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4)
노 클래스-4
이성민은 자기 주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가 아니었고, 운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전생에서의 경험이라고 해 봐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전생에서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는 기회라고 해 봐야 굵직한 것들이었고, 자잘한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생에서 처음으로 제나비스에 왔을 때보다 지금은 압도적으로 상황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아침이 되자, 이성민은 여관을 나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여관 주인은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에 큼직한 바구니 안에 겉 표면이 마른 빵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성민은 빵 몇 개를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솔직히 맛대가리는 더럽게 없었지만, 안 먹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빵을 양껏 먹고서야 이성민은 여관을 나섰다.
여관을 나선 즉시, 이성민은 일뢰주법을 사용했다. 어젯밤 동안 천진심법을 운용하기는 하였지만 쌓인 내공은 그리 많지 않다.
“…후욱!”
5분 정도를 달리고 나니 내공이 바닥을 보인다. 이성민은 뛰는 것을 멈추고서 무릎에 양 손을 딛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수준에서 일뢰주법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5분. 속도를 조금 늦추고서 내공을 조절한다면 10분 정도는 달릴 수 있을까?
‘불공평하다니까.’
전생에서 몇 번이나 느꼈던 그 기분이 다시 이성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노 클래스에 하급 무골, 그 둘의 상승 효과를 조합해서 중급 무골에 준하는 성장력을 얻었다고는 하여도… 이 정도가 한계다. 그래, 아직까지는. 1년 동안 운기행공에 매진하고 몬스터 사냥에 공을 들인다면 당연히 개선이야 되겠지만, 그래봤자 얼마나 강해질까? 이성민은 잘 알고 있었다. 이곳, 에리아가 얼마나 부조리한 곳인지. 특히 그것은 시작의 도시, 제나비스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도드라진다.
전생. 이성민이 제나비스에 있었을 시절. 당시 제나비스를 휩쓸었던 슈퍼 루키는 무림 출신의 이계인이었다.
마교의 소교주.
대체 그 대단한 놈이 왜 이 세계로 소환되었는지는 모른다. 놈은 제나비스에 도착한 시점에서부터 절정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내공의 심후함은 말할 것도 없었고, 소교주가 사용하던 천마신공은 소교주를 단숨에 제나비스의 슈퍼 루키로 만들었다.
전생에서의 이성민은 제나비스를 졸업하는 것에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나, 마교의 소교주는 제나비스에 도착하고서 일주일 만에 제나비스를 졸업했다.
이성민은 소교주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에리아에서 살아가면서, 그 소교주에 대한 소문은 몇 번이나 들어보았었다. 사실 에리아에 ‘마교 소교주’라는 과거를 가진 이계인은 한 명이 아니었지만, 소천마小天魔 위지호연. 그 별호와 이름은, 13년 간 살았던 전생에서 몇 번이나 들었었다. 기억대로라면… 앞으로 한 달 뒤에, 소천마 위지호연이 제나비스에 소환된다.
“뭐. 관심있는 물건이라도 있나?”
위지호연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고서 시장 골목으로 들어왔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열린 가게는 많았고, 나와있는 노점상은 많았다. 그 중에 이성민이 관심을 가진 것은 바닥에 잡다한 무기를 깔아 놓은 노점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구만. 네가 오늘의 첫 손님이다. 시작 서비스로 싸게 팔아 줄테니, 어떠냐?”
노점 주인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 이성민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서 노점에 깔린 장비들을 유심히 보았다.
“중고인가요?”
“그렇지. 새 물건도 있기는 해. 하지만 아무래도 중고가 싸긴 싸지.”
노점상이 대답했다. 이성민은 슬쩍 손을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만져봐도 되겠죠?”
“가지고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노점상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성민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서 아무렇게나 널린 장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중에 이성민이 들어 올린 것은 투박하게 생긴 투척용 단검이었다. 날은 잘 서있었지만, 손잡이 부분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이계인이 사용하던 물건이야. 주인은… 죽었지. 내가 바로 어제 고블린 둥지에서 수거해 온 물건이다.”
죽은 이계인의 물건을 수거해서 판다. 흔한 일이었다. 이성민도 전생에서 살았을 적에, 다른 이계인의 시체를 뒤져서 쓸만한 물건을 챙겼던 적이 많았다.
“얼마입니까?”
“3천 에르로 해주지. 투척 단검이라는 것은 결국 소모품이니까 말이야. 뭐, 나로서는 그냥 주워 온 물건이기도 하고.”
단검 하나에 3천 에르라면 그리 비싼 값은 아니다. 흥정이 가능할까. 이성민은 내리 깔고 있던 눈을 올리고서 노점상을 바라보았다.
“2천 에르로는 안 될까요?”
“푸하하! 가격을 1/3이나 후려칠 셈이냐?”
“가진 돈이 많지 않아서…”
“꼬마야. 너, 노 클래스지? 나이도 어려보이고… 그래서 뭐, 내가 널 동정해서 값을 싸게 해줬으면 싶은 거냐?”
“그렇다면 저야 고맙죠.”
“요 뻔뻔한 놈!”
노점상이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기분이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말이다. 자기 처지를 제대로 자각하고 있는 놈이 마음에 들어. 질질 짜대는 것보다는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치는 놈이 좋단 말이다.”
노점상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이성민을 향해 활짝 손을 펼치더니, 손가락 세 개를 접어 보였다.
“2천 에르로 해주마. 그리고… 그것과 같은 투척 단검은 세 개 있다. 세 개 다 구입한다면 5천 에르로 해주지.”
“살게요.”
