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 Cheo-yong, the shaman Park Soo-yeon RAW novel - Chapter 150
150
박수무당 백처용 150화
해괴한 대적의 모습에 백처용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홉 개의 머리 모두 눈을 뜨고는 있는 건지. 아무렇게나 뭉개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백처용이 비형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님. 어르신은 괜찮으셔요?”
“어. 괜찮은 것 같아.”
비형랑이 길달을 부축하며 대답했다.
길달에게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길달이 마른 팔로 비형랑의 등을 툭 쳤다.
“나는 괜찮으니까 가서 도와.”
씩 웃으며 말하는 길달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비형랑이 불안한 눈으로 길달을 올려봤다.
“진짜 괜찮은 거야?”
“괜찮지. 아귀들은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너는 여기서 백유조 손자를 도와.”
길달의 떨림이 등을 통해 느껴졌다. 그러나 길달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었다.
비형랑 역시 더 묻지 않고 대적 쪽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길달은 곧장 푸른 도깨비불로 변해 날아갔다.
“이제 담소는 다 나눴나?”
대적이 비형랑 쪽을 보며 여유롭게 말했다.
비형랑과 백처용이 앞뒤로 포진해 있었으나 대적의 표정에 동요는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적을 바라보는 비형랑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대적은 다시 백처용을 돌아봤다. 사진검을 힐끗 바라보더니 대적이 코웃음을 쳤다.
“세천산에 숨겨뒀던 내 수하들을 내쫓은 게 너인가 보구나.”
대적이 말하며 성큼성큼 백처용 앞으로 걸어왔다.
백처용은 대적의 기세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세천산의 아귀들이 저 녀석 짓이었나.’
손님신들이 사라진 곳을 채웠던 수많은 아귀. 녀석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제야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백처용은 대적이 다가오자 사진검을 꽉 잡았다.
세천산에서 얻은 음기 덕에 사진검의 양기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나왔다.
검신을 타고 휘몰아치는 양기. 그것은 대적의 몸을 삼켜 버릴 기세였다.
기세등등했던 대적조차 그 기세에 뒷걸음질 쳤다.
‘저게 신돈 녀석이 말한 사진검인가.’
대적은 백처용의 사진검을 유심히 관찰했다.
겉모습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낡은 환도였다. 여기저기 이가 빠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저기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런 외관과 달리 강력한 양기가 주위를 짓눌렀다.
백처용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대적 뒤에 있던 비형랑이 움직였다.
쿠구구!
대적의 발아래 땅이 꿈틀거리다가 솟아올랐다.
파도처럼 흙이 대적을 덮어버렸고, 비형랑은 그 위를 유유히 지나 백처용 옆으로 왔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백처용은 멍하니 거대한 흙더미와 비형랑을 번갈아 바라봤다.
“곧 나올 거야. 나오자마자 같이 협공으로 끝내자.”
비형랑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백처용은 끄덕인 뒤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은 대체 뭐예요? 아귀들 왕?”
“지하국의 대적.”
“대적?”
“정확히 이름이 뭔진 안 알려져 있어. 대적. 말 그대로 큰 도적이라는 거지. 수하로 아귀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이야.”
비형랑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흙 기둥이 솟아올랐다.
거기서 육중한 체구의 대적이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을 드러냈다.
대적은 말없이 백처용과 비형랑을 바라보더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칼도 쓸 만해 보이는데.”
대적이 중얼거리자 손바닥에 1m가 채 안 되는 짧은 칼 한 자루가 생겨났다.
보랏빛 칼자루에 검신이 다른 칼들과 비교해 상당히 두꺼웠다.
비형랑이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하국 무기는 이승이나 저승의 무기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하니까 조심해.”
“알겠습니다.”
“그럼 내가 먼저 공격한다.”
비형랑은 말을 마친 뒤. 다시 대적에게 팔을 뻗었다.
그러자 나무줄기들이 대적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 틈에 백처용이 달려들었다.
휘익!
사진검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대적과 가까워졌다.
나무줄기에 팔과 다리가 감겨 대적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대적은 백처용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촤악!
툭, 투둑.
사진검의 양기는 찢어발기듯 대적의 머리를 갈라버렸다.
가운데 있던 대적의 중심 머리가 양기에 터져나갔고, 그 충격으로 주변의 머리 세 개가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 쉽게?’
백처용이 생각하는 순간.
