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03
{천계까지 나서게 될 지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형선들의 낯빛이 어두워졌고, 특히 그 중 한 명은 펄쩍 뛰었다.
천제가 이 사건을 직접 건드리게 되면…예전에 겨우 봉합해 둔 다른 사건들마저 우르르 터지게 될 수도 있다.
{어서, 어서 해결해 봅시다!}
{거기 도깨비들!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례가 있으면 냉큼 모아와!}
그들은 초조하게 서둘렀지만,
쿵-
정원당의 문이 열리고,
{인간계에서 거대한 역리가 일어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는 선계의 관할을 넘어선 터, 지금부터 정원당의 압수 수색에 들어가겠다.}
신좌들이 일렬로 들어와, 쌓여있는 자료들을 모조리 압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형선장은 체념한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298 친구니까요
천계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현신(소)425710 귀鬼 혜호의 현신 사건:
귀鬼 혜호惠狐(귀종 구미호, 귀업 연귀)가 계약되지 않은 다수의 인간들 앞에 현신한 사건. 과도한 역리逆理로 인해 귀鬼 혜호는 천 년을 모아온 생기를 잃고 산화됨.
이후 현신을 목격한 인간들의 기억을 지우려고 하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지워지지 않아, 기억(누)232824 사건으로 이어짐.
{도대체 어째서 기억을 지우지 못한 것이냐! 지금 지나친 역리로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
{억울합니다. 저희도 영문을 알지 못하옵니다!}
기억(누)232824 선계의 기억삭제 실패 사건:
현신(소)425710의 건으로 인해, 3500명의 인간이 귀鬼 혜호의 현신 상태를 목격하였고, 선계가 순리 보정을 위해 기억삭제를 시도하였으나, 원인불명의 사유로 시도가 실패함.
이후 3500명의 전파로 인해, 현재 15802932명의 인간이 귀鬼의 진명眞名을 알고, 11520353명의 인간이 귀鬼의 현신체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있음.
조사 중, 과거 생기(러)1538720 계약과의 연관성이 드러남.
{혜호와 함께 무대에 섰다는 인간이…그의 계약자였다고?}
{그…그렇습니다.}
{어떤 내용의 계약이었더냐!}
생기(러)1538720 귀鬼 혜호惠狐와 인人 신유명申有命(인간(전)7574120)의 계약:
귀鬼가 인人을 회귀시켜 주고, 그 대가로 자신의 생기 일부를 넘기는 계약. 역리逆理치가 무척 커서 귀鬼 혜호惠狐는 회귀의 대가로 일금환一金環을 반납하였음.
*당시 계약의 공정성이 문제되어, 소명을 위한 청문회가 정원당正願堂에서 열렸으나, 납득 소명으로 기각됨.
{이 계약 내용이 좀 이상한데? 어째서 생기를 넘기는 것이 ‘주는 것’이 아니고 ‘받는 것’으로 지정된 것이냐?}
{그…그건 확실히는…}
{청문회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때 소명을 들었을 것이 아니냐?}
{그게…생기를 준 것이 혜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들었습니다.}
{귀가 생기를 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지 않느냐!}
{…존재탈취를-}
{존재탈취? 그건 넘겨준 생기가 계약자의 생기를 넘어서야 가능할텐데?}
인간(전)7574120 신유명申有命
1982년 5월 22일 生
부父 신우창申優蒼 모母 박미혜朴美慧
선천생기先天生氣 53
{선천생기가 53인 인간이면, 아무리 생기를 많이 준다고 해도 존재탈취는 불가능하지 않느냐.}
{……}
{뭐가 어찌된 일이냐?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조사를 해 갈 수록 수상쩍은 부분들이 점점 파헤쳐졌다.
신유명이라는 인간이 선계의 잘못으로 인해 생기를 29밖에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혜호가 존재탈취를 노리게 되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천계의 신좌들이 이와 같은 일이 예전에도 있었는지 전수조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이게 어찌된 영문이냐!!}
실수로 인해 인人이나 귀鬼가 불이익을 당했어도 슬쩍 무마하기.
동료의 잘못을 슬쩍 눈감아주기.
