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64
64. 차가워도 좋아
나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뜬 구정석이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벌써 첫 만남이 희미해질 정도로 부드러워진 그는 지율이를 향해서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율이도 안녕?”
“안녕하세요!”
“어디 가던 길이야? 밥은 먹었어?”
“마트에서 친절한 아주머니께서 만두를 주셨어요!”
예의가 발라서 좋긴 했지만, 마치 국어책에 실릴 법한 말투가 우스웠다. 낯선 사람을 상대할 때는 그 거리감만큼이나 어색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한껏 예의를 차리려다가 그러는지도.
“그랬구나? 어떤 만두였니?”
갑자기 구정석도 지율이의 말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달처럼 생긴 건데, 작게 잘라서 꼬챙이에 끼워서 줬어요! 근데 배가 부르지는 않아요! 조금만 먹었어요!”
“이쑤시개를 말하는 것 같구나! 이쑤시개에 굳이 자른 만두라면, 혹시 시식을 한 것이니?”
“맞아요! 시식!”
“나도 시식을 좋아해.”
“그래요?”
“응. 종종 마트에 가서 시식을 하곤 한단다. 한 번은 살 게 없는데도 가서 시식한 적도 있어. 괜히 부끄러워서 사지 않을 물건을 카트에 담고 있었지. 그래도 마지막에 다시 정리는 하고 왔단다.”
구정석은 괜히 멋쩍었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사는 건 좀 그래서, 음료수는 샀었어.”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건 그냥 시식을 하도 해서 목이 말랐던 거잖아’라고 생각했다.
지율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만두도 먹었어요?”
“그럼. 나는 지율이 눈처럼 동그랗고 커다란 만두도 먹은 적 있어.”
“정말요? 얼마나 컸어요?”
“이마아안큼.”
구정석이 주먹을 쥐어 보이자 지율이의 눈이 더 커졌다.
“진짜요?”
“하하, 이것보다는 조금 작은데, 그래도 진짜 컸어. 진짜 왕만두.”
“왕만두…….”
“지율이는 아직 왕만두 못 먹어봤어?”
“네.”
“그래? 그럼 왕만두 꼭 먹어봐야겠네. 엄청 맛있거든.”
지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이제부터 제 목표는 왕만두를 먹는 거예요.”
“하하하하! 오…….”
구정석은 스스로를 오빠라고 칭하려다가 좀 그랬는지 다시 말했다.
“삼촌이 사줄게!”
“진짜요?”
“그럼!”
“우와! 삼촌 최고다!”
“그래? 최고야. 으히히.”
구정석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헤벌쭉 웃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
“아, 그나저나, 어디 가시던…?”
나는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일단 신고부터 좀 할게요. 전화하려던 중이었는데.”
“신고요? 왜요?”
“이쪽에 차원문이 생겨서요.”
“차원문이요?”
주차장 출입구를 바라보던 구정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요? 저도 마력 감지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닌데…….”
그때 지율이가 팔을 돌리며 설명했다.
“이렇게 붉은빛이 빙글빙글 돌았어요!”
“지율이도 봤어?”
“네!”
“진짜인가 보네…….”
중얼거리던 구정석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전화 안 하셔도 돼요.”
“예?”
구정석은 씩 웃으며 엄지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이래 봬도 제가 헌터잖습니까. 가시죠.”
“……차원문에요?”
“예. 제가 연구소 쪽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드래곤 연구소는 특성상 헌터들이 많이 속해 있었다. 오히려 경찰에 신고하는 것보다 대응이 빨랐다.
연구소와의 통화를 마친 구정석이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그나저나 어디 가시던 길이죠?”
“일단 저녁이나 좀 먹고 숙소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저녁이요? 뭐 드시려고요?”
구정석이 눈을 반짝거렸다.
“네? 글쎄요…….”
그때 지율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왕만두!”
구정석이 얼굴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말했다.
“좋은 생각이네!”
그러고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가시죠!?”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같이 식사를 하는 건 좋은데요, 지금 그래도 되는 상황인가요?”
“예? 뭐가요?”
“차원문 관련해서 연구소에 연락했잖아요?”
“네, 그랬죠. 관련해서 신고 접수됐다고, 확인해달라고 했습니다. 와서 지들끼리 확인하고 처리할 겁니다.”
구정석은 나의 눈치를 살피고는 감을 잡았다는 듯이 말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 거리에서 안 느껴지는 차원문이면, 아직 완전히 활동에 들어간 게 아니니까요. 일 벌어지려면 멀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도 금방 도착할 거고요. 뭐, 그래도 조치는 취해두죠.”
