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
3. 노크노크
최초로 검은색 차원문을 봤다. 그리고 그 차원문이 소멸하는 것도 봤고. 남기고 간 것은 검은 알 하나뿐.
어떻게 봐도 분명히 알이었다. 일반적인 달걀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
“검은 알이라…….”
검은색 알이라니. 살면서 검은 알은 처음 본다. 눈, 부리, 몸, 깃털, 뼈, 내장까지 검은 닭인 오골계나 흑계(카닥나쓰 : Kadaknath)조차도 알은 보통 알과 다를 바 없다.
에뮤(Emu)라는 날지 못하는 새가 어두운 빛깔의 알을 낳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멀리서 볼 때나 검지, 사실 어두운 녹색이다.
“반질반질하니 예쁘네.”
양손으로 조심스레 감싼 알은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걸 증명하듯 금세 온기를 뿜어냈다. 마치 작은 심장처럼 두근거렸다. 손바닥을 콩콩 노크하는 듯한 느낌. 껍질 안쪽의 녀석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새 나는 양손에 알을 올린 채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설마 또 차원문?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오오오오오오…….
그림자의 정체는 하늘혹등고래. 머리가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마치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듯한 모습. 그리고 가까웠다. 기껏해야 아파트 20층 높이 정도.
이토록 낮게 날아다니는 하늘혹등고래도 있나? 그것도 거꾸로?
하늘혹등고래의 커다랗고 검은 눈에는 내가 담겨 있었다. 영혼까지 들여다볼 것 같은 눈.
“오늘 무슨…….”
무슨 날이기는 하다. 섬으로 이사를 온 첫날.
하늘혹등고래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이듯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다 머리를 들어 올린 하늘혹등고래는 하늘을 유영하며 멀어졌다.
“하…….”
헛웃음이 흘렀다. 그러다 양손에 올리고 있는 검은 알로 시선을 옮겼다.
하늘혹등고래를 보고 소원을 빈 날, 섬과 요트가 생겼다. 양손에 담고 있는 검은 알도 하늘혹등고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다 같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뜨끈한 알은 계속해서 두근거렸고, 내 심장도 요동쳤다.
* * *
“에이, 탔네.”
밥이 냄비에 조금 눌어붙었다. 그래도 심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오히려 구수하게 느껴졌다.
조미김과 참치 통조림 그리고 김치. 소박했다. 도시에서 살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맛은 달랐다.
“죽인다 진짜.”
중얼거리든 소리를 지르든 거리낄 게 없어서 그런지 혼잣말이 늘었다. 아니면 혼자 있는 게 너무 어색해서 그럴까.
현장은 대체로 시끄러웠다. 가끔 마지막까지 남아서 혼자 삽질을 할 때면 조용하긴 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을 즐길 틈은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기절하듯 뻗기 바빴고.
“이것도 익숙해지겠지.”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잠시 알을 살폈다. 여전히 따스하고 두근거렸다. 따뜻한 물을 넣은 생수병을 수건으로 감싸 주위를 둘렀다.
내일 육지에 다녀와야 할 듯했다. 부화기라도 사 올 생각이었다. 검은 알에서 뭐가 나올지 궁금했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근거는 마력. 나는 일반인이지만 마력을 감지할 수 있다. 개의 후각을 지녔다고 보면 된다. 매일 차원문 현장에 나가서 마력 노출도가 높았고, 조금 타고난 부분도 있었으며, 나름대로 노력까지 더한 결과다.
엄청나게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각성자들에게는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4~5억만 있으면 일반인도 노력 없이 마력 감지가 가능하다. 마력에 예민해지는 버섯으로 내린 차 한 잔만 마시면 된다.
알에서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위험한 마수일수록 강력한 마력을 가진다. 알에 들어 있는 게 뭐든지 간에 위험할 가능성은 없다. 위험해 봤자 알을 막 깨고 나온 새끼였고.
“알만 봤을 때는 딱 흑곈데.”
생각해 보면 정체불명의 검은 차원문에서도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활동기의 차원문이라면 응당 마력을 뿜어내는 법인데. 크기가 변하고, 갑자기 생기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지만.
차원문이 아니었나?
그럼 뭐지?
섬에서의 생활은 첫날부터 기묘했다. 내심 섬에서의 생활이 너무 지루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지루할 틈은 없을 것 같았다.
슬슬 잘 준비를 하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뭐야 이거.”
알이 조금 커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달걀보다도 조금 작았는데, 지금은 오리알 수준이었다.
* * *
이른 새벽. 한여름인데도 서늘함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컨테이너에서 나오자 CG로 만든 것 같은 주황빛 일출이 나를 반겼다. 오늘은 내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걸 봤을지도.
잠자리가 바뀌었는데도 푹 잤다.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눈을 뜨자마자 입맛이 돌았다. 밥부터 먹고 싶었지만, 먼저 알을 확인했다.
“어어?”
지난밤 사이 알이 더 커졌다. 오리알 크기에서 이제는 타조알 수준이 됐다.
“확실히 평범한 알은 아닌데……. 마력은 안 느껴지고.”
