는 이번에도 웨인에게 맡길까요?”
“요새 조금 바쁜 것 같던데……. 일감을 한 상단에만 몰아주면 말이 나올 테니 이번에는 다른 이에게 일임하는 건 어때?”
“음, 그것도 그러네요.”
잠시간의 회의 끝에, 미용약의 중개는 카타리나의 크레타 상회에 일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직접 그녀와 만나서 조율하는 걸로 하지.”
“잘 부탁할게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글렌과 행정관들은 곧장 카타리나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무실을 떠났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집무실 안에서, 나디아는 제 손에 끼워진 에메랄드 반지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야 했다.
‘그런데…… 이건 갑자기 왜 준 거지?’
글렌이 보석함을 가지고 나타났을 때부터 줄곧 궁금했던 의문이었다. 시점이 생뚱맞아도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부부 사이에 선물을 주고받는 건 흔한 일이라지만, 그녀와 글렌은 정상적인 부부 사이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혼하면 전대 후작 부인의 물건은 어차피 다 돌려줘야 하는데…….’
지금 나디아가 맡은 후작 부인 자리는 어디까지나 ‘임시직’일 뿐이었다.
언젠가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씁쓸한 미소가 떠오른다.
‘새 후작 부인이 오고 난 이후에도 계속 윈터펠에 머무를 순 없겠지……. 괜히 껄끄러운 일만 생길 테니까.’
후작가의 안주인이라는 지위보다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으리라는 것이 더욱 울적했다.
이곳에 이름뿐인 가족들보다 더욱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측근 하녀들이라든가, 자신을 구원자 바라보듯 대하는 행정관들이라든가, 제 명령이라면 법처럼 따르는 기사들이라든가.
‘이혼한 후에도 이곳 사람들은 그리워질 것 같아.’
지난 생에서, 나디아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개차반인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가족간의 정 같은 걸 느낄 수 있을 리도 없었고, 서녀이기에 귀족 사회에도 소속될 수 없었다.
집안에서 하는 일이라곤 그저 유령처럼 부유하며 죽은 듯 지내는 것뿐.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주변인들은 그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디아는 윈터펠 안에 속해 있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역할과 지위를 갖춘 채,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에 비한다면 그녀의 전생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처음엔 그저 복수의 방편으로 윈터펠 후작 부인이 되는 길을 택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나디아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언젠가 글렌과 이혼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조금 섭섭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
에메랄드 반지를 매만지는 그녀의 입가엔 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