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34
134. 다 같이 낚자
한겨울의 바닷바람은 ‘꽤 차다’ 정도로는 부족하다. 특히 섬에서 맞이하는 바람이라면 더욱.
보통 사람이라면 복면이 필수일 정도로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날아드는데, 양 뺨은 얻어맞은 양 빨개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휴도에서 겨울 바닷바람을 맞는 우리들 중에서 힘들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율이는 모든 환경에서 완벽한 컨디션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고, 털복숭이인 무룩이와 곰곰이, 삐삐야 당연히 괜찮았다.
겨울을 맞아 변화를 보인 싹이 역시 트레이닝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꽤나 온기를 느끼며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스맨인 고성우가 추위를 탈 리 없었고, 약발이 기가 막히게 받는 나 역시 반팔에 잠바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자, 여기 받아.”
고성우는 미끼를 꿴 낚싯대를 지율이에게 건넸다.
“우와아.”
낚싯대와 미끼를 보는 지율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곰곰이와 삐삐도 곁에 몰려들어서는 같이 구경했다.
무룩이는 낚시 자체에는 흥미가 없는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자, 이제 낚싯대를…….”
고성우가 낚싯대를 휘두를 준비를 하는데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얼음낚시!”
“……뭐?”
“나는 얼음낚시가 하고 싶어!”
“……어?”
“이렇게! 이렇게 있잖아!”
지율이는 바닥을 가리키며 얼음을 묘사했다.
“전부 하얗게 얼어서, 거기에 구멍을 내서 낚시하는 거!”
“……아.”
“할 수 있어? 얼음낚시가 하고 싶은데.”
나는 하하 웃었다.
“얼음낚시는 여기서 하는 거 아니고, 따로 장소가 있어.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돼. 오늘은 그냥 낚시부터 하고, 그 다음에…….”
그때 고성우가 손을 뻗어 보였다.
“아니야.”
“……?”
“우리 지율이가 얼음낚시가 하고 싶다면, 해야지. 삼촌이 그 정도도 못해주지 않지.”
지율이의 두 눈에서 별이 반짝였다.
“진짜?”
“그럼!”
고성우는 낚싯대를 내려놓더니 바다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 참…….”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 된 나는 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봤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고성우가 양손에서 냉기를 뿜어내 바다를 얼리기 시작했다.
* * *
“자, 다 됐다!”
고성우가 목소리를 높였고, 휴도의 면적이 잠시 넓어진 상태였다. 암석지대 주변으로 빙판이 생겼다.
“여기 올라와서, 구멍 뚫어서 하면 돼. 여기로 와.”
빙판을 가리키는 손짓에 지율이는 곧장 빙판 위로 뛰어가려고 했다. 손에는 낚싯대를 꼭 쥐고 있었고, 양팔에는 곰곰이와 삐삐가 매달렸다.
“조심해! 미끄러워!”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걱정 마!”
그리고 지율이는 빙판에 발을 내디디자마자 미끄러졌다.
“앗코!”
지율이가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깜짝 놀란 나는 닿지도 않을 거리에 있으면서 애꿎은 손만 허공에 뻗었다.
그 순간 고성우도 양팔을 앞으로 뻗으며 눈을 휘둥그레 떴고, 싹이도 손가락들을 줄기처럼 늘이며 팔을 들어 올렸다.
“헤헤헤헤헤헤.”
지율이는 엉덩방아를 찧은 것마저 재미있다는 듯이 헤실헤실 웃었다.
엉덩이가 아플 일도 없었다. 왼팔에 매달려 있던 곰곰이가 엉덩이 아래로 가서 쿠션을 자처했고, 오른팔에 매달려 있던 삐삐는 만일을 대비해 곰곰이보다 좀 더 뒤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있어서 든든하다.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뭔가 이상해서 옆을 쳐다보니 무룩이의 눈썹이 일자로 돼 있었다. 두 눈은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텅 비어 보였다. 아주 가끔씩 저러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무룩아?”
“……냥?”
무룩이의 눈썹이 원래대로 돌아와 끝이 축 처졌다.
“아니야, 그냥.”
“물고기는 언제냥?”
“금방 잡힐 거야.”
고성우는 스케이트를 타듯 바닥을 미끄러져 지율이에게로 다가섰다.
