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113
“와. 진짜 아침부터 너무 바쁘다.”
깜장이 냉수를 들이켜며 탄성을 뱉어 냈다. 물밀 듯이 몰려오는 주폭도 주폭인데, 좀도둑이 말 그대로 기승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 놓는 주택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이번 주말에 여자친구랑 전시회 가기로 했는데,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몽두의 한탄에 깜장이 물었다.
“존 뭐시기?”
“존 폴랭이요. 그때 텔레비전에서 보여 줬던.”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 10인에 이름을 올린 존 폴랭. 그의 내한 소식은 문외한인 내게도 알음알음 들릴 정도로 뜨거웠다. 허나 예술의 세계는 너무 어렵고 멀어서 그가 그리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깜장 역시 배를 벅벅 긁어 댔다.
“그 화가가 그렇게 대단하냐?”
“저야 막눈이니까 잘 모르겠는데, 아는 사람이 보면 대단한가 봐요. 내한한다고 하니까 기회다, 하고 일단 봐 두는 거죠.”
점심을 먹은 지 10분이 채 안 지난 시간. 몽두는 책상에 앉아 밀린 조서를 다시 작성해 갔다. 다른 날 같으면 말렸겠지만, 오늘은 어림없다. 나 역시 자리에 슬그머니 앉으며 모니터를 켰다. 깜장은 취조 다녀온다며 사무실을 나섰고.
지이잉- 지이잉-
“네. 전화 받았습니다.”
나는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내 휴대폰으로 오는 연락이라 해 봤자 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 실장일 확률 90%지. 허나 휴대폰에 들려온 목소리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바쁘니?
“···이 ···어머니?”
이미숙 여사라고 입 밖에 낼 뻔했다. 나는 다급하게 입을 막고 키보드 치던 것을 멈췄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근무 중인 것 같으니 간단히 이야기하마. 이번 주 주말에 시간 좀 내줬으면 좋겠다.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와서.
“···귀한 손님이 저를 보자고 하시던가요?”
난데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국에서 나를 볼 만한 사람이라. 이미숙은 잠깐 동안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난초같이 우아한 목소리였다.
-존 폴랭.
와우.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그 예술가 양반 아니야. 나는 더더욱 궁금한 말투로 되물었다.
“그 사람이 왜요?”
-존 폴랭 전시회가 우리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말을 줄이는 이 여사. 나는 달력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 주말이라면 쉬는 날이었으니. 나는 그녀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
서울에 위치한 아트플렉스는 축구장 크기의 복합문화 공간이었다. 쇼핑부터 영화, 연극, 전시회 등의 관람이 한 번에 이루어지는 곳. 나는 고광갤러리 존으로 걸어 들어가며 천장을 쳐다봤다.
‘대단하네.’
투명한 돔 형식으로 덮인 천장. 존 폴랭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프린팅된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강아지와 소녀들’ 역시 줄줄이 널려 있었고.
“도련님!”
내가 갤러리로 들어서자, 입구에 서 있던 김 실장이 나를 불렀다. 도련님이라는 말에 나를 힐끔 돌아보는 사람들.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그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크게 부르면 어떡해요?”
“하하. 죄송요. 너무 시끌벅적하니까 안 들릴 줄 알고. 이쪽으로 가시죠. 사모님은 먼저 와 계세요.”
나는 그의 안내를 따라 갤러리 안쪽의 응접실로 들어갔다. 문 앞에 서 있는 한 여자. 짧은 단발에 깨끗한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정장을 입은 여자는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고지훈 도련님.”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여자는 맑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서여진입니다. 평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예예. 뭐···.”
뭐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 같은 기분. 서여진이란 여자는 나를 아는 눈치인데, 나는 그녀를 전혀 모르겠다. 그때, 김 실장이 앞으로 한 걸음 나오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제가 도련님 엄청 좋으신 분이라고 그랬거든요.”
뿌듯하면서도 민망해 보이는 미소. 필시 사랑에 빠진 남자의 웃음이다. 나는 그제야 입을 살짝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친구가 큐레이터 일을 한다고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볼 줄은 몰랐다.
