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29
329. 달 밝은 밤 (2)
“너는 또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레오는 움찔하더니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수룡이라.”
“그게 왜?”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
“그렇다. 우리와 같은 드래곤이라 볼 수는 없는 존재니까. 저쪽 입장에서도 내가 이질적일 테지. 그렇다고는 해도…….”
레오는 용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결국 같은 류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위아래를 가려야겠지.”
용왕도 레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금세 지율이에게로 시선을 옮기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짝!
내가 레오의 등짝을 때렸다.
“무슨 짓이냐?”
“남의 결혼식 와서 깽판 칠 생각하지 마라.”
“하지만…!”
“농담 아니야. 드래곤들 세계에서는 결혼식이 엄청 중요한 거 같던데, 남의 결혼식에 와서는 아무렇게나 막 해도 되는 거야?”
“크윽…!”
레오는 분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당장이라도 용왕과 자신을 겨뤄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막을 거니까.
“자, 가자. 가.”
내가 레오의 등을 툭툭 밀쳤다.
용왕은 나를 보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는가?”
“예, 덕분에요.”
“내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큰 선물을 받았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고마울 따름이긴 하네만.”
용왕이 준 선물로 얻은 능력은 상당히 강력하고 중요했다. 덕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니 당연히 고마웠고.
“그나저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나의 물음에 용왕이 웃으며 되물었다.
“자네야말로 가족들을 대동하고 무슨 일인가?”
“저는 저기…….”
어느새 고래 아가씨는 많은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턱시도를 빼입은 맘모스도 하객들과 악수를 했다.
“신랑이랑 신부가 만나는 데 도움을 좀 줬거든요.”
“그랬구먼! 저들의 결혼마저 도움을 줬다니.”
“아니요,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서로를 찾고 있는데 길을 좀 알려준 것뿐입니다.”
“내가 더 뭔가 줄 것은 없지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나. 만사 제쳐두고 자네를 도울 걸세.”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말뿐이 아니네. 진심이라네.”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용왕님도 결혼식 구경 온 거죠? 맞죠?”
“그르락! 그르라락!”
용왕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나는 주례를 보러 왔단다.”
“주례가 뭐예요?”
“음… 결혼식을 진행하는 거지. 둘의 행운과 행복을 빌어주고 말이야.”
“그렇구나!”
그러다 용왕과 레오가 눈이 마주쳤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 용왕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틀었다.
“이제 곧 결혼식이 시작되겠군. 이따 또 보지! 그르락!”
그렇게 용왕이 자리를 뜨자 레오가 팔짱을 기며 흡족스러운 듯 웃었다.
“후후후후… 후하하하하핫.”
나는 인상을 팍 구기고 물었다.
“뭐야? 왜 웃어?”
“몰라서 묻는 것이냐?”
“응.”
“뭐야, 진심으로 묻는 것이냐?”
“어.”
“하, 어이가 없군. 진심인가?”
“그렇다니까?”
레오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치가 이리도 없어서야.”
“뭔 눈치?”
“지금 보지 못했느냐? 저 수룡이 나의 기세에 밀려 자리를 뜨지 않았느냐? 역시 나야말로 진정한 제왕에 걸맞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눈치는 레오가 없는 것 같다.
할 말이 많았지만 말을 아꼈다.
내 입만 아프지.
* * *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다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용궁에서 펼쳐지는 결혼식.
말미잘들이 의자를 대신하고 있었다.
독이 있지 않나.
앉아도 되나.
일단 지율이를 잡아둔 채 망설이는데, 곰곰이와 삐삐가 먼저 의자에 올라갔다.
둘은 푹신해서 좋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핫도그와 무룩이도 자리를 잡았다.
“괜찮아?”
나의 물음에 무룩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안 괜찮을 건 뭐냥?”
말미잘의 통통한 촉수들이 자리에 앉은 이들을 건드렸다.
모두들 더 편안해졌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주 미약한 마비.
사실상 마비가 아니라, 근육을 이완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세가 풀어지면 말미잘이 제 몸을 움직여 푹신하게 했다.
독과 약은 양의 차이라더니.
나도 지율이, 싹이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먼저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주신 하객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회자인 오징어는 다리 끝마다 메모장을 쥐고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가며 말했다.
“자, 그럼 먼저 신랑이 입장할 테니 힘찬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신랑 입장!”
그러자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예쁜 선율에 다들 미소를 지으며 귀를 기울이던 와중이었다.
“엇?”
지율이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틀었다.
피아노 건반을 현란하게 두드리고 있지만, 양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연주자.
검은 문어발 같은 머리칼이 바삐 움직였다.
그랬다.
연주자는 바로 퀸이었다.
“문어 공주님.”
지율이가 환하게 웃으며 퀸을 가리켰다.
“그러게. 이따 인사하자.”
바닷속 식구들은 다 모인 듯하다.
그때 저 멀리 자리에 앉아 있는 바다거북도 볼 수 있었다.
의자 없이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거대상어도 있었고.
딴 따다단, 딴 따다단.
익숙한 웨딩행진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서 턱시도를 입은 맘모스가 헤실헤실 웃으며 들어왔다.
주례인 용왕 앞에 선 맘모스.
“다음은 신부 입장!”
어느새 예쁘게 빛나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고래 아가씨가 들어오고 있었다.
고래 아가씨는 우아하게 천천히 둥실둥실 떠서 맘모스의 옆에 섰다.
끼우우우우웅. 그우우우우웅.
결혼식장 돼 있는 신부 측 아버지 왕고래 아저씨는 이 결혼을 축복한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냈다.
용왕의 주례사가 이어졌다.
길지 않았다.
둘의 행복을 바란다는 그런 내용.
뻔하지만 감동적이고 빠질 수 없는 말들이었다.