내게 악력으로 밀렸던 구정석이 썩 믿음직스럽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때는 내 힘이 지금보다도 약했을 때였다.
“후딱 끝내겠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구정석이 주차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어디서 나오는 여유인지 궁금해하는 찰나였다.
“후우우우우우…….”
구정석이 길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는데, 푸른 마력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호흡에 마력을 섞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와아, 입에서 뭐가 막 나온다. 멋지다아아.”
지율이의 말에 구정석은 미소를 살짝 짓고는 금세 다시 집중했다. 그의 푸른 호흡은 끊어지지 않았다. 마력이 섞인 호흡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고, 이내 흐리게 퍼지기 시작했다.
푸른빛의 호흡은 제곱하듯 점점 넓게 퍼졌는데, 그만큼 색은 옅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명함에 가까울 정도로 마력이 담긴 호흡이 건물 전체를 감쌌다. 정확히는 일정 범위를 순환하는 중이었다.
“다 됐습니다.”
구정석이 손을 털며 씩 웃었다.
“방금 뭐 한 거예요?”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지율이가 물었다. 마침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마수들이 못 나오게 한 거야.”
“마수들이요?”
“응. 차원문에서는 무서운 마수들이 나오기도 하거든. 그 마수들이 못 나오게 만든 거야.”
구정석의 주특기는 맨손 격투 그리고 결계였다.
“차원문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크기가 별로 안 큰 것들은 마수가 영원히 못 나오게 하는 것도 가능해요. 이론적으로는 말이죠. 지금 결계를 펼치니까 말씀하신 대로 차원문이 느껴지네요. 지금 결계로도 아마 내일까지는 문제없을 거예요.”
구정석은 씩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곧 연구소 사람들이 올 거지만요. 그럼 식사하러 가시죠! 제가 잘 아는 곳 있어요! 왕만두 말고 다른 것들도 팔아요!”
구정석이 악력으로 나를 위협하려다가 도리어 당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별 볼 일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수한 능력을 지닌 헌터였다.
자연스레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같이 왕만두 많이 먹자?”
구정석의 말에 지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좋아요! 왕처럼 먹을 거예요!”
지율이는 구정석을 제법 좋아하는 듯했다. 구정석도 전보다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듯했고.
* * *
아직 날씨가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여름은 다 지나갔다.
지난번에 냉면을 먹기로 했었는데 아직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 냉면을 이렇게 먹게 될 줄이야.
“현백이 선물을 샀구나.”
맞은편에 앉은 구정석은 지율이를 보며 물었다.
“선물 뭐 샀어?”
지율이는 키득키득 웃으며 대답했다.
“비밀이에요.”
“아, 왜. 치사하게.”
“안 치사해요.”
“내가 치사하게 느낄 수도 있잖아.”
“아니에요.”
구정석이 헛웃음을 쳤다.
“자기 멋대로네.”
“구씨 삼촌은 현백이 선물 뭐 줄 거예요?”
“나는 생각해둔 게 있지.”
“뭔데요?”
“나도 비밀이야.”
“치사해요!”
“하나도 안 치사한데?”
100일도 안 된 아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싸우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그나저나 구정석이 현백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따로 생일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나는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따뜻한 육수를 한 모금 먹었다.
“오.”
육수 한 모금에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조미료와 식초, 설탕만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맛있죠?”
“진짜 맛있네요.”
“그쵸? 여기 육수만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요.”
구정석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었다.
“완전 맛집이에요 여기.”
지율이도 고개를 쭉 배고 관심을 보였다.
“천천히, 조금씩 먹어.”
나는 지율이에게 육수를 조금 따라서 건넸다.
“냄새 좋아.”
“그치?”
“응!”
지율이는 컵을 입으로 가져가 육수의 맛을 봤다.
“음!”
입에 맞는지 감탄사를 낸 지율이가 손에 쥔 컵이 크게 기울어졌다.
꿀꺽꿀꺽.
지율이가 육수를 단번에 마시기 시작했다. 펄펄 끓는 수준은 아니어도 꽤 뜨끈한 육수였다. 그냥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안 뜨거워?”
“맛있어!”
너무도 밝은 표정에 아무렇지도 않은 지율이.
나는 구정석을 힐끗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구정석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그새 좀 식었나 봐요.”
육수 하나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물냉면 세 그릇과 왕만두 여섯 개 그리고 연탄불에 구운 불고기.
음식이 테이블 위에 오를 때마다 지율이는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휴, 인사도 잘하네. 맛있게 많이 먹어.”
