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148
토끼 인형, 곰 인형 그리고 천장에 달린 아기자기한 모빌까지. 형형색색의 벽지와 어울리지 않는 세 명의 남자. 정확히는 의사 한 명과 환자 한 명, 보호자 한 명이다.
“환자분?”
안경을 세우며 의아하게 묻는 의사. 그의 명찰에는 ‘백산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내가 김 실장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그는 벌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반과는 줄이 좀 길더라고요. 여기가 빠를 것 같아서 왔습니다.”
“그래요? 얘기 들어 보니 오래 기다리신 것 같던데.”
“에이 뭘요. 애들이랑 놀다 보니 시간 금방 가던데요. 하핫.”
멋쩍은 웃음을 터트리며 머리를 긁적이는 김 실장. 백산이는 골이 아프다는 듯 안경을 벗고 우리를 쳐다봤다. 한껏 날카로운 눈꼬리를 닮아, 시선도 서늘하다.
“용건이 있어서 오신 것 같은데, 말씀하시죠.”
차분히 늘어지는 말투.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붙였다.
“혹시 저희 구면 아닌가요?”
“네?”
백산수 병원장이 의사들 우르르 끌고 나왔을 때, 없었나? 꼭 나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긴.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손바닥을 비벼 대던 백 원장이다. 아들이 있었으면 회장한테 눈도장 찍으려고 별별 짓을 다 했겠지. 내 말에 백산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한데, 이상한 말 자꾸 늘어트릴 거면 나가주세요. 밖에 환자들 밀려 있으니.”
“저희가 마지막인데요. 선생님 기다린다고 맨 끝줄로 밀렸거든요. 어떻게 식사를 두 시간이나 하세요? 아. 진심으로 궁금해서.”
김 실장이 악의 없이 대꾸했다. 기 싸움을 하기보다는 진짜 사실 그대로를 잡아 주려는 태도. 백산이의 미간이 노골적으로 찌푸려진다. 진짜 쫓겨나기 전에, 본론을 꺼내야겠군.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정문 앞에서 시위하던 사람 말입니다. 이름이 김봉구라고 하던데. 혹시 아세요?”
그 말이 나오자 백산이가 시선을 돌린다. 더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다는 뜻이다.
“나가세요. 사건 관련된 말은 모두 병원 차원에서 대응될 겁니다. 나 참. 이번에는 또 어디서 왔어요? 탐병원 쪽 사람? 아니면 김봉구 씨 친인척인가?”
이런 일이 의외로 비일비재했던 모양이다. 탐병원이라 하면 같은 지역에서 라이벌 구도에 놓여 있는 종합 병원을 말한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모두 부정했다.
“경찰입니다.”
“아하. 경찰?”
그는 기계적으로 볼펜을 돌려 댔다. 어디, 흥미로운 말 좀 해 보라는 듯.
“재판 진행 중인데 경찰이 뭘 할 수 있다고 여기 찾아와요? 이미 당신네들 손 떠난 일이야.”
“그것도 맞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내 손으로 쏙 들어와서 말이야.”
“뭐?”
“김봉구 씨가 그러던데. 당신 수술 당시 회진 돌고 있었다고.”
직구로 던진 한 문장. 짧은 말이었지만, 백산이를 당황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호출 버튼을 누르며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아까 듣던 헛소리를 여기서 또 들을 줄이야. 이봐. 밖에! 경비원 좀 불러. 별 이상한 사람들을 여기까지 들여보내면 어떡해?”
“수술 시간대에, 당신이 회진 돌고 있다는 증언이 들리던데.”
“증언? 누구 입에서? 그렇게 확실하면 재판에 올려. 여기서 괜히 물 흐리지 말고. 뚫린 입이라고 필터 없이 지껄이는, 가벼운 말 따위로 업무 방해하는 게 경찰의 일은 아닐 텐데.”
오호. 의사라 그런지 말 하나하나를 누르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골랐다. 한껏 흥분한 말투가 차분해졌다.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내가 이 일 하면서 그런 사람들 많이 봤어요. 감기도 정확히 며칠 만에 나을지 장담을 못 하는데, 수술 경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장담을 하냐고.”
내게 눈썹을 들어 보이는 백산이. 마치 동의를 구하는 것 같다. 의료사고의 맹점 중 하나. 이게 사고인지 아닌지조차 애매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환자의 몸은 개인마다 다르니까,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노릇. 게다가 수술 과정이나 치료 과정에서 의료진의 실수가 있음을 밝히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지들만 알고 있는데, 낸들 알겠어?
“나도 그 환자는 좀 안타까워요. 어린 나이에 그렇게 됐으니 마음이 안 좋다고. 그런데 뭐 어쩌겠어. 병원에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줬고, 감수는 그쪽에서 해야지.”
