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24)
주백도 역시 알지 못했다. 과거에 어떤 비화가 있었겠거니 한다. 천하제일의 보법을 이곳에 숨겨야 하는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다. 후계 다툼의 과정일 수도 있고, 어느 대 천마의 잘못된 사랑의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의 그릇된 야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풍신사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비급의 첫 장을 열었다. 본격적인 구결에 앞서 도도하게 적힌 한 줄의 글귀가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천하를 걷기에 네 걸음이면 충분하다. 그래, 이거지!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공인데 이 정도 도도함은 있어야지. 풍신사보는 크게 네 초식으로 이뤄져 있었다. 암영보(暗影步) 점멸보(點滅步) 명왕보(冥王步) 쾌속보(快速步) 첫 번째 걸음인 암영보는 어딘가 잠입할 때의 보법이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눈을 피하는 정도지만, 경지가 오를수록 피할 수 있는 숫자가 늘어난다. 암영보가 대성을 이루면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두 번째 걸음인 점멸보는 방어를 위한 보법으로 피할 수 없는 공격이 날아들었을 때, 반드시 살길을 찾아내는 회피법이었다. 세 번째 걸음인 명왕보는 상대를 향해 파고드는 보법이었는데 어떤 방어나 회피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마치 명왕보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내가 열어줄 테니, 목은 네가 따라. 따라서 명왕보와 점멸보는 그야말로 모순적이었다. 반드시 피하는 보법과 반드시 파고드는 보법, 두 초식이 충돌한다면 무공을 펼치는 무인의 자질에 따라 창이 부러지든, 방패가 뚫리든 할 것이다. 마지막 걸음인 쾌속보는 빠름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경공술이었다. 쾌속보의 경지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중원은 좁아질 것이다. 대성을 이룬 쾌속보라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이동을 보여줄 것이라 확신했다. 결국 풍신사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스며들고, 피하고, 공격하고, 달리고. 누군가를 상대함에 있어 이 완벽한 네 발걸음이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나는 천마서각 구석에 앉아 조용히 구결을 외워나갔다. 이안의 조언은 충실히 받아들였다. 챙겨온 육포로 끼니마다 잘 챙겨 먹었고, 잘 시간이 되면 푹 잤다. 대신 맑은 정신으로 남은 모든 시간을 풍신사보에 집중했다. 구결의 깊이는 바다처럼 깊었고, 담긴 뜻은 하늘처럼 넓었다. 하나의 훌륭한 초식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변형시켜서 사용하라고 만든 무공이었다. 그래서 수십 개의 초식으로 빈틈없이 꽉 짜인 무공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회귀 전의 인생이 없었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깊이였다. 그래서였을까? 한 번 읽을 때가 다르고, 두 번 읽을 때가 다르고, 열 번째 읽을 때가 달랐다. 그렇게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결에 빠져들었다. 천마서각에 들어온 지 칠 일 후, 나는 풍신사보의 구결을 완벽하게 외웠고 그것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겨우 일 성의 경지였고, 앞으로 계속된 수련으로 경지를 높여갈 일만 남았다. 나는 비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뜯어내서 삼켜버리고 나머지를 책장 아래에 받쳐두었다. 풍신사보는 천하제일보법에서 책장 받침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나는 다른 운 좋은 사람이 나타나서 풍신사보를 배우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내 욕망에 솔직하고자 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천마서각 밖으로 첫걸음을 옮겼다. 제22회 몰래 가르쳐주면 되죠. 천마서각에서 나온 나는 천마전부터 찾아갔다. “다녀왔습니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시던 아버지가 앞으로 다가오게 했다. “더 가까이 오너라.” 나는 다섯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 더.” 이번에는 세 걸음. “더.” 계단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아버지는 나를 탐색하고 있었다.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궁금하셨겠지만, 나는 풍신사보를 사용하지 않고 걸었기에 내 움직임으로 뭔가를 알 수는 없었다. “천마서각에서 무슨 무공을 익혔느냐?” “비밀입니다.” 당연히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아버지는 망설이지 않고 마기를 발출했다. “두 번 묻지 않겠다.” 날아든 마기는 앞서 도귀들이 보낸 마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따끔거리고 아픈 것이 아니라, 어두운 심연(深淵)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몸이 차가워졌고 진기의 흐름이 절로 느려졌다. 애초에 아버지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보법을 익혔습니다.” “어떤 보법?” “풍신사보입니다.” 이건 놀람이 만들어낸 정적이다. 이내 잠시 거두어졌던 마기가 다시 나를 덮쳤다.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정말입니다.” 마기는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끌어들였다. 마기가 목까지 차오르고, 얼굴까지 빠져드는 와중에도 아버지를 향한 내 눈빛은 숨기는 것이 없었다. 나는 늪과 같은 심연으로 한없이 빠져들었다. 숨이 막혀왔다.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질식의 공포가 나를 엄습해왔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거대한 뭔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 그것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를 짓누르던 것들이 사라졌고 나는 천마전의 붉은 융단 끝자락에 서 있었다. 마기를 거둬들인 아버지가 명령하듯 말했다. “네가 배웠다는 무공을 펼쳐봐라.” 아직도 아버지는 그것이 풍신사보임을 믿지 않았다. “그 대가로 뭘 주실 겁니까?”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누군가 조건을 걸며 뭔가를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테니까. “살려는 주마.” 나는 옅게 웃으며 뒤로 물러나 대청 가운데 섰다. 그리고 풍신사보를 천천히 펼쳐 보였다. 암영보가 펼쳐지자 아버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걸음부터 다른 무공과 다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게 풍신사보의 초식을 모두 마쳤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실전된 무공이었기에 아버지도 풍신사보를 오늘 처음 보았겠지만, 이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정확히 알아보신 것이다. “풍신사보를 어디서 익힌 것이냐?” 