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28)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28)
레너드는 그 다음날부터 3개월의 공백을 부정하듯이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버뮤다〉에 얼굴을 한 번 내밀고, 아직 치안이 불안한 구역들을 순회하면서 잔당을 소탕했던 것이다. 초월경이 되기 전에도 초월경이나 다름없는 신위를 자랑했는데, 그 대경계를 돌파한 후의 레너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용안으로 본 시야는 슬럼 깊숙이에 숨어들었던 놈들도 쉽게 찾아낼 수 있었고, 전투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오의를 쓸 것까지도 없이 일검으로 모조리 끝장내버렸다.
“하루에 수백 명, 아니 천 명은 베어넘긴다더군. 외곽지역이 며칠만에 안전지대가 된 것도 그래서라던데?”
“파블로의 목을 날려버린 당사자 아니겠는가! 초월경이라면 그 정도는 별로 어렵지도 않겠지.”
“16살에 소드마스터라니…저 멀리 카르데나스에 존재한다는 반신경도 그리 허황된 소리가 아니겠구만. 아쿠아마린은 이제 ‘와일드헌트’고 ‘자라탄’이고 다 제껴버릴 수도 있겠어.”
“신임 마탑주와도 친하다니, 정치적인 입지도 대단하지. 곧 〈연합의회〉에 들어가게 될지도 몰라!”
그 과정에서 레너드의 실존여부마저 의심했던 분위기가 쏙 들어가고, 향후에 그가 어떻게 처신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아쿠아마린의 단원 한 명으로 잔류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존재가 되어버렸던 탓이었다.
초월경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해있었던 파블로를 단신으로 쓰러트린 것도 모자라, 16살밖에 안 된 나이가 성장잠재력을 고평가하게 만들었다.
레너드가 수십 년 후라도 반신경에 도달한다면, 이 바다의 제왕이나 마찬가지인 권위를 지닐 터였다.
“남부와 중부대륙에 있는 마탑들과 조율해서 공간문 일정을 예약해뒀다네. 아르카디아 제국의 국경까지 하루도 안 지나서 도착할 수 있을걸세.”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든 의원님.”
그러나 그 호사가들이 모르는 장소에서, 아틀란티스를 떠날 준비가 다 끝나가던 레너드였다.
몇 주간의 활동내역은 어디까지나 아쿠아마린을 떠나더라도 제 존재감을 남기기 위함이었고, 폐관수련으로 안정시킨 몸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니게 고든까지 압박한 셈이 되었지만 말이다.
“설마 한 달도 안 지나서 아틀란티스의 민심을 휘어잡다니, 솔직하게 말해서 정적으로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로군.”
레너드가 정말로 떠날 생각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 삼키지 못한 안도감이 그 숨결로부터 진득하게 묻어나왔다.
8위계의 대마법사이자 저번 사건에서 큰 지지도를 얻게 된 고든이었으나, 아쿠아마린의 부활을 주도하고 파블로의 목을 친 레너드보다 더 인기가 좋을 순 없었다.
그의 심경을 알아차린 레너드가 한 걸음 물러섰다.
“명망(名望)은 일시적으로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 위정자의 기준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고든 의원님도 제 출신가문을 알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음.”
그 말에 침음성을 흘린 고든이 말했다.
“너무 불쾌해하진 말게나. 본토에서 가볍게 수소문을 한 게 바로 결과가 나올지는 몰랐지.”
“괜찮습니다. 제 상황이 흘러나간 것도 아니고.”
레너드는 무덤덤하게 답했지만, 그의 정체를 이해하고 있는 고든으로서는 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카르데나스 대공가.
아르카디아의 무력을 대표하는 삼공 중에서도 최강의 검문. 8위계의 대마법사라고 해봤자 반신경도 여럿이 도사리고 있는 가문에 큰소리를 낼 순 없다. 무엇보다도 레너드에 대한 것을 깨닫게 된 소식부터가 무시무시했다.