노점상의 말에 이성민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품 안에서 지갑을 꺼내는 이성민을 보면서 노점상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너. 묘한 꼬마구나. 어린 나이랑 순진한 표정을 제대로 써먹을 줄 알아. 의식하는 거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뭐, 상관없지. 너는… 단골이 될 것 같군. 다음에 온다면 어느 정도 네 처지에 맞춰서 값을 조정해 주마.”
이것은 호의인가? 이성민은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꾸벅 숙이는 와중에 노점상의 속내를 생각해 보았다. 고정적인 단골 손님을 만들어두고 싶을 뿐인지, 아니면 정말로 호의를 품는 것인지. 잘 알수가 없었다.
“저 창은 얼마인가요?”
진의를 떠나서, 하나에 3천 에르라는 투척 단검 세 개를 5천 에르에 구입한 것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투척 단검 뿐만이 아니었다. 이성민은 한쪽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길쭉한 창을 가리켰다.
“3만 에르.”
노점상이 대답했다. 이성민은 손을 뻗어 창대를 찹았다. 창대는 나무로 만들었고… 끝에는 금속의 날이 달려 있다. 길이는 2미터가 넘는다. 지금의 이성민이 쓰기에는 너무 길다.
현재 이성민의 육체 나이는 14세로, 키는 160이 채 안 되었다. 전생처럼 성장한다면, 20살이 되기 전에 키가 180까지는 자랄 것이다.
‘지금 쓰기에 2미터는… 너무 큰가…’
근력도 부족하다. 아마 이 창을 써봤자 제대로 다루기는 힘들 것이다.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육체적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공이 넉넉한다면 근력도 늘어 창을 제대로 쓸 수 있겠지만, 지금 이성민이 가진 내공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길다면 자르면 되는 일.
“…싸게는 안 될까요?”
“네 체격으로는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텐데? 차라리 검을 쓰는 것이 어떠냐. 거, 뭐냐. 무림에서 온 이계인들이 곧잘 그러더군. 검이야말로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고 말이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검은 잘 쓸 줄 몰라서…”
“어쭈. 창은 쓸 줄 안다는 말이냐?”
“그냥 푹푹 찌르면 되잖아요.”
적당히 둘러서 대답했을 뿐이다. 전생에서 창을 사용했었기에, 이성민은 창이라는 무기가 얼마나 까다롭고 심오한 무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푸하하! 단순해서 좋군. 그래, 3만 에르가 비싸다면 2만 에르로 해주마.”
노점상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투척 단검 3개와 창 한 자루, 포션을 매달 수 있는 낡은 가죽 벨트 하나와 다섯 개의 빈 포션 병. 그 모든 것을 3만 에르에 구입했다.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죄다 죽은 이계인이 사용한 중고품이라고 하여도, 당장 쓰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특히나 포션 수납이 가능한 벨트는 앞으로도 요긴하게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성민은 허리에 감은 벨트의 길이를 조정하고서 꾸벅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됐어. 말했잖아, 꼬마야. 앞으로 단골이 될 것 같다고. 독한 놈은 오래 살아남는 법이지.”
그렇다면 좋을 텐데. 이성민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쓰게 웃었다.
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이성민은 잘 알고 있었다.
내공의 부족은 절감하고 있다. 당장은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다. 성련단을 손에 넣는다면 상당부분 개선이 가능하겠으나, 성련단이 콜로세움의 상품으로 걸리는 것은 1년 후다. 게다가 콜로세움에서 우승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여관에서 사냥터까지 향하는 것은 못해도 2시간. 될 수 있는 한 경공을 사용하고, 내공이 고갈되면 뛴다. 해야 할 것은 이 나약한 몸뚱이를 단련하는 것이다. 무공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성취가 는다. 근육과 똑같다.
북쪽 성문 쪽은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대부분이 이계인이었고, 혹은 이계인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있는 장사치들이었다.
이성민이 이곳에서 물건을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저들은 값을 과하게 바가지 씌운다. 사냥터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이계인들은 바가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건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고블린 둥지에 함께 가실 분!”
“화산파에서 수학한 동포를 찾고 있소!”
“르에르 학파를 아는 자는 없는가?! 화염 마법에 능통한 마법사는 없는가!”
제각각 각자의 뜻을 담아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함께 사냥터로 갈 동료를 찾는 이들도 있고, 자신과 같은 문파에서 수학한 무림인을 찾는 이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학파의 사람을 찾는 마법사들도 있다.
이성민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서 빠르게 북쪽 성문을 향해 갔다. 전생에서, 제나비스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사냥터로 향했을 때. 이성민도 동료들과 함께 사냥터로 향했었다.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 이성민과 함께 사냥터로 향했던 이들은 모두가 똑같은 처지의 노 클래스였고, 몬스터와 싸운다는 현실과는 조금도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망자가 연거푸 발생했고, 이성민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때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이성민은 일주일 동안 사냥터 쪽으로 가지도 못했었다.
‘동료… 있으면 편하지만…’
문제는 이곳이 제나비스고, 이성민이 동료로 맺을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같은 처지의 노 클래스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들과 함께 사냥터로 향한다면, 이성민은 그들을 보호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성민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전생의 기억과 무공이 있다고는 하여도 이성민이 보유한 무공은 모두 다 1성. 솔직히 말해서 지금 처지로는 제 앞가림만 하는 것이 고작이란 말이다.
무림인이나 마법사들의 동료가 되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솔직히 가망이 없었다.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굳이 이성민을 동료로 받아 줄 리가 만무했다.
“이름은?”
북쪽 성문의 경비원이 이성민을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물었다.
“이성민입니다.”
“증명 패는 가지고 있나?”
“아직…”
“뭐, 좋아. 이 도시에서는 그런 것이 있든 말든 크게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후후! 죽지 마라, 꼬마야.”
경비원이 이죽거리는 말을 흘려들으면서, 이성민은 성문을 나섰다.
거대한 숲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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