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68
이유진 선생은 펜을 잡고 머뭇거렸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곧 부장 선생님 오실 거라. 바깥에 나가시면 운동장 옆에 작은 공원 있어요. 파란 창고 있는 곳이니 찾기 쉬울 거예요.”
전형적인 책상 빼기.
수치심을 주는 것도 모자라 자리를 비우면 근무태만으로 눈초리를 받는다.
나는 이유진의 말에 번뜩 정신이 들면서 말을 바꾸었다.
“혹시 곤란하시면, 퇴근 후라도 좋습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곧 점심시간이니까요. 먼저 가 계세요.”
그녀는 씩씩하게 웃어 보이며 볼펜을 다잡았다.
책상 위는 물론 바닥까지 쌓여 있는 종이들.
해야 할 게 많은지 이유진은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창고를 찾아 나섰다.
학교 안은 텃밭이며 화단이 엉망이었는데, 관리가 전혀 안 된 것처럼 보였다.
미관상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쓰레기와 유리까지 널려있어 아이들 안전에도 위협적이었다.
운동장 옆에는 주차장이 붙어있었다.
“어쭈구리.”
내가 알기로 교사들 월급이 거기서 거기인 걸로 아는데.
주차된 차들 반절이 고급외제차였다.
나는 대충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담임을 기다렸다.
몇 분 지나자 학교 전체를 울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
희미하게 카레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운동장 입구 쪽에서 이리로 오는 여자가 보였다.
“많이 기다리셨죠?”
이유진은 내게 음료수 캔을 건넸다.
“아니요. 일은 다 보셨어요?”
“네. 그런데 빨리 들어가 봐야 해서요.”
이유진은 젖은 앞머리를 매만지며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점심도 먹지 못한다는 말인데.
나는 그녀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군.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이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놀라셨죠?”
“···네. 명보도 명보지만 선생님은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더군요.”
학교에서 책상 빼기는 다른 곳에서 당하는 것보다 수치심이 수배는 들것이다.
동료 교사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시선.
“책상 빼기 당한 거죠. 아, 정말. 저는 교사 돼서 이런 일 겪을 줄은 몰랐어요.”
내 질문에 이유진이 살포시 웃었다.
참으로 씁쓸해 보이는 미소다.
“명보는 요즘 학교에 안 나오고 있어요. 아니, 못 나온다는 게 맞는 말이려나.”
“팔은 좀 괜찮은가요?”
“몸이야 시간이 지나면 낫는 법이니까요.”
그래. 몸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지.
다 큰 성인도 폭행당하면 그 충격이 어마어마한데, 아이가 학교 애들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면···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명보 일 궁금해서 오셨다고 했죠?”
“네. 얘기 들어보니까 합의되었다고 하던데.”
“일단 결론만 말씀드리면, 합의 아닌 합의를 당해서 보호자 면담도 못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녀는 입안에서 말을 잠시 굴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먼저 시작할까, 하는.
“인후라고, 사건 주동자인 아이가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덩치 엄청 큰 애 아니에요.”
“명보 옆 반인 아이인데, 공부도 상위원인데다 통솔력도 좋아서 학생회장을 맡고 있거든요. 성격이 조금 날카롭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평판이 좋은 아이였어요.”
이런. 슬슬 각이 나오는걸.
“반면 명보는 조용한 아이고요.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이랑 잘 못 어울렸죠. 그런데 그거는 각자의 성향이라고 생각했어요. 드문드문 함께 지내는 친구도 있었으니까. 하아.”
이유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아이를 신경 썼어야 했다는 자책 담긴 한숨.
그녀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인후네 집안이 좀 잘사는 거로 알고 있어요. 풍계재단에 기부도 많이 하고. 부모랑 이사장이랑 어디 모임 출신이고, 뭐 그렇다는 걸 들은 적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대면해서 사과는 받아야죠.”
“그렇죠. 사과, 받아야죠. 명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인후랑 가해자 애들 부모들이 찾아와서 돈을 내줬어요. 어이없는 건, 그 사실을 명보랑 할머님이 몰랐다는 거예요.”
“네?”
그야말로 진짜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이해 안 된다는 식으로 되묻자, 이유진은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쳤다.
