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76
176. 휴도 탐험대 (1)
보글보글보글보글.
냄비 안에서 팔팔 끓는 은문어로부터 사골 같은 뽀얀 육수가 우러났다.
“음…….”
냄새가 너무 좋아서 숟가락으로 한 술 떴다.
후룩.
자동으로 눈이 감기며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크으으으으.”
간을 안 했는데도 기가 막힌 맛이 난다.
“맛있냥?”
무룩이가 동그란 눈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먹어볼래?”
“냥!”
목소리에서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강한 의지가 전해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은문어 육수를 한 술 떴다. 그리고 종지에 옮겨서 조금 식힌 다음 내밀었다.
무룩이는 조심스레 냄새를 맡다가 혀를 천천히 가져다 댔다.
“냥!?”
눈이 휘둥그레진 무룩이가 바쁘게 육수를 먹어치웠다.
찹찹찹찹찹찹찹찹.
나는 말없이 육수를 한 국자 덜어서 식혔다.
무룩이는 얌전하게 앉아서 기다렸고, 적당히 식은 육수를 건넸다.
찹찹찹찹찹찹찹찹.
열심히 육수를 먹던 무룩이가 혀를 날름거렸다.
“맛이 됐다냥.”
“맛이 됐다고?”
내가 피식 웃자 무룩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냥!”
무룩이는 다시 육수를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집게로 은문어를 건졌다.
육수도 잘 우러났겠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
한창 식사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을 떠올렸다.
잘 놀고 있겠지?
* * *
“와아, 동굴이네?”
암석지대에서 동굴을 본 현백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동굴 좋아해?”
지율이가 물었다.
“딱히 좋아한다기보다는…….”
현백이의 대답에 지율이는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를 냈다.
“싫어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동굴 자체를 처음 오거든.”
“아! 진짜? 처음이야?”
“응. 그래서 기대돼.”
뒤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레오가 코웃음을 쳤다.
“드래곤이 동굴에 처음 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옆에 있던 싹이가 고개를 살짝 틀고 물었다.
“그게 무슨 문제지?”
“너 같은 풀떼기는 모르겠지만…….”
레오는 싹이와 눈이 마주치고는 말끝을 흐렸다. 싹이는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유가 느껴졌다. 조금 싸늘하기도 했고.
레오는 문득 자신도 생전에 보지 못한 싹나무가 떠올랐다. 그리고 현재 싹이는 사람으로서 존재했으니 그저 식물이라 치부할 수도 없었고.
“……아무튼 넌 드래곤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수많은 드래곤들은 동굴에 터전을 잡곤 한다. 종에 따라 다양한 둥지를 가지지만, 한 번쯤은 동굴을 거치기 마련이다. 우리 마블 드래곤들은 철광석이 가득한 광산 하나를 통째로 집으로 삼곤 하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날 때쯤이면 철광산은 하나도 남지 않고.”
레오는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나는 그렇게 철광산을 몇 개나 먹어치웠다. 마블 드래곤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일…….”
“그런가.”
“그렇다. 저 녀석은 지금 반쪽도 안 되는 마블 드래곤이라는 뜻이지.”
레오의 시선은 웃고 있는 현백이에게 고정돼 있었다.
“네가 보기에는 저 아이가 반쪽짜리로 보이는가?”
싹이의 물음에 레오는 가만히 현백이를 바라봤다.
지율이와 현백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내가 보기에는…….”
싹이는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
“적어도 나는 저 아이 덕분에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네가 반쪽이라 일컬은 저 아이도 마찬가지일 터.”
싹이가 레오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말했다.
“너도 무언가 배우는 게 있다면 좋겠구나.”
“……핫.”
레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애들한테 배운다고? 내가? 그럴 일은 없다.”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지.”
싹이가 먼저 앞서나갔고, 레오는 멍하니 쳐다보다가 따라나섰다.
* * *
“와아.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현백이는 크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눈에는 푸른빛이 서려 있었다.
동굴 내부의 넓게 펼쳐진 공간은 허니포켓이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벽과 천장까지 자란 상태였다.