이제 아버지는 이 보법이 풍신사보임을 믿었다. “천마서각에서 익혔습니다.” 휘익.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질러 내 앞까지 온 아버지가 내 목을 움켜쥐며 차갑게 물었다. “감히 내게 거짓을 고하는 것이냐?” 당장에라도 내 목을 부러뜨리려 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내 몸에 손을 대는 순간이었고, 그 감정은 분노였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무공엔 진심인 아버지다. 그랬기에 저 자리에 있는 것이고, 이렇게 강한 것이겠지. 나는 이런 아버지를 이해한다. “천마서각에는 풍신사보가 없었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기운이 아버지의 손끝을 통해 전해져왔다. 앞서 심연에 잠겨 드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저는 분명 그곳에서 익혔습니다.” “거짓말이다!” “그 많은 비급을 다 보셨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보법이 꽂힌 책장이 아니라 다른 책장에 꽂혀 있었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넌 풍신사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몰랐습니다.” “거짓말!” “정말 몰랐습니다. 다른 무공을 익히려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딱 잡아뗐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는 믿지 않으시겠지만. 아버지가 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거두며 다시 물었다. “어디에 있었더냐?” “책장 아래 받침대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한데 네가 어떻게 발견한 것이냐?” “삐뚤게 받쳐져 있는 것을 바로 하려다가 발견했습니다.” 이 말을 믿어야 할지 고민하던 아버지가 수하를 불러 그것을 가져오게 하려다 말았다. “이미 비급의 중요 부분은 없애버렸겠군.”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잠시 나를 노려보던 아버지는 내게 날아올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태사의로 돌아갔다. “구결을 불러라.” 역시! 이래야 우리 아버지지. 내 목적은 아버지를 꺾고 천마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지난번과 똑같은 상황으로 화무기 놈을 기다릴 생각도 아니다. 놈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회귀의 목적은 아버지와 천마전 식솔들을 살리는 것이었으니까. 복수가 이번 회귀의 전부가 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복수는 회귀의 이유고, 회귀의 목적은 이번 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화무기를 죽인 후, 아버지가 자리를 물려주실 때까진 교에 묶이지 않고 천하를 떠돌며 즐겁게 살아갈 작정이다. 그때부터가 진짜 내 인생이다. 이 젊은 몸으로 거칠 것 없는 삶을 살 것이다. 내 자서전의 제목은 ‘인생은 검무극처럼’이다. 그런고로 아버지에게 보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공짜로는 안 되지. “싫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가 다시 내게로 날아오는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나는 재빨리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죠.” “사냥터에서 내가 가르쳐준 비기는 공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사냥터에서 드신 술값이지요.” 뻔뻔한 내 말에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더냐? 이렇게 뻔뻔한 놈이.” “커야 개기죠. 이제 키는 아버지보다 제가 큽니다. 이렇게 클 때까지 이 악물고 꾹 참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아버지. 저 못 이깁니다. 제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데요. “원하는 것이 있느냐?” “드릴 것이 무공구결이니 무공구결로 받는 것이 공평하겠지요. 마음 같아선 구화마공을 전수받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울 듯하니, 아쉬운 대로 천마호신공(天魔護身功)을 원합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천마호신공은 말 그대로 몸을 보호하는 호신공으로, 오직 천마에게만 전수되는 천마의 독문무공이었다. “불가(不可)!” “이쪽은 풍신사보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제가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천마호신공은 오직 천마와 그 후계자만이 익힐 수 있다.” “몰래 가르쳐주시면 되죠. 어차피 천마호신공은 절대 표나지 않게 발동하는 무공이니, 남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겁니다.” 외부에 알려질 일은 없는 무공이었다. 아버지의 고민이 느껴졌다. 정색해서 화를 내고, 강하게 압박하면 결국 나는 알려드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어쨌든 내 처지에서는 반드시 얻어야 하는 무공이었다. 천마호신공을 익히면 목숨 하나가 더 생기는 셈이니까. “생각해 보시고 기별 주십시오.”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신 풍신사보가 먼저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천마호신공의 전수를 결정하신 것이다. 정말 천마호신공을 알려주신다고? 어쩌면 아버지는 내가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어차피 팔마존들을 상대하다 죽을 놈이니,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좋습니다.” “왜 흔쾌히 받아들이는 거냐? 내가 풍신사보만 받고 알려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아들 앞에서 쪽팔린 짓을 하실 분은 아니시니까요.” 아버지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쪽팔린다는 표현까지 쓴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수를 쓴 거다. 아버지가 어찌 내 속을 모르겠는가?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렇지만 풍신사보를 그냥 넘겨드릴 수는 없잖아요?’ 다행히 아버지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리숙하게 무공구결을 바치는 것보다, 이렇게 대가를 챙기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실 분이니까. “좋다. 구결을 알려다오.” “네.” 풍신사보의 구결을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구결을 되새겼다. 세 시진이 지났을 때, 아버지는 풍신사보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펼쳐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