냉정히 말하는 백산이. 나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 환자, 이름은 알아요?”
그는 가만히 내 시선을 받아 내더니, 이내 말을 돌렸다.
“원한다면 회진 기록부터 수술 기록까지 다 공개하겠습니다. 이건 병원 차원의 신뢰 문제라. 재판 결과 나오기 전에 소문 퍼지면 그 남자랑 당신, 같이 고소할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오케이.”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생이 꺾인 아이의 이름도 모르는 의사라. 그래.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 벌써 몇 달 전의 일인데 까먹을 수도 있어. 그런데··· 만약 진짜 대리 수술을 한 거라면, 놈의 책임이 분명하다면, 인간도 아닌 새끼다. 의사 자격이 없는 놈이야.
“피해자 측에서 변호사 부른다고 하니, 대응은 그쪽으로 하시고. 회진 기록부터 기록이란 기록은 달라는 대로 다 주세요.”
“그쪽이 신경 안 써도 알아서 합니다. 명함이나 주고 가시죠.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는 법이니까.”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게 나을 것이다. 병원 측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병원 측 기록이 증거라니. 그것도 별다른 외부 감사도 없이.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당신 거, 하나는 그쪽 아버지 거.”
내 말에 의아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백산이. 그때, 진료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와 경비원이 들이닥쳤다. 나는 그들에게 경찰신분증을 보이며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었고.
“제가 한 말, 제가 책임질 테니 그쪽도 한 일이 있다면 제대로 책임지세요. 나 지금 여기서 나가면 바로 사무실 들어가서 여기 탈탈 털 거거든.”
“하하. 무슨 명목으로?”
처음으로 보인 백산이의 웃음. 한낱 경찰 한 명이 뭘 할 수 있겠냐는 표정이다. 나는 그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낱 병원 하나 터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명목이 필요하나. 경찰이 냄새 맡고 수사 좀 하겠다는데. 그쪽 아버지한테 안부나 전해요. 뭐. 보아하니 먼저 날아올 것 같지만. 갑시다. 실장님.”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진료실을 나왔다. 일단 보자···. 맨 처음 증언이 나왔던 청소 아주머니를 찾아야겠는데. 김 실장이 내 옆에 쪼르르 달려오더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도련님. 만약 진짜 대리 수술 아니면 어떡하시려고 그래요? 김봉구 씨가 착각한 걸 수도 있잖아요. 워낙 재판 때문에 예민해져 있으니 별별 게 다 의심일 수도 있죠.”
“그럼 좋은 일인데 뭘 어떡해요?”
“네?”
“의사가 대리 수술한 게 아니면 좋은 거 아니에요? 사회적인 상식이 지켜졌다는 건데.”
“그거야 그렇긴 한데, 도련님 말이에요.”
“내가 뭐요? 나 뭔 짓 했나?”
내가 능청스럽게 되묻자, 김 실장이 눈을 끔뻑였다. 백산이와 설전을 벌이며 고소니 뭐니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확실히 그랬다. 난 뭐 한 게 없어. 경찰이 적합한 절차로 대면해서 취조 좀 한 것뿐이니.
“확··· 실히 그렇긴 하죠. 대리 수술 건도 다른 사람 없을 때 말을 꺼냈으니. 건수가 없긴 하네요.”
“건수가 있어도 뭐가 걱정이에요. 우리 김 실장님이 계시는데.”
“와. 그 말 참··· 감동적이면서 절망적이네요.”
“절망적일 것까지야. 왔네요. 타시죠.”
나와 김 실장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숫자 맨 위의 V버튼. VIP실을 뜻하는 것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나는 김 실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저번에, 아버지가 병실 왔을 때요. 뭐라더라, 실속을 챙긴다, 안 챙긴다 그 말 하셨잖아요.”
“아아. 그랬죠. 민국 도련님이 실속 없다고 하니까, 오히려 실속을 챙기는 거라고. 그 말 하시는 거죠?”
“기억력 좋네요.”
“제가 다른 거 기억할 자리에 어르신 말씀은 꼭 넣어 두거든요.”
“아버지가 칭찬하시겠어요. 아무튼, 그 말뜻 뭔지 아시겠어요? 그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뭔가 거슬려서.”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본관 유리문을 지나왔다. 주위에 사람이 한산해지자, 김 실장이 입을 열었다.
“곳간 새고 있다는 뜻이죠.”
“곳간이요?”
“VIP실 관리는 사업의 기본입니다. 특히나 거래단위가 큰 사업에서는 특히 그렇죠. 고광병원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좀 삐까번쩍한 게 아니거든요.”