“반갑습니다. 저희 김 실장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제가 드릴 말씀인걸요.”
나는 다시 한번 정중히,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서여진은 방긋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김 실장.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껏 감격한 모습이다.
“저랑 제일 가까운 두 분이 함께 있는 걸 보니 꿈같네요. 흐윽.”
“저기 김 실장님. 여기서 우는 건 좀···.”
“우는 게 아닙니다. 그저 감동받았을 뿐.”
나와 서여진은 웃으며 난감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둘 사이의 온도 차가 급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녀는 훌쩍이는 김 실장을 내버려 둔 채로 나를 안내했다.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는 서여진.
“잠깐 자리를 비운 거라, 금방 다시 나가 봐야 하거든요. 하지만 도련님 처음 뵙는 거니, 제가 안내해 드리고 싶네요.”
“하하. 영광입니다.”
“사모님이랑 존 폴랭 씨 일행은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행이요?”
“존 폴랭 씨는 케인아트스쿨 교수이기도 하세요. 이번에 한국 전시회가 잡히면서 한국인 제자들과 함께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가이드 겸 통역 뭐 기타 등등의 문제로.”
우리는 짧은 복도를 걸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실장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내 뒤를 쫓아왔고.
“그 학생들은 땡잡았네요. 선생님 전시를 같이 진행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게 볼 수 있죠. 제가 봤을 때는 조금 갸웃하지만요.”
“네?”
“도착했습니다.”
내 물음과 동시에 도착한 응접실.
드르륵-
서여진이 문을 열면서 단정하게 인사했다.
“왔니?”
문을 여니 보이는 이미숙 여사. 머리를 반짝 올리고, 깔끔한 정장을 입은 모습이다. 커피잔을 쥔 손에는 형형색색의 알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과한 모습.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응접실은 살짝 어두운 톤의 컬러로 통일되어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 보랏빛 소파. 이미숙은 자신의 앞을 쳐다봤다.
“존 폴랭 씨?“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후덕한 덩치와 쭉 찢어진 눈매. 녹색의 눈동자가 예민하게 움직였다. 물론 처음 보는 얼굴.
“어라?”
허나 존 폴랭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익숙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못 알아볼 뻔했지. 예전과 너무 다른 인상이었으니까. 남자도 나를 알아봤는지,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한 소리를 냈다.
“어어어?”
“여긴 웬일이에요?”
이철용. 나 대신 피자집 배달부로 일했던 청년. 허나 내 도움으로 미대에 갔었다는···.
“어이쿠.”
나는 이마를 때리며 기묘한 운명에 질색했다. 한 번 얽혔던 게 이렇게 얽히는구나. 그때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처음 보는 건데, 왜 여기 있는지 대충 감이 온다. 영국에서 데려온 한국인 제자라.
“아는 사이니?”
이미숙의 물음에 내가 머뭇거렸다. 또래오래 피자집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아니면 조태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난감했다.
“제가 미술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신 분입니다.”
“어머. 그래요?”
이철용이 중간에 끼어들어 예의 바르게 설명했다. 내가 망설이는 걸 보고 알아서 잘 대처한 것이다.
“하하. 배은망덕하게 대학은 자퇴했지만, 미술의 길을 선택하게 해 주신 분이죠. 덕분에 존 폴랭 선생님 아래에서 배움의 기회도 얻었고요.”
이 여사가 나와 이철용 사이를 흘기며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저 웃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이철용은 모종의 시선을 나누었다. 자리가 파하면,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 보자는. 그때, 존 폴랭이 내게 손을 건넸다.
“안녕하시이요.”
어눌한 한국어. 그의 손에도 금반지며 화려한 보석들이 잔뜩 박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지훈 경장입니다.”
아하. 이 여사가 오늘 힘줘서 치장한 이유가 있었구먼. 존 폴랭의 성향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단순히 취향적으로 보석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물질적으로 그것을 중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외국에서 온 손님이니 격을 맞춘 것이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사업가군.
