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04
304. 시원해요 (7)
지율이의 말에 나와 전노희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지켜봤다.
식사를 하는 동안 화랑이의 경계가 많이 풀리기는 했다.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게 보였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완전히 열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화랑이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다른 차원에서 살다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쪽 차원에 오게 된 케이스.
현백이와 레오도 그렇고, 오팔이와 오순이도 그랬다.
갑자기 낯선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게 된 화랑이의 경계심이 강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응?”
지율이가 같이 놀자는 의지를 다시 드러냈다.
“……난 됐다.”
화랑이의 거절.
이번에는 지율이가 걱정됐다.
지율이가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을까.
“왜?”
지율이의 담백한 물음.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렇지, 지율이는 그런 아이지.
“왜냐니, 싫다는데 뭐가 왜냐?”
화랑이가 짜증을 내자 지율이는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놀면 재밌어.”
“아니… 그런 걸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있어?”
“뭐?”
“알고 있으면 같이 놀아야지. 즐거울 거 아는데 왜 안 놀아?”
“그게…….”
“자, 가자!”
지율이가 화랑이의 손목을 덥썩 잡아서 이끌었다.
“아, 아니, 나는… 읏?”
아마도 화랑이는 잠시 버텨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
지율이의 괴력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화랑이도 그 정도로 버티지는 않았지만.
화랑이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진짜로 싫어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어색할 뿐.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지 않았다. 잠겨 있지도 않았고. 단지 여닫는 게 조금 뻑뻑할 뿐이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힘을 주기만 하면 열린다. 너무 뻑뻑한 곳에는 기름칠을 하고 부드럽게 만들 수도 있다.
“같이 재밌게 놀자.”
현백이가 웃으며 말을 건네자 화랑이의 얼굴이 또 빨개졌다.
그렇게 셋이 놀이시설이 있는 쪽으로 향하는 듯했을 때였다.
“레오야! 같이 가야지!”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레오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 뭐라? 나 말이냐?”
“응!”
“내가 그런 어린애들이 노는 것을 즐길 것 같으냐?”
“같이 놀면 재밌는데.”
“아니…….”
“같이 놀자.”
레오는 못 이기는 척 일어섰다.
“꼬맹이가 간청을 하니 조금 놀아주는 수밖에.”
그렇게 자리에는 나와 전노희 둘만 남았다.
아이들은 놀이시설에서 놀고, 나와 전노희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어쩌다 헌터 협회장님께서 드래곤을 맡게 되신 거예요?”
나의 물음에 전노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대답했다.
“일단 제가 예전에 드래곤 연구소 쪽과 협업을 몇 번 한 적이 있어요. 그 이유가 가장 크죠.”
“그래도 보통 연구소에서 맡지 않나요?”
“사실 이제 드래곤이 아주 특별하지는 않아요. 아시죠?”
“여전히 신비롭지 않나요?”
“현백이나 레오 씨처럼 마블 드래곤이라면 그렇겠죠. 더군다나 저 정도로 사회성이 좋으면 말할 것도 없고요.”
전노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웬만한 드래곤들은 비즈니스 관계처럼 인간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어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이쪽 문화를 이해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거죠. 그런데 유독 그게 잘 안 되는 드래곤들이 있습니다.”
“레드 드래곤이군요.”
“맞아요.”
전노희는 화랑이가 있는 쪽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레드 드래곤은 강대한 힘을 가진 만큼 성격도 흉포한 걸로 유명해요. 과거에 인간과 가장 많이 마찰을 빚은 것도 레드 드래곤이죠. 바로 밑인 블랙 드래곤과 비교해도 2.5배 차이더라고요.”
“그래도 요즘은 드래곤과 인간의 마찰 자체가 적지 않나요?”
“아무래도 새로 넘어오는 드래곤들 중 레드 드래곤의 비율이 많지 않기도 하고, 있어도 대부분 나이가 좀 있는 편이죠. 덕분에 상황파악이 빠릅니다. 기존에 인간과 교류를 하는 드래곤들이 설득을 하기도 하고요.”
어째서 전노희가 화랑이를 맡게 된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화랑이는 어린 레드 드래곤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키면 비교적 교화가 쉬울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타고난 성향의 영향이 더 컸어요.”
“그래도 영향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문제는 화랑이가 레드 드래곤이라는 점입니다. 아주 어리지도 않고요. 자아형성은 거의 다 됐고, 흉포한 레드 드래곤이니 교화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흐음.”
“화랑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주 위험한 아이는 아니에요. 오늘 토일 씨와 지율이, 현백이 그리고 레오 씨가 도움을 줘서 순식간에 좋아진 점들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도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처음 봤을 때도 그렇게 공격적인 성향은 아니었으니까요. 드래곤 특유의 거만함 같은 건 있긴 했지만요.”
“문제가 되는 건 드래곤 연구소의 입장이에요. 굳이 화랑이를 들일 이유가 없는 거죠. 다루기도 어렵고, 성과를 낼 확률도 적고, 이미 맡은 드래곤들도 있고 말이죠.”
“알 것 같네요.”
“그래서 제가 나서서 맡기로 했습니다.”
전노희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사실 저로서는 꽤 큰맘 먹고 벌인 일인데, 생각 이상으로 쉽게 흘러가는 것 같네요. 전부 토일 씨 덕분이에요. 도와주신 덕분에…….”
“제가 한 게 있나요. 아이들이 같이 잘 어울리는 덕분이죠.”
“그러니까요.”
전노희는 거의 빈 커피잔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제는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화랑이를 진짜 제 아이처럼 키우면서,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갔으면 해요.”