그래. 기억난다. 드넓은 로비의 대리석부터 샹들리에, 아무도 쓰지 않는 휴게실의 초대형 텔레비전. 거기서 보는 서울의 야경은 끝내줬는데.
“그런데 여기는 고광보다 규모가 작다고 해도 외관에 비해 안이 너무 부실해요. 민국 도련님은 그걸 보고 경영 실속이 없다 한 거고, 회장님은 한 번 더 생각해서 곳간이 새고 있다 생각한 거예요. 투자되어야 할 곳에 투자가 안 되고 있으니 경영이 안 좋거나, 경영을 안 하거나.”
대충 의미를 알 것 같다. 경영이 안 좋거나, 안 하거나. 민국은 전자를 말한 것이고 고대만은 후자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곳간이 새고 있다는 말은, 자금이 가야 할 곳에 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지. 나는 새삼 김 실장을 놀랍게 돌아봤다.
“용케 파악하셨네요.”
“이래 봬도 회장님이랑 한 지붕 사는 놈이라.”
“오. 대단한데요.”
그건 김 실장뿐만 아니라 고대만과 고민국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병실 상태와 운영 방식으로 상대를 가늠하다니. 역시 기업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라 이건가.
“집으로 모시면 되죠?”
“네. 부탁해요. 오늘은 퇴근했거든요.”
“다시 사무실 간다고 할까 봐 조금 긴장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호운의 번호를 찾았다. 이럴 때 제일 빠르고 간편한 방법은 역시 이놈이지. 대양종합병원에 대해 이것저것 긁어 보다 보면···.
“아차차!”
김 실장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발작해 댔다. 갑작스러운 고함에 휴대폰을 놓칠 뻔했고.
“왜 그러세요?”
“손바닥.”
“에?”
“도련님 손바닥 치료하러 와서 그냥 나왔네요. 어떡하죠?”
“아아.”
나는 그제야 오른손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나는 일단 출발하라는 뜻으로 김 실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집 근처 병원에서 약만 대충 바르죠. 갑시다.”
***
그리고 이틀 후. 조용해진 경찰서의 밤. 본관은 술에 취한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특수대 사무실이 있는 별관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오직 끊임없이 들어오는 팩스 소리만 울릴 뿐.
치지잉- 치이잉-
“더럽게 많네.”
벌써 책상 위에 쌓인 종이만 해도 서너 뭉텅이다. 마지막 종이까지 들어오자, 나는 소매를 걷으며 자리에 앉았다.
“보자. 우리 호운이가 이번에도 돈값을 했을지.”
‘대양종합병원 정보’라고 적힌 표지. 아래로 기본정보와 연혁, 의사들 명단, 그간 있었던 의료 소송들, 병원 운영에 대한 실적까지 담겨있었다.
“얘는 이걸 어디서 긁은 거야.”
나는 펜으로 숫자를 체크해 가며 보고서를 천천히 훑었다. 물 흐르듯이 내려가던 펜이 우뚝 멈추는 지점. 그간의 의료 소송들에 관한 자료들. 확실히 다른 병원보다 발생 비율이 높긴 했다. 수술 후 부작용으로 인한 게 대다수.
지이이잉-
“여보세요?”
-사장님. 보고서 받으셨죠?
“지금 확인하고 있어.”
-말씀드리는 걸 까먹었는데요, 기본 정보 보시면 병상 수 보이시죠.
나는 호운의 말에 종이를 앞으로 넘겼다. 개원 당시 보건소에서 허가받은 병상은 100개 정도.
“그런데?”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걸 찾았는데, 어떤 사람이 병원 사진을 남겼더라고요. 본관 뒤쪽에 입원 시설 증축됐다고. 사진 보내 드릴게요.
호운이 보내온 컬러 메일을 보니, 로비에 있는 식당 안쪽 길로 통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나야 가질 않았으니 알 턱이 없지.
-그런데 사이트에는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거든요. 포스팅 날짜 보니까 증축한 지는 꽤 됐어요.
흐음. 이것 봐라. 구린 냄새가 풀풀 나는구먼. 막히는 부분은 김 실장에게 소개받은 회계사에게 자문을 받고, 아침에 출근한 팀원들이 한마디씩 거들어 가며 도운 결과,
“야. 막내야.”
깜장이 의자에 기댄 채 나를 불렀다. 그의 손에는 보고서 용지가 들려 있었다.
“여기 개판 중의 개판이네. 말 그대로 쌍 개판이야. 뭐 이런 곳이 병원 간판을 다 달고 있냐?”
쌍 개판. 그것이 우리가 대양종합병원에 내린 결론이었다.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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