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15
“죽겠다, 죽겠어.”
깜장은 입만 벌리면 저 소리를 뱉어냈다.
피의자이자 피해자가 백오십 명이 넘는 대형 사건.
일명 ‘고고나이트클럽 대규모 패싸움 사건’은 공중파 뉴스 메인에 걸려 내려올 기미가 없다.
아무래도 구마파 녀석들이 약 빨고 싸웠다는 것이 대중의 흥미를 자극한 것 같다.
‘덕분에 다른 사건 제쳐두고 이거 정리하느라 바쁘지.’
사람 상반신만큼 쌓인 서류더미가 책상을 넘어 바닥까지 널려있었다.
피의자 한 명을 검거하는데 소요되는 총 시간은 평균 181시간.
자료 분석 및 체포, 압수수색영장 발부 대기, 영장실질심사 등등.
바꿔 말하면 한 놈 당 일주일의 시간을 들여야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거다.
대부분은 구문경찰서로 이송되었지만 우리가 떠맡은 애들도 만만찮게 많았다.
“우엑.”
몽두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해댔다.
며칠째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속이 뒤집힌 모양이다.
다행이라면 구마파는 마약과 관련이 있다 보니 마약반으로 넘어갔다는 것.
나는 뻐근한 목을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던 팀장이 내게 물었다.
“막내야. 애들 진술 따왔냐.”
나는 진술서를 팀장 책상 쪽으로 넘겼다.
“다른 팀에서 진술 받은 거랑 합쳤습니다.”
팀장은 살아있는 시체처럼 멍하니 키보드만 쳐댔다.
다른 곳에 정신 팔 시간조차 없는지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모니터에 고정되어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진술서를 다시 가져왔다.
내가 읽어주는 게 편할 것 같군.
“읊어봐. 왜 싸웠는지. 대체 왜 싸워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건지. 개새끼들.”
“조직의 명예 이딴 거면 진짜···다 죽인다.”
팀장과 깜장이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눈동자까지 충혈되어 있으니 악마처럼 보인다.
남들이 보면 경찰이 아니라 좀비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나는 담담하게 진술서를 읽었다.
물론 조서를 작성하는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고고나이트 클럽 말입니다. 그거 포크파랑 구마파랑 같이 운영하던 거래요.”
“포크파 새끼들. 꼴에 술장사도 했나 보네.”
“구마파가 마약이랑 술 공수해서 돌리면 포크파가 업장 관리하면서 팔고. 뭐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놈들이 서로 이중장부를 갖고 있다 의심하고 있어요.”
“뭐?”
이건 좀 흥미로운 말인지 세 명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물론 여기서 흥미로운 관점은 ‘서로를 의심’하고 있다는 상황이다.
보통 회계에 관한 의심은 한쪽에서 한쪽으로 통하기 마련이니까.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거네.”
“아니면 둘 다 이중장부를 갖고 있을 수도 있고요.”
“서로 운영하던 영역이 달랐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셋은 제각각의 의견을 중얼거렸다.
“작년 여름 기준 매출 급감.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된 모양이더라고요. 수익 분배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고.”
“불만은 어느 쪽이?”
“포크파요. 공급만 빼고 업장 관리는 다 하고 있는데 가져가는 건 수익의 3할이었답니다.”
장사도 해본 놈이 해본다지.
이미 술장사, 사람 장사로 도가 튼 구마파에 놀아난 것이 분명했다.
용역에서 돈맛 좀 보겠다고 넘어온 모양인데, 어쩌다가 구마파랑 엮이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조무래기들에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으니까.
“아무튼 대충 사건 요지는 이렇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나이트 지분 때문에 그랬다 이거네.”
“그렇습니다.”
“일단 장부 확보해 놓고.”
“마약반에서 조사 중에 있습니다. 증거등록 하고 넘겨준답니다.”
“오케이.”
패싸움의 원인이 될 이중장부.
분석해야 할 자료가 또 늘었다.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어디가 이긴 걸까요?”
“바람 빠지는 소리 하고 있네.”
생뚱맞은 몽두의 말에 깜장이 건조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몽두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되물었다.
“사망자로 따지면 구마파. 치명상으로 따지면 포크파. 구마파는 중간급 간부가 잡혔지만 포크파는 송대악 도주. 아무래도 포크파의 승리인가요?”
“지랄. 별게 다 승리다. 진정한 승리자는 마약반 양반들이지. 현장 출동도 안 하고 고기 뜯어대잖아.”
“그럼 우리는요?”
“물어 뭐 해.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
“흐음. 성실의 범위가 넘어섰는데.”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쓰던 조서를 마무리했는지 개운한 표정이었다.
“참. 송대악 행방은?”
“폐쇄 회로 분석 중입니다. 서울 외곽으로 이동하는 것까진 확보했고요. 차량번호 수배 내렸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밥이나 먹고 하자.”
팀장의 말에 모두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며 컴퓨터 화면을 껐다.
밥을 먹어야 쉬는 시간이 생긴다.
진짜로 살기 위해 먹는 거나 다름없군.
에효. 달곤이한테도 가봐야 하는데.
달곤이는 송대악이 사주 한대로 자신이 나이트클럽의 책임자였다고 털어놨다.
패싸움을 하기 위해 조직을 불러 모은 것도.
클럽 내부에서 일어난 탈세 혐의도.
그리고 마약과 성매매 여부까지 모두 그의 죄가 되었다.
‘바보 같은 놈.’
달곤이를 돌려세울 방법이 있지만 아직은 시기 상조다.
법원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기회를 잘 엿봐야겠다.
띠디디디-띠디디디-
식당으로 내려가려는데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려댔다.
경험상 밥 먹기 전에 오는 전화는 하등 쓸데없거나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
나는 머뭇거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어쩌겠는가. 울리면 받아야지.
“네. 강력 2팀입니다.”
-여기 마약반인데. 장부 필요하다고 했었나?
“고고나이트 장부 말씀이시죠?”
-그래. 경리계에 넘길까 하다가 생각나서 말이야.
“아···”
굳이 지금 필요 없는데.
팀원들이 무슨 전화냐는 듯 쳐다봤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손짓을 하고 다시 수화기를 붙잡았다.
지금 말하고 있는 형사의 목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지금 올라와서 가져가.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내가 전화를 끊자 깜장이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마약반인데요. 장부 가져가라고요.”
“장부? 조사가 벌써 끝났대?”
“그런가 봐요.”
“뭐가 그렇게 빨라. 속독이라도 한 거야 뭐야.”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먼저 가서 드십시오. 장부 받아서 내려갈게요.”
“그래. 빨리 와라.”
식구들은 식당으로 내려갔고, 나는 마약반이 있는 위층으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형사과보다 뭔가 차분한 분위기다.
폭력적이고 난폭한 애들보다는 아무래도 조용한···
“느아아악!”
방금 한 말 취소다.
대부분 약에 취해서 반쯤 미치거나 혼이 나가있는 상태였다.
하나같이 눈가가 퀭하고 얼굴에 혈색이 어두웠다.
게다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발작 소리.
여기가 병원인지 경찰서인지 원.
나는 가까이 있는 형사에게 말을 걸었다.
점심시간이라 다른 형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강력 2팀 고지훈입니다. 장부 주신다고 해서 올라왔습니다.”
“장부?”
그는 오히려 나에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나와 그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내 통화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역시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군.
그는 바로,
“어. 손 형사. 내가 불렀어.”
왕옹구.
해수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였다.
목격자 자격으로 참고인 조사만 해달라고 해서 갔더니, 말 같지도 않은 심문으로 나를 몰아세웠지.
발악하던 나를 보며 비웃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군.
경찰서 자체가 워낙 넓고 외근이 잦다 보니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흘러내리는 것처럼 처진 눈과 입술.
예민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은 여전하다.
“장부는 왜요?”
손 형사라 불린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응? 왜?”
“사건 조사한지 이제 겨우 일주일인데 장부를 벌써 넘겨요?”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우리 할 만큼 하고 있잖아?”
왕옹구는 능글맞게 웃으며 내게 장부를 건넸다.
장부를 따라 움직이는 손 형사의 시선에는 어이없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필요하면 다시 받아오지 뭐. 식구가 필요하다는데 안 줄 수도 없고.”
우리가 먼저 달라고 한 거 아닌데.
손 형사는 말없이 웃옷과 담배를 집어 들고나가버렸다.
아마 옥상의 흡연실로 향하는 것이리라.
쾅-!
“우어어어···”
부서질 것 같은 문소리에 누워있던 마약사범이 움찔거렸다.
손 형사가 나가자 왕옹구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성질머리하고는.”
“저기, 왕옹구 형사님.”
“음?”
왕 옹구가 나를 훑어봤다.
20년 전. 취조실에서 봤던 눈빛.
뭔가 비열하면서도 사람의 속을 잡아 이끄는 힘이 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와 마주 섰다.
트라우마 때문인가.
저절로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아. 그 막내구나? 새로 왔다는.”
경찰서에서 나는 나름 화제의 인물이었다.
잘생긴 얼굴 하며, 발바리를 잡았던 경력, 게다가 고광의 후광까지.
왕옹구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나저나 나를 어떻게 알고 있대?”
역시 날카롭다.
얼기설기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아도 형사로서의 직감은 대단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방긋 웃었다.
일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게 중요했다.
“해수 사건 담당하셨던 형사님 아니십니까. 제가 해수 팬이었거든요.”
“아, 그거.”
“범인이 끝까지 부정한다고 하던데 아주 깔끔하게 사건 마무리하셨죠. 대단하십니다.”
나는 비아냥거림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왕옹구는 별다른 이상함은 못 느낀 것 같다.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증거가 확실한데 제깟 게 발악해 봤자 아니겠어.”
네놈의 증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지?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나는 장부를 꼭 쥐고 고개를 까딱였다.
“그렇군요. 증거품은 잘 받았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잠깐.”
“네?”
“나이트클럽에 지원 나갔었지?”
“맞습니다만.”
왕옹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작아졌다.
마치 은밀한 정보를 다루는 사람처럼.
“수사에 진전은 있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뭐 알아낸 거 있냐고. 아무대로 구마파가 엮여 있다 보니 마약 관련해서 건수가 있나 싶어서.”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런 것을 왜 일개 막내인 나한테 묻는 거지?
나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역시 이럴 때는 웃는 게 최고다.
상대방의 적의는 최소화하면서 나를 방어할 수 있는 행동이지.
“송대악을 쫓고 있긴 한데 아직 진전이 없습니다.”
“송대악 말고 다른 건?”
“제가 눈치가 없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직접적으로 여쭤도 되겠습니까.”
“아냐. 됐어. 그냥 하는 말이지. ‘식구’끼리 궁금해서.”
그러더니 왕옹구는 시계를 보며 혀를 찼다.
“식사 시간 다 끝나겠네. 손 형사 새끼 갑자기 나가서.”
“다른 분들 금방 오실 것 같으면 제가 여기 있겠습니다. 식사하시죠.”
“그럴래? 그러면 나야 땡큐지.”
왕옹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
음. 내 배에서도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장난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좋은 기회도 없으니 참아야겠지.
나는 왕 형사의 책상으로 다가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별로 특별한 게 없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고 업무와 관련된 서류만 가득했다.
그의 의자에 걸린 외투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부스럭
비닐 재질의 옷과 무엇인가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꺼내보니 은행 거래명세서였다.
통장에서 현금 이백만 원을 인출한 종이.
잔액은 삼만 원이라.
나는 영수증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후 가방을 뒤졌다.
젠장. 텅 비어있군. 뭐 제대로 된 게 없네.
“어? 뭐야? 강력팀 막내 아니야?”
“여기서 뭐 하냐?”
그때 식사를 마친 마약반 형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음. 냄새가 얼큰한 걸 보니 오늘 식당 메뉴는 육개장인 것 같다.
그들은 이를 쑤시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털었다.
“장부 가지러 왔다가 왕 형사님 식사하신대서요.”
“그 양반 너무하네. 어서 가. 오늘 육개장 맛있어.”
“하하. 이미 늦은 것 같네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역시 내 코는 정확하다니까.
나는 형사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마약반을 나왔다.
점심 식사는 그른 것 같다.
나는 굶주린 배를 쥐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환대하는 것은 깜장의 핀잔.
“너는 장부를 만들어서 오냐?”
팀원들이 볼록한 배를 두드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내 책상에는 편의점에서 사온 우유와 빵이 놓여있었고.
와. 대박. 감동이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장부를 들어 보였다.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오늘 육개장인데 더럽게 맛없더라. 그거나 먹어.”
“장부 증거물로 올리고.”
“넵.”
나는 빵과 우유를 먹으며 종이를 넘겨봤다.
그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장부였다.
숫자와 거래처,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는.
“어?”
구석에 조그맣게 적힌 이름을 발견했다.
‘디케이’
아역배우 출신으로 아이돌로도 인기를 얻었던 연예인.
잘 나갔지만 음주운전과 폭행 시비로 한순간에 주가가 떨어진 케이스였지.
전생에서는 완전히 묻혀서 근황 듣기도 힘들었는데.
“여기서 이 이름을 보네.”
“누구?”
“디케이요. 아역배우 했던.”
“작년에 영화로 재기한다더니 파토난 모양이네. 소식이 없어.”
“왜요?”
“해수가 여자 주인공이었잖아. 촬영 중단이지 뭐.”
해수는 죽고 나서도 영화관에 종종 얼굴을 보였다.
워낙 인기가 많았던 터라 미개봉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흠. 디케이와 해수라.
죽기 직전까지 연관이 있었다 이거지?
“디케이한테 연락 좀 해볼까요? 장부에 적힌 대로 정산 받았는지.”
“오. 너 디케이 연락처 알아?”
깜장이 놀라워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몽두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까먹지 마요. 막내, 재벌 집 아드님이잖아요.”
“아아. 맞다. 우씨. 좋겠다야. 연예인 번호도 알고.”
“하하. 아니에요.”
진짜 아니랍니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
내가 직접 만나봐야 하니까.
만나서 해수에 관한 이야기도 좀 듣고.
나는 복도로 나와 디케이의 소속사에 연락했다.
“수안경찰서 강력팀 고지훈 형사입니다. 고고나이트 사건으로 디케이 씨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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