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26
〈 126화 〉 북방으로 향하는 길(4)
* * *
마차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내다본 창밖에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눈이 내린다는 것, 그것이 북부가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금방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은 라크는 고개를 숙인 채 한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가장 강한 마법사는 잿빛 마법사, 가장 강한 마법사는···.”
꼭 세뇌라도 당한 듯한 모습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던 라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묻고 싶은 게 더 있는 듯한 눈치였다.
“왜?”
“그, 라니아 교수님.”
라크가 눈을반짝이며 질문했다.
“용사, 카일 님에 대해 조금···.”
카일이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난 눈살을 찌푸렸다. 벌레라도 씹은 듯 표정이 구겨졌다. 그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에, 나는 딱히 표정을 관리하지 않았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게, 잿빛 마법사님과 서신을 주고 받으셨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럼, 용사님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있기야 했지.”
라크의 눈이 반짝였다.
자세한 걸 듣고 싶다는 듯한 눈치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라크 같은 부류를 한두 명 보는 건 아니었다. 기사단에 있을 때도 꽤 있었다.
‘카일에게 지나치게 환상을 가진 녀석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성교회에서는 작정하고 카일을 밀어주었다. 음유시인들을 고용해 카일의 전훈에 대해 떠들었다. 델로힘의 화신이라며 카일을 신성시했다.
‘그 때문에 환상이 좀 심해지긴 했지만···.’
꼭 그뿐만은 아니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카일은 정말, 제대로 된 용사처럼 보인다. 카일의 몸에 흘러넘치는 별빛은 승리의 상징과도 같다. 그것이 전선에 함께할적, 기사들을 두려움을 잊는다.
일종의 상징이 된 존재.
승리의 상징이자, 물러서지 않는 인류의 방패.
‘모든 용사를 대표하는 존재.’
그런 존재의 이야기에, 라크 같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카일의 본 모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들고 만다.
‘하반신에 뇌가 지배당한 개새낀데, 그냥.’
나는 턱을 괸 채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뭘 묻고 싶은데?”
“용사님이 얼마나 강한 존재였는지, 함께한 잿빛 마법사님은 용사님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을지 궁금합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한마디로 설명하긴 힘든 질문이었다.
‘강하긴 하지.’
역대의 용사들에 비교해도, 카일만한 출력을 낼 수 있는 용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흑룡의 목을 베어낼 만큼의 출력을 짜낸 건 카일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건 출력에 한정된 이야기다.
카일이 모든 방면에서 유능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조건이 충족되야, 그 출력을 뽑을 수 있었으니까.’
카일은 만능이 아니다.
라크나, 전장의 기사들이 가진 환상과 달리 카일은 결코 만능의 존재가 아니었다. 완벽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었고.
나는 잠깐의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까놓고 말하면, 용사에 어울리는 존재는 아니었대.”
“···예?”
라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쓰게 웃으며 라크에게 물었다.
“라크, 넌 용사를 뭐라 생각하냐?”
“어··· 재앙을 베는 존재?”
“그것도 맞지. 다른 건?”
“음, 인류의 수호자. 인류의 방패···.”
“그래, 방패. 용사란 그런 존재여야만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는 인류의 방패다. 전선에서 용사란 지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카일이란 용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고 그러시더라.”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면···.”
“차라리 창이지, 창.”
나는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었다.
“뒤는 없어. 옆도 못 봐. 그냥 직진밖에 못 해. 근데, 직진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창.”
카일은 지키는 존재가 아니었다.
녀석은 이전 세대의 용사들처럼 모든 방면에서 균등한 능력치를 가지지 않았다. 다른 것들을 전부 포기하고 한 방향만을 첨예하게 갈고 닦았다.
카일은 용사라기보단 돌격대였다.
지키는 존재라기보단, 물어뜯고, 날뛰는 존재였다.
“후열을 신경 쓰지 않고, 빠져나올 길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무조건 돌격밖에 몰라.”
그 대신, 돌격만큼은 확실하다.
갑각룡 세 마리를 한 번에 갈아버리며 순식간에 배교자의 팔을 잘라낸 전적이 그를 뒷받침 한다.
“그런 하나밖에 모르는 용사에게 부족한 걸 잿빛 마법사님이 채워줬던 거고.”
나는 카일을 대신해서 후열을 지켰다.
카일이 앞만 볼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카일이 빠져나올 길을 만들었다.
‘그게 전장에서 내 역할이었으니까.’
그렇게 조건만 갖춰진다면 카일의 출력 하나는 믿을 만 했다. 그 출력이 모든 걸 베어내는 성검(??)과 맞물렸을 때···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정말로, 가능성이 있었다.