대적의 남은 머리 다섯 개의 눈이 동시에 백처용을 노려봤다.
짓눌려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 눈들. 눈동자도 없이 새까만 눈이었다.
그 싸늘한 시선에 백처용은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대적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묶고 있던 나무줄기를 힘으로 끊고 다가오는 칼.
챙!
“윽!”
백처용이 황급히 사진검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나무줄기를 끊은 뒤였음에도 백처용의 몸이 밀려날 정도의 힘이었다.
놀란 것은 백처용뿐만이 아니었다.
‘내 속박을 저 정도로 간단하게….’
대적의 몸을 나무줄기로 묶고 있던 비형랑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적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힘을 줬다. 그러자 나머지 팔다리의 나무줄기들이 휴지처럼 끊어졌다.
구속하고 있던 것이 끊어지자 대적은 빠르게 백처용을 향해 돌진했다.
“이승의 칼이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볼까!”
대적이 소리치며 자신의 보랏빛 칼을 휘둘렀다.
칼은 보랏빛 기운을 꼬리처럼 남기며 가까워졌다.
펑!
사진검의 양기와 보랏빛 기운이 맞부딪치자 폭발음이 크게 들려왔다.
백처용은 어금니를 꽉 물고 밀려나지 않으려 버텼다.
“얼마나 대단한 양기인지 한 번 볼까?”
대적이 칼을 맞댄 채 여유롭게 말했다.
그러자 대적의 칼에서 보랏빛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진검의 누런 양기와 뒤섞였다. 백처용은 두 기운의 압박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까처럼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해.’
예전이었다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폭발할 것 같은 사진검의 양기는 대적의 기운을 오히려 밀어내고 있었다.
‘신돈 녀석이 말한 것보다 훨씬….’
오히려 대적이 당황한 듯 생각할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퍼억!
이내 대적의 등을 가격한 것은 비형랑의 팔이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것들이!”
대적이 호통치며 칼 쥐지 않은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땅에서 다시 나무줄기들이 대적의 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줄기들은 순식간에 대적의 온몸을 감쌌다.
‘지금이 기횐데….’
백처용은 그 틈에 대적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보랏빛 기운에 백처용은 사진검을 거둘 수가 없었다.
사진검의 양기가 우세했으나 보랏빛 기운을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었기에, 두 기운은 자석처럼 서로 휘감겨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도 비형랑은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억겁의 시간 속에 봉하겠노라.”
대적의 등에 닿은 비형랑 손바닥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펑!
“끼엑!”
폭발이 일 때마다 아귀들의 비명이 함께 들려왔다.
평화롭던 도깨비 촌 건물들은 어느새 곳곳이 무너져 있었다.
길마다 널려 있는 아귀들과 도깨비들의 시체. 간간이 피 묻은 빗자루나 괭이 등. 도깨비의 본래 모습이었던 낡은 물건들도 보였다.
“슬슬 끝이 보이는데.”
아까와 비교하면 줄어든 아귀들 사이에서 여의주를 든 채 청룡이 중얼거렸다.
그때 윤철이 옆으로 다가왔다.
흰 와이셔츠는 단추가 몇 개가 뜯어져 있었으며, 검붉은 피가 튀어 있었다.
헝클어진 앞머리 사이로 아까보다 날카로워진 눈이 드러나 있었다.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혼자 마무리할 수 있나?”
윤철의 말에 청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처용을 도우러 갈 생각인가?”
“그래.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중얼거리며 윤철이 들어 보인 것은 태극추사였다.
강한 사기를 감지하는 태극추사의 침이 향하고 있는 곳은 아까와 똑같았다.
다만 아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태극추사의 침이 마치 뽑혀나갈 듯 요동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백처용이 간 지 꽤 됐는데. 아직도 이 정도 힘이 감지되고 있다는 건….’
윤철이 생각하며 태극추사가 가리키는 곳. 길달의 고목 쪽을 바라봤다.
적의 기운이 더 강해졌다. 즉, 적을 쓰러뜨리기는커녕 고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윤철은 백염주를 만지작거리며 고목 쪽으로 달려갔다.
윤철이 사라지자 청룡은 곧장 다시 여의주를 움직였다.
남은 도깨비 몇과 함께 다시 주변의 아귀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여기를 처리하면 다른 쪽도 가봐야 할 텐데.’
청룡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할 때였다.
