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42
242. 이별이 꼭 슬프지만은 않아
강척으로 가던 길.
“빠아! 더 빠르게 가자!”
지율이의 말에 나는 꽤 놀랐다.
지율이는 무슨 일을 하든 좀처럼 재촉하지 않는다.
가끔 맛있는 걸 먹을 때 얼른 됐으면 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설레는 것일 뿐.
지율이는 기다림의 미학을 안다. 곧 자기에게 돌아올 기쁨을 알기에 서두르고 조바심을 내면서 그 기분을 망치지 않는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현명하다. 벌써 그렇다.
더군다나 지율이는 요트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몇 시간이고 움직이는 요트 위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아하는 게 지율이다.
뛰어난 시력으로 바다 저 멀리 그리고 바다 깊숙이 들여다보곤 한다.
그런 지율이가 재촉하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알았어.”
나는 곧바로 요트 속도를 올렸다.
요트의 속도를 조금 올린다고 문제될 건 없었다.
지율이는 오히려 속도를 즐겼다.
현백이, 오순이, 레오야 드래곤이고.
강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상이 걸려 있었다.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마수 제압 실패.
“저기서 사람들 많이 온다! 저쪽으로 가볼까?”
지율이는 자연스레 마수가 있는 방향으로 우리를 유도했다.
계산을 해서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지율이는 타고나기를 착했고, 모든 행동이 그렇게 이어지도록 움직이는 듯했다.
결국 마수를 제압한 것은 레오.
이번에는 딱히 내가 부탁하거나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멋대로 설치고 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다.”
스마일맨티스를 제압한 레오는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놨다.
나와 현백이, 오순이는 그냥 조용히 웃었다.
“잘했어! 사람들을 많이 구했잖아!”
지율이의 칭찬에 레오는 인상을 잔뜩 구겼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많이 구했으니까!”
레오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뭐라고 더 하지 못했다.
“멍멍이다!”
지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타이거와일러 앞으로 다가섰다.
“엇…….”
타이거와일러의 주인인 남자가 당황하며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영진이가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아마 영진이는 타이거와일러와 나름대로 교감을 한 듯했다.
나는 타이거와일러에게서 어떠한 적대감도 느낄 수 없었기에 괜찮다고 여겼다.
“무늬가 되게 예쁘다아아아.”
지율이는 활짝 웃으면서 타이거와일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타이거와일러는 스스로 고개를 내려 얼굴을 들이댔다.
“와아, 되게 부드럽다.”
타이거와일러의 모질이 부드럽다고 느껴질 정도면 적잖이 케어했다는 뜻.
아마 주인이 꽤 신경을 쓴 듯했다.
“저…….”
남자가 영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미안했다.”
영진이는 다 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남자는 영진이의 엄마인 이미주를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와 ‘괜찮아요’의 대결이 펼쳐졌다.
결국 ‘죄송합니다’가 이겼다.
어느새 헌터들이 몰려와 상황이 정리되고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구정석이 왔다.
현백이, 오순이, 레오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구정석은 지율이와도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내게 웃는 낯을 들이밀었다.
“오늘은 제가 바록 가봐야 해서…….”
“하하, 그걸 왜 미안하다는 듯이 말씀하십니까. 다음에 봬요.”
“다음에는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대접은 괜찮고, 식사는 같이 해요.”
지율이가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또 만나아아아.”
현백이는 아쉬웠는지 지율이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
오순이도 곁으로 다가가서 살짝 안으며 끼어들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는 레오에게 말했다.
“너도 낄래?”
“웃기는 소리…!”
리액션이 한결같아서 놀리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구정석과 함께 드래곤들이 자리를 먼저 떴다.
나도 지율이, 무룩이와 함께 자리를 뜰까 할 때였다.
“안녕.”
영진이가 지율이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지율이는 조금 의아해하는 듯하면서도 반갑게 웃어 보였다.
“신기하다.”
영진이의 말에 지율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렇게 만난 게.”
“그래? 그게 왜?”
영진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뗐다.
“네가 엄청 보고 싶었거든.”
지켜보던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 입가에 헛웃음을 묻혔다.
“어쭈?”
‘이것 봐라?’까지는 목소리로 내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진이는 지율이에게 푹 빠졌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백 년, 아니, 천 년, 아니, 만 년은 이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아니, 그 무엇이 들어가도.
당연히 지율이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거지만, 지금 내 마음은 그렇다.
“그래?”
지율이가 생글생글 웃었고,
“응.”
영진이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왜 보고 싶었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지율이의 물음에 영진이는 쭈뼛대다가 대답했다.
“우선 많이 고마웠고…….”
“뭐가 고마웠는데?”
“그게……. 그냥 다 고마웠어.”
“그래? 별로 한 거 없는데.”
“그리고 좋아서.”
“뭐가 좋아?”
영진이는 얼굴을 붉히며 바닥에 시선을 뒀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지율이를 쳐다보며 작게 말했다.
“네가 좋아서.”
지율이는 해맑게 웃었다.
“그래? 나도 네가 좋아!”
아빠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세상에는 좋은 게 진짜 많은 것 같아. 너도 그렇지?”
지율이의 이어진 말에 무너졌던 하늘이 다시 조립됐다.
“응?”
영진이가 당황하며 목소리를 냈고, 지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는 좋아하는 게 진짜진짜 많거든. 넌 안 그래?”
“아…….”
그랬다.
지율이가 영진이를 좋아한다는 의미.
그냥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전부 사랑하는 지율이가 품었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지율이가 시리얼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바다 같은 지율이의 마음에 영진이라는 작은 모래알갱이 하나가 담겼다.