“자, 삼촌이랑 같이 움직이자. 삼촌 손 잡아.”
“응!”
마치 함께 피겨를 하듯 고성우가 지율이의 손을 마주잡고 바닥을 미끄러졌다.
“우와! 우와아! 와아아아!”
“고오오오옴!”
“삐삐이이이!”
금세 신이 난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 낚시는 미뤄두고, 고성우는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암석지대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싹이가 천천히 빙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같이 하려고? 재밌어 보이지?”
나의 물음에 싹이가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말이냐, 그냥 저 녀석을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서다.”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싶다. 싹이도 놀고 싶었던 거 같은데.
아, 그러면 되겠네!
“싹아!”
“……?”
“나뭇잎배 작은 거 하나 만들어줄래?”
“여기서 말이냐?”
“응!”
“그게 왜 필요하지?”
“그런 게 있어. 빨리.”
“알겠다.”
싹이의 손짓에 따라 어디에선가 길고 굵은 줄기가 뻗어 나왔다. 잎사귀가 파르르 떨리며 빠르게 피어났고, 곧 큼지막한 나뭇잎배가 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멍하니 고성우는 다시 지율이의 양손을 잡고 웃으며 놀았다.
“뭔 반응이 없어?”
내가 묻자 고성우는 나뭇잎배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뭐? 저거?”
“어!”
“그냥 그러려니 해.”
“그래? 그게 끝이야?”
“뭐라 그래 그럼? 어차피 상식이 다 파괴됐는데, 더 놀라울 것도 없다. 그냥 재밌지. 아니, 신기하긴 한데, 재미가 중요하잖아.”
핵심이었다. 무언가 신기하다고, 새롭다고, 그것의 정체나 밝히려고 파고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휴도에서는 정말 그렇다.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
이는 어쩌면 인간관계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관계가 깊어지려면 더 알려고, 파고드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되지 싶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네! 그 말이 맞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데, 싹이가 구시렁거렸다.
“만들었는데 이걸 뭐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건 물에 띄우는 게 낫다. 그 커다란 벌레들과 원숭이들은 이걸 다른 방식으로도 꽤 유용하게 쓰는 듯하지만.”
“여기서도 다르게 쓸 거야.”
“어떻게 쓸 생각인가?”
“나뭇잎배 앞에 줄기를 좀 달아줄래?”
그랬다. 썰매였다.
“자, 다들 타자!”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지율이가 곰곰이와 삐삐를 데리고 먼저 올라탔다. 나도 싹이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고, 무룩이는 어느새 먼저 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
고성우도 올라타려고 하는데 내가 손을 뻗어서 막았다.
“……왜?”
“왜긴, 넌 끌어야지.”
“뭐?”
“너만 빙판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잖아. 자, 빨리!”
“야, 이…….”
고성우는 반박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는 덩굴을 들어 허리에 걸쳤다.
“……갑니다.”
고성우가 등을 보이며 말하자 지율이가 잔뜩 신난 목소리를 높였다.
“출바아아아아알!”
“……출바알.”
“삼촌! 더 기운차게 해야지!”
“출바알!”
“와아아아아아아!”
그렇게 고성우는 빙판을 미끄러지며 나뭇잎배를 끌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낚시는 안 하고 썰매를 탔다.
* * *
“이제 그만 탈 때 되지 않았을까? 30분도 넘은 거 같아. 애들 멀미할지도 몰라.”
고성우가 애써 웃어 보였다.
“하하하하! 덕분에 재밌었다!”
내가 웃으며 나뭇잎배에서 내리자 다른 아이들도 차례차례 내렸다.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고성우는 지율이와 눈이 마주쳤다.
“삼촌 힘들어?”
지율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묻자 고성우는 눈에 힘을 꾹꾹 눌러담아 크게 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혀!”
“진짜?”
“그럼!”
“정말이지?”
“그럼! 삼촌 걱정 안 해도 돼!”
“다행이다.”
지율이는 조금 안심하는 듯하면서도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우리가 너무 재밌어서 삼촌 생각은 안 하고…….”
“아니야, 지율아! 그럴 거 하나도 없어! 삼촌은 지율이가 즐거웠으면 괜찮아.”
“진짜?”
“응.”
