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
2. 내 섬에서 첫날
가족 하나 없는 내게 누가 섬을 물려준다는 것인지가 제일 궁금했다.
피상속인은 이모할머니.
유일한 상속인이 나였다.
막상 이모할머니라는 사람은 나의 존재조차도 몰랐을 거라고.
나도 이모할머니가 있는지 몰랐다.
―우선 자세한 이야기를 위해 뵀으면 합니다. 상속을 받으시든 포기하시든 절차를 거치셔야 하니까요.
“받고 싶습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 * *
일을 쉬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상속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의 행복회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갔다.
변호사 김운장과의 만남은 짧고 비쌌다. 눈앞에서 스톱워치를 켜고 상담을 진행하는데 인간미는 없었다. 그런 면모가 더욱 프로처럼 느껴졌다.
김운장은 필요한 말들만을 담백하게 늘어놨다.
Q. 상속을 받으시겠습니까? [Y/N]
Q. 상속세가 발생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Y/N]
Q. 상속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내 대답은 전부 ‘YES’였다.
매일 쫓고 쫓기듯 뛰는 삶보다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천천히 걷기도 하고, 잠시 앉아서 쉴 때도 있고, 필요하다면 가볍게 뛰기도 하고, 원한다면 드러눕기도 하면서.
섬에서의 삶에도 불편한 점이야 있겠지만, 전쟁터 같은 차원문 현장과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 * *
변호사 김운장과 마주 보고 앉았다.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내가 상속받을 섬은 공시지가에 비해 재산적 가치가 적었다.
그렇다고 내가 치러야 할 금액보다 적은 돈으로 섬을 살 수 있지도 않았다.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 걸까? 김운장이 갑자기 서류들을 펼쳤다. 내가 상속받을 섬에 대한 정보였다.
“저랑 하나하나 따져보시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시죠. 요트만 해도 값어치가 상당하지만, 이번 상속에서 쟁점은 섬이니까요.”
요트는 파워요트라 불리는 종류였는데, 엄밀히 말하면 모터보트였다. 600마력의 트윈 엔진을 달고 열두 명까지 승선이 가능했다.
잠시 요트 사진에 정신이 팔렸는데, 김운장이 검지로 섬에 대한 정보를 가리켰다.
―용도 구분 : 개발 가능
―지목 : 전/답/임야/대지/나대지
“대한민국이야 이제 섬이 넘쳐나는 나라가 된 덕분에 용도 제한은 많이 풀렸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개발 가능한 섬들이 10퍼센트도 안 됐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무인도는 이용 가능 혹은 개발 가능이어도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소유주조차 입도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10년 전에 많이 해제됐습니다.”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차원문으로 인해 생긴 섬에는 차원문이 생기지 않으니까요. 그냥 물에 떠 있기만 한 땅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역시 잘 알고 계시네요.”
―시설물 이용현황 : 집터와 샘 있음
―지자체 개발 계획 : 개발 계획 없음
―영해기점 무인도서 : 영해기점 없음
―역사적 가치 : 역사적 가치 없음
“식수 공급이 되는 부분과 컨테이너 하우스 세 동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유지가 될 섬 중에서는 아마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손에 꼽을 정도로 큽니다.”
“그 정도인가요?”
“예. 본섬은 말할 것도 없고, 부섬도 제법 규모가 있습니다.”
김운장은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나와 있듯이 본섬과 부섬의 거리는 약 1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같이 상속될 요트를 타고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좋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모든 정황을 봤을 때 운명이라고 생각됐다.
“사실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고 있던 것 같습니다.”
“표정이 그러신 것 같긴 했습니다. 상속을 진행하실 생각이신 거죠?”
“맞습니다.”
“그래도 일단 직접 보신 다음 결정하셔야 되는 부분이니까요. 섬에 다녀오신 다음 결정을 내리시죠. 요트도 둘러보시고요.”
잠시 섬과 요트의 사진에 시선을 두던 나는 고개를 들어 김운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냥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네? 그래도 일단 직접 보면서 확인을 하셔야 되지 않을까요?”
추후 섬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시세차익을 볼 가능성은 낮다. 가격을 떠나 매매 자체가 어렵다.
차원문으로 인해 폭등하는 부동산이 있는가 하면, 폭락하는 곳도 있다.
토지는 부동성, 부증성, 영속성의 가치를 가지고 유한하다. 그런데 차원문의 등장으로 더 이상 그렇지가 않다. 차원문으로 인해 생긴 섬들이 대표적인 예다.
