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29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29화
책임 없는 쾌락(2)
늘 있는 일이다.
경험이 적은 가수나 연주자가 녹음 때가 다가오니 긴장을 하는 경우 말이다.
‘참 용하네….’
송영철은 그럴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선호했다.
과거에는 왜 긴장을 하냐고 나무란 적도 있었지만, 몰아붙일수록 더욱더 긴장하는 게 보였으니까.
근데….
녀석은 신기한 재주를 부렸다.
엄청난 자신감으로 페어리스 멤버들의 혼을 쏙 빼놓은 다음, 지휘를 직접 주물러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감이 있는 건 좋아.’
실력은 확실하다. 곡도 엄청 잘 뽑는다.
하지만 저렇게 자신만만하다가 나중에 꺾여 버리는 놈이 100이면 100이던데.
‘이상하게 전혀 꺾일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근거 없는 단정이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직감이 그리 말했다.
녀석은 왜인지, 꺾이지 않을 것 같다고.
송영철은 평소와 달리 바글바글해진 스튜디오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제2 스튜디오의 프로듀서부터 그 직원들, 최성민 이사에 홍우진까지. 무슨 맛집이라도 발견한 양 사람이 몰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녀석은….
“밴드 곡…?”
갑작스럽게 새 곡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송영철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 찾아오면 인사하고 덕담도 나누고 칭찬도 받고 그러는 게 이른바 국룰 이라는 거 아닌가?
아무리 최성민 이사한테 초대받은 사람이라고는 해도 사회적인 위치라는 게 있는 법인데.
다만 그런 잡스러운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곡.
녀석이 새로 만들어 온 곡 때문이었다.
‘밴드 곡이라….’
전부 가상 악기였다.
드럼부터 베이스, 기타까지.
다만 처음 곡을 들었을 때는 얼핏 가상 같은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는데, 시퀀싱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 이거 불러줄 좋은 밴드 없으려나….”
“….”
“….”
…아니.
뭔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충 알겠는데.
송영철은 일순간 혹하는 마음이 들었던 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장 뭔가를 더 벌이기에는 타이밍이 좋지가 않다.
해야 할 일이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신곡에 대한 시장의 반응 또한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곡은… 너무, 너무나 좋았지만….
“네가 작곡한 거니?”
“넵.”
“호오….”
“금요일에 ‘블랙 벨트’라는 밴드랑 같이 공연을 했거든요.”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홍우진 쪽이었다.
“이건 그 블랙 벨트라는 사람들한테 주려고?”
“에이, 그냥 저번 주 경험이 너무 좋아서 추억할 겸 만든 거예요.”
“그렇구나….”
‘거의 은퇴상태인 우진이가 관심을 보이다니….’
…노래는 이제 포기한 줄 알았는데. 다른 가수들 신곡이 나와도 그냥 기웃거리기만 하고 만들어달라는 말은 결코 안 하던데.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자, 밥 시간도 다 됐으니 식사하러 가실까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송영철은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떨쳐내었다.
‘지금 당장’ 저 밴드맨들이 성장할 턱 없으니, 아직 느긋하게 지켜보면 될 것이다. 입을 다물고 있던 최 이사 또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겠지.
우르르르-
제3 스튜디오에서 나온 무리들이, 국밥집을 향해 땅을 박찼다.
그리고 송영철은 정확히 3주 뒤, 후회했다.
작곡가가 우튜브를 시작했다는 것, 그것은 곧 ‘불특정 다수’에게 곡이 공개된다는 것.
그리고 그 ‘불특정 다수’에는, 경쟁사 또한 포함이 된다는 사실.
왜 자신들만이 제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망각이었다.
* * *
홍승현은 오랫동안 백밴드의 베이시스트로서 무대에 올랐다.
발라드 가수, 트로트 가수, 7080클럽의 백밴드까지.
거쳐 간 곳은 많았고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이 지치지는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베이스를 마음껏 치면서, 무대를 누빌 수 있었기에.
비록 어릴 적 꿈꾸었던 전설적인 베이시스트가 되거나 수만 명의 인파가 모이는 락 페스티벌 무대에는 올라보지 못했지만…, 그럼 어떤가?
밥벌이조차 제대로 못 하는 베이시스트가 90퍼, 아니, 95퍼는 될 거다. 홍승현은 자신의 인생이 아주 잘 풀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약 3주 전까지.
“흐으….”
곰팡이가 잔뜩 핀, 지하 연습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곳에 커다란 한숨 소리가 울려 퍼진다.
명백한 고민거리가 있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애초에 홍승현 혼자가 하고 있는 고민이 아니었다.
홍승현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베이스 악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것은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곡이며, 자신도 방금 전 단 한 번밖에 연주해 보지 않은 곡이다.
그렇다.
모두 이것 때문이다.
이런 한숨이 나온 이유는.
“…진짜 좋네.”
“그러게.”
“….”
가슴속 이질감의 시작은 약 3주 전, 홍대의 공연이 끝난 후부터였다.
갑자기 보라돌이가 바지를 벗더니 난입하더라. 도발을 하고, 민수의 기타를 뺏더니 한 곡 뽑아보겠다고 하더라.
