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수확 1
* * *
진정된 게 아닌 걸까.
여유를 두고 살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면 땀을 뻘뻘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보아도 참고 있는 모양새.
못 당해 내겠다는 듯 카인이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야 아리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뭐, 이 정도면 양호한가.’
아리아는 속을 알기 어려운 소녀였다. 항상 맹한 표정을 짓고 있어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으니까.
차라리 이렇게 노골적인 게 나을지도 몰랐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쉬울 테니까.
이브가 불쑥 튀어나온 건 그때였다.
“잘 따르는군요, 석연찮을 정도로.”
무언가 꺼림칙한 어투.
카인은 이브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나 명확한 차이점이 생겼는데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의존증이겠지.”
부스트 드러그를 맞고, 적응한 결과물.
아리아의 인생에 자신이 차지하는 자리가 이만큼 넓다니. 카인으로선 기쁘기 그지없는 소식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표출되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물론 다른 귀신들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었다.
예전에 만났던 1급 마귀, 크루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하루에 한 명은 죽여야 하는 광증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아리아의 광증은 없는 거나 매한가지였다.
무엇보다―
“아리아, 네가 있을 곳은 내 곁이야. 조직에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마.”
다루기가 쉬웠다. 아니나 다를까, 아리아가 감동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공작님의 곁에 있겠습니다.”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무거웠지만, 그러려니 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서 있는 위치가 반대였던 것이다. 구원받는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알고 있는 카인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아리아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
“더,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못 해줄 건 없지.”
엘리제가 가지고 온 죽으로 배를 채운 아리아가 다시 잠든 걸 보고 나서야 카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를 뒤따라간 이브가 입을 열었다.
“공작님.”
“왜?”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는 게 아닐는지요.”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어쩌면 광증이 더 진행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존증은 대개 광적인 집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카인은 이브가 우려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너도 보았잖아. 저렇게나 얌전한걸. 잘 관리하면 악화되지는 않을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이브가 말끝을 흘렸다.
그녀가 염려하는 건 그다음이었다.
지금에야 나이가 어리기에 곁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성년이 되어 어엿한 여성이 되면? 그때도 아리아는 카인에게 바라는 게 없을까?
그렇지 않아도 카인의 곁에는 만만치 않은 여성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본인은 별일 없을 거라 말하지만, 그건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사건은 언제든지 터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 고등 교육을 받은 문명인이니만큼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테지만, 아리아는 별개였다.
그녀는 그걸 용납할 수 없을 거다. 내재된 광증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돌연 어딘가에서 피냄새가 나는 듯했지만 이브는 무시했다. 아니, 포기하기로 했다. 새삼스럽지만 제삼자인 그녀가 이러쿵저러쿵할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하는 일.
그 뒤에 어떠한 미래가 펼쳐지든 알 바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작님. 코카인이 되신 걸.”
* * *
대륙의 음지는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스며든 장소였다. 성매매는 물론이고 인신매매, 마약 밀매. 그리고 살인 청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죄악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기에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약 없는 욕망과 욕망이 격렬하게 부딪치기 때문일까.
하루에도 수많은 단체가 흥하고 망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음지에서도 전통을 유지하는 이들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그들의 악명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대표적인 조직은 셋.
방패의 로터스.
창의 게네아.
독의 트리온.
전형적인 삼강 체제였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전까지의 이야기. 화무십일홍이라, 영원할 것만 같던 로터스가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다.
그럼 이강이라 칭해야 마땅하나 신흥 세력인 리벨리온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면서 구도는 변하지 않고 개편되었다.
리벨리온은 그 뒤로도 폭발적인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자그마한 먹잇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실을 다질 정도로 큼지막한 과실만 노릴 뿐이었다.
패퇴는 가정도 하지 않은 선택.
그렇게 무모하면 손해라도 막심해야 하건만, 미래라도 보이는 건지 연일 승전고를 울렸다.
그래서인지 암흑가에서는 사신으로 통했다. 여태까지 그들의 진격을 막은 이는 없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게네아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벌써 스물에 달하는 지부가 공격당했는데도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하고 본거지를 들킨 것이다.
삼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처참한 전과.
“역시 이곳으로 올 줄 알았네.”
게네아의 대부, 라이오넬은 눈앞에 선 사내를 쳐다보았다.
새하얀 가면과 검은색 코트. 그리고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검은 장갑까지.
모든 게 한 사람을 가리켰다.
“엠.”
시선이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등골이 저릿하다.
비록 음지에 몸을 담고 있다고는 하나, 그 수준까지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게네아의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기사에 필적하는 무력을 갖추었다.
라이오넬 또한 평생을 창술에 매진했다. 일대에 그의 적수가 없을 정도.
하지만 그러한 경지도 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어코 우리까지 집어삼키려는가.”
“집어삼킨다는 말은 그렇군. 미래를 위한 화합, 정도라고 해 두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이 내 말을 고분고분 들을 것 같지 않거든.”
엠이 손짓하자 그의 등 뒤로 수많은 이가 늘어섰다. 모두 그와 비슷한 차림새였다. 자욱하게 깔린 안개 때문인지 귀신처럼 보일 지경.