‘크루지스 왕국을 초토화한 것도 모자라서, 실종된 혈족 한 명을 찾아내려고 중부대륙을 샅샅이 뒤집어놓았다지? 설마 이 초월경의 소년이 그 당사자일 줄이야.’
그의 불안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레너드가 엷게 미소를 띤 얼굴로 이야기했다.
“본가에 돌아가면 고든 의원님의 조력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전달하겠습니다. 내륙 마탑에 있는 공간문의 사용허가를 받아주신 것도 모자라, 일정까지 조율해주셨으니까요. 카르데나스 가문에서도 기억할 겁니다.”
“크흠!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네만, 자네가 그렇다면야 나도 기쁘겠군.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부탁하겠네.”
두 사람은 그렇게 악수하고,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를 파했다.
고든과의 만남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아틀란티스를 떠나기로 한 날까지 부지런히 활동하다가, 마침내 레너드는 초장거리용 공간문이 존재하는 마탑의 비밀공간에 들어섰다.
카르데나스 가문에서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생김새였으나, 그 안에 내재되어있는 마법식의 복잡함과 마나량만큼은 과연 대단한 수준이었다.
공간문의 설비에 손을 댄 러셀이 생경하다는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거의 1년만에 사용해보는군. 전대 마탑주가 내륙에 다녀올 때를 제외하면 쓸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공간문은 한 차례 발동시킬 때마다 무지막지한 양의 마나를 소모하는데다, 문의 내구도가 상당히 마모된다고 한다.
그러니 대부호라고 해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용료가 비쌀 수밖에 없고, 마탑의 기밀시설 중 하나다보니 신원이 확실한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레너드도 고든과 러셀 두 명이 아니었다면 내륙까지 배를 타게 되었을 터였다.
“고든과의 이야기는 잘 끝냈나? 뭐, 카르데나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니 귀찮게 하진 않았겠다만.”
“잘 풀렸습니다. 권력욕은 있어도, 그걸 악의적으로 행사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협력자로 나쁠 건 없지요.”
중원에서도 몇 번인가 직접 경험해본 인물상이었다.
집단이나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하지만, 그 자리에서 사욕을 챙기기보단 명예욕과 권위로 만족하는 자였다. 무능한 인물이라면 사리사욕 없이도 크게 문제가 될 여지가 있으나, 고든 헤이우드는 나름대로 유능한 정치가였다.
인간의 탐욕이나 악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선량하기만 한 사람과 비교해서 다방면으로 융통성이 있다.
“그런가? 하긴, 악인이라기보단 타고난 속물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작자긴 하지.”
마지막까지 고든을 한 번 씹어뱉은 러셀이 공간문의 점검을 끝마치고, 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잊어버린 물건이나 용건은 더 없겠지? 내가 준 물건은?”
레너드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에 제 주머니에서 꺼낸 징표를 흔들어보였다. 고든에게 질 수 없다는 경쟁의식인지, 마탑주의 직인이 찍혀있는 패를 준 러셀이었다.
본토의 마탑보다 지위가 반 수 떨어진다는 아틀란티스라도, 마탑주의 자격을 지닌 마법사는 극소수였다.
7위계, 아니 곧 8위계가 될 러셀이라면 본토의 마탑주로 갈 수도 있을테고 말이다. 용안으로 그 격을 들여다본 레너드가 작별인사를 건넸다.
“재회하는 날이 올 때까지 무탈하십시오, 러셀.”
“자네야말로 몸 조심하게. 아쿠아마린과 함께 파란을 몰고 온 것도 그렇고, 평온하게 살 운명은 아닌 것 같으니까.”
“평온을 소망했다면 검을 쥘 일도 없었겠지요.”
무의 궁극을 목표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평온이란, 그 명이 끊어지고 나서 주어지는 것이다.