“네 말이 맞아.”
영진이가 활짝 웃었다.
그래도 지율이가 좋은가 보다.
“그리고 난 이제 떠나거든.”
영진이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어디 가는데?”
지율이의 물음에 영진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국. 아빠가 거기로 발령이 나셨거든.”
“발령이 뭐야?”
“어, 그게…….”
잠시 고민하던 영진이가 애써 밝게 말했다.
“이제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신다는 뜻이야.”
“그렇구나. 미국 가본 적 있어?”
“나도 이번이 처음이야.”
“나 영어는 할 줄 아는데.”
“진짜?”
“응! 볼래?”
지율이는 갑자기 자신의 영어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ABCDEFG! HIJKLMNOP! QRS! TUV! WX! YZ!”
그런 엉뚱함에도 영준이는 그냥 웃고 있었다.
알파벳 나열을 마친 지율이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치?”
“응. 대단해.”
영진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조금 충격에 빠져 있었다.
꼬마애가 지율이를 좋아한다고 질투 아닌 질투를 했다. 마음속으로 견제를 잔뜩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 일 때문에 저 멀리 타국으로 간단다.
왠지 모르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영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와중에 이미주가 시간을 확인하는 게 보였다.
아들의 아름다운 이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촉박한 듯했다.
영진이도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 못 보면, 앞으로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 너무 반가웠고,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렇구나. 잘 다녀와!”
지율이의 아무렇지도 않은 인사에 영진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 올지 몰라.”
“그래도 언젠가는 오잖아.”
“……그건 그렇겠다.”
“그때 또 보면 되지.”
“또 만나줄 거야?”
“그럼! 나는 너 좋아한다니까? 나중에 애들이랑 같이 놀자!”
영진이는 거의 울 것 같았지만 애써 웃었다.
“그래. 재밌겠다.”
떨리는 목소리까지 감추지는 못했지만.
“아하하핫! 방금 목소리 염소 같았어!”
지율이가 웃자 영진이도 웃었다.
“그래? 메헤헤헤헤. 메에에에에.”
영진이는 일부러 더 밝게 염소 울음소리를 냈다.
그때 지켜보던 이미주가 영진이 쪽으로 걸음을 뗐다.
“영진…….”
내가 이미주에게 다가서서 걸음을 멈추게 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나는 지율이와 영진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이미주와 눈을 마주쳤다.
“저희 연락처 교환하죠.”
나의 말을 들은 이미주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저 결혼했어요.”
“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참고로 애아빠와 관계도 좋답니다.”
“그런 의미로 말씀드렸던 게 아니…….”
이미주가 깔깔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알죠, 무슨 말씀이신지. 그래요, 가끔 애들 안부라도 묻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지율이 앞에서 웃고 있는 영진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저희 애가 간절한 것 같기도 하고요.”
* * *
지율이와 영진이는 다음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었다.
이미주도 지율이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내게 고개를 꾸벅였다.
“오래 기다렸다냥.”
앉아 있던 무룩이가 하품을 크게 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빨리 가자냥. 그리고 맛있는 것을 달라냥.”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배고프다. 가서 뭐 맛있는 거 먹자.”
지율이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려고 했다.
“영진이는 나를 못 보는 게 슬픈가?”
지율이는 혼자 중얼거리듯 질문을 던졌다.
“어?”
“영진이가 아까 슬퍼 보였거든. 근데 너무 슬퍼하는 거 같아서 일부러 내가 더 웃으면서 말했어. 슬프지 말라고.”
역시 지율이가 영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지율이의 방식으로 보듬어준 것이었다.
영진이는 또 연락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지율이가 밝게 다음을 기약해서인지 웃으면서 떠났다.
“그랬구나.”
나도 웃으면서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고양이 카페에 왔다.
무룩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강척에 있는 고양이 카페는 음식 자체가 워낙 괜찮아서 꼭 무룩이를 배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순이도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지율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오순 고양이 좋아하는데.”
음식을 기다리는데 무룩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만들 좀 달라붙으라냥. 귀찮다냥.”
무룩이는 고양이들에게 인기폭발이었다.
고양이들 전부 무룩이에게 치대거나 곁에 머물렀다.
특히 지난번에도 봤던 검은 고양이 까미가 무룩이에게 착 달라붙어 있었다.
“같이 붙어 있으니까 마블이네. 마블 고양이가 됐어.”
지율이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게. 둘이 잘 어울린다.”
그러자 무룩이는 우리를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냥 적당히 어울려주는 거다냥.”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무룩이도 싫지는 않아 보였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아아.”
카페 사장이 나와 지율이 앞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나는 소고기 볶음밥, 지율이는 오므라이스.
“우와아아아아아! 너무 예쁘다!”
카페 사장은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으로 예쁘게 고양이 얼굴을 그렸다. 그리고 고양이 발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깃발도 꽂혀 있었다.
“감사합니다아아아!”
지율이가 고개를 꾸벅였다.
“맛있게 먹어요.”
카페 사장은 생긋 웃어 보이고는 자리를 떴다.
“오므라이스는 이런 거구나!”
지율이는 생애 첫 오므라이스와의 만남에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으로 그린 고양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너무 귀엽다아아아!”
“그러게. 엄청 귀엽네.”
“너무 좋아!”
“그렇게 좋아?”
“응! 너무 행복해!”
지율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카운터로 돌아간 카페 사장도 계속 지율이를 보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 역시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그런데 뭔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음?”
고개를 돌리자 고양이들에게 묻히다시피 둘러싸여서 얼굴만 나와 있는 무룩이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