용사의 자질도 자질이었지만 녀석은 꾸준히 성장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강해졌다. 그걸 이 악물고 쫓아갔던 나였기에 알 수 있는것이 있다.
‘마왕을 만나기 직전, 카일이 추락하기 이전.’
죽음의 칼, 가니칼트와의 두 번째 조우.
카일의 최전성기였던 그때, 카일은 그 괴물을 상대로 1분을 버텼다. 내가 협곡을 무너트려 가니칼트를 생매장할 시간을 벌었다.
‘물론, 그 괴물새끼는 그것마저도 맨몸으로 뚫고 나왔지만···.’
어찌 됐든 우린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직감했다. 이전까지 어쩌면, 이라고 생각하던 추측이 확신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검을 들지조차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 조우에 카일은 죽음의 칼을 상대로 1분을 버텨냈다.
그것이 내게 확신을 주었다.
‘녀석이라면 된다.’
카일 이 자식이 계속해서 성장하면,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해서 검의 길을 걷는다면.
‘죽음의 칼을 잡을 수 있다. 그 너머에 있는 마왕을 잡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보았기에.
나는 카일을 놓지 못했던 것이다.
‘근데, 하면 되는 새끼가 안 하잖아 씨팔.’
새삼스레 좆같음이 밀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선이 잘못됐어.’
별이 사람은 더럽게 못 고른다.
그 힘이 카일이 아니라, 인성 하나는 성인(?人)이 따로 없는 성창의 갈라할한테 들어갔다면··· 진작에 사천왕 목 하나는 더 땄을 텐데.
‘좆같은 별자리 새끼.’
신성 모독적 발언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나는 속으로 델로힘이 모시는 신을 향해 쌍엿을 날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음···.”
내가 그러고 있자니 라크가 신음했다.
라크는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 뭔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운 말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들은 표정이었다.
‘하긴, 라크가 알고 있는 카일과는 다를 테니까.’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입을 열었다.
“그냥 잿빛 마법사님이 보기에 그러셨단 거야. 너나 내···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강한 건 맞지.”
그렇게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나는 창밖을 보았다. 흩날리던 눈발이 그쳐 있었다. 마차는 어느새 설원을 지나고 있었다.
설원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길.
그 길의 끝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성벽이다. 북부의 상징과도 같은 벽의 앞에 마차는 잠시 멈춰 섰다.
“도착한 것 같군요.”
라크는 그렇게 말했다.
곧이어 집사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가 훅, 밀려 들어왔다. 나는 열린 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설원에 선 집사가 말했다.
“북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눈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땅.
전사들의 땅, 북부.
드넓게 펼쳐진 설원이 여행의 끝을 알렸다.
2.
설산에 둘러싸인 북방의 땅.
어딜 가나 새하얀 눈이 펼쳐진 이곳에 내가 발을 들인 건, 당연하게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현자였을 시절 종종 들리곤 했으니까.
‘오랜만이네.’
그런 감상이 든다.
종종 들리기야 했다지만, 은퇴 직전에 가선 북부에 들릴 일이 없었다. 북부 전선이 흔들리는 일은 무척이나 드물었으니까.
터벅.
마차에서 내린 우린 잠시 걸었다.
북부의 수도로 들어가기 전, 라크가 잠시 들릴 곳이 있다고 말한 까닭이었다.
“마차에서 기다리고 계셔도 될 텐데···.”
“좀 걸으려고. 안에만 있더니 답답해서.”
라크와 함께 나는 북부의 도시를 걸었다. 종종 라크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라크 공자님 아니십니까!”
“아카데미에선 잘 지내다 오셨는지···.”
꼭 고향에 돌아온 손주를 보듯, 행상인들은 라크의 손에 괜스레 이것저것 쥐여주었다. 주로 군것질거리였다.
“그거 맛있어 보이는데.”
“좀 드시겠습니까?”
“주면 나야 좋지.”
얼린 과일을 쪼갠 듯한 과자였다.
새콤한 맛이 나는 과자를 씹으며 나는 라크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라크는 도시 외곽의 대장간 앞에 멈춰 섰다.
대장간 주변에만 눈이 쌓여있지 않았다.
건물의 바깥에서부터 열기가 느껴졌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먼저 들어가.”
라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순간 뜨거운 바람이 훅, 하고 불어왔다. 열풍에는 쇠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쿠락.”
라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대장간 안에서 중년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흉터가 가득한 손으로 그가 문을 턱, 하고 짚었다.
“드디어 오셨군. 기다리고 있었소, 도련님.”
“오랜만이다. 쿠락.”
가볍게 라크와 주먹을 맞부딪친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이쪽 분은?”
