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86
기계신과 함께 – 086
투두두두둑-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있던 눈밭도 모두 빗물로 변해 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따뜻해졌다.
‘무슨 일이지?’
마치 쓰나미가 오기 전에 물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불길한 느낌.
스스스-
사방에서 빠져나온 냉기가 안개처럼 모여서 한곳으로 향했다.
냉기가 지나가는 곳의 물이 순식간에 꽁꽁 얼었다가 다시 흘러내렸다.
안개 같은 냉기가 저 앞에 어슴푸레 보이는 호숫가를 휩쓸더니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세 조각 난 중앙화산 중 한 조각의 꼭대기로 딸려들었다.
잠시의 고요함 후.
카칵- 카카카칵-
얼음이 얼어붙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 산꼭대기의 어둠 속으로부터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냉기 브레스!!’
-녀석이 토해낸 냉기 한 번에 수십의 공략대가 몰살했다.
그것이 데이터베이스에 쓰여 있던 문구였다.
저것이 바로 데이터베이스에 적혀 있던 레비아탄의 공격기 중 하나.
냉기의 브레스[Cold breath]였다.
‘브레스면 용종의 특기. 저놈도 용종인가?’
나는 아까 잠깐 번개 빛으로 본 놈의 실루엣과 문헌에 그려진 놈의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통 ‘브레스(breath)’라 함은 용종[Dragon]들의 주특기로, 숨결에 엄청난 힘을 담아 한 번에 뿜어내는 공격이었다.
용종들로서도 모든 힘을 쏟아내는 만큼 몇 번 사용하지 못하는 일종의 필살기.
하지만 레비아탄의 브레스는 조금 성질이 달랐다.
용종들의 브레스라 하기에는 위력이 약한 반면, 주위에서 냉기를 끌어 쓸 수 있는 한 언제든지, 그리고 몇 번이고 사용할 수 있었다.
카카카칵!
어마어마한 냉기가 스치는 모든 것을 꽁꽁 얼려 버리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비책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강하나 씨!”
드레이크의 조종을 맡고 있는 강하나에게 외쳤다.
드레이크의 지배권을 내 [윈드 블래스터]에서 강하나가 지닌 [레인 소드]로 옮겼기 때문에 지금 알파 드레이크는 강하나의 명령을 듣고 있었다.
“예!”
강하나가 눈을 감았다.
강하나의 명령을 받은 알파 드레이크가 잠시 후 크게 소리쳤다.
“끼에엑! 멍청이들아! 전방으로 불벽 형성!!”
“불벽 형성이랍신다!”
“불벽 형성!!”
다른 드레이크들이 알파 드레이크의 말을 복창하더니 불을 뿜었다.
수십의 드레이크가 일제히 새빨간 불을 내뿜는 광경을 일대 장관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환해졌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일행은 오랜만에 보는 환한 불빛임에도 불구하고 눈부심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새빨간 불은 전방으로 거대한 불의 벽을 만들었다.
불의 모양조차 조종할 수 있는 드레이크들의 솜씨답게 불길은 사그라들지도, 멀리 퍼져 나가지도 않고 일정한 모양을 형성해 내었다.
불의 벽이 형성된 직후.
치이이이익!
우리를 향해 달려들던 어마어마한 냉기가 불의 벽에 부딪히며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뿜어내었다.
“좋았어!”
드레이크 한 마리에 타고 있던 김치우가 시작된 싸움에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런데 그 순간.
쾅!!
“컥!!”
김치우가 무언가에 맞아 비틀대었다.
“꺅! 치우야!!”
강하나의 앞에 타고 있던 김소유가 비명을 질렀다.
“저건······!”
김치우를 향해 공격이 날아온 게 뒤쪽이란 것을 알아챈 한서후가 뒤를 돌아보았다.
“몬스터들입니다!!”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레비아탄을 상대하는 동안 뒤에서 몰려오는 개떼 같은 몬스터들에게 동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어갔다.
다시 한번 데이터베이스에 적힌 글귀가 머리를 스쳐 갔다.