그것이 관행처럼 고착화되다 보니, 의도적으로 인人이나 귀鬼에게 주어질 생기를 중간에서 빼먹는 일도 생겼다.
한 번 터지니 줄줄이 끝도 없이 엮여나왔던 것이다.
이 모든 정황을 신좌들이 보고한 가운데, 천계의 재판이 열렸다.
{형선장. 선계는 언제부터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렸나.}
{……}
{귀鬼가 천 년의 수양을 다해도 오를까말까 한 것이 선仙이다. 그만큼 수양이 되어있는 존재들이라 판단해서, 타 계界의 관할도 선계에 맡겨왔지. 고인물이 썩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수양으로 등선하여 신선의 반열에 오른 존재들이 어찌 이런 그악한 짓을!}
천제의 준엄한 질책에 형선장이 눈을 떨군다.
{비리를 저지른 주요 선仙들은 존재를 무화無化시키는 극형에 처한다. 유관한 선仙들은 선격을 뺏고, 귀鬼 중에서도 가장 하위의 귀로 격을 낮춘다.}
선계에 피바람이 분다.
신좌들이 관련된 선들을 모두 끌어냈고, 그들은 격에 맞지 않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순리와 역리의 값이 일정 수치를 넘기지만 않으면, 선계에게 맡겨두고 방관해왔던 천계의 책임도 있다. 천계는 선계가 자정작용을 마칠 때까지 귀계와 인계의 관리를 직접 맡고, 향후 선계가 다시 관리하게 되더라도 정기적으로 감사를 실시하도록 하라.}
그렇게 선계게이트가 정리되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커다란 문제가 남아있었다.
{이제, 점점 커져가는 역리치를 해결해야지.}
{어떻게…}
{증인을 불러라.}
{누구를 말입니까?}
{혜호는 비산되어 사라졌으니, 이 사태의 전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 않느냐.}
그 존재란 바로, 인간 신유명을 뜻했다.
*
샤아아아–
신좌는 천제의 명을 받아, 증인을 소환하러 왔다.
낯선 바람을 느낀 것인지, 누워있던 인간이 감은 두 눈을 뜬다.
{인간 신유명申有命이 맞는가?}
깜짝 놀라 벌벌 떨 줄 알았다.
하지만 쳐다보기엔 눈이 부실 자신의 신형을 똑바로 바라본 인간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조용히 묻는다.
“혜호에 관한 일입니까.”
{그렇다. 천계의 재판 중 증인 소환을 위해서 왔다.}
“선계와 인계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혹시 다녀오면 시간이 많이 지나게 됩니까?”
차분하지만 당돌한 그의 질문에, 신좌는 당황하여 잠시 말을 헤멨다.
{…그렇지 않다. 선계와 인계의 시간 흐름이 다른 것은 맞지만, 천계는 시간 밖에 있는 세계로 그 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다녀와도 지금 이 시간에서 조금도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부모님께 편지를 남길 필요는 없겠군요.”
가기 싫다거나, 시간이 많이 지나면 곤란하다거나, 그런 이유일 줄 알았는데…물어본 이유가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라니.
직접 인간을 만나본 일이 처음이라, 신좌는 원래 인간이 이리 당돌한 생물인 것인지, 귀와 붙어다니더니 담이 커진 것인지 궁금했다.
“가시죠.”
{곱게…가려고?}
“네, 불러 주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상한 인간.
자신이 온전한 신이 아닌 신좌라고 해도, 보통 인간은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위압감을 느낄 것이다.
천계가 아닌 선계에서만 인간을 데려가려고 해도, 거부 반응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거부할 경우 묶어서 데려가려고 오라를 손에 들고 있던 신좌가, 머쓱하게 오라를 뒤로 숨겼다.
의지가 굳은 눈빛이 자신을 재촉했다.
{그럼 가자.}
신좌가 날개로 그를 감싸자, 그들의 신형이 사라졌다.
잠시 후 그들은 천계의 재판장에 있었다.