내가 상속받을 섬이 그렇다. 매매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 실거주를 할 생각이니까.
“제가 상속을 진행하는 게 변호사님께도 좋은 거 아닌가요?”
“그렇기는 합니다.”
“그런데도 제 입장에서 생각을 해주시네요.”
“최소한의 직업윤리입니다.”
“좋으신 분이네요.”
“속에 아직 양심이 남아 있는 거죠 뭐.”
상속을 받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치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모은 돈 대부분을 써야 한다. 다행이다. 비용을 치를 수 있는 돈이 있어서.
누구에게나 기회라는 게 찾아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누구나 기회를 잡지는 못한다. 기회는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미끄럽다. 미리 순발력과 미끄러지지 않는 거친 손을 만들어둬야 한다.
지금까지 한 고생 덕분에 눈앞의 기회를 움켜쥘 수 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여기요.”
내가 미리 준비했던 서류들을 내놓자 김운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받아 들었다.
“그럼 이제 면허부터 따셔야겠네요.”
“면허요?”
“예. 요트 면허는 없으실 거 아니에요? 아마 정식 명칭은 수상조종면허라고 할 겁니다.”
김운장이 서류들을 테이블 위로 탁탁 세우며 정리하며 씩 웃어 보였다.
“그래야겠네요.”
벌써 머릿속으로는 요트에 타고 출렁이는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 * *
상속 예정인 섬에 들렀다 왔다. 너무 커서 다 둘러볼 수 없었다. 부섬은 멀리서 보기만 했다.
섬을 본 내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아름답다’였다. 살면서 무언가를 보고 실제로 아름답다고 처음 말한 순간이었다.
상속을 받기로 결정한 뒤에도 몇 번인가 고민했다. 번복해야 되나? 성급했나? 하지만 섬을 직접 보고 느끼자 걱정이 파도 거품과 함께 사라졌다.
섬으로 가기 전까지는 일을 지속하기로 했다. 수상조종면허를 비롯하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후련한 마음으로 현장에 나섰다. 가장 익숙하면서도 지긋지긋한 곳. 이별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어? 기분 좋아 보이네?”
옆에서 곡괭이질을 하던 천 씨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그런가요?”
“어어? 웃고 있네?”
‘섬과 요트를 보유하다’, ‘섬과 요트의 주인’이라는 말은 굉장한 힘을 지녔다. 폭력적이고 폭발력을 가졌다. 내 입꼬리 정도야 쉽게 움직였다.
“또 웃네?”
“웃을 수도 있죠.”
“생전 안 웃던 사람이 웃으니까 그러지.”
“안 웃긴요, 저도 사람인데.”
“아니야, 안 웃었어. 내가 한 번도 못 봤다니까?”
내가 장비를 정리하자 천 씨 아저씨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어? 뭐, 뭐,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장비 정리하잖아요.”
“뭐? 가려고? 지금?”
“네.”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엄청 건강해요.”
천 씨 아저씨는 거꾸로 세운 곡괭이 끝에 양손을 얹고 말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드디어 좀 쉬면서 하는구만. 잘 생각했어. 좀 쉬면서, 약간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그렇…….”
내가 동의하는 것을 예상치 못했는지 천 씨 아저씨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자기 딴사람이 됐네 진짜.”
“목표를 이뤘거든요.”
“어디 뭐, 조 사장처럼 전기석이라도 주웠어?”
“그런 건 아니고요. 아예 무인도 같은 데 가서 살려고요.”
천 씨 아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자연인이라도 되게? 젊은 사람이 실없는 소리를.”
“그럴까 봐요.”
섬에서의 삶. 어쩌면 가장 큰 도전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은 없다. 철이 들기도 전, 최초의 기억이 혼자 길거리를 떠돌던 때였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외딴섬. 홀로 살아온 내가 살아갈 터전으로 가장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기대된다. 새로운 삶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행복할 지경이다.
* * *
수개월 뒤.
상속과 귀촌을 두고 김운장의 웃음 가득한 축하.
무인도로 간다는 소리가 진짜일 줄은 몰랐다고, 언젠가 또 보자는 천 씨 아저씨와의 악수.
자주 봤더니 미운 정이 든 노 사장과의 시원섭섭한 인사.
언제 한번 섬에 놀러 가겠다고, 종종 육지에도 올라오라는 친구와의 약속.
떠난다고 하니 건강 잘 챙기라는 거래처 사모님의 따스한 당부.
