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rb only the power of the wicked and become the strongest on Earth RAW novel - Chapter (206)
제206화. 병적 존재
“…잠깐만.”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 중년 남성이 손을 들어 이성춘의 말을 끊었다.
“네, 청장님.”
이성춘이 대답했다.
참고로, 팔라딘 내에서 청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그레이엄.
‘왜곡하는 자’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팔라딘 전원을 총괄하는 청장.
지금 이성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바로 그 그레이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코바치 새끼들이 차원 하나를 멸망시킬 정도로 세력을 불렸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차원 하나를 멸망시킨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다른 차원에서 침공해 온 외계인들이 지구의 각성자를 포함한 몇십억이 넘는 인구를 모조리 멸종시켰다는 소리와 똑같은 말이다.
물론 작은 차원 하나를 멸망시키는 건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난도가 낮긴 하다.
인간들처럼 이성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들로만 득실거리는 차원이라면 말이다. 보통 메이저 클랜들이 점령한 차원들도 전부 그러한 곳들이고 말이다.
그래도 엄청난 병력과 화력이 갖춰져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저도 믿기는 힘듭니다만…. 물증만 봤을 때는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레이엄의 말뜻을 이해한 이성춘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사건이 일어난 45레벨 던전의 입구, 출구 포탈 쪽 CCTV를 일주일 전까지 돌려가면서 확인해 봤습니다.
하지만 몰래 들어갔거나, 김진성으로 의심될 만한 인물이 들어간 적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출입한 놈들이 누군지도 다 확인했고?”
“네. 거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트리운포 클랜원들이 드나들었고, 한 팀은 다름 아닌 알파 클랜입니다.”
그레이엄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가 굉장히 골치 아파졌을 때 자주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만약에, 정말로 그놈들이 차원을 점령한 게 맞는다면 이제 신대륙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고 봐야 해.”
“신대륙으로 차원 이동해서 기습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차원의 틈’은 던전 내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차원 이동은, 좌표만 알아내면 어느 차원으로도 통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구가 속한 중간계 역시 또 다른 차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알아낸 사람은 신대륙 내에서도 한 손에 꼽힙니다. 극비 중의 극비인 신대륙 쪽 좌표 정보가 설마 우코바치 쪽까지 흘러 들어갔겠습니까?”
“언제나 사건은 최악 중의 최악을 가정하고 수사하라. 가장 기초적인 이 규칙을 설마 잊었나?”
“…아닙니다.”
두 눈을 내리까는 이성춘을 바라보면서 그레이엄은 말을 이었다.
“각 메이저 클랜 마스터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행여나 신대륙 쪽 좌표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네, 청장님.”
“우리도 당분간 각 주요 시설에 병력을 더 배치하도록 한다. 특히, CCTV나 감지기 등 보안 시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취약한 지점에 한 명씩 교대 병력을 배치해서….”
그때였다.
“……!”
갑자기 이성춘과 그레이엄의 고개가 동시에 한쪽으로 홱 돌아간 것은 말이다.
같이 왼쪽 구석 땅바닥을 바라보던 중 이성춘이 입을 열었다.
“…분명 무언가 폭파 후 붕괴했습니다.”
방금 둘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왼쪽 멀리 떨어진 지하에서 울린 진동을 느낀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왼쪽 깊숙한 지하에는 ‘극비 수송 지하철’ 통로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레이엄은 벌떡 일어났다.
“남아 있는 전 병력을 모아서 ‘극비 수송 지하철’ 통로로 출동시켜!”
“네!”
* * *
그 시각.
방금 이성춘과 그레이엄이 언급한 ‘극비 수송 지하철’의 한 정거장 쪽 레일 위에 서 있는 한 남성이 있었다.
김진성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피를 흘린 채로 쓰러진 시체들이 즐비했다. 모두 이곳을 지키고 있던 방어 병력이었다.
“이 깊숙한 곳에 터널 진짜 잘 뚫어놨네.”
김진성이 느끼기엔, 건물로 따지면 대략 지하로 100층 이상은 내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깊숙한 곳에 지하철을 파 놨는데, 중력이나 공기 중 산소 배합 등 어떠한 것도 지상과 별다른 바 없이 똑같았다.
“괜히 ‘극비’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 아니었군.”
혼잣말하는 김진성의 머릿속엔, 여기로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박도준의 설명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었다.
[‘극비 수송 지하철’은 센터 지역을 중심으로 특정 지정 지역만 정거장이 지어져 있어.특정 지정 지역이 어디냐고? 전부 메이저 클랜 및 정부 부처와 관계된 곳.
즉, 메이저 클랜들이 본인들만을 위해 따로 지어놓은 극비 이동 수단이지.
이곳을 통해 이동하는 간부들도 많아. 일단 안전은 확실히 검증된 곳이니까. 그뿐만 아니라 겉으로 공개하기 꺼려지는 물자나 병력 등을 수송하기도 해.
있잖아! 뇌물이나 불법 각성제, 혹은 그런 것들로 불법 강화한 인간 병기들 같은 거.
만약 이 지하철을 파괴하잖아? 메이저 클랜들 입장에서는 아주, 매우, 굉장히 불편해질 거야.
평상시라면 모르겠는데, ‘우코바치’가 날뛴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이상 이제 언제 테러당할지도 모르는 지상으로 굳이 물자를 운반해야 할 테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들이 활동하기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이곳은 꼭 제거하는 편이 좋아.