부화기부터 사러 갈까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육지에서 배로 두 시간이 넘게 와야 할 정도로 먼 곳이어도 인터넷은 된다. 위성인터넷이라 비용은 조금 더 비싸지만.
검은색 차원문과 검은색 알에 대한 정보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해외 사이트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 하긴, 온갖 현장을 다 뛴 내가 모르는데 누가 알겠나.
“오호…….”
굳이 육지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내가 직접 부화기를 만들면 됐다.
스티로폼 박스에 삼파장 전구만 있어도 절반 이상 완성. 전구는 큼지막한 유리컵 안쪽에 위치하게 만들어 급격한 온도 변화를 방지. 내부 온도는 37도에 습도는 70~85퍼센트를 유지.
“이 정도면 됐겠지.”
차원문 현장에서의 일은 창조적이지 못하다. 부수고 캐고 줍고 팔고.
별거 아닌 부화기를 하나 만들었을 때도 제법 만족감이 느껴졌다.
그냥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간단할지도 모르지만, 만족감은 직접 하는 것만 못하다. 괜히 DIY가 유행하는 게 아니다. 섬에서는 뭐든지 스스로 하는 게 기본값이다.
“하나하나 직접 하는 것도 재미지.”
금세 스티로폼 박스와 전구 등을 활용해 부화기를 제작했다. 타조알 크기의 검은 알이 들어가고도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알 위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댔다. 심장박동과 따뜻한 온도는 여전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강한 생명력.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곧 보자.”
이사하고 둘째 날이 시작됐다.
* * *
도시는 뭐든지 빠르다. 그만큼 편리하다. 대신 나도 그 속도에 맞춰 살아야 한다. 흐름에 맞추지 못하면 떠밀리고 휩쓸린다.
세상 흐름을 따르는 것이 하수구로 향하는 길은 아니다. 내가 무조건 흐름에 거스르고 싶어 하는 반골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섬으로 올 때 결심했다.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겠노라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
“날씨 조오오오타.”
컨테이너를 나오자마자 쭉 내려가면 작은 해변이 있는 선착장이 나온다. 그 옆으로는 암석지대가 있다. 뒤편으로 가면 산으로 이어지고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컨테이너 바로 앞에는 작은 텃밭 자리가 있고, 옆으로 더 내려가면 농사를 지을 정도로 큰 밭이 나온다.
아직 밭에 무엇을 키울지는 못 정했지만, 컨테이너 바로 앞에 있는 텃밭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파, 상추, 깻잎 같은 걸 키우면 그때그때 먹기 좋으니까.
시작은 대파다. 미리 준비한 모종들을 일렬로 심었다. 파는 대충 묻어도 잘 자란다고 하니 금방 쑥쑥 크겠지. 비료는 많이 주면 오히려 채소가 말라 죽는다고 해서 일단 그냥 키워보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처음 하는 일이라 뭔가 어색했지만, 그럴싸해 보였다.
조금 아까 밥을 먹었는데도 금세 허기가 졌다. 고된 현장일을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확실히 입맛이 도는 환경인 듯했다.
“사냥에 나서볼까.”
진짜 사냥은 아니었다. 내가 챙긴 것은 통발. 어떤 곳에 뒀을 때 많이 잡히는지 미리 예습을 해뒀다. 특정 어종이나 문어 같은 걸 노리고 미끼를 넣기도 하는데, 아직은 포인트를 알아갈 때이니 통발만 두기로 했다.
선착장 주변과 그 옆의 암석지대 쪽에 띄엄띄엄 통발을 하나씩 뒀다. 작은 물고기 한 마리라도 잡히면 좋겠는데. 내일 아침이면 알게 되겠지. 기다림의 미학이다.
쏴아아아아아아…….
약한 파도가 철썩이며 하얀 거품이 흩어질 때마다 지금껏 쌓였던 내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듯했다.
통발을 설치한 곳들을 훑었다. 내일 왔을 때 뭐라도 잡히면 좋겠는데. 물이 빠졌을 때 해루질을 하러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해본 적은 없지만.
제법 움직였더니 이제는 진짜 배가 고팠다. 얼른 돌아가서 뭐라도 먹어야지. 들고 나왔던 통발들을 다 설치해서 손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기대감으로 무거워져 있었다.
* * *
나란히 있는 컨테이너들이 보였다. 검은 알부터 떠올랐다. 나 혼자 사는 섬에서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는데도 괜히 걸음을 서둘렀다.
허벅지의 떨림. 휴대폰 진동이었다. 친구 고성우의 전화였다. 현장에서 알게 된 녀석인데, 항상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다녀서 별명이 냉장고다.
“어, 냉장고.”
내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고성우가 툴툴거렸다.
―언제까지 냉장고야, 아이스박스 안 가지고 다닌 지가 언젠데.
3년 전, 고성우는 각성하여 헌터가 됐다.
“영원히 냉장고지.”
아이러니하게도 각성한 고성우의 능력은 냉기를 다루는 것이다.
―아이스박스 가지고 다닌 게 각성하고 관련이 있었을까?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
“왜 전화했어?”