“자, 그럼 예물 교환이 있겠습니다.”
용왕이 말하자 맘모스가 상아를 깎아서 만든 왕관을 고래 아가씨의 머리에 씌워줬다.
고래 아가씨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를 맘모스의 목에 걸었다. 맘모스의 몸이 너무 굵어서 조금 조이는 것 같았지만,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보니 괜찮은 듯했다.
“그럼 부부가 된 둘의 행복을 빌어주시며, 힘차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징어가 목소리를 높였고, 다들 힘껏 박수를 쳤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레오도 이때만큼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부부가 된 맘모스와 고래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둘의 위로 노랗고 밝은 빛이 떨어졌고, 위쪽으로 시원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천장이 열렸고, 짙은 남색의 하늘 가운데 노란색 달이 떴다.
왕고래 아저씨가 숨구멍을 크게 연 것이다.
달 밝은 밤의 결혼식.
노란 달빛이 고래와 맘모스 부부를 위한 스포트라이트가 됐다.
“예쁘다.”
지율이는 신부가 된 고래를 보며, 하늘의 달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속으로 ‘네가 더 예쁘다’라는 팔불출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의 꼬리는 ‘나는 팔불출이 아니야’로 이어졌다. 왜냐하면 그냥 진실을 떠올린 것뿐이니까.
* * *
결혼식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피로연으로 하객들의 식사자리가 필수다.
온갖 생선과 해초 등의 요리가 풍부하게 차려졌다.
“우리도 먹자.”
내가 말하는데, 어느새 레오와 싹이는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구나.”
싹이가 나지막이 말하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괜찮군. 하지만 나의 전속요리사만큼은 안 된다.”
레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싹이 역시 나를 쳐다보더니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그건 맞아.”
삐삐는 해초 요리들이 마음에 드는지 귀를 쫑긋거리며 식사했다.
핫도그야 웬만하면 가리는 게 없었고.
하지만 곰곰이는 달콤한 음식이 없는 게 아쉬운지 시무룩했다.
“그래도 생선은 좋지 않아?”
내가 생선살을 발라서 앞에 주자 곰곰이는 그새 마음이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그래, 많이 먹어.”
곰곰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여기서 만나네요?”
퀸이 활짝 웃으며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문어 공주 언니!”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이는 찰나였다.
“식사들 맛있게 하고 있나?”
용왕도 우리에게 다가왔다.
“음?”
“어?”
용왕과 퀸이 서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둘은 거의 동시에 내게로 시선을 옮기고 말했다.
“저 폭군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저 제멋대로인 천방지축과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아무래도 용왕과 퀸은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다.
“누가 폭군이라는 거지? 저밖에 모르는 것이.”
“그래요? 제가 이기적이라고 하기에는 저를 따르는 이들이 너무 많은데요?”
둘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하하, 하하하.”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다들 왜 그러실까 정말. 결혼식이잖아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예?”
그러자 용왕과 퀸은 상식적인 이들답게 한 발 물러섰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용왕을 불렀다.
“식사들 맛있게 하고, 또 보도록 하지.”
용왕은 인사를 건네면서 나와 지율이에게는 특히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퀴을 향해서는 눈을 흘겼다.
“그쪽은 말고.”
퀸은 째려보면서 메롱을 했다.
“저도 그쪽이랑 또 보고 싶지는 않네요.”
용왕이 자리를 뜨자마자 내가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지율이가 물었다.
“용왕님이랑 왜 사이가 안 좋아?”
“그게…….”
퀸은 잠시 망설이다가 속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옛날부터 저 용왕이 다스리는 바다하고 내가 지내는 바다는 나뉘어져 있었어. 그래도 전에는 사이가 꽤 좋아서 운동회도 하고 그랬거든. 그런데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어.”
“달리기?”
“응. 나와 용왕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글쎄!”
어느새 다들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용왕이 헤엄을 친 거야!”
퀸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달리기 시합이었잖아. 그럼 물속이라도 발을 내디뎌서 뛰었어야지. 나는 열심히 달리는데 용왕이 헤엄을 쳤어. 그래서 내가 뛰는 것을 멈추고 이의를 제기했거든. 그걸 두고 용왕은 뭐가 문제냐고 했지. 그전에 시합에 참가한 조개도 있었는데.”
퀸이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조개는 바닥에서 몸을 튕겼고, 상어도 바닥에 붙어서 움직였다. 하지만 용왕은 땅에서 떨어졌으니까 실격이라고 했지.”
바삐 움직이는 퀸의 손은 허공과 바닥을 오갔다.
“그런데 용왕은 어차피 똑같이 헤엄을 치는 건데 높낮이가 무슨 상관이냐, 결국 대부분 진짜로 달려서 움직이고 있지는 않다고.”
얘기를 듣던 나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래서… 사이가 계속 안 좋은 거야?”
“그렇게 됐어.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흐름을 깬 나한테 이기적이라잖아. 혼자서 거의 날아가버린 게 이기적인 거 아니야?”
나름대로 둘 다 이유가 있어서 납득은 됐다.
단지 고작 그런 걸로, 각각 바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삐쳐서 으르렁댄다는 게 웃겼지만.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야지.”
지율이의 말에 퀸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하지만 용왕 잘못 아니야? 설마 둘 다 잘못했다느니 그런 말하려는 건 아니지?”
“아니야! 하지만 서로 양보하면 싸울 일도 없어. 잘못한 것보다, 잘할 수 있었다는 뜻이야.”
퀸은 그 말에 뭔가 충격을 받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용왕도 얘기를 들었는지 우리 쪽을 쳐다봤다.
퀸과 용왕이 눈을 마주쳤다.
아마도 지율이 덕분에 둘은 화해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율이가 양손을 허리에 대고 눈에 불을 켠 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