푸르게 빛나는 수많은 나비들이 허니포켓 사이를 날아다녔고, 여기저기서 황갈색 털뭉치가 땅에서 솟아났다. 토끼 정도의 크기. 생김새도 황갈색 토끼, 프레리독, 다람쥐 등과 비슷했다. 검고 큰 눈에 귀는 작은 곰의 것처럼 둥글었다.
“프왕.”
“프와아앙.”
허니포켓 농사를 짓고 있는 팜독들이 앞발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너무 귀엽다.”
현백이는 허니포켓과 푸른 나비 그리고 팜독들을 보며 정신을 못 차렸다.
“천국 같아.”
그때 팜독 한 마리가 허니포켓을 꺾어서 가져왔다.
“나한테 주는 거야?”
현백이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묻자 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먹는 거야.”
지율이는 제법 능숙하게 허니포켓의 잎과 꽃봉오리를 분리했다. 빨대 같은 줄기를 빨면 꿀물이 쭉 올라왔다. 꽃잎, 잎사귀 등은 그대로 씹어서 먹어도 됐다.
황홀한 달콤함에 현백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너무 맛있다.”
“그치?”
만개한 허니포켓보다 활짝 웃던 현백이와 레오의 눈이 마주쳤다. 현백이는 통통한 잎사귀를 내밀었다.
“드셔보세요.”
“……난 됐다.”
“맛있어요.”
“됐다니까.”
레오의 정색에 현백이가 조금 무거운 표정을 지을 찰나였다.
“먹어보지 그러는가? 네가 추구하는 강함에도 도움이 될 것들이다.”
싹이가 말하자 레오는 반박하듯 얘기를 늘어놨다.
“……나는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다. 철만 먹어도 되고, 바람만 맞아도 문제가 없다. 먹더라도 육식을 하지, 이런 풀떼기를 먹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는 건가? 인간처럼 식사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레오는 괜한 자존심을 부렸으나 싹이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현백이도 괜찮겠다 싶어서 다시 잎사귀를 내밀었고, 레오가 곤란해하는 찰나였다.
탁.
현백이가 들고 있던 잎사귀를 지율이가 낚아챘다. 그리고 레오에게 내밀었다.
“자아!”
“…….”
“먹어!”
“나는 괜찮…….”
“먹어!”
“괜찮다니…….”
“맛있어!”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잎사귀를 더 쭉 내밀었다.
“…….”
결국 레오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잎사귀를 건네받았다.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찰나, 모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곰곰이는 이미 드러누워서 허니포켓을 마구 먹고 있었다. 그 옆에 핫도그와 팜독들도 잠시 휴식을 가지며 함께 뒹굴기 시작했다.
삐삐는 다소곳이 앉아서 양손으로 허니포켓을 잡고 먹었다.
현백이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왔고, 싹이도 눈빛으로 은근히 압박을 줬다.
“얼른 먹어! 맛있어!”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고, 결국 레오는 허니포켓 잎사귀를 입으로 가져갔다.
“……!?”
살면서 처음 겪는 종류의 단맛.
눈이 번쩍 뜨이고 절로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레오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는데, 싹이는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맛있지?”
지율이의 물음에 레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더 먹어! 많아!”
지율이가 웃어 보였고, 레오도 결국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고맙군.”
그렇게 다들 허니포켓을 먹으며 잠시 쉬는 와중이었다.
푸른 나비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두를 환영한다는 듯이 허공에서 날개를 팔락거렸다. 이내 수많은 푸른 나비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푸른 나비처럼 형태를 이뤘고, 팔락거리는 날개는 마치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와아아아아, 예쁘다아아아아.”
지율이가 생글생글 웃었고, 현백이도 푸른 나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크흠, 흠흠.”
가만히 지켜보던 레오가 상의를 벗었다. 완전히 벗지는 않고 얼굴 앞으로 내려 팔에 걸친 상태였다.
촤악.
레오는 사람 형태를 유지한 채 날개만을 펼쳤다. 마치 푸른 나비들의 인사에 화답하듯 천천히 날개를 움직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어떻게 했어?”
지율이가 눈을 반짝이자 레오는 괜히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힘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드래곤이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율이는 현백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현백이도 할 수 있어?”
현백이는 조금 민망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못해.”