지금 우리는 케이크처럼 세 조각으로 갈린 중앙화산 중 두 개의 사이에 있었다.
우리의 앞 저 멀리로 거대한 호수가 희미하게 보이는 상황.
그리고 우리의 뒤쪽으로 우리가 아까 따돌렸던 몬스터의 무리가, 더 큰 무리가 되어 몰려오고 있었다.
데이터베이스가 파악하길 베히모스가 ‘군림’하는 대마수였다면 레비아탄은 ‘지배’의 대마수라 했다.
그 이유는 바로 레비아탄의 특기 중 하나인 ‘영혼 지배’.
녀석은 이 섬의 모든 몬스터의 영혼을 복속시켰고, 녀석에게 조종받는 이 섬의 모든 몬스터는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눈에서 새파란 귀화가 타오르는 고블린 주술사와 오크 주술사들이 우리를 향해 마법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수백 수천의 코볼트, 고블린, 오크 궁사들이 시위를 매겨 우리를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거대한 괴물인 트롤과 오거들은 돌을 주워 날려대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각성자의 형상을 한 도플갱어들이 뿜어내는 스킬 공격들이었다.
세찬 빗줄기 덕에 대부분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다가 기세가 꺾였지만, 놈들이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터였다.
“구자운 씨!!”
나는 이번에는 구자운을 바라보았다.
알파 고르곤의 지배권을 내게서 넘겨받은 구자운이 내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고 알파 고르곤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스 클로]를 통해 고르곤들을 통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싸움이군. 싸움!!]알파 고르곤의 흥분된 사념이 한차례 우리의 머리를 훑었다.
동시에 90여 마리가 넘어가는 고르곤들이 대열을 정비하며 투레질을 했다.
“가자!!”
[싸움이다! 가자!!]중앙화산 바깥에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몬스터들을 향해 고르곤들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쿠콰콰콰!!
고르곤들이 달리며 지축이 뒤흔들렸다.
동시에 그들이 달리는 주변부의 바닥이 뒤틀리며 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돌들은 거대한 해일을 형성하며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몬스터들의 공격들을 차단해 버렸다.
‘몬스터들에게도 럭비란 스포츠가 있다면, 고르곤들이 분명 럭비 선수들일 거야.’
저놈들의 사념을 들을 수 있었다면 ‘돌진! 몸통 박치기!’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달려가고 있겠지.
흥분해서 뛰어나간 고르곤들이 곧 몬스터들과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키에에에엑!”
“끄웨에엑!!”
“쿠롸아악!!”
몬스터들의 비명 소리로 천지가 가득 채워졌다.
‘좋아.’
레비아탄의 두 가지 특기는 두 수호종으로 봉쇄했다.
비록 몰려드는 몬스터가 수만 마리였지만 다른 몬스터들이 양이라면 고르곤들은 가히 코끼리라 할 수 있었다.
무력 면에서도, 덩치에 있어서도.
저들이라면 충분히 몬스터들이 우리에게 향하는 산 조각 사이의 협곡을 봉쇄해 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양이라 해도 수만 마리가 쉴 틈 없이 코끼리에게 머리를 부딪쳐 댄다면 코끼리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레비아탄을 쓰러뜨릴 수밖에.
“저쪽으로 가자.”
나는 슬그머니 내가 탄 드레이크를 조종해 드레이크들의 대열에서 이탈했다.
강하나의 명령을 받은 알파 드레이크로부터 통솔권을 얻어낸 덕에, 말[言]로써 내가 탄 드레이크를 조종할 수 있었다.
‘텔레파시가 아니라 반응이 느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드레이크를 타고 옆으로 빠져나가자마자 레비아탄이 내뿜던 냉기 브레스에서 일부가 빠져나와 내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플라스마 링.’
나는 양손 손목에 차고 있던 플라스마 링을 꺼내, 나와 드레이크를 감싸는 플라스마의 막을 형성해 내었다.
안쪽과 바깥쪽의 계(系)가 갈라지며 열에너지의 이동이 완벽히 차단되었다.
츠츠츠츠-
사방으로 침투해 오려는 냉기와 초고열의 플라스마 막이 부딪치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형성해 내었다.