식당 종업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따님이 너무 예뻐요.”
“고맙습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냉면에 연탄불고기 그리고 왕만두.
맛이 없기가 힘든 조합이었다.
“우와! 아빠! 차가워! 차가운 면이야!”
“그러게. 지율이 차가운 면은 처음 먹어보네.”
“응!”
“그래서 냉면이야. 냉이 시원하거나 차가운 걸 뜻해.”
“그렇구나!”
“천천히 먹어.”
“응!”
지율이는 아직 서툴지만, 냉면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호로록.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른 면을 먹을 때보다 꼭꼭 씹었다.
“면이 조금 더 질기네?”
“그치? 맛있어?”
“재밌어! 먹는 재미가 있어!”
지율이는 차가운 육수도 좋아했다. 반으로 자른 삶은 달걀도 좋아했고, 오이와 무도 가리지 않았다.
“맛있네! 냉면은 차갑지만 맛있어!”
“다른 차가운 건 싫어?”
“아니!”
“근데 왜 차갑지만 맛있다고 했어?”
“사실 차가운 면은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맛있어!”
“그래?”
“응! 현백이도 먹어봤으면 좋겠다!”
구정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네, 아직 현백이도 냉면을 못 먹어봤구나.”
“그럼 내일 같이 냉면 먹어요!”
“아마 내일은 소장님이 다른 거 준비했을 거야. 맛있는 걸로.”
“우와아, 좋겠다.”
“지율이도 같이 먹을 거잖아.”
“저도 같이 먹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그리고…….”
구정석이 작은 접시에 옮긴 왕만두를 지율이 앞에 놨다.
“지금은 맛있는 왕만두도 먹어야지.”
“우와아…! 진짜 크다…!”
“큰 만큼 맛도 있어!”
지율이는 왕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는 눈을 반짝거렸다.
“이건 부드럽네!”
“응, 이건 찐 거니까.”
“살이 쪄서요?”
“하하하하, 아니, 익히는 방식이 그렇다는 거야.”
구정석은 찜에 대해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다음에는 냉면과 연탄불고기를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늘어놨다.
“자, 이렇게 먹어봐. 어때? 맛있지? 그치?”
“네! 냉면이랑 불고기가 같이 입 안에서 춤을 춰요!”
“하하하하! 멋진 표현인데? 사실 지난번에 못 먹어서 너무 슬펐어.”
“뭐를요?”
“갈비. 냉면이랑 갈비도 잘 어울리거든. 그때 꼭 갈비랑 냉면을 먹고 싶었거든. 마무리는 된장찌개에 밥으로 하고.”
아직도 못 먹은 갈비 얘기를 하다니. 밥에 대한 구정석의 마음은 생각 이상이었다.
그런 질문이 있다. 죽기 전에 못 이룬 꿈이 떠오를지, 아니면 못 먹은 밥이 떠오를지에 대한 질문.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구정석은 밥을 생각할 게 분명하다.
여러 가지로 구정석은 조금 당황스러운 사람이었지만, 덕분에 저녁식사 자리가 조금 더 즐거웠다.
확실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의 행동도 단지 명령과 현백이의 과잉보호에서 비롯된 거였고.
조금 엇나갔었지만,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는 알 것 같다.
나도 지율이가 관련된 일이라면,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
우우웅.
휴대폰에 짧은 진동이 울렸다.
―어디냐? 나 강척 도착.
고성우의 문자메시지였다.
* * *
“아휴, 제가 대접하려고 했는데.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구정석은 수차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냥 밥 한 끼인데 뭐 그렇게까지 해요. 누가 보면 제가 목숨이라도 구한 줄 알겠습니다.”
“사실 비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생명줄인 거죠. 그 생명줄이 더 길고 튼튼하게 만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목숨을 구하신 거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나는 헛웃음을 치며 구정석의 어깨를 툭 쳤다.
“헛소리 그만하시고 들어가세요. 내일 봅시다.”
“하하하하, 예,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구정석은 지율이를 향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보자, 지율아.”
“네에!”
“오늘 냉면 참 맛있었어. 그치?”
“네! 이제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차가운 거예요!”
“그래? 첫 번째는 뭔데? 아이스크림?”
“아니요, 첫 번째는…….”
활짝 웃으며 목소리를 높이던 지율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선은 구정석의 뒤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삼초오오오온!”
지율이가 손을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첫 번째로 좋아하는 차가움을 향한 인사. 저 멀리 고성우가 오고 있었다. 녀석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들어 보였다.
그때 뒤를 살짝 돌아봤던 구정석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6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