수라도에서 한 걸음 벗어난 레너드도 그걸 부정할 순 없다. 호신(護身)도, 멸적(滅敵)도 결국 투쟁의 일환이다. 무인이라면 그 생명이 끝나거나, 무예를 아예 내려놓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나선이었다.
잭 러셀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평온이 아닌 무운을 빌지. 잘 돌아가게나!”
그의 마력이 흘러들어간 순간, 마탑의 심층부에 잠들어있던 공간문이 제 안의 잔류마력을 토해냈다. 소음이나 진동만큼은 카르데나스에 있었던 공간문과 별 차이가 없었다.
웅웅웅웅웅웅?!
직사각형으로 뚫려있었던 공간문의 여백에서 무지개색 빛이 흘러나오고, 그 내부로 뻗어나간 감각도 일그러지면서 3차원 생물의 지각능력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왜곡이 발생한다.
카르데나스 저택에서 갈라파고스 섬으로 갈 때에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레너드와 지금의 레너드는 달랐다.
‘보인다.’
세계법칙의 수호자, 드래곤의 통찰에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마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 하나를 기반으로 재현가능한 현상은 아니었으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은 가능했다.
공간좌표계의 점과 점을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굴곡점.
예전과는 달리 베어낸다면 무력화할 수 있었다.
‘[매스 텔레포트]의 폭주현상도 벨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공간계의 고위마법에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은 호재인가.’
레너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공간문으로 걸어들어갔다.
한 걸음.
그와 동시에 자기자신을 스쳐지나가는 공간왜곡의 압도적인 흐름을 느끼면서, 그제서야 아틀란티스에 잊어버리고 온 것을 하나 떠올렸다.
‘…이런, 허먼과의 비무약속을 잊었다.’
결과적으로 허먼에게 바람을 맞히게 된 레너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틀란티스로 돌아가는 길 따윈 보이지도 않았다.
아틀란티스에서의 여정은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
* * *
“이야기는 전해들었습니다. 다음 지역으로 통하는 공간문을 열테니, 바로 이용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레너드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상황을 경험하면서 공간문 너머로 뛰어들었다. 초월경을 돌파한 덕분인지, 아니면 용안을 뜬 덕분인지는 몰라도 현기증이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아틀란티스 해상연합에서 아르카디아 제국까지의 거리는 그 문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각 마탑에 설치되어있는 공간문의 이동거리도 한계가 있어, 한두 번도 아니고 두 자릿수에 달하는 횟수를 이용해야했다. 고든이 미리 일정을 조율하지 않았더라면 한 번 넘을 때마다 며칠에서 몇 주를 기다렸을테니,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도 중부대륙의 경계를 넘었으니 곧 도착하겠군. 다음번 마탑부터는 제국 영토로도 갈 수 있다니, 앞으로 두세 번이면 충분하겠지.’
이제 지겹기까지 한 공간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 굴곡점의 종착점에 도달한 레너드가 걸어나왔다.
그러자 공간문의 개폐를 관리하던 마법사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또한 익숙하기 그지없는 반응이었다. 공간문을 연속으로 두 자릿수나 이용했다면 현기증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정상이었으니까.
“저기, 여기서부터는 아르카디아 제국 내부로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관리마법사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서 대답했다.
“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국 영토에서는 위클라인 가문이 공간문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허가를 받아야합니다.”
“허가는 어떻게 받습니까?”
“어…통신수정구로 방문 목적과 신원을 전달하고, 외국인이 온 경우에는 전이 직후에 제국관리와 만나셔야합니다. 국적이 혹시 어떻게 되시는지요?”
“제국인입니다. 신원증명은 저 스스로 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당사자가 할 일이라면서 관리마법사가 수정구를 몇 번 건드리자, 탁하게 번들거리던 수정구에 빛이 머물면서 곧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비치기 시작했다.
