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315)
321화 75. 마왕(7)
“엇.”
김종현은 그답지 않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키이이잉.
가느다란 백색의 선이 김종현의 주변 공간을 휘감는다.
뭐냐 이건.
하늘을 날던 김종현의 몸이 멈추었다. 그가 멈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의 주변 공간을 휘감은 백색의 선.
그것이 만들어낸 정육면체의 결계가 김종현이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뭐야 이건?’
그는 급히 마법을 펼쳐 이 뭔지 모를 결계 공간에서 탈출하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블링크를 펼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천천히, 천천히. 김종현의 몸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결계를 이루고 있는 백색 선이 점차 진해진다.
김종현은 급히 언령을 외었다.
부서져라.
언령조차 먹히지 않았다.
‘이건…….’
김종현의 두 눈이 바르르 떨렸다. 설마. 그는 급히 양손으로 허공을 훑었다.
빠르게 왼 영창이, 공간을 휘감고 있는 빛의 정체를 간파하게 해주었다. 그를 확인하고서 김종현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아니, 진짜로? 혹시나 싶어서 간파 마법을 처음부터 다시 펼쳐 본다.
결국에 김종현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하하! 으하하하!”
대체 누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것은 마법사 길드장인 아벨뿐일 테니.
그래서, 그는 어디에 있지? 김종현은 광범위한 탐색 마법을 펼쳐 아벨을 찾아보았다.
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있는 아벨의 모습이 보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아마, 머지않아 숨이 끊어지겠지. 그로서도 상당한 무리를 한 듯하니.
“대단하군. 아주…… 대단해. 설마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키이이이잉……!
그의 주변을 감싼 정육면체의 빛이 더욱 거세어진다.
아득한 상공에서 아래로 추락하며 김종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벨이 남은 수명을 긁어모아 펼친 마법. 김종현이 어떤 수단을 쓴다고 해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마법이다.
김종현이 할 수 있는 것은, 마법이 완전히 펼쳐지는 것을 넋 놓고 기다리는 것뿐.
한 번 펼쳐진 이상 마법에 포착된 대상이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머지않아 마법이 발동될 것이다. 김종현의 두 눈이 마법의 진행을 살폈다. 가능하다면 좌표 정도만이라도 알아보고 싶었는데……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히려 모르는 편이 더 즐거울까.
‘이렇게 끝?’
아벨이 펼친 마법은, 마법이 펼쳐진 대상을 시공간 밖으로 추방하는 마법이다. 마법은 이미 펼쳐졌다. 김종현이 아무리 죽지 않는 불사력을 갖추고, 마왕으로서의 힘과 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이미 김종현이 존재하는 공간이 마법에 포착되어 있다. 좌표 설정이 끝난다면 김종현은 정육면체에 뒤덮인 공간과 함께 지금의 시공간에서 추방될 것이다.
에리아라는 차원을 떠나, 지금 시점에서 과거일지, 현재일지, 미래일지 모르는 전혀 다른 세계로 추방되는 것이다.
목숨은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래, 살아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추방된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김종현을 조금 들뜨게 만들었다.
그래도, 부족하다. 이대로 이 세상에서 추방되기에는 이 세상에서 충분한 일을 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을지라도, 김종현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아.’
추락하는 김종현의 눈에 이성민이 보였다. 김종현이 공을 들여 펼쳐 놓은 마법의 억압 속에서. 이성민은 천천히 그것을 찢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이성민의 모습에 김종현은 솔직하게 감탄을 느꼈다.
그는 평생을 마법을 익혔기 때문에 무공이라는 것은 잘 알지 못했다. 저 정도까지 가능하다면 나중에 시간을 들여 무공이라도 익혀 볼까.
물론 그것도, 추방되어 도달하게 될 세계에 무공이라는 것이 존재할 때의 이야기겠지만.
‘그래.’
김종현의 손끝이 이성민에게 향했다. 당신과 만났기에 나는 이런 존재가 되었다. 당신에 의해, ‘지금’의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아닌 전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알게 되었다.
당신에 의해 전생의 내가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된 것의 시작은 당신과의 만남이었다.
‘당신뿐입니다.’
이 세계에서 김종현이라는 인간의 시작이 이성민과의 만남 때문이었다면.
이 세계에서 김종현이라는 인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당신이어야만 한다.
기왕이면 당신에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식으로 당신에게 마지막을 새겨주는 수밖에.
될지 안 될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것’을 위한 준비도 갖추어 두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제물로 삼을 만한 것은 충분했다.
게르무드에 모아 놓은 혼은 이미 다 사용되었지만, 성기사와 군중들과 싸우면서 손에 넣은 혼이 있다.
‘마왕으로 반전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마왕으로 반전시키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한 제물과 의식의 준비가 필요했겠지만, 지금 김종현이 하고자 하는 것은 마왕으로서의 반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 그래, 무엇이 되어도 상관은 없다. 김종현이 이성민에게 새겨주고 싶은 것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반전의 각인이다. 어떤 반전을 이룰지는 모르나, 한 번 반전한 존재는 절대로 다시 반전할 수가 없다.
김종현은 자신이 떠올린 발상이 마음에 들어 빙그레 웃었다.
이성민에게 다시는 지워지지 않을 반전의 각인을 새김으로써, 그는 쭈욱 이성민에게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아쉽기는 하군.’
김종현의 손끝이 이성민을 겨누었다.
키잉.
그의 손끝에서 새카만 빛이 어렸다. 이 공간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바깥으로 마법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김종현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성민에게는 불행이었다.
파아아앗!
김종현의 몸뚱이가 사라졌다. 그를 휘감고 있는 정육면체 공간과 함께 에리아라는 시공간에서 추방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사라지기 직전에 김종현이 펼친 반전의 마법은 확실하게 이성민에게 적중되었다.