“Nice to meet you. Do not think hard about me.”
존 폴랭은 거만한 투로 내게 뭐라 뭐라 말했다. 이 방안에서 나 빼고 모두 그의 말을 알아듣는 듯하다. 김 실장이 눈치껏 끼어들어 그의 말을 통역해 줬다.
“만나서 반갑다고. 음, 편하게 대하래요.”
몇 번의 인사치레 역시 김 실장을 두고 이루어졌다. 나는 소파에 앉으며 이미숙 여사를 쳐다봤다.
“그래서, 어머니. 존 폴랭 씨가 저를 보고자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내 재촉에, 이미숙이 커피잔을 내려놨다.
“존 폴랭 씨가 우리 고광갤러리에서 단독 전시회를 여는 건, 아주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이례가 없던 일이거든.”
“축하드립니다.”
“최근이긴 하지만, 존 폴랭 씨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그래서인지 주위에서 자꾸 문제가 생겨. 예술 활동하기에도 시간과 정신이 부족한데 말이지.”
이미숙은 그 말을 마치며 그에게 얕은 눈인사를 보냈다. 이철용은 분위기를 보며 그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삭인다. 적당히 필터링한 대사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문제라 하시면?”
“존 폴랭 씨가 예전에 작품 도둑맞은 적이 있는 걸, 알고 있니?”
“얼추요.”
시사프로그램에서 흘리듯 말한 게 기억났다. 이 여사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추켜세웠다.
“이번 전시회를 기념으로 존 폴랭 씨가 한 달 가까이 한국에 지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기로 했어. 우리 고광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다음 전시회도 독점으로 여는 조건이지.”
예술. 순수한 영역이지만 그와 동시에 사업적인 면모가 빠질 수 없는 부분. 나는 그녀의 말을 경청하며 차를 마셨다.
“그런데 화실에서 작품 두 점이 사라졌어.”
“네?”
“물론 이번 전시회에 나갈 그림도 아니고, 계약된 그림도 아니야. 존 폴랭 씨 말에 의하면 하나는 채색까지 끝난 미완성작. 하나는 데생이라고 해.”
나는 존 폴랭을 쳐다봤다. 파란 눈의 외국인. 그는 이철용에게 통역을 들으며 머리 아프다는 듯 골을 만져댔다.
“그걸 찾아 달라고 연락 주신 건가요?”
“아니. 우리도 관할서에 연락해서 조치를 취했단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존 폴랭 씨나 우리나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요?”
내 물음에 이미숙이 이철용을 쳐다봤다. 신호를 받은 그가 테이블에 작은 쪽지를 내려놓는다.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종이를 집어 들었다. 하얀 카드. 그리고 컴퓨터로 타이핑된 메시지.
“작품을 훔쳐 간 사람이 보내온 건지, 아니면 누군가 장난질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푸훕!”
나는 종이의 내용을 읽는 순간, 입에 머금었던 차를 내뿜고 말았다. 예고장이라 해야 하나. 전시 중인 그의 대표작 ‘강아지와 소녀들’을 훔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아주 아주 낯익은 이니셜 스탬프.
“···미친 새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구나.”
“뭐?”
내 욕설 섞인 중얼거림에 이미숙 여사가 인상을 찌푸린다.
“아니, 아닙니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거야. 허나 화실에서 작품이 두 점이나 도난당했으니, 간과할 수가 없겠더라고.”
“당연히 그러시겠죠.”
“그런데 존 폴랭 씨가 내··· 아들이 경찰이란 걸 알고 특별히 부탁해 오셨다. 사건 수사와 경호를 부탁한다고. 너만 괜찮다면 수안서 쪽에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싶은데. 이미 도난당한 사건 역시 포함해서.”
아들이라는 말을 간신히 입에 올린 이미숙. 나는 입 주위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난놈을 잡으려면 난놈을 데려와야죠.”
메모지 아래에 적힌 그 이니셜. HS.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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