*
천제는 수심에 빠져 한 인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를 직접 만났을 때, 그는 어미를 닮아 아름다운 외형에,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긴 듯 눈동자 색이 깊게 일렁이고 있었다.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현재의 귀업에 만족합니다.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화호와 혜호를 데리고 오려면 천제의 위와 천계의 격을 포기해야 하는 자신을 배려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끔 지상을 내려다보며 그를 찾아보면, 그는 정말로 무엇엔가 단단히 미쳐있었다.
‘어릴 때, 아비라고 한 번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그런 그가 갔다.
단 한 번의 꿈을 펼치고 산화되어 버렸다.
선계가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혜호가 사라진 것은 선계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꿈에 마음을 쏟은 것이 죄라면 죄.
자신은 아들을 잃었고, 지금은 그가 친 사고를 수습해야 한다.
{도착했습니다.}
신좌가 허리를 굽히고 사라졌다.
재판이라고는 하지만, 선계의 재판처럼 형선들이 머리를 모아 진행하지는 것은 아니었다.
천계의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오직 천제 자신이었고, 심지어 범인은 이미 사라져 버렸기에 지금 이 곳에는 재판관과 증인, 단 둘이 전부였다.
{네가 신유명이냐.}
‘혜호의 아버지 되십니까.’
인간이 입에 올린 말에, 천제가 흠칫 놀라 그를 내려다본다.
자신의 격의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 미약한 존재가, 모든 의지를 끌어모아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닐 것인데.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누그러뜨렸다.
{그 아이가 네게 그런 말도 했느냐.}
‘저희는 친구니까요.’
{친구. 친구라…}
천제가 허허로이 웃었다.
인人과 귀鬼가 친구라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되었다. 기억이 삭제되지 않는 영문을 모르겠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너는 혹시 짚이는 게 있을까 싶어 불렀다.}
원래 엄정하게 취조할 생각이었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묘한 분위기와 당당한 눈빛을 보니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식의 ‘친구’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누그러져, 천제는 마치 집 나간 아이의 소재를 그 친구에게 묻듯이 살살 구슬려 물었다.
하지만 선계도 천계도 짐작하지 못했던 이유를, 한낱 인간은 너무 쉽게 내놓는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두 가지?}
‘첫 번째는, 혜호의 연기가 너무 대단해서요. 인간들이 쓰는 표현 중에 ‘뇌리에 깊숙이 박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무언가를 보았을 때, 잊을래야 잊히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대단했는가?}
‘아마 지금도 그 때의 관객들은, 매일 밤 꿈 속에서 아덴과 살로메를 보고 있을 겁니다.’
천제는 괜히 흐뭇해졌다.
원래 가치라는 것은 ‘그것이 가치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정해지는 법이다.
그는 왜 혜호가 인간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연기’라는 것에 그렇게 빠져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저 인간이 담백하고 열정적인 어조로 혜호를 극찬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그게 그렇게 가치있는 일이고, 내 아이가 그렇게 대단했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두 번째는?}
‘관객들이 본 것은, 귀의 연기가 아니라, 인간의 연기였으니까요.’
{인간…의 연기?}
이건 무슨 소리일까.
혜호는 자신과 화호의 사이에서 난 귀鬼가 틀림없다. 그런데 인간의 연기였다니.
‘그는 인간의 흉내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귀와 인간의 격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우정, 사랑, 질투, 배신…그 수많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외부자임에도 어느 내부자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표현했죠.’
인간의 흉내를 반복하면서, 라고 설명했지만, 천제는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혜호는 저 인간을 만나고 나서 ‘인간의 마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으리라.
혜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짓는 신뢰와 애정 가득한 표정을 보면, 자신도 무언가 깨달아 버릴 것 같으니까.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연기를 보았으니 이것은 순리입니다. 강제로 지우는 것이 오히려 역리가 아닐까요?’
천제가 침음성을 지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서로 살고 있는 세계와 격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마음이 하나의 마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만든 ‘진짜 감동’이었다면, 단순한 목격처럼 쉽게 삭제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섭리는 이것을 ‘역리’로 판단하고 있어. 시간이 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궁금해할수록 역리값은 더 커지고 있다.}
‘그야, 그의 감정이 진짜였다고 해도 몸은 진짜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남의 일처럼 말할 때가 아니다! 더 이상 역리값이 커지면 인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어.}
그 말에 인간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역리를 순리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뭐?}
‘혜호를 진짜 인간으로 만들면, 순리 보정이 되지 않을까라는 뜻입니다.’