―왜는, 무인도에 갔으니까.
“좋아.”
고성우의 목소리에 웃음이 묻어났다.
―진짜 그런가 보네.
“그래?”
―어, 목소리부터 다르다. 나도 섬 가고 싶다.
“너도 사면 되지. 헌터 생활 3년이면 꽤 모았을 거 아냐?”
―모으기는, 지난번에 투자한 거 조져서 죽겠구만. 망할 차원문이 휴식기에 들어간 지가 벌써 2년째야.
차원문 주변 지역. 차세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차세권이라고 투자했다가 휴식기가 길어지면 손실을 본다. 더블 차세권, 트리플 차세권이면 얘기가 다르지만.
―가즈아, 가즈아, 했는데 이젠 갚즈아가 됐어.
“그래도 잘 벌잖아.”
―열심히 해서 얼른 털어야지. 그런데 넌 현장일 관두고 거기서 벌이는 어떡하냐?
“벌이가 필요 없지. 여기는 자급자족이 가능한데.”
―그래도 위험하지 않냐? 대비해야지.
“현장일보다는 안 위험해.”
―그것도 그렇네.
“여기서 지내면서 비상금으로 쓸 돈 정도는 남아 있고.”
무인도라고 불편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편한 게 중요하다. 난 편하고 싶다. 가끔 육지에 나가서 생필품도 사고, 휴대폰과 인터넷도 필요하다.
―근데 혼자서 안 외롭냐?
평생 혼자여서 괜찮다고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하긴, 외롭다 싶으면 육지 한 번씩 들르면 되지. 내가 놀러 가도 되고.
고성우가 알아서 말을 이어나갔다.
―개나 한 마리 키우지 그래?
“개? 웬 개?”
―예전에 티비 보니까 무인도에서 개 키우는 아저씨 나오고 그러더라고.
“됐어. 개는 무슨 개야.”
―개든 고양이든 뭐든. 요즘 ‘반려마수’들도 괜찮아 보이던데.
나는 부화기 안에 있는 알을 확인했다. 그새 알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껍질도 돌처럼 단단했다.
“봐서.”
―아무튼, 진짜 좋아 보이네. 진짜 마음에 드는구나?
“이제 이틀짼데 뭐. 살아봐야 알지.”
말은 이렇게 해도 이미 확신으로 가득했다.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난 이제 곧 투입이다. 또 연락할게.
“그래, 몸조심하고. 수고해.”
―너도.
행복한 삶 자체만을 목표로 두지는 않는다. 가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평생 행복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되고자 하는 인간이 되고,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스스로에게만 집중하여 극한의 자유를 누린다.
* * *
둘째 날 밤.
적당히 저녁을 때운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알을 확인했다.
“그새 더 커진 거 같기도 하고?”
손을 슬쩍 가져다 댔다. 여전히 뜨뜻하고 두근거렸다. 손을 떼려는 찰나였다. 손끝부터 시작해 팔이 뜨거워지는 느낌.
“뭣…!”
찰나지만 마력이 느껴졌다. 뜨거운 감각이 전신에 퍼졌다. 3초 남짓의 짧은 시간. 뜨끈한 느낌은 사라졌고,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알에서 내게 마력이라도 흘러들어온 줄 알았는데, 딱히 변화는 없었다. 알도 마찬가지로 똑같았고.
“기분 탓인가?”
당연하게도 알은 대답이 없다.
“요상한 알이라니까.”
그때였다.
도로록.
알이 살짝 굴렀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지만, 마치 알이 대답을 한 듯했다. 나는 알을 원위치로 되돌리며 씩 웃었다.
“안에 있는 네가 어떤 녀석일지 진짜 기대된다.”
이제 그냥 편하게 말을 걸기로 했다. 일종의 태교였다.
혼자 피식 웃었다. 이런 짓을 할 여유도 생겼다. 환경이 변하니 사람 자체가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
* * *
툭, 툭툭. 손끝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계속 울렸다.
“뭐야…….”
중얼거리자 소리가 끊겼다. 계속 엎드린 채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툭툭툭. 다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뭐… 워어어어?”
양팔로 끌어안아야 될 만큼 커다래진 검은 알이 바로 옆에 있었다.
부화기는 부서진 상태.
“하루 만에 이렇게 자란 거야?”
이 정도 되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하루 만에 바위처럼 커지는 알이라니. 여전히 마력은 느껴지지 않지만, 도움이 필요할 듯하다.
일단 헌터인 고성우라도 섬에 부를 생각으로 휴대폰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툭! 툭툭!
알에서 난 소리.
나는 천천히 알에 가까이 다가서서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댔다.
툭툭툭툭!
울림이 고스란히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마치 안쪽에서 노크하는 듯했다.
“이게 대체…….”
언제 한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진정으로 놀랄 일이 또 있을까. 없을 줄 알았는데, 섬을 상속받게 되면서 많이 놀랐다. 그 이후로 계속 놀라고 있었다. 지금도.
툭툭! 툭! 쩍, 쩌적!
검게 빛나는 알 윗부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귀촌하고 셋째 날 아침이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