플라스마 링으로 형성해 내는 플라스마는 질량 자체가 없는 냉기를 막아내는 데 있어서 꽤 효율 좋은 방어막이었다.
하지만 플라스마 링의 잔류 에너지를 체크하고 있던 슈리가 경고를 알려왔다.
‘빗줄기들 때문?’
[네.]플라스마의 소모가 큰 이유는 냉기가 아닌, 하늘에 구멍 뚫린 듯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들 때문이었다.
질량이 없는 냉기와 달리 명백한 질량을 가지고 있는 빗줄기들은 플라스마가 막아내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물질이었다.
‘괜찮아, 아직 구슬 꽤 많아.’
[장기전으로 가면······.]‘그 전에 어스 펭귄들을 장악해야지.’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속전속결.
레비아탄을 물리치려면 절대 시간을 오래 끌어선 안 된다.
‘일단 얼굴이나 볼까.’
나는 레비아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리를 향해 섬광탄을 발사했다.
슈웅-
잠시 플라스마 막이 열리고, 그 사이로 빠져나온 새하얀 섬광탄이 빗줄기를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잠시 엄청난 한기가 그 사이로 빠져나오며 플라스마 막 내부의 온도가 급강하했다.
‘으, 추워.’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냉기를 몰아내며 섬광탄을 바라보았다.
섬광탄은 치솟고 치솟아 아까 냉기가 모여들었던 산봉우리를 향해 갔다.
그런데.
‘없어?’
그 자리에는 레비아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싶은 순간.
‘아니, 저기다!’
미꾸라지의 것 같은 모양의 거대한 지느러미가 살짝 섬광탄의 빛 끝자락에 실루엣을 비추었다.
‘저쪽은······.’
나는 혀를 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 따라오고 있었냐.’
내 손에서 다시 한번 발사된 섬광탄이 하늘을 날았다.
레비아탄의 세 가지 특기 중 마지막은, ‘물을 다루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물을 다루는 능력’은 냉기와 물, 그리고 몬스터를 다루는 녀석의 세 능력 중 가장 강력한 능력이었다.
녀석은, 물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 ‘유영’할 수 있었다.
녀석은 비가 내리는 하늘을 헤엄쳐,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섬광탄이 녀석을 스치며 녀석의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보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녀석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제1스테이지에서 보았던 새끼 베히모스보다도 거대했다.
수백 미터, 어쩌면 킬로미터 단위로 재야 할지도 모르는 체장(體長).
그리고 체장보다 더욱 눈에 띄는 두꺼운 몸뚱이.
특이한 것은 몸뚱이가 머리 쪽으로 갈수록 두꺼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체의 다른 어느 부위보다 머리가 제일 두꺼운 기형적인 구조였다.
녀석의 전체적인 형상은 미꾸라지와 같았는데, 머리 쪽이 가장 두껍다 보니 꼭 복어처럼 보이기도 했다.
녀석은 입을 쩍 벌리고 하늘 위를 유영하며 거대한 한쪽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시무시한 점은 쩍 벌린 입의 크기가 놈의 그 커다란 머리 둘레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곳으로부터 수십 줄기의 새하얀 기운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녀석의 브레스였다.
대부분의 줄기는 강하나 일행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일부는 줄기는 구자운과 내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까 저 속으로 삼켜질 뻔했단 말이지.’
나는 아까 보았던 블랙홀 같았던 녀석의 입속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그때 소울 스톤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지.’
나는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소울 스톤을 떠올렸다.
아까 우리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레비아탄에게 먹힐 뻔했을 때 소울 스톤을 사용해 기사회생한 후로, 나는 소울 스톤의 사용을 자제해 왔다.
레비아탄에게 결정타를 가하는 데 쓸 소울 스톤의 에너지가 많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녀석을 죽이는 데 꼭 필요한 소울 스톤의 에너지가 그렇게 뭉텅이로 사라졌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아직까지는 녀석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더 이상은 그 순간을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어디 한번.’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레비아탄을 향해 레일 건을 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