“그래도 다음에는 같이 타. 고마워 삼촌.”
아이스맨이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 * *
“이제 진짜 낚시하자! 낚시하러 왔는데 뭐라도 건져야지!”
고성우가 말하자 지율이가 콩콩 뛰면서 박수쳤다.
“좋아! 구멍 내야지! 구멍!”
“그렇지! 얼음낚시를 하려며 구멍부터 내야지!”
여기서 얼음낚시를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낚으려는 어종 자체가 다르지 않나. 차라리 네모집 뒷산에 올라가서 빙판을 만든 다음 낚시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하지만 다들 너무 집중해서 열을 올리고 있는 터라 일단 가만히 지켜봤다.
“자, 일단 내가 구멍을 내볼게?”
고성우는 손을 들어 올리더니 보이지 않는 커다란 맥주잔을 위에서 덮듯이 잡은 모양을 했다. 손끝을 빙판에 가져다 대고 빙글빙글 돌리자 동그란 구멍이 생겨났다.
“우와! 우와! 나도 해볼래!”
지율이는 귀여운 손끝을 빙판에 가져다 대고 문질렀다. 당연히 구멍이 날 리가 없었다.
“나는 안 돼!”
“하하하! 삼촌만 할 수 있지롱!”
고성우는 또 보란 듯이 빙판에 구멍을 만들었다.
“우와아, 삼촌 대단하다.”
“그래? 삼촌 대단해?”
“응! 요술쟁이야!”
“하하하하! 그렇지! 얼음 요술쟁이지!”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싹이가 목소리를 냈다.
“낚시는… 낚시는 아직인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모양이다. 의외의 발언에 나와 고성우가 놀라고 있는데, 무룩이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말을 거들었다.
“하루 종일 기다리겠다냥! 얼른 물고기 잡으라냥!”
내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야, 같이 썰매 타고 재밌게 놀았으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냥! 배고프다냥!”
“알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잡힐 거야.”
고성우가 빙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빙판에 구멍을 뚫었다.
모두가 각자 앞에 낚싯대를 하나씩 뒀다.
나와 고성우, 지율이, 싹이는 물론이고, 곰곰이와 삐삐도 자그마한 낚싯대를 들고 있었다. 낚싯대 자체는 싹이가 탄성이 좋은 나뭇가지로 만들어줬다.
무룩이마저도 앞에 낚싯대를 두고 있었는데, 바닥에 내려놓고는 앞발로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얼음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용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무룩이였다.
“흔들린다냥! 흔들린다냥!”
고성우가 낚싯대를 내려놓고 무룩이에게로 다가섰다.
“도와줄게!”
그러고는 낚싯대를 집어 들었다.
“놓치지 마라냥!”
“걱정 마! 제법 무거운 것 같…….”
하지만 딸려온 것은 어종을 구분하기도 힘들 만큼 작은 새끼 물고기였다.
“냥…….”
무룩이가 시무룩해졌고, 내가 얼른 다가서서 하하 웃으며 등을 토닥거렸다.
“그래도 첫 번째로 낚았잖아. 1등이야 1등. 그리고 이거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되고.”
“아니다냥. 풀어줄 거다냥.”
“그래?”
“아직 어리다냥.”
고성우가 물고기를 다시 구멍으로 넣어 바다로 되돌렸다.
무룩이는 구멍에 대고 목소리를 냈다.
“풀어준 대신 큰 녀석들을 보내라냥!”
이런 식으로 배신자들이 생겨나는 걸까.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낚시가 이어졌다.
고성우의 능력으로 빙판을 만들어서 시작한 얼음낚시인지라 월척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냥 이렇게 모두가 모여서 낚시를 하고 있는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같이 웃으며 떠들고 있지도 않았고, 얼음낚시 특성상 서로서로 간격이 조금 필요하여 몸이 떨어져 있는데도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모두 다 같이 행복을 낚아올리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흐뭇하게 싱글벙글 웃는데 지율이가 갑자기 낚싯대를 손에서 놨다. 그리고 구멍 쪽으로 귀를 살짝 가져갔다가 빙판에 대고 힘 있게 노크를 했다.
“물고기들아! 거기 있니? 얼른 이리 와! 빨리 모습을 보이렴!”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3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