“진짜?”
“응…….”
지율이가 발랄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돈데!”
현백이는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지율이는 드래곤이 아니니까 당연히 못하지!”
“그런 거야? 그렇긴 하겠다 참. 날개가 없으니까.”
지율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싹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싹이도 못해? 싹이는 못하는 게 없잖아.”
싹이는 등 뒤로 커다란 하얀 날개를 활짝 펼쳐서 움직였다.
“이런 식이라면 가능하다.”
“우와아아아아, 싹이 꼭 천사 같다. 나도 날개 갖고 싶다…….”
싹이가 잎사귀를 옮겨 지율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려던 찰나였다.
“나도 할 수 있어!”
지율이는 팔을 양옆으로 뻗어 위아래로 움직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자, 봐! 날개!”
“정말이네? 나도!”
현백이도 함께 팔을 펼치고 뛰었다.
어느새 푸른 나비들이 지율이와 현백이를 따라다니며 반짝거렸다.
* * *
오늘 메뉴는 빠에야(파에야 ; Paella).
쌀을 이용하는 스페인 요리다. 볶음밥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 끓이는 음식이다. 내가 괜히 육수를 만든 게 아니다.
내일은 떡국을 비롯해서 한식을 먹을 예정이라서 오늘은 이국적인 음식을 먹으면 좋을 듯했다.
나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고. 먹어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을지도 약간 걱정됐지만.
가장 기본적인 빠에야를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면 재료는 오징어, 새우, 토마토, 양송이버섯, 양파, 불린 쌀, 다진 마늘, 파프리카 정도면 된다. 우스타(우스터) 소스, 케첩, 올리브유, 후추로 간을 하고.
나는 오징어 대신 은문어를 사용했고, 데쳐서 껍질을 벗긴 새우들을 준비했다.
토마토 역시 3분 정도 끓인 뒤에 껍질을 벗겼다.
양파와 마늘은 다져서 준비하고, 양송이와 파프리카는 가늘게 썰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어서 향부터 냈다. 그 다음 다진 양파를 넣어서 투명해질 때까지 볶은 다음 은문어를 넣었다.
케첩 대신에는 좀 더 건강하고 풍부한 맛이 나는 토마토 페이스트를 사용했고, 우스타 소스는 유기농을 이용했다. 서양에서는 간장 같은 거다.
은문어에 어느 정도 양념이 배면 불린 쌀과 물 그리고 양송이를 넣은 다음 뚜껑을 닫고 중불에서 끓이면 된다.
약 6분 정도 끓이고 나서는 뚜껑을 열어 잘 섞어준 다음 다시 뚜껑을 닫고 약불에 끓인다. 이렇게 한 번 섞지 않으면 바닥이 타기 쉽다.
마지막에 새우와 파프리카를 얹은 뒤 아주 약한 불에서 뜸을 들이듯 3분 정도만 놔두면 끝.
생파슬리를 살짝 올려주면 더 맛있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기호에 따라 치즈를 갈아서 올려도 좋고.
제법 그럴싸하게 되어가는 듯하다. 조리법도 그리 어렵지 않고. 이미 냄새는 끝내준다.
“언제 먹냥?”
무룩이도 혀를 날름거리며 눈을 빛냈다. 빠에야를 탐내는 고양이라니. 엄연히 마수로 분류할 수는 있긴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마수가 빠에야를 탐내는 게 더 웃기기도 하고.
“거의 다 됐어.”
나는 네모집 밖을 내다봤다.
“언제 오려나……. 슬슬 와야 되는데.”
“내가 부를까냥?”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무룩이가 물었다.
“부른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고?”
“냥!”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불러봤자 들리겠어?”
“안 되냥?”
“안 되지.”
무룩이는 빠에야를 힐끗 돌아본 다음 물었다.
“이제 거의 다 됐냥?”
“한 번 뒤적거린 다음에 뜸도 들이고 해야 되니까… 10분 좀 넘게?”
“알겠다냥.”
무룩이가 네모집 밖으로 나섰다.
“뭐 어떻게 하게?”
나의 물음에 무룩이는 가슴을 펴고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데리고 오겠다냥!”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7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