…아주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빌런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그 빌런을 무찌르면, 좋은 그림이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이 세상이 클리셰대로 흘러갈 리가 없지 않겠는가?
자신들은 졌다. 완벽히.
빌런 보라돌이 소년의 손아귀에서, 그가 바꾼 곡에 빠져들어 버렸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밝았어.’
무대의 조명이나 날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홍승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밝은 ‘표정’들이었다.
밴드를 결성한 지 1년이 되었는데, 저런 밝은 표정을 지금까지 본 적이 있었던가?
확신한다.
없었다.
없었고,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험해 버렸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설탕이란 것을 맛본 것처럼, 그 어둑한 무대의 추억은 끈적하게 머릿속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 갑자기
민수의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들어오더라.
깔끔하게 쓰인 악보와 함께.
‘악보를 보는 순간 참을 수 없었지.’
음악인으로서, 세 명은 곧바로 그것을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 후 덮친 것이 바로 이 탈진감이다.
‘좋다….’
마치 90, 00년대의 외국 신생 밴드의 연주를 듣는 듯한 느낌.
자신들이, 전설의 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듯한 느낌.
“…이거 오늘 부를까.”
“그러자.”
“그래.”
세 사람은 말없이 다시금 연주를 시작했다.
물론 느낌은 느낌이다.
이 곡을 듣는 것, 연주하는 것은 자신들이 처음이며, 대중들의 반응을 확인한 것 또한 아니었다.
‘전설의 밴드들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멀리 간 듯했다.
“가자.”
“그래.”
* * *
세 명은 오늘도 냄새나는 연습실을 나서 홍대로 이동해 무대를 차렸다.
6월 30일. 이제는 거의 7월이 해가 전부 저물어 버렸음에도 열기가 후끈했다.
간단한 간이 무대.
오늘도 그곳에 오른다.
“…블랙 벨트가 저 사람들이야?”
“응. 주로 커버곡 부르는데, 자작곡도 하나 있거든? 그거 엄청 좋아.”
거리는 3주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 몰리는 관객들이 꽤나 달라졌다.
우선 사람이 늘었다. 그날 이후 입소문이 났는지 거의 두 배 정도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늘었다.
그저 심심해서 구경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곡을 듣고 싶어 하는 관객 말이다.
“안녕하세요오오오오오!”
-예에에에에에에!
격한 인사, 격한 함성.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들기 전 항상 하던 상상을, 누가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눈앞으로 펼쳐 놓은 것만 같다는 말이다.
“오늘도 신나는 곡 잔뜩 들려드리겠습니다아!”
이어지는 연주,
두들겨지는 베이스의 뭉툭한 줄.
온몸에 음악이 스며들었다.
셋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이 넓은 홍대를 뒤흔들어 버리는 것만 같다.
관객들의 반응은, 보라돌이 소년이 손수 편곡해준, ‘asphalt dream’에서 정점을 찍었다.
세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해보자.
보라돌이 소년이 만들어준 곡을, 여기서 한번 펼쳐보자.
고민은 짧았고, 실행은 빨랐다.
그리고 그날,
30살 세 명이 만든 늦깎이 밴드는,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공연을 맛보았다.
와아아아아아-!
몰아치는 함성.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들린 핸드폰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은 있었어.’
백밴드에서 오래 몸을 담았으니까.
유명 트로트 가수를 따라다닌다면, 함성과 열기는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눈물이 나도록 소리 지르는 사람, 하늘 높이 솟구친 형형색색의 응원봉.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눈에 비치고 있는 이 풍경은, 지금껏 보아왔던 것에 비해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벅차오름은 비교조차 할 수조차 없었다.
‘…다음 스테이지로 올라가고 싶다.’
세 명의 가슴속에, 진한 욕망이 끌어 올랐다.
밴드맨을 위한 다음 스테이지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제에, ‘그럼 우리가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큰 무대에 서고 싶어.”
공연을 마무리하고 11시, 홍승현은 꽉 막힌 듯한 목소리를 짜내며, 그리 말했다.
“나도.”
“나도.”
두 사람은 동의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굳은 눈빛이었다.
“…연락해 볼까.”
가장 먼저 방법을 제안한 것은 민수였다.
“ST엔터?”
“맞아.”
“저번 주에 다시 연락 왔었잖아.”
“….”
ST엔터는 국내에서 나름 손꼽히는 대형 기획사였다.
보라돌이 소년과 만나기 전에 이미 한 번 손을 내민 전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었다.
초대를 받은 것은 사실상 ‘민수’이지 셋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우리 셋을 원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강렬히.
“…근데 소속사보다 급한 게 있잖아.”
“그치.”
작곡가.
이 시대에, 이런 밴드 음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더 있을까?
…없다고 본다.
그를 잡아야 한다.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더 커지기 전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
홍승현은 꿀꺽, 침을 삼킨 다음에 우튜브에 ‘폭탄처리반’을 검색했다.
최상단에 뜬 것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아이돌 그룹의 곡. ‘Daybrake Run’.
조회수는 150만을 돌파한 상태였다.
“…요구해 보자. 우리랑 같이 붙여달라고.”
세 명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입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도, 벌써 음악으로 나누었다.
다음 스테이지가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만들기로.
천재의 칼을 빌려, 벽을 부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