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31
“…맙소사, 정말로 벌써 던전을 클리어하셨단 말입니까?”
“그, 그렇다니까.”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사라져가는 게이트를 바라보던 러시아 협회 측 직원이, 이윽고 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연락을 보냈다.
“예, 예예! 그렇습니다. 공략 완료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말을 이어나갔다.
“보고를 마쳤습니다. 빠른 시간 내로 약속드렸던 보상이 전부 주어질 겁니다. 그리고, 장관님께서 혹시 저녁에…….”
“읏. 됐어. 이만 갈 거야.”
나는 그 말만 마치고 비행형 언데드 하나를 불러내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헤네시아 쪽과는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했으니, 아마 그쪽으로 향하면 될 것이다.
‘슬슬 됐으려나.’
내가 난데없이 러시아로 와서 던전을 공략한 데에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예상이 적중한다면 슬슬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 시점이었다.
펄럭!
적당한 위치를 잡고 언데드 그리폰의 등에서 내린 나는, 공항 근처로 향하며 이제는 익숙해진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티익.
“바, 반응은 좀 어때?”
[어떻긴 뭘, 당연히 생각대로지. 즉각적으로 여론이 바뀌고 있어.]
죠셉이 말해온 정보는, 얼추 내 예상과 근접하는 내용들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러시아 쪽의 반응이 가장 격렬하네.]사실 나와 러시아는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다.
이전 미국의 대형 던전에서 러시아 소속 S랭크 헌터인 이반과 마찰을 빚기도 했고, 거기에 헤네시아의 군사 기지 습격이 더해져 사실상 반쯤 적대 관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지금의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러시아의 국민들은 물론, 그 상층부의 인원들 역시 내게 감사를 표해오고 있다.
[무리도 아니지, 러시아는 최근 정말로 인력난이 심각했으니까.]워낙에 땅덩어리가 넓은 데 비해, 의외로 뛰어난 헌터들의 수는 적다.
그런 와중 운이 나쁘게도 연달아 고위급 던전이 출몰해버렸으니,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을 거다.
명확한 대처를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국민들의 불안감마저 커져가고 있던 상황.
그 타이밍에 나와 헤네시아, 아스트리데가 지원을 옴으로써 러시아는 가까스로 당장의 위기를 정리해낼 수 있었다.
‘우스운 일이지.’
당장 일평생 러시아를 위해 힘써온 이반은 S랭크 던전 공략의 여파로 드러누워 있다는데, 정작 국민들의 관심은 온전히 내게 쏠려 있다.
허나 어쩔 수 없다.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다.
시민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당장 자신들을 위험에서 구해줄 누군가지, 딱히 신념과 정의를 갖춘 위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국민들도 다를 게 없다.
‘슬슬 애간장이 타겠지?’
러시아에서 실시간으로 날아드는 굉장한 규모의 찬사.
영웅 취급은 물론이요, 이제는 당장 나를 설득해 귀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꾸준히 들리고 있다.
그럼 당연히 그때부터는 한국에서도 난리가 나는 거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자국의 S랭크 헌터가 외부로 유출되게 생겼으니까.
그것은 자신들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 국가의 공직자든 평범한 시민이든 당연히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미 협회는 거의 내게 애원하다시피 연락을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역시 선생님은 그때랑 조금도 안 변했어.”
“지금쯤 저쪽은 난리가 났겠네요.”
언제 공항에 도착했는지, 슬쩍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말을 거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나는 그런 두 사람과 조금 거리를 벌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앞으로도 계속 귀찮아질 바엔, 미리 정리해 두는 게 편해.”
오히려 정말 한국이 싫었다면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을 것이다.
이것도 다 애정이 있으니 하는 짓이란 말이었다.
슬슬 이 귀찮은 연극도 끝, 설상가상으로 타이밍 좋게도 아직 연결되어있던 전화로부터 죠셉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건 내가 말해줄 게 아니라 직접 한번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한국은 아직 한창 첫 번째 S랭크 던전을 공략하는 와중인데, 듣자 하니 그 두 번째가 나타났단다.
게다가 그 등급이 심상치 않다.
“…S2라고?”
지금껏 한번도 출현한 적이 없는 S1랭크를 제외하면, 사실상 현재 가장 높은 랭크의 던전이다.
[공표까지 난 것을 보면 확실한 정보인 모양이야. 줄다리기는 그만 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어, 어차피 이제 결론이 날 거야.”S2랭크의 던전까지 출몰했다면 사실상 다른 수단이 없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나와 두 사람을 불러들여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시민들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뚜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따로 마련해두었던 핸드폰으로 하나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협회의 부회장인 서다혜. 일이 뜻대로 잘 마무리되었다는 신호다.