위치?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러니까 너한테 추천하는 게 아니겠어? 바로 알려줄게.]
‘…메이저 클랜끼리만 공유하는 지하철이라….’
김진성은 다시 등에 멘 가방의 입구를 열었다.
‘아공간’ 능력이 장착된 가방 안에 손을 넣은 그는, 이내 가방보다 더 큰 마정석을 꺼내 지하철 통로에 장착했다.
‘이런 편의 시설까지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니까, 몇백 년이 흘러도 메이저 클랜 수가 변하지를 않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김진성은 마정석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곧 활성화가 되기 시작한 걸 확인하자마자 김진성은 반대편 통로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역마다 다 설치해서 터뜨려 놔야겠어. 그래야 복구를 못 하지.’
저 자폭 스킬이 저장된 마정석은 박도준이 개인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폭발력이 강한 물품이라고 했다.
김진성은 이걸 사용해 모든 정거장을 다 터뜨릴 계획이었다.
‘적들이 몰려오기 전에 서두르자.’
김진성은 더욱 빠르게 두 다리를 움직였다. ‘섬광’ 특성을 활성화한 그의 달리는 속도는 정말 빛처럼 빨랐다.
잠시 후.
콰아아앙!
등 뒤에서 굉음과 함께, 다시 한번 통로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몇 시간 뒤.
아까 이성춘과 그레이엄, 둘만 앉아 있던 회의실에 또다시 주요 마스터들이 모였다.
정말 중대한 사태가 벌어져 ‘긴급 비상 회의’가 열렸을 때만 볼 수 있는 광경을, 이성춘 입장에서는 이번 주만 벌써 두 번째 보게 된 것이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빨리 본론으로!”
“…네.”
지난번과 똑같이 용한길의 호통에 말을 중단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이성춘의 모습이었다.
그는 바로 스크린 화면을 넘기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오후 1시경부터 시작된 테러로 인해 ‘극비 수송 지하철’의 모든 정거장이 파괴되었습니다.”
“모든?”
“네. 한 정거장도 빠짐없이 모두 폭파되었습니다. 국토부 쪽 조사에 의하면, 아무리 빨라도 다시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데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허….”
많은 이들이 탄식했다.
최신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한 현대에 이르러서 3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은, 정말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인은 모두가 예상하셨듯이 ‘우코바치’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하철 내 모든 CCTV에 김진성이 자폭 마정석을 설치하는 모습이 촬영되었습니다.
김진성 이외의 인원은 한 명도 찍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김진성의 단독 행동으로 보입니다.”
“혼자?!”
“네. 현재 저희가 예상한 김진성의 경지라면 전혀 무리라고 보이진 않습니다.”
“음….”
다들 이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극비 수송 지하철 내에는 그렇게 많은 경비 병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김진성이 이 지하철의 위치를 어떻게 알아냈느냐는 겁니다.”
이성춘이 핵심을 파고들었다.
방어 병력이 많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말 그대로 ‘극비’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 지하철은 건설된 이후 단 한 번도 테러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이곳 위치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스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위치를 아는 사람은 각 메이저 클랜의 간부들과 정말 소수의 정예 멤버들뿐이다.
아마 현재 최고의 클랜인 알파 클랜 내에서도 이곳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모두가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위치를 안다 해도, 모든 정거장의 입구가 메이저 클랜 본사 내에 지어져 있기에 몰래 들어올 수도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김진성은 아무도 모르게 이 지하철에 숨어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넘어왔는지 확인했나?”
그레이엄이 이성춘에게 질문해 왔다.
“혹시, 아까 우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차원의 문을 열고 들어왔나?”
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제아무리 김진성이라 할지라도 메이저 클랜 본사 안까지 직접 숨어드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힘으로 밀고 들어와 입구에 진입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크다고 그레이엄은 맹신하고 있었다.
“그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성춘이 바로 대답하면서 스크린 화면을 몇 번 넘겼다.
그러자, 일반적인 깔끔한 통로가 아닌 누가 봐도 몰래 만든 것이 확실한 엉성한 통로를 찍은 화면이 스크린 위에 떠 올랐다.
“조사 결과, 김진성은 레드 14구역에 자체적으로 뚫어낸 이 지하 통로를 이용해서 드나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이 커진 그레이엄을 향해 이성춘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놀랍게도 이 통로는 최소 2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무래도 ‘우코바치’ 쪽에서 몰래 습격하기 위해 미리 뚫어놓은 통로라고 전문가들은 예상 중입니다.”
“…미친 새끼들.”
결국, 그레이엄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이게 우코바치다.
항상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테러를 일삼아서, 팔라딘들의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병적 존재.
당장 그레이엄도 두통이 오는 듯이 왼손으로 이마를 부여잡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들은 ‘극비 수송 지하철’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완벽하게 수직으로 통로를 뚫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 말에 모두가 스크린 위에 떠 오른 수직으로 된 비밀 통로를 바라보았다.
“이 지하철 위치를 적들이 알아낼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주요 간부들 가운데 스파이가 있군.”
“…그렇습니다.”
그 순간, 장내에 있는 마스터들의 얼굴이 모두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 중 누군가의 휘하 간부가 우코바치의 스파이다!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발각되는 순간 해당 클랜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