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77
이서연이 일행을 깨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 유현은 조심스레 동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착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약했지만 유현의 귓가에는 확실히 닿았다.
“……..모험가들인가.”
유현이 들은 건 말소리 같은 것이었다. 소리의 진원은 꽤나 멀리 있는 듯 싶지만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미궁 안에서는 멀리 울려 퍼질 수밖에 없었다.
유현은 눈을 가늘게 한 채 한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말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무심코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생각이 없는 모험가들이구나, 하고.
‘저건가.’
이윽고 꽤나 거리가 있는 곳에서 붉은 불이 흔들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불빛을 보아하니 랜턴이 분명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정령들이 전부 빛을 잃은 지금 시간에 미궁을 움직이는 파티가 있는 듯하다. 게다가 저렇게 대놓고 움직인다. 참으로 할 말을 잃는 광경이다.
‘뭘 쫓고라도 있는 건가?’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 생각도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오히려 생각하면 할수록 저들의 움직임은 더욱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거리는 여기서부터 대략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나름대로 주위를 경계하는 건지 오는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거리와 속도를 생각할 때 이서연이 일행을 깨울 시간은 충분.
그래도 경계를 늦출 수는 없기에 유현은 계속해서 다가오는 불빛을 확인했다.
불빛을 발견한지 1분이 겨우 지났을까.
“….오빠. 전부 깨웠어요.”
동굴 밖을 멀리 엿보고 있던 유현에게 이서연이 말했다.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보니 모두 일어난 일행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금 잠에서 깼을 텐데도 모두 긴장감을 유지한 채 눈에 힘을 주고 있다. 손에는 무기가 쥐어져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무장을 하고 왔다.
“유현, 상대는 뭔가요?”
잠시 머뭇거리던 랑샤셴이 조심스레 묻자 유현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모험가들로 생각됩니다. 숫자는 대략 9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파티죠.”
“…모험가.”
드디어 모험가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기라도 하는 걸까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싶어 확인하니 이서연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대충 보니까 별 볼일 없는 수준의 모험가들인 거 같으니까.”
“그..그래도.”
그 동안 너무 겁을 주었나. 모험가들의 까다로움을 여러 번 연설 했더니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유현은 말없이 이서연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놀란 듯 몸을 가늘게 떨던 그녀였지만 표정에 긴장이 풀리는 걸 확인하며 유현은 일행에게 말했다.
“상대는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듯하니까 기습하는 형식으로 갈 거야. 먼저 노리는 건 랜턴을 들고 있는 모험가부터. 내가 먼저 들어가서 랜턴을 든 녀석을 죽일 테니 기회를 봐서 류트가 마법으로 녀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줘. 너희들이 달려드는 건 그 후에.”
굳이 작전 같은 것들을 짤 필요까진 없어 보이는 상대지만 유현을 일부러 일행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나중에 강한 파티를 상대할 때는 무작정 덤벼들 수 없다.
지금부터 익숙해져야 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서 유현은 다시 여기로 다가오는 불빛에 시선을 고정했다.
“….키리릭. 젠장 적당한 곳이 나오지가 않는군.”
미정령들의 빛이 완전히 사그라져 있는 시각, 파티의 리더인 데덴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여러 명의 파티원들이 지친 얼굴로 뒤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 그들은 미궁에서 길을 잃은 상태였다. 미정령들의 활성화 시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휴식을 취할 만 한 곳을 제 때 찾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랜턴을 킨 채 어둠을 헤치고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미정령들이 비활성화 된 시간은 미궁을 돌아다니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일.
그래서 일까.
“키릭. 차라리 그냥 바닥에서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러다가 밤이 가겠군.”
몇 시간이나 데덴의 뒤를 따라가던 파티원 중 하나가 한숨 쉬며 말했다. 벌써 이게 몇 시간째인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자고 있던 몬스터들이 불을 보고 공격할 상황이었다.
당장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은 파티원의 말에 데덴은 미간을 찌푸렸다.
“키리릭.. 지금 그러면 미궁의 길바닥에서 지금 밤을 보내자는 거냐?”
“그렇다고 모두 밤을 셀 수는 없는 상황 아닌가? 우린 너무 피곤하다.. 키릭..”
리더인 데덴에 맞서 파티원인 칸자트가 표정을 찡그리며 맞섰다.
급조된 파티인 이상 호흡이 안 맞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데덴의 파티는 길드의 중계로 하루아침 만에 만들어진 파티였다. 서로의 이름을 아는 것도 며칠 안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데덴이 강압적으로 파티를 이끌고 있으니 삐거덕 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데덴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미정령의 비활성 시간을 체크하는 것도 실수하고 덕분에 야영을 할 장소도 제 때 못 찾았다.
‘젠장.. 이게 아닌데.. 키릭..’
데덴도 자신의 실수를 잘 알고 있기에 몰래 파티원들의 안색을 살피고는 입술을 바득 깨물었다.