전화를 받은 나는, 내용을 듣지도 않고 이제 돌아가겠다는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예. 감사합니다. 공항에 안내인을 보내두겠습니다.]기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이제부터는 당당한 모습으로 개선식을 올릴 차례였다.
#
“이런 제기랄!”
콰앙!
길드 연합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주천의 서공태, 그는 갈길 잃은 분노를 내비치며 연신 나무로 된 책상을 내리쳤다.
기껏 막대한 자금을 들여 외국의 헌터까지 고용했건만, 이제는 S2랭크의 초고위험군 던전이 모습을 드러냈단다.
솔직히 말해 서공태를 비롯한 길드 연합의 수장들에게는 더 이상 남은 수가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급격한 변화가…….’
솔직히 서공태로서는 억울했다. S2랭크의 던전이라면, 사실 기존 한국의 전력으로는 절대로 막아낼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절대로 서공태가 무능한 것이 아니었다. 허나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런 사소한 사항 하나하나를 고려해주지 않았다.
– 이럴 거면 대체 왜 백은하한테 이래라저래라 한 거임?
– 것 봐, 내가 뭐랬냐. 결국 S랭크 던전 뜨면 쟤들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애초에 논란이 될 일조차 아니었음.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쪽이 우대받는 건 당연한 거지 그걸 왜 지랄을 해서.
– 결국 또 한국식 여론몰이가 한 건 해버렸네. 그래서 이제 대체 뭘 어쩔 건데.
시민들의 반응은 냉혹했다.
결국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자, 서공태를 필두로 한 각 길드의 수장들에게 연신 비난을 내뱉었다.
또한 다른 한쪽에서는 백은하를 향한 사죄와 귀국 요청이 물 넘치듯 쇄도했다.
– 우리가 잘못했다! 한 번만 용서하고 돌아와 줘라!
– 잘못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우리 다 죽어. 우리 다 죽어. 우리 다 죽어. 우리 다 죽어. 우리 다 죽어.
– 선생님 제발…….
시민들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결국 지금의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존재는 백은하라는 사실을.
그녀가 없으면, 결국 더 큰 폭력 앞에서 무자비하게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었는지, 천만다행히도 백은하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서공태를 필두로 한 길드 연합은 깨달았다.
이번 기 싸움에서 자신들이 완벽히 밀려 나왔으며, 앞으로 백은하에게 그 어떤 간섭조차 행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생각 이상으로 영악한 놈이다.’
듣기로는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들었는데, 실제로 마주해보니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치밀어오르는 답답함에 속을 끓일 무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측근으로부터 한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대, 대표님! 공략대가 던전을 클리어했답니다. 다만, 이쪽의 피해가 상당히…….”
첫 번째로 나타났던 S4랭크 던전에 대한 클리어 소식, 그러나 그 내용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참혹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이제는 사지가 모두 묶여 아무런 일도 행할 여력이 없다.
‘…끝났다.’
결국 길드 연합은, 막대한 손해만을 감수한 채 씁쓸히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하, 한쪽은 클리어됐다고? 잘됐네. 우읍.”
사태가 워낙 급박하다 하여 탑승한 헬기 안쪽, 나는 서다혜의 브리핑을 받으며 문제의 S2랭크 던전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다만 대체적으로 피해가 큽니다. 멀쩡한 것은 큰 전투를 여러 번 겪어본 청백 길드나 태극 길드 정도. 그 밖에는 전력의 약화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으읍. 서하만 무사하면 됐어.”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딱히 관심도 없다. 그렇기에 이지철을 부려 사전에 청백 길드를 도우라고 전해두었던 참이었다.
“…그나저나, 사실상 최고 등급의 던전인데, 역시 제대로 공략대를 구성해 가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서다혜는 걱정스럽다는 듯 물어왔지만, 그에 대한 우리들의 답변은 간단했다.
“우읍. 호, 혼자서도 충분해.”
“사실 여러 명이 붙을 필요도 없는 일인데, 오히려 몰려가는 쪽이 유난이지. 안 그래 아스티?”
“…응. 문제없어.”
그 막대한 자신감을 본 서다혜는, 묵묵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두두두두.
두두두.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헬기가 지면에 가까워짐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불길한 색의 게이트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상 인류에게 있어서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영역, 최상위 등급의 게이트.
그곳을 바라보며, 나는 피곤한 얼굴로 한 마디만을 중얼거렸다.
“…길어 봐야 두세 시간이면 끝나.”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던전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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