“사과는커녕 인사도 없이. 그냥 돈만 냅다 주고 간 거죠. 병원비 처리하러 가서 제가 알았어요. 아시려나 모르겠는데, 명보네 할머님이···”
“알아요. 귀가 안 들리신다고.”
“연세가 많아서 거동도 힘드세요. 명보가 극구 말려서 학교폭력이란 말도 못 꺼내게 해요. 충격 받으면 쓰러지실까 봐. 그래서 그냥 사고 난 줄만 아세요.”
나는 이유진의 말을 묵묵히 수첩에 기록했다.
“그러면 합의도 정식으로 된 게 아니네요?”
“네. 제가 그거 따졌다가 복도로 쫓겨났잖아요. 망할 교장 개새끼. 아, 죄송해요.”
이유진은 분을 못 이기겠다는 듯 욕설을 내뱉었다가 내게 사과했다.
이렇게만 들어도 대충 사이즈가 나온다.
노쇠한 할머니와 사는 명보에게는 끝까지 갈 권리조차 없었던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받을 권리.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에요. 명보 측은 제대로 된 보호자도 없고, 인후 쪽은 친구들끼리 ‘장난’치다 그랬다 하고. 유야무야 마무리. 하아. 진짜 요즘 회의감 장난 아니라니까요. 제가 애들 채점 따위만 하려고 선생 된 게 아닌데.”
그녀는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후 대학 진학 때문에 생활기록부에 흠 안 잡으려고 이러는 거예요. 아무리 고등학생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명보는 뭐래요?”
“···됐대요.”
“네?”
“병원비라도 얻었으니 됐다고, 그만 하자 하더라고요. 그게 피해자 입에서 나올 말인지. 창창한 아이 입에서 나올만한 말이냐고요.”
이유진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뜨뜻한 바람이 불면서 그녀의 앞머리를 흩뜨렸다.
그때 교정으로 들어오는 검은색 외제차가 보였다.
“저기 오네요.”
“네?”
“저게 교장 차거든요. 학교 나오는 게 동네 마실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오고 싶을 때 와서 가고 싶을 때 간다니까요.”
외제차는 교정 한 가운데 멈췄다.
그리고 운전하던 기사가 나와서 차 문을 열어줬다.
짧고 뭉툭한 연필이 생각나는 체형. 교장은 한 여자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저건 누구죠?”
“이사장이요. 교장이랑 부부사이에요. 여기, 완전 로열패밀리거든요.”
“로열패밀리요?”
“막내딸이 영양사. 이사장의 사위가 부장 선생님. 행정실 대부분은 사촌에 팔촌까지 득실득실해요.”
주차장에 있던 외제차 대부분이 행정실 직원들 것인가 보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학교 상태도 그렇고, 일 처리 하는 부분도 그렇고.
상당히 구린 냄새가 많이 풍겼으니.
“선생님.”
“네?”
“책상 빼기까지 당했는데, 명보 도와준 거 후회하세요?”
유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일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니요. 전혀요. 오히려 제가 더 못 도와줘서 그게 화날 뿐이에요.”
“계속 저항했다간 교사생활 끝날 텐데요?”
“교사생활이 끝나는 거지 제 인생이 끝납니까?”
이유진은 어이없다는 식으로 대꾸했다.
“이런 말 뭣하지만, 저 아직 젊고 똑똑해요. 입에 풀칠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짧은 인생, 양심 거스르면서까지 살고 싶진 않아요.”
그녀의 소신은 작지만 단단했다. 그리고 반짝였다.
아직 이런 선생이 남아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어쩌면 명보는 이러 면에서 행운아인 것 같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옷을 털면서 일어섰다.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앞뒤 다 잘라먹고 말해서인지, 이유진의 입술이 살짝 일그러졌다.
못미덥다는 표정.
“어떻게요? 학교 폭력, 경찰이 처리하기 좀 까다로울 텐데요.”
사실이었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보통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약칭 학폭위를 주로 떠올리지만, 실상은 여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절차가 복잡한 것은 물론이요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니까.
“인후네 집안이 학교 측이랑 긴밀해서 그런지 주위 친구들도 입 싹 닫고.”
게다가 주최 측이 학교와 교육청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사건보다 경찰 개입이 제한된다. ‘학교’라는 공간 특성이 수사권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그런 거 다 필요 없습니다. 법과 제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거든요. 뭐든지 같이 하면 덜 힘드니까, 제가 도와줄게요. 이 선생님도 저 도와주세요.”