천제가 놀라서 인간을 내려다본다.
무슨…이런 생각을…
하기야 귀가 인으로 격하되거나 선으로 격상되는 일은 간간히 발생하는 일, 그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다.
인간의 몸을 갖게 된 시점이 공연보다 늦다는 문제는 있지만, 수많은 인간들이 귀의 현신체를 궁금해하는 것보다는 역리값이 현저히 낮을 테니까…그 정도는 자신이 감당하면…
{일리가 있군. 하지만 혜호는 그 날 과도한 역리의 폭풍을 맞아 사라져버렸다.}
천제가 침통한 목소리로 아이의 죽음을 알린다.
그 때 인간이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
금빛으로 빛나는 구체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은, 혜호의 영혼이었다.
299 명분을 만들 수 있다면요?
며칠 전.
유명은 머리 속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고 있었다.
‘화호님. 화호님. 혹시 제 말 들리십니까.’
혜호.
자신이 미호의 진명을 방송에서 언급했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 이름을 떠들고 있으니, 아마 선계에도 이야기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들었다면 혜호의 어머니 화호가 자신을 한 번은 들여다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명은 내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가 찾아왔다.
{나를 불렀니?}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구나, 인간 아이야. 네 얘기는 많이 들었지. 혜호의 일로 상심이 크겠구나.}
그녀는 은빛 털이 눈부시게 빛나는 구미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처음 원생에서 보았던 미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유명은 먹먹해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그녀에게 간절하게 물었다.
‘혹시…그를 데려가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알았니?}
‘미호가 남긴 대본에, 저를 현생으로 돌려보낸 물건을 화호님께서도 받으셨다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혹시해서 수전당에 다시 가 보니, 살로메를 연기했던 미호의 기운이 완전히 지워져 있었습니다.’
{선계에서 처리한 걸수도 있잖니?}
‘그렇다기엔, 관객들이 다들 미호를 기억하고 있어서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지 못해놓고, 그런 소소한 것까지 처리했을 것 같진 않은데···’
화호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혜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아니었나 보다.
무척 현명하고 똘똘한 아이다.
{그래, 내가 데려왔어. 그 아이가 자기 존재를 쏟아서 연기했기 때문에, 잔존생기에서 혜호의 정수를 거둘 수 있었지.}
‘그럼 미호는···!’
{안타깝게도, 영혼만을 겨우 보존했을 뿐이야. 아이는 존재를 지탱시킬 최소한의 생기도 잃고 혼 상태로 머물러 있지. 이걸 내 힘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 이 아이는 순리를 너무 많이 거슬렀거든. 글쎄, 수백 년이 지나 역리의 폭풍이 가라앉는다면 모를까···}
‘…천계에서는 되돌릴 힘이 있습니까?’
{힘은 있겠지만 명분이 없으니까. 천계조차도 순리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아무리 천제님이라고 해도 명분없이 구해주긴 어려울 거란다.}
‘명분을…만들 수 있다면요?’
화호가 그의 절박해 보이는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에 거대한 역리를 불러온 죄인에게 어떤 명분을 줄 수 있을까.
{어떤…명분?}
‘수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요.’
{그게 무슨 말이니.}
‘세상 사람들이 다 미호를 기억하고, 심지어 ‘진명’조차 알고 있다는 건, 굉장히 큰 사고일 것 같은데요.’
화호가 깜짝 놀랐다.
그럼 이 아이가 ‘혜호’라는 이름을 퍼뜨린 목적은, 단순히 자신을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행히 일을 키우는 것이 쉬운 세상이라서요. 제발 선계 선에서 일이 수습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수습되지 않는다면, 그 뒤의 계획은···?}
‘천계의 소환을 기다려 보려구요. 혹시…미호의 영혼을 제게 맡겨주실 수 있으실까요?’
무려 천제를 상대로 딜을 치겠다는 그의 계획을 듣고, 화호는 두말없이 일금환一金環을 내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제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 속에 담긴 영혼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