지금까지의 삶 대부분을 육지에 남기고, 나의 새로운 집인 무인도로 향하는 길이었다.
부르르르릉.
고속버스 안에서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현장을 떠나 귀촌할 때가 되자 트럭은 사명을 다했다는 듯 고장이 났다. 그동안 고생해 준 게 안쓰러워서 마음 같아서는 땅에 묻어주고 싶었다. 현실은 폐차 처리를 하고 125만 원을 받았지만.
버스 안에서 할 일이야 뻔하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여느 때처럼 뉴스든 커뮤니티 사이트든 차원문과 관련된 이야기로 범벅이었다.
내가 세상을 제대로 의식하고 기억했을 때는 이미 차원문들이 활성화되고 특별한 힘을 각성한 이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헌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이제는 전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치이이익!
공압식 브레이크가 작동하며 압축된 공기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강척 버스터미널 도착. 28인치 캐리어 두 개에 100리터 배낭까지. 터미널을 벗어나 걸음을 조금 옮기자 공기부터가 다르다.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택시에 올랐다.
요트가 기다리고 있는 마리나항만.
“짐이 많으시네. 여행 오신 건가?”
“이사요.”
“그래요? 일 때문에요?”
“아니요, 은퇴했어요.”
“은퇴요? 젊은 분이…….”
“그렇게 됐네요.”
“하긴, 요즘은 파이족? 뭐였죠?”
“파이어족이요?”
“예예, 그거요. 요즘은 나이 상관없이 여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요.”
택시기사는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니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계속 일을 하거나요.”
“그러게요.”
“아, 도착했네요. 여기 카드 찍으세요.”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구름 떼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유명 헌터들을 따라 움직이는 인파였다. 헌터도 분야가 다양했고,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처럼 인기를 끄는 경우도 많았다.
“사진 하나만 찍어줘요!”
“물러서세요! 물러서시라니까요!”
“무슨 일이래요?”
“차원문 현장 출동 중입니다.”
“뭐 나왔나요? 마수인가요?”
선천 각성자들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인간들. 헌터는 만들어질 수 없고 태어나는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부, 명예, 권력을 처바르고 운까지 따라야 가능한 후천적인 각성자들도 존재하지만, 대다수가 선천 각성자에 비해 미약한 힘을 가진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들 하는데, 운이 나쁘면 머리와 몸 전부 고생한다. 각성자와 일반인을 가르는 기준은 순전히 운이니까.
“흐음.”
예전에는 헌터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묘하게 부글거렸다.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게 여겼다.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섬을 상속받은 뒤로 쭉 그랬다. 더 이상 부럽지가 않다.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는 오늘도 목숨을 걸고 일한다. 대다수가 평생의 목표로 삼아도 이루지 못하는 꿈이 손안에 있다. 이제 나도 운 좋은 걸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면서도, 요트를 향한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 * *
요트 운전 중이었다.
수레바퀴처럼 생긴 밀크카라멜 빛깔의 핸들이 손에 착 붙었다. 요트 운전석에서는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자꾸만 양쪽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친놈처럼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요트가 바다를 가르는 소리와 나의 웃음소리만이 들렸다.
처음 느끼는 해방감과 여유.
이게 진짜 행복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단순히 요트를 몰고 섬으로 가는 게 아니다.
새로운 삶을 향해 항해 중이다.
두 시간 넘게 바다를 가로지르자 섬이 보였다.
거대한 본섬과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부섬.
내 섬들이었다.
“죽인다아아아아! 진짜 죽인다!”
섬을 매매할 때는 유의할 점들이 많다.
해양폐기물 따위로 버려진 땅은 아닌지, 식수는 공급이 가능한지, 육지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배접안 시설이나 장소가 갖춰져 있는지, 밀물과 썰물 때 면적이 어떤지 등.
내 섬은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깨끗한 환경에 계곡과 지하수 시설을 갖췄다. 선착장이 설치돼 있었고, 밀물일 때 면적이 확 줄어들지 않았다. 육지와의 거리야 요트로 이동하면 됐고.
나는 능숙하게 요트를 정박한 뒤 내렸다.
“후우웁.”
섬의 땅을 밟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몸속 전체가 정화되는 듯한 상쾌함. 내 집의 공기였다.
* * *
“웃차.”
선체의 후단부, 선미(船尾)에 쌓인 짐들을 차례차례 손수레로 옮겼다. 온갖 살림살이와 비상식량들이었다.