저 봐라. 리더의 무능을 욕하고 있는 듯한 시선들을.
가슴이 찔린 데덴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고개를 들렸다. 저들이 뭐라고 했던 지금 파티의 리더는 자신이었다. 저들은 자신의 말에 따를 필요가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경력이 제일 많다. 비록 그것이 반년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데덴은 그 차이를 무기로 리더의 자리를 꿰찼다.
리더의 결정에 데덴의 파티는 미정령들이 빛을 잃은 시간에도 계속해서 움직였다.
잠을 자더라도 안전한 곳에서 자야한다는 데덴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맞았기에 일단 모두들 따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밤을 새가면서도 그래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 중에서도 칸자트가 기회를 엿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서로 간에 여러 가지로 불만이 쌓이며 모두들 말을 아끼고 있을 때였다.
“………키릭?”
문득 제일 앞에서 걷고 있던 데덴이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랜턴을 들어 더 먼 곳 까지 빛을 비추어본다.
“키키키키..키리릭!”
그리고는 데덴의 눈동자가 환희로 물들었다. 그는 흥분한 채 몸을 바르르 떨고는 꺾일 것처럼 허리를 비틀어 뒤에 있는 파티원들에게 발견한 걸 알렸다.
“찾았다! 좋은 곳을 찾았어! 키리릭!”
“…드디어!”
여러 가지 일은 있었지만 어쨌든 쓸만한 곳을 찾았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기뻐했다.
칸자트도 묘한 표정을 짓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언제나 파티의 리더장 자리를 탐내고 있었다. 이번 일로 잘하면 데덴을 쫓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칸자트의 생각은 쉽게 짐작하지 못한 채 데덴이 먼저 달렸다.
랜턴을 들고 달리자 도깨비불이 어둠속을 내달리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파티원들은 신난 데덴을 보며 조금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일단 빨리 짐을 내려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경고는 머릿속으로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이번 미궁에서 되돌릴 수 없는 최악의 실수가 되었다.
—사악.
그 기분 나쁘고 등줄기의 척수가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오싹한 소리는 그 어떤 증조도 없이 갑자기 들려왔다. 그래서 모두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데덴?”
앞에서 달리던 데덴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진다. 바닥에 철퍼덕, 하고 쓰러지는 그 모습을 뒤에서 따라오던 파티원들이 아연한 얼굴로 쳐다봤다.
소리가 잔향을 남기며 사라지는 동시에 뿌려지는 핏물.
그 순간 데덴의 목에서 피가 뿜어지는 걸 보았다.
랜턴이 바닥을 구르고는 벽에 부딪쳐, 따닥하고 순식간에 꺼졌다.
모두가 인형처럼 딱딱하게 얼어붙은 가운데 유일하게 정신을 차린 칸자트가 소리쳤다.
“키.. 키릭! 모두들 정신 차려라! 적이다! 적!”
뭔지 모르지만 데덴이 죽었다.
굳이 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넘어진 데덴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죽은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모두가 연습했던 진형을 준비한다.
반응이 조금 늦은 것 치고는 그 움직임들이 상당히 신속했다.
지금 상황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식은땀을 흘리며 데덴이 달려가던 방향을 노려본다.
랜턴을 들고 있던 건 데덴이었기에 유일한 불빛이 꺼진 상태였다.
‘멍청한 놈!’
칸자트는 데덴을 욕했다. 덕분에 상황은 더 최악이었다.
불빛도 없이 어둠속에 숨어 있는 적을 상대하는 건 최악이었다.
어둠이 꿈틀거린다. 칸자트는 그렇게 느꼈다.
상대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움직인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감정에 그저 환영을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칸자트는 그저 자기의 무기를 믿듯 검을 꼬옥 쥐었다.
모두가 숨죽이며 죽일 것처럼 어둠을 노려보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키리리리릭!”
갑자기 강렬한 광채가 시야를 휩쓸었다. 어둠에 적응해 있던 눈은 오히려 독이 되어 강렬한 광채 앞에서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게 만들었다.
시력을 잃은 건 칸자트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고 있었기에 생각지 못한 공격에 모두가 시력을 잃어 두 눈을 부여잡았다.
–효과는 만점.
유현은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고블린들에게 사뿐히 다가가 그 목줄기에 검을 박아 넣었다. 목에 검이 박히자 고블린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절명했다.
어렵지 않게 한 마리를 처리한 유현은 고개를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사납게 달려드는 녀석들이 몇몇 있었지만 일행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맞받아 쳐내고는 상대를 제압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남궁민이 2명의 고블린을 상대로도 압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지난 일들이 새삼 길게 느껴졌다.
유현은 머지않아 전투가 끝날 거 같다고 생각했다.
‘역시 그냥 그저그런 하급 모험가들인가.’
지금 여기에 있는 고블린 모험가들은 일행의 상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