새카만 색의 가느다란 빛줄기가 이성민의 몸을 꿰뚫었다.
“어.”
이성민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 미친 듯이 펄떡거리던 심장이 멈춘다.
지끈거리던 두통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몸에서 들끓던 요력이 순간 고요하게 잠들었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던 이성민의 몸이 완전히 정지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봐, 야! 새끼야!]이성민의 머릿속에서 허주가 당황하여 고함을 질렀다. 허주조차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성민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이 순식간에 멀어진다. 뭐야?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이성민은 소름 끼치는 불길함을 느꼈다. 머나먼 의식의 저편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쩌적, 쩌저저적.
깨지는 소리가 난다. 의식 깊은 곳에서. 누가 설명해 준 것도 아니었지만 이성민은 본능적으로 그 소리가 왜 나는 것인지 알았다.
봉인이 깨지고 있다. 요정의 여왕인 오슬라가 새겨주었던 봉인이. 대체 왜? 안 된다. 이성민은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말도 안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요력을 너무 남발해서? 거듭된 육체의 재생이 봉인을 깨게 만들었나?
아니, 그럴 리가.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만 해도 크게 위험은 없었다. 이전보다 더 불안해졌다는 것은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갑자기 봉인이 박살 난다고?
대체 왜?
[뭐야…… 이건? 갑자기 왜? 빌어먹을!]이성민의 머릿속에서 허주가 고함을 질렀다. 봉인이 박살 나고 요성이 기어 나온다.
텅 비어버린 의식에 요성이 자리잡는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성민의 몸뚱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근육이 부풀고, 줄어들고. 피부가 찢기고 재생하고. 전신에 혈관이 부풀어 돋는다. 손가락이 비틀리면서 손톱이 길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빛을 잃은 금색 눈동자 깊은 곳에 포악함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김종현이 이것을 의도하고서 반전의 마법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이성민에게 결코 지워지거나 뒤집어지지 않을 반전의 각인을 새기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 무엇이 되도 상관이 없었다.
흡혈귀가 되거나, 엘프가 되거나, 오크가 되거나, 수인이 되거나…… 반전의 술법은 본래의 종과는 전혀 다른 종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성민은 요괴가 된다. 요괴가 될 수밖에 없다. 이성민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육체 자체는 요괴의 것에 가깝다.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인간성이 반전의 마법으로 반전된다. 이것은 거부할 수가 없는, 그리모어의 절대적인 마법이었다.
이성민이 아무리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요괴가 되지 않겠다고 바란다 해도.
허주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이성민의 의식이 깊은 곳에 처박힌다.
어르무리 때와는 경우가 다르다. 그때에는 머리를 든 요성에게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겼어도, 의식 깊은 곳에서 요성을 제압하고서 다시 육체의 주도권을 찾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반전의 마법은 확실하게 이성민을 완전한 요괴의 것으로 뒤바꾸었다.
아벨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른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멀어지는 의식의 끈을 천천히 놓고 있었다.
나는 성공했다. 아벨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것을 중얼거렸다. 남은 마력과 수명을 모조리 긁어모아 펼친 마법은, 마왕 김종현을 이 에리아의 시공간에서 완전히 추방시켰다.
그래. 그것이면 된다. 아벨은 이 세상을 종언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게 만들지는 못하였으나, 종언의 첫 번째 재앙.
이 세상을 대마계와 연결하여 끔찍한 지옥으로 만들려 한 김종현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추방시켰다.
‘그거면 돼.’
나는 여기서 끝이지만. 아벨은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의 손에서 그리에스가 붕 떠오른다. 기왕이면 그리모어까지 회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것은 너무 과한 욕심인가. 아벨은 새하얀 빛에 휘감긴 그리모어를 올려 보았다.
현재의 주인인 아벨이 곧 죽게 되니, 그리에스는 다음 주인에게로 갈 것이다. 이미 아벨은 그리에스의 다음 주인을 선택해 두었다.
금색 마탑주인 로이드. 형을 닮아 조금 우유부단한 면이 없잖아 있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옳고 그름은 안다. 보다 값진 것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만한 강단도 가지고 있다.
‘그건 그때 돼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아벨은 쿡쿡 웃었다. 그라고 해서 로이드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아벨이 판단하기에 현 마탑주 중에서 로이드가 가장 그리에스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원로들은 애초부터 무시했다.
‘나는 여기까지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벨의 손을 떠나간 그리에스가 환한 빛에 휘감겨 사라져 버렸다.
무당산에 있을 로이드에게로 향한 것이다. 아벨은 잘 보이지 않는 눈을 감았다.
종언을 막고 싶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래도…… 가진 목숨을 버리면서 종언의 첫 번째 재앙인 마왕 김종현을 시공간 밖으로 추방시켰다. 그래, 그것이면 만족한다.
‘너를 믿는다.’
유언을 남길 시간은 없다. 아벨은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이성민을 떠올렸다.
너 자신이 종언일지도 모르는 불안과 위험을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종언이 아님을 믿는다면…… 너는 절대로 종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언을 막기 위해 간절했다. 그것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종언의 일부나마 막는 것에는 성공했다.
너 역시 간절할까.
아벨은 닿지 않는 질문을 가슴에 삼켰다. 무릎을 꿇고 있던 아벨의 머리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이성민의 몸도 바닥에 떨어졌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흙먼지의 한 가운데에 이성민은 누웠다. 금색 눈동자가 먼지구름 너머로 하늘을 본다.
야, 이봐!
머릿속에서 들리는 외침은,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성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성기사와 신관들이 달려왔다.
김종현은 빛에 휘감겨 사라졌다. 그들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으나, 끔찍한 악행을 벌이던 김종현이 이성민에 의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성민 님!”
그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이성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