그들이야말로 지금까지 리벨리온을 지탱한 일꾼이라는 걸 알기에 라이오넬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로터스처럼 생각하면 큰코다칠걸세.”
창을 꼬나쥔 라이오넬이 왼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네만 준비한 게 아니니까.”
동시에 외곽에서 나타난 조직원들이 리벨리온을 빙 둘러쌌다.
일찍이 로터스는 방심했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게네아는 달랐다.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전력의 5할 이상을 이곳에 끌어모았던 것이다.
밀려나는 척 연기하며 만든 덫은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견고하고 튼튼했다.
“어찌 보면 이 또한 기회겠군. 자네만 해치우면 독보적인 일강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마침 조직 간의 대결은 라이오넬도 자신 있는 분야였다. 더구나 이곳은 게네아의 홈그라운드였다.
“애석해하지 말게.”
두 사람을 뒤로한 채 리벨리온과 게네아가 부딪쳤다. 조직원들끼리 뒤엉키며 온갖 굉음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피냄새가 아른하게 피어올랐다.
폭력만이 전부인 현장.
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자세를 낮춘 라이오넬은 단번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전조도 없이 창을 내질렀다.
엠이 손을 내밀었으나, 라이오넬은 제 일격이 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살과 쇠. 두 개가 충돌하면 결과는 뻔하지 않던가.
하지만 창날은 얼마 가지 못하고 손바닥에 막혔다.
티잉.
기묘한 소음과 함께.
마치 쇳덩이에 부딪친 것만 같았다.
“준비한 건 끝났나?”
“뭐?”
쿵!
귓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폭음에 라이오넬은 두 눈을 부릅떴다. 아차 하는 사이에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급히 창을 들어 반탄지기를 형성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애당초 막을 수 있는 권격이 아니었다. 정원은 물론이고, 저택까지 통째로 날아갔던 것이다.
워낙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군가 지우개로 지운 것 같았다.
부러진 창을 손에 쥔 채 볼품없이 나뒹군 라이오넬은 털썩 주저앉았다. 내부는 진탕이 된 지 오래. 두 팔도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전신을 내달리는 고통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하다고 해야 하나.
고작 한 수.
공방을 나누었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숫자에 게네아가 이룬 모든 게 풍비박산이 되었다.
일개 범부가 가져도 좋은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절대적인 무력.
밑바닥에서 별의별 경험을 다 겪은 라이오넬이지만, 이처럼 허무맹랑한 전개는 처음이었다.
‘……십좌?’
그런 가당찮은 가정이 번쩍 떠오를 정도로.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라이오넬이 가장 잘 알았다. 그 수준까지 도달한 무인이 이런 곳을 전전긍긍할 리 없었던 것이다.
무위를 드러내는 순간, 계승 작위를 하사받아 고위 귀족이 될 테니까.
아마 그에 준하는 강자일 터.
“자네 같은 사람이 어째서 우리를 노리는 거지?”
“너희들이 조직과 연관이 있으니까. 아쉽게도 내가 조직에 유감이 좀 많거든.”
얼굴 위로 떠오르려는 동요를 억누른 라이오넬이 짐짓 엄하게 일갈했다.
“하, 헛소리도 그런 헛소리가 없군. 그렇게 몰아세우면 명분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나.”
“사실이 그렇지 않나.”
흥미 없다는 듯 주먹을 말아쥔 엠이 팔을 휘둘렀다.
“아니, 잠깐만 기다…….”
“잘 가라.”
쿵.
무자비한 응징에 라이오넬은 제대로 된 협상도 해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한 달 동안 이어진 조직 간의 항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카인은 언덕에 서서 뒷정리가 한창인 현장을 쳐다보았다.
‘이걸로 두 개째인가.’
일찍이 게네아는 조직의 창구로 쓰였다. 초대 대부가 귀신 출신이었던 것이다. 회귀하기 전에야 활용할 곳이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달랐다.
파라몬과의 일전을 통해 크게 도약했으니까.
여건이 되지 않아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종양을 도려낼 수 있게 되었다.
게네아는 시작에 불과했다.
카인은 기억 속에 있는 조직의 근간을 차근차근 수확할 예정이었다.
‘슬슬 눈치채겠군.’
몇 년간 꾸준히 난장판을 피웠으니 조직도 위화감을 느낄 거다. 세간에 알려진 매튜는 이렇게나 강한 무인이 아닐 테니까. 종국에는 매튜가 아니라 제3의 인물이 엠이라는 걸 알아낼 테지.
하지만 카인은 조직이 의구심을 품든 말든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제 정체를 확인하고자 달려든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원하는 경지는 이루었어.’
그와 손속을 겨룰 수 있는 강자는 적었다. 위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제 한 몸 건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카인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아리아는 벌판에 쓰러진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긁힌 상처가 가득한 사내. 그는 방금 전까지 리벨리온에 대적했던 게네아의 조직원이었다.
“일어나십시오. 깨어나 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