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80
화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에, 이 땅에는 괴물이 없었어. 그러니까 몬스터가 없었지. 그런데 이 세상에 문제가 생겼어. 어디선가 나타난 그것은 세상의 기운을 삼키고 커져서는 그 보다 작은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은 그보다 작은 것들을 만들었지. 그렇게 되어서 마지막으로 생긴 것이 바로 괴물, 자네들이 이야기하는 몬스터들이네.”
“그럼, 지금 하신 말씀이 몬스터, 부족코어, 지역코어, 대륙코어, 행성 코어의 단계를 밟아가는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네들은 그렇게 부른다고 하더군. 그래 그러니까 과거엔 없던 행성 코어란 것이 생기면서 이 세상은 끝도 없는 싸움이 시작된 거야. 그래서 우리 일족은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일족으로서 괴물을 잡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코어를 빼앗아서 원래 그것이 있던 대지로 돌려보내기 시작했지.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이어왔네.”
“저기 만약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요?”
“응? 그럼 당연히 더 많은 화이트 코어가 생기고, 또 더 많은 괴물이 생기고, 결국에는 이 땅위에는 괴물들만 살게 되겠지. 우리 대지의 일족뿐만이 아니라 자네들이 원주민이라 부르는 모든 이들은 공통적으로 그 일을 하네. 괴물, 그러니까 몬스터로부터 세상의 기운을 돌려받아서 다시 이 땅과 하늘과 물을 되살리는 일을 하지. 그렇지 않다면 결국 이 세상은 그것들의 세상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사실 하늘과 물은 이미 그것들의 세상이나 다름이 없어. 땅보다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쪽은 활동이 미미하지. 그래서 이젠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가 없을 정도가 되었지. 우리가 헌터들을 크게 배척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몬스터의 적이기 때문이네.”
“하지만 우리 헌터들은 몬스터의 코어를 밖으로 가지고 가지 않습니까. 그건 이 땅과 하늘과 물의 기운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행위인데요?”
“괜찮아. 세상의 기운은 어디로 가더라도 남아 있게 되는 거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기운들이 다시 그 괴물들에게 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일단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니까 말이야.”
그런 건가? 코어의 에테르가 어떻게 쓰이건 몬스터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는 걸로 만족한다는 건가? 행성의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는 것도 상관이 없고, 그저 몬스터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조금 근시안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어쩌면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에너지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니 틀린 이야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떻게 들으니 처절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이젠 행성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갈 길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전에 행성이 최고 단위인 생활 환경이었다면 이곳 원주민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끝없는 투쟁을 계속해 온 전사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종족의 특성 때문에 하늘과 물이라는 두 환경에서는 처참한 패배를 계속해 왔을 것이다.
이젠 겨우 땅만 지키면서 어떻게든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이 이들의 희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프락칸은 어떤 일을 하는 거지요?”
“음? 프락칸의 일은 간단하며서 어려운 거지. 코어의 에너지를 땅으로 돌려 보내는 거니까 말이야. 다시 부족 코어라고 불리는 그것들이 활용하지 못하도록 대지의 기운으로 돌리는 것이 프락칸의 능력이지.”
“그게 에테르와 다른 건가요?”
“에테르와는 전혀 다르지. 음. 그건 생명 본연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지. 그 괴이한 생명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기운. 그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프락칸의 능력이니까 말이야.”
“우와 그럼 그 능력으로 모든 코어를 원래대로 되돌리면 이곳엔 더 이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건가요?”
“허허허. 그랬으면 좋겠지만, 우리 마누라도 겨우 부족 코어를 대지로 돌려보내는 것이 고작이지. 예전 그러니까 먼 조상 때에는 자네들이 지역 코어라 부르는 것이나 대륙 코어라 부르는 것도 대지와 하늘과 물로 돌려보내는 것이 가능했다고 들었는데 하늘과 물의 프락칸의 능력이 줄어들면서 점점 그런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지. 아마 우리 마누라 같은 하늘의 프락칸과 물의 프락칸이 있다면 지역 코어 정도는 충분히 대지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가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그 대지의 기운이 충만해서 지역 코어란 것이 새로 생기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겠지. 수 백년,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지금도 부족 코어 하나를 대지로 돌려보내면 몇 십 년 동안은 그 부족 코어가 다시 나타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 마누라 실력이 대단해서 보라색 등급의 부족 코어라도 충분히 대지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가 있지. 뭐 전사들의 미흡해서 좀처럼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긴 보라색 등급의 부족 코어라면 그건 정말 엄청날 것 같다.