위클라인 가문에서 설립한 조직, 신비협회의 로브를 걸치고 있는 중년인이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관리마법사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공간문의 사용허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용자의 방문목적과 신원을 말씀하십시오.}
거기까지 말하고 관리마법사가 몸을 비켜주자, 레너드가 그 수정구 앞에 나와서 상대방과 눈을 마주쳤다.
“가문으로의 복귀, 카르데나스의 레너드입니다.”
{그래요. 카르데나스 가무…운? 예? 다시 한 번만.}
“카르데나스 가문, 레너드입니다.”
중년인은 물론이고 옆에 서있던 관리마법사도 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국 내부에서는 공간문의 이용이 쉬운 편이었으나, 그래도 접근성이 괜찮다고는 할 수 없었다. 카르데나스에서 공간문을 쓸 정도라면 상당한 위치에 있을 텐데, 그 중요인물을 갑자기 만났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서임받은 직위나 작위가 따로 있으십니까? 신원확인의 절차에 필수적으로 진행되는 일인지라….}
스콰이어도 아닌 상태로 실종되었던 레너드가 직위와 작위 따위를 가졌을 리가 없었다.
이대로면 일이 귀찮아질 거라고 판단한 그가 설명했다.
“그 대신에 가문으로 짧게 연락을 넣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갈라파고스 섬에서 사라졌던 레너드가 돌아왔다, 라고 전하면 금방 답신이 올 겁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한층 더 정중해진 신비협회의 마법사가 자리를 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레너드가 조금 전에 빠져나온 공간문이 갑자기 작동하더니, 관리마법사가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공간왜곡이 발생하며 소음과 진동을 토해냈다.
웅웅웅웅웅웅?!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관리마법사가 이 장치 저 장치를 건드려봤지만, 이미 개방된 공간문은 정지시킬 수 없었다.
왜곡된 공간을 바라보던 레너드는 저도 모르게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가,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누군가가 온다. 지금의 날 위협할 수 있는 실력자가.’
그의 추측을 긍정하듯이, 공간문의 왜곡 너머에서 두 명의 그림자가 벼락처럼 튀어나왔다.
한 사람은 레너드도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유룡기사단장 파비안.
훈련소까지 찾아와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훈련자원을 몇 배나 올려서 지급해준 자였다. 과거 레너드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크루지스의 초월경, 다섯 번째 그림자를 간단하게 제압해버린 강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설마.’
레너드의 두 눈은 파비안이 아니라 그 옆에 내려앉은 괴물, 용안으로도 심상을 볼 수 없는 누군가에게 못박혀있었다.
상대방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매처럼 예리해진 눈으로 그를 마주보면서 검 자루에 손을 올려놓았다.
승산은 2할 미만.
본능적으로 우열을 잰 승부사의 감각이, 당장이라도 선공을 가해야한다고 포효한다.
“파비안, 아무래도 네가 틀린 것 같은데? 이건 천재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괴물이구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자면 30살도 안 되었을 듯한, 백발의 괴물이 유쾌하다는 눈빛으로 미소지었다.
그가 검 자루에서 손을 뗀 후에야 레너드도 폭발 직전이던 심상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상대방이 검을 뽑았더라면 정말 목숨을 건 심상무예를 전개했을지도 모른다.
전생의 천하제일인, 천마 단목진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
‘반신경(半神境)의 강자…!’
카르데나스 내부에도 공식적으로 7명밖에 없는 존재가 그의 눈앞에 뚝 떨어졌던 것이다.
레너드에게서 눈을 떼어놓지 않은 채, 백발사내가 말했다.
압도적인 존재감과 달리 두 눈에는 장난기가 넘실거린다.
“내 정체는 짐작하고 있지?”
“…예.”
“7명 중에서 한 명 찍으라고 하면 좀 그러니까, 자기소개를 해주마. 나는 백룡기사단장 데미안이다.”
7대 기사단 중에서도 신비롭기로 유명한 백룡기사단의 1검, 데미안과 레너드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