“내가 다니는 아플리아의 교수님. 아버지께서 북부로 초대를 하셨지.”
쿠락이라 불린 사내가 흠, 하고 턱을 매만졌다. 그러더니 대뜸 손을 내밀었다.
“쿠락이요. 대장장이지.”
“라니아 입니다.”
나는 악수를 받았다.
손을 내민 건 쿠락이지만, 내가 손을 잡으니 쿠락은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일단 들어오시요.”
쿠락을 따라 들어간 대장간은 온갖 무기들로 가득했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무기들을 흘겨보며 나는 내심 감탄했다.
‘···다 최상품이네.’
너도 검이나 써보라며, 쿤텔 아저씨에게 대장간에 끌려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 탓에 무기를 보는 안목이 늘었기에 명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왕도의 대장간과는 달랐다.
요란하지 않다. 예장(?)용으로 쓰이는 보기 좋은 무기는 단 하나도 놓여있지 않았다. 담백하여 꾸밈없는 무기만이 가득하다.
치이익.
열기가 한층 진해진 곳에 쿠락이 멈춰 섰다. 작업실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이리 주시오.”
그가 손을 내밀었고, 라크는 말없이 허리춤에서 도끼를 뽑아 쿠락의 손에 얹었다. 쿠락은 도끼를 쥔 채 작업대로 향했다.
나는 라크에게넌지시 물었다.
“무기 수리하러 온 거야?”
“아, 예. 반년에 한 번은 꼭 들립니다.”
라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쿠락을 가리켰다.
“제 도끼를 만든 사람이 바로 쿠락입니다. 북부에서 가장 유명한 대장장이죠.”
“하긴, 도끼가 좋아 보이긴 하더라.”
“예, 딱히 관리하지 않아도 날이 상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쿠락은 꼭 들리라 합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작업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왜긴 왜겠소? 저번에도 설명해줬을 텐데, 도련님.”
쿠락이 말했다.
“아무리 소재가 좋고, 대장장이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이 세상에 영원한 무기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지. 주기적으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무기는 금세 녹이 슬고 마오.”
카앙, 하고 그가 도끼를 가볍게 내려쳤다.
“무기는 전사의 동반자요. 무기는 전사와 닮아있지. 단련을 멈춘 전사가 몰락하는 것처럼, 무기 또한 관리해주지 않으면 망가지지.”
그가 도끼에 붙은 때를 벗겨낸다.
차가운 물에 담갔다 뺀 도끼의 날을 갈며 쿠락은 우리를 향해 한마디 내뱉었다.
“한번 망가지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지.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전의 관리가 중요한 거요.”
···뭔가.
‘뭔가, 마음에 와닿는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음을 울리는 말이었다. 내가 고개를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관리하지 않아도 멀쩡한 건, 별이 직접 단조했다는 성검(??) 같은··· 신의 무기밖에 없을 테지.”
쿠락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하.”
그 말에 나는 무심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쿠락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나를 바라봤다.
“왜 웃소? 내 말이 우습소?”
“아뇨, 그냥···.”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관리를 안 해주면, 녹스는 건, 성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요.”
“농담도 잘하는군. 신이 직접 단조한 무기가 어찌 녹이 슨단 말이오?”
“그러게 말이에요.”
농담이면 참 좋았을 텐데 말야.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쿠락의 말을 곱씹었다.
‘단련을 멈추면 사람이 못 써먹게 된다. 무기나 사람이나 똑같다······.’
그러니.
‘갈굼을 멈춰선 안 된다.’
한 줄의 문장을 나는 마음에 새겼다.
‘···나중에라도 용사를 키우게 되면, 쉴 새 없이 굴려야겠네. 녹이 슬지 않도록.’
그런 다짐을 하며, 나는 쿠락이 도끼의 날을 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3.
“히윽.”
“···왜 그래?”
“아니, 그냥 뭔가 불길해서···?”
벨노아는 갑자기 어깨를 부르르, 떠는 클로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나 감 좋은 거 알잖아, 벨노아. 나 지금 무척 불길해. 뭔가··· 뭔가 안 좋은 일이 나를 덮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그 감 맨날 틀리잖아.”
“아냐! 이번에는 정말 맞다니까···! 용사의 감이야. 용사의 감이라구!”
클로에가 팔을 쫙 펼쳤다.
“악몽! 악몽이 나를 덮칠 거야!”
“너 어제 밤샜어?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소설 읽느라 밤을 새긴 했지만···! 진짜라니까? 직감이 왔어. 악몽이 찾아올 거라구···!”
벨노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클로에가 개소리를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므로, 딱히 들을 가치가 없는 이야기였다.
“소설 좀 적당히 봐.”
“아니라니까···!”
어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 * *