선착장에서 컨테이너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약간의 오르막길. 살짝 기울인 손수레를 힘껏 민다. 차원문 현장을 뛰던 내게는 별거 아니다.
선착장과 컨테이너를 세 번이나 왕복하고 나서야 이사가 끝났다.
컨테이너는 세 동이 나란히 있었다. 각각 역할은 방, 욕실, 주방 겸 창고. 미리 청소를 해둔 터라 깔끔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푸르렀다. 온갖 풀과 나무들이 손을 흔들었고, 더 멀리 시선을 두면 바다가 미소를 퍼뜨렸다.
“밥부터 먹을까.”
허기에 가져온 쌀과 냄비를 꺼냈다. 전기밥솥도 있었고, 즉석밥도 구비해 뒀다. 하지만 기분을 내고 싶었다.
두고두고 쓰리란 생각에 화로를 아예 사 왔다. 쌓인 장작 위로 토치가 불을 뿜었다. 마음 같아서는 불쏘시개를 사용하고 후후 불어보고 싶었지만, 첫날이니까.
일부러 약하게 피운 불 위로 냄비를 올렸다.
“죽이네.”
이게 뭐 별거라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장작불 향이 좋다. 아직 가을도 채 오지 않았는데 군밤과 군고구마가 생각난다. 겨울에는 꼭 구워 먹어야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짐들. 저것도 다 일거리다. 그런데 보고 있어도 지겹지가 않다.
일은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이지,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일거리를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고 피로해지며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피로와 기분은 태도와 마음이 되곤 한다. 그걸 인지하고 있어도 영향을 받지 않기란 어렵다. 그런데 섬에서의 일거리들은 보고 있는데 즐겁다.
모든 게 오롯이 나를 위한 활동이다.
타닥, 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를 뒤로하고 걸음을 뗐다. 밥이 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컨테이너들은 산 초입에 위치했다. 산을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계곡이 있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비포장이지만 생각보다 고른 땅.
산길을 따라 조금 걸었다. 바로 위쪽으로 계곡이 흐르는 게 보였다.
매일 주말이길 바랐는데, 아예 휴일이고 휴가다. 드디어 이름값을 하게 된 기분이다. 어쩌면 가장 사치스러운 삶일지도.
조금 더 오르자 꽤 커다란 연못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이 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이야…….”
가까이 다가서서 연못 안쪽을 들여다봤다.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게 보였다. 연못을 보고만 있어도 시원해지는 게 푹 쉬는 느낌이었다.
“조오오오오타.”
살면서 섬을 상속받기로 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 확신했다.
조금 더 올라갈까 하다가 화로에 올려둔 냄비가 생각났다.
오늘은 돌아가서 밥 먹고 정리부터 해야지. 섬을 둘러보는 데만 해도 한참 걸릴 듯하다.
몸을 돌렸는데 뒤에서 바람이 불고, 바닥으로는 하얀빛이 떨어졌다.
“음?”
고개를 돌리자 연못 위로 거대하고 새까만 차원문이 생성돼 있었다.
“어…?”
차원문은 셋 중 하나다. 활동기에 푸른색 혹은 붉은색으로 빛나거나, 휴식기라 회색으로 화산재처럼 굳은 상태.
차원문 관련 현장에서 계속 일을 해왔다. 검은색 차원문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차원문은 이런 식으로 발생하지도 않는다. 보통 휴식기 상태로 생긴 뒤, 서서히 여러 전조를 보인 다음 활동기에 들어간다.
나는 몸을 돌려 도망치거나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차원문에서 나를 죽일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씁…….”
나는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휴대폰을 두고 왔다. 쓴웃음을 짓는데 차원문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못 위를 뒤덮고도 남았던 차원문은 허공에 생긴 작은 구멍처럼 보일 정도로 작아졌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작아진 차원문에서 동그랗고 새까만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
새까만 무언가가 연못으로 떨어지는 순간, 차원문이 사라졌다.
퐁당.
한번 생긴 차원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휴식기가 길 수는 있어도 사라진 적은 없다.
나는 연못으로 시선을 옮겼다. 연못 중앙 바닥에 새까만 자갈 같은 게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연못에 들어섰다.
보기보다 깊어서 잠수를 해야 했다. 나는 차원문에서 나온 새까만 것을 집었다. 작은 달걀만 했는데, 쇠로 된 양 묵직했다.
“푸하.”
연못에서 나오자마자 손에 쥔 것을 들여다봤다.
검게 빛나는 알이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