“이 녀석들! 다 덤벼라!”
“감히 우리 마을을 쳐들어오다니! 겁도 없다!”
“우와! 쓸어버리자!”
한쪽에서 들려온 함성과 다양한 목소리. 청룡이 얼른 그쪽을 돌아봤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수십 개의 푸른 도깨비불이었다.
“지원군인가.”
청룡이 중얼거리며 한숨 돌렸다.
도깨비불들은 청룡 근처에서 펑, 소리를 내며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나같이 덩치가 큰 도깨비들이었다.
그들은 커다란 몽둥이로 근처 아귀들을 날려 버렸다.
지원군으로 인해 남은 아귀 잔당들은 빠르게 처리됐다. 그때 청룡의 앞으로 도깨비불 하나가 날아왔다.
“고생이 많았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도깨비불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길달. 무사했군.”
“비형과 백유조의 손자 덕에 살았소.”
길달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은 아귀들이 얼마나 있소?”
청룡이 주변을 훑어보며 물었다. 이 근처 아귀들은 일단 지원군 덕에 모두 소탕한 것 같았다.
길달이 멀리 고목을 바라봤다.
“오면서 아귀들을 모두 소탕했소. 남은 건 저기 고목에 있는 녀석뿐인 것 같은데. 문제는….”
길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청룡이 묻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다른 것들도 오고 있소.”
“다른 것들?”
청룡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깨비 촌은 바깥과 격리된 곳. 청룡으로서는 바깥의 기운을 제대로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길달은 달랐다. 먼 곳이 아니라면 도깨비 촌 근처의 기운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상당한 숫자의 요귀들이 접근하고 있소. 아마 곧… 들이닥칠 것 같소.”
길달의 말에 청룡의 표정이 굳었다.
자정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간. 이런 상황에 들이닥치는 요귀들이라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드디어 오는 건가. 신돈.’
청룡이 생각하며 붕 떠올랐다.
“나는 돌아가서 동료들과 함께 준비하겠소. 그대도 남은 도깨비들을 모아서 준비해 주시오.”
“알겠소.”
길달이 대답하자마자 청룡은 오두막으로 날아갔다.
* * *
저승문 근처의 넓은 공터.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흰색 투구와 갑옷을 갖춰 입은 이들. 손에는 긴 창, 허리에는 칼을 찬 저승의 신군(神軍)이었다.
넓은 공터를 빼곡하게 메운 병사들의 창과 깃발이 위엄있게 솟아 있었다.
병사들 앞에는 위엄 있는 얼굴의 장수들이 말을 탄 채 대기 중이었다.
그때 단상으로 부리부리한 이목구비의 남자가 올라왔다.
“다 모였군. 이제 곧 시작된다.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태공망과 이야기를 나눴던 무신(武神) 양전이었다.
양전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사들은 가지고 있던 무기로 바닥을 찍었다.
쿵!
“예!”
바닥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수만 병력의 목소리가 주변을 메웠다.
양전이 흐뭇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투구를 쓰는데, 옆으로 부장 하나가 다가왔다.
“장군, 큰일입니다.”
“뭔가.”
“그… 제천대성께서….”
“손오공이?”
양전의 머리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천대성께서… 지키던 병사들을 뚫고, 저승문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이 돌 원숭이가!”
불길한 생각이 적중하자, 양전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양전의 불같은 호통에 부장이 움찔했다.
양전은 곧장 뒤에 세워뒀던 자신의 삼첨창을 집어 들었다.
“절대 이승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멍청한 놈이 일을 그르치려 하다니! 서둘러 병사를 풀어서…. 아니다. 내가 직접 간다!”
양전이 소리치며 단상 아래로 내려가는데 부장 몇이 더 다가와 앞을 막았다.
“장군 안 됩니다! 곧 칠월 백중입니다! 장군께서 가시면 병사들은 누가 지휘한다는 말입니까!”
“아직 칠월 백중이 안 됐으니 가야 한단 말이다. 저승문이 열리지 않았으니 그 원숭이 놈을 막을 수 있어!”
“하, 하지만…!”
부장들이 만류했으나 양전은 우악스러운 팔로 그들을 밀쳐냈다.
“어떻게 해서든 그놈들이 저승문을 통과하게 해야 한다! 손오공 놈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 없어!”
양전이 소리치며 백마에 올랐다.
백마는 말릴 틈도 없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