“그럼 한 곳에서 일정 기간 머무는 것도 이유가 있는 거군요?”
“그럼 그렇지. 대지를 정화시키는 거야. 이곳에서 코어를 대지의 품으로 돌려보내면 이 근처에서는 몬스터들의 발생이 점차 줄어들게 되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줄어들어. 뭐 물과 하늘까지 정화가 된다면 몬스터가 완전히 사라지겠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어려워진 일이라서 말이야. 원래는 마을에 바람과 대지와 물의 프락칸이 같이 있어서 동시에 정화를 했는데 요즘은 다른 일족의 프락칸은 보기가 어렵지. 모두가 대지의 일족뿐이야. 다른 이들은 오래 전에 다툰 이후로 각자 따로 생활을 하게 되었지. 사실 다른 일족들은 우리 대지의 일족이 그들의 정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데 화가 났거든. 하지만 사위도 예상하는 것처럼 하늘과 물에선 우리도 힘을 쓰기 어려워. 그러니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었을 거야. 조상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하늘을 날고 물을 헤엄치는 재주는 별로였을 테니 말이야. 우린 대지의 일족이라고.”
뭐 이유야 나름대로 다 있는 거겠지. 하지만 타모얀 일족이 하나의 종족에서 셋으로 나눠진 이유는 대충 알 것 같다. 하늘과 물의 일족으로선 그들이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대지 일족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되었을 거고 말이다.
“그럼 아직 하늘과 물의 프락칸이 있긴 하겠군요?”
“있기야 하지. 하지만 능력은 워낙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어. 사실 하늘과 물의 기운이 약하니 당연히 그 프락칸들도 약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 안타까운 일이야.”
“그럼 하늘과 물을 정화하기 시작하면 프락칸들의 능력도 점점 강해질까요?”
“숫자도 몇 되지 않으니 아마 금방금방 강해지지 않을까?”
“아,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군요.”
나는 장인의 말에서 가능성을 봤다. 일단 강력한 프락칸이 있으면 일은 쉬워질 것 같았다.
이 제3 데블 플레인에서 일정 구역에서 완전히 몬스터들을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물을 정화하면 그것이 가능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다른 데블 플레인의 원주민 중에서도 프락칸이 있을 지도 모른다. 명칭이야 다르게 부를지 몰라도 하는 일은 같은 이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그들을 한 곳에 모아서 대단위 정화 작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데블 플레인의 개척에는 일대 획을 긋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걸 헌터 연합에서는 모르고 있었을까?
“응? 이런 이야기를 헌터들에게 왜 해? 이건 가족들끼리만 알고 있는 이야기야. 헌터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고 그들이 우릴 도울 일이 뭐가 있겠어? 그들 중에는 프락칸이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야.”
“그렇군요.”
내가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한 거란 소리다. 그리고 원주민들이 대체로 이런 이야기를 헌터 연합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보면 지금까지 헌터 연합에서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코어의 사용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 중에서 정화라를 한 번은 내가 들어봤어야 정상일 것이다.
아무튼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만 쉬고 계속 하지? 이야기를 하느라고 많이 쉬었군. 자 준비 되었나?”
아, 장인님 조금만 더 쉬면 안 될까요?
리샤는 도망가서 지금 듀풀렉 만들고 있는데 말이죠.
리샤는 훈련을 피해서 허브 기지로 가 버렸다. 아, 나도 듀풀렉 만들어야 한다고 시간을 좀 얻을 걸. 그냥 리샤가 할 수 있을 거라고 곧이 곧대로 말하는 바람에 도망갈 구멍도 틀어막아 버렸다. 내가 바보인 것이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