“충분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백이와 레오는 강척 드래곤 연구소 소속이니까, 이번 기회에 연결을 좀 해서 교류를 자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럴 것 같네요.”
“제가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은혜라뇨, 제 딸한테 새 친구가 또 생기는 것 같아서 좋은데요 뭐.”
“아니에요,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겁니다.”
전노희의 두 눈에 새겨진 굳은 의지에 나는 그저 웃음으로 말을 대신했다.
카페 내의 놀이시설.
물렁물렁한 고무공으로 가득 들어찬 풀장.
“아하하하핫! 여기 되게 재밌다!”
지율이가 공풀장에서 방방 뛰었다.
“그러게. 이런 데는 처음이야.”
현백이도 생글생글 웃으며 양손에 공을 쥐었다.
“화랑아! 너도 재밌지?”
지율이의 물음에 공을 이리저리 툭툭 던지던 화랑이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금.”
그때 공 하나가 화랑이의 머리에 톡 닿았다.
“응?”
화랑이가 고개를 돌리자 현백이가 키득키득 웃었다.
“네가 나한테 던진 거야?”
화랑이가 묻자 현백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화랑이는 자신의 머리를 맞고 떨어진 빨간색 고무공을 어루만졌다.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처음 이쪽 세상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혼란스러웠다.
홀로 이곳에 적응해서 살아갈 것이 막막했다.
원래 살던 세상에서도 누군가와 교류가 많지는 않았다.
레드 드래곤은 원래 그런 식이다.
외로운 적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름대로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던 중에 갑자기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게 됐다.
새로운 세상은 마음대로 혼자 있을 수도 없었다.
지금의 화랑이로서는 전부 상대할 수 없는 강한 인간들.
강한데 우호적으로 나오며 화합을 시도하는 인간들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다 전노희와 함께 살게 됐고, 오늘은 처음 보는 마블 드래곤 둘과 정체불명으로 여겨지는 지율이와 맛있는 식사를 한 뒤 놀고 있었다.
‘새로운 삶도… 나쁘지 않을지도…….’
화랑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찰나였다.
퍽!
고무공 하나가 날아와 화랑이의 머리를 강타했다.
분명히 물렁물렁한 고무공인데도 눈앞이 흔들리는 충격.
“뭐, 뭐냐?”
화랑이가 고개를 홱 돌리자 지율이가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하핫! 공싸움이야!”
“네녀석…!”
화랑이가 고무공 하나를 집어서 던졌다.
지율이는 쉽게 피하고는 반격했다.
퍼억!
이번에는 화랑이의 이마에 적중.
“네녀서어어어억!”
공풀장에서 공싸움이 시작됐다.
지율이와 현백이, 화랑이가 서로를 향해 공을 던졌다.
공풀장 안쪽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레오가 코웃음을 쳤다.
“어린애들이란…….”
그때 고무공 하나가 레오의 머리에 맞았다.
“아하하하핫! 레오도 같이 해!”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레오는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
“내가 너희 같은 어린애들인 줄 아는가?”
그때 화랑이가 던진 고무공이 레오의 이마에 적중했다.
“……그래도 소용없어.”
또 다른 고무공이 레오의 코에 맞았다.
이번에는 현백이였다.
“현백이…? 너마저…?”
레오가 눈알을 부라렸지만, 현백이는 재미있다며 웃었다.
“공겨어어억!”
지율이가 공을 던졌고, 화랑이도 곧바로 합세했다. 현백이도 수줍게 웃으면서 던질 것은 다 던졌다.
“이것들이…! 좋아! 상대해주지!”
레오도 양손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입가에는 미소가 잔뜩 번져 있었다.
* * *
강척의 바닷가.
“시원하고 좋네요.”
커다란 밀짚모자에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걸친 퀸이 말했다.
“그렇죠?”
고성우는 모래사장 위에 얼음성을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냉기 덕분에 한여름인데도 주변은 시원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퀸은 양손으로 밀짚모자를 누르며 말했다.
“제 머리가…….”
일반적인 머리카락이 아닌 문어발과 같은 형태.
“괜찮아요.”
고성우가 웃으며 말했다.
“모자로 가렸고, 아마 얼핏 봐서는 잘 모를 거예요. 약간 분장한 것처럼 볼 수도 있고.”
“그럴까요?”
“설령 누가 보면 어때요?”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성우 씨…….”
“퀸…….”
고성우와 퀸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여름의 해처럼 뜨거웠다.
“아이들이 잘 놀아서 다행이네요.”
전노희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니까요.”
처음에는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노는 것을 보니 행복했다.
그나저나 레오가 제일 신난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아이들하고 수준이 딱 맞는 것 같았다.
“어머. 벌써 시간이…….”
시간을 확인한 전노희가 말했다.
“벌써 오후 다섯 시가 넘었네요. 오늘 저녁에 화랑이랑 가족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거든요.”
“그럼 슬슬 일어날까요?”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음에도 같이…….”
“아, 그럼요. 물론이죠.”
“정말 감사합니다.”
전노희가 활짝 웃어 보였다.
“감사는요 무슨…….”
그때 지율이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빠아! 빠아아아아! 얼른 이리 와! 화랑이가 너무 뜨거워!”
아까처럼 부끄러워서 빨개졌나 싶었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갔고, 전노희도 나를 따라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인… 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화랑이는 붉게 물든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
체온이 어찌나 높은지 주변으로 이글거리며 아지랑이가 피었고, 형형색색 고무공들이 녹아내려 납작한 떡처럼 뭉쳐 있었다.
화랑이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되는 온도인지 눈을 감고 쓰러졌다.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얼른 달려가 화랑이를 안아들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