내가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진 역시 긴가민가해하며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잘 모르겠지만, 한배를 타도 좋다는 뜻.
“선택의 여지가 있나요. 곧 있으면 저도 쫓겨나게 생겼는데, 나가기 전에 깽판 한번 쳐야죠. 자! 제가 뭘 하면 되나요?”
씩씩한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깽판은 넣어두시고요, 일단 스타트를 끊어보죠. 제가 명보 설득해서 면담 자리 데려갈게요. 선생님은 내부고발만 해주시면 됩니다.”
“내부고발이요?”
“네. 불씨만 붙여주시면, 제가 확실하게 키워드리죠.”
이유진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그리고 고심하는 듯 눈을 감더니 이내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듯.
“제가요. 대학교 다닐 때 피피티 자료조사 하나는 끝내줬거든요.”
“아하. 그러세요?”
“기대하세요. 싹싹 긁어 줄 테니까.”
***
풍계고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
낡은 주택들이 성냥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나는 이유진이 적어준 주소를 들고 좁은 길을 계속 헤맸다.
분명 근처까지 온 것 같은데···
“아. 여기다.”
드디어 종이에 적힌 주소지를 찾았다.
주소 명이 박힌 팻말은 녹이 잔뜩 슬어서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로 보이는 지하실.
똑똑-
“명보야.”
밖과 안의 경계가 하나의 문으로만 이루어진 집.
불투명안 유리창 안으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아이는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안녕?”
“어. 경찰 아저씨.”
명보는 한눈에 나를 알아보고 문을 활짝 열었다.
아이의 집은 작고, 습했으며, 조용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많이 가라앉은 붓기. 왼팔에는 여전히 깁스가 끼워져 있었다.
“몸은 좀 어때.”
“그냥저냥 똑같아요.”
“할머니는?”
“안에서 낮잠 주무시고 계세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주무시나 보군.
나는 사온 음료수를 명보에게 건넸다.
“들어오세요. 집이 좀 누추하지만.”
작은 방에 책상 겸 식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 음료수를 하나 깠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떼었다.
“학교 안 나온다고 들었는데.”
“···팔 다 나으면 가려고요.”
어색한 침묵.
명보는 명보 나름대로, 나는 나 나름대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나는 직설적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선생님한테 상황 설명 다 들었어. 합의금도 제대로 못 받고 그랬다며.”
명보는 죄라도 지은 듯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 자세를 취할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피해자인 아이가 이러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이렇게 끝내면 안 되지. 명보야. 가해자 애들한테 합의금도 제대로 받고, 사과도 받자. 걔들, 제대로 벌 받게 해야지.”
“아저씨. 저는요. 제 분수를 알아요.”
“뭐?”
“인후 걔랑 싸워봤자 계속 피 터지는 건 저에요. 여기서 끝낼 수 있으면 오히려 고마울 정도니까요.”
“명보야.”
“법정까지 가면 제가 버틸 수 있겠어요? 할머니는 저러고 있는데, 대학 가는 것조차 꿈처럼 느껴지는데. 재판이니 뭐니 하면서 쓸 돈도, 시간도, 여력도 없어요. 앞으로 1년 남았으니까···그냥 잘 지내볼게요.”
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힘을 실어서, 명보에게 내 진심이 닿을 수 있게끔 말했다.
“명보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가난한 건 가난한 거지 당하고 살아야 한다와 동의어가 아니라고.”
“아저씨는 몰라요.”
“내가 모르긴 뭘 몰라 임마. 아저씨도 쫄쫄 굶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어.”
전생에 느꼈던 고달픔. 외로움. 막막함.
알아도 너무 잘 알지.
“그런데 살면서 한 번쯤은 이렇게 기회가 찾아 올 때가 있어. 그걸 잘 잡아야 해.”
명보는 축축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저씨.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요? 저한테?”
“그냥. 그냥이란 단어가 얼마나 좋은지 아냐. 없는 이유도 만들어주잖아.”
명보는 음료수병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찌나 깊게 생각하던지, 몇 분 동안 말이 없었다.
아이는 할머니가 자고 있는 방을 봤다가, 나를 봤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변호사랑 그런 거 쓸 돈 없어요.”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웃어 보였다.
“